2012년 3월 2일 금요일

[문화로 보는 한국사] 5주차 서울 궁궐 돌아보기

수도로서의 서울

 

-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이자 조선왕조의 수도
- 1394년 이래로 6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수도
- 왕조사회에서 수도란 왕이 계신 곳, 왕이 사시면서 활동하시는 곳=왕도

  무학대사와 왕십리 일화

  태조 이성계의 명을 받아 무학대사가 새로운 왕도를 물색하고 다니던 중 한 곳에 이르러 그 풍수를 좋게 여기고 있는데 문득 "이 미련한 소야, 꼭 무학이 같이 미련하구나!"라는 소리가 났다. 무학이 놀라 보니 한 농부가 쟁기질을 하는 소에게 채찍질을 하며 "앞으로 십리는 더 가야 하는데 어찌 여기 눌러앉으려 하느냐" 재촉했다.
  이 말에 무학이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농부가 가리키던 방향으로 십리를 더 가니 과연 뛰어난 명당이 있어 궁터로 정하니 지금의 경복궁이 있는 자리이며, 무학이 깨달음을 얻은 자리가 지금의 왕십리(往十里)이다

 

한양 천도의 근거

 

◈ 고려 수도 개경으로부터 천도를 하기 위해 여러 곳을 물색했으나 탈락
     - 계룡산 신도안 : 남쪽으로 치우쳐있고, 강이 가까이 있지 못하다.
     - 무악(안산)-터가 협소하고 한강과 너무 가까워 적의 침입시 방어가 어렵다.

◈ 고려의 남경(한양)
     - 형세가 좋다.
     - 도리가 균등하다(한반도의 중앙부에 해당한다)
     - 교통이 편리하다(수운의 요충지이다)

 

백두대간과 서울

 

朝鮮日本琉球國圖
 
 
종묘사직
 
◈ 수도를 정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종묘사직을 짓는 일

◈ 종묘
     - 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셔놓고 1년에 다섯 차례 국가적 제례를 지내는 곳
     - 1934년(태조 3년) 12월 태조가 한양으로 천도할 때 궁궐터의 동쪽에 영건을 시작하여
      다음해 9월에 1차 완공
     - 1955년 유네스코에 의해 팔만대장경, 석굴암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 사직
     - 토지의 신 '사(社)'와 곡식의 신 '직(稷)' 에게 제사 지내는 제단
     - 백성은 땅과 곡식이 없으면 살 수 없으므로 사직은 풍흉과 국가의 운명을 관장한다고
      믿어 나라를 창건한 자는 제일 먼저 왕가의 선조를 받는 종묘와 더불어 사직단을 지어 백성
      을 위하여 사직에게 복을 비는 제사를 지냄
 
내사산, 내수, 외수
 

輿地圖 중의 都城圖 (18세기 중반)
◈ 내사산(內四山)
    - 백악(白岳)[主山]
    - 타락산[左靑龍]
    - 목멱산(木覓山)[案山]
    - 인왕산(仁王山)[右白虎]
    * 응봉(鷹峯)
◈ 내수, 외수
    -내수 : 청계천(淸溪川)
    -외수 : 한강(漢江)
 
사대문과 사소문, 거리
 

朝鮮疆域摠圖 중의 都城圖 (17세기 말~18세기 전반)

◈ 사대문(四大門)과 종루(鍾樓)
    - 숭례문(崇禮門)
    - 돈의문(敦義門)
    - 숙정문(肅靖門)
    - 흥인지문(興仁之門)
    - 종루

◈ 사소문(四小門)
    - 소의문(昭義門)
    - 창의문(彰義門, 紫霞門)
    - 혜화문(惠化門)
    - 광희문(光熙門)
◈ 주요 거리
    - 운종가(雲從街)
    - '남대문로'


궁궐과 좌묘우사

 

◈ 다섯 궁궐(宮闕)
    - 경복궁(景福宮)
    - 창덕궁(昌德宮)
    - 창경궁(昌慶宮)
    - 경희궁(慶熙宮)
    - 경운궁(慶運宮, "德壽宮")

◈ 좌묘우사(左廟右社)
    - 종묘(宗廟)
    - 사직(社稷)

 

도시구조와 거주민의 분화

- 권력과 부를 차지하고 있는 양반 관료들은 주로 북촌에 거주
- 목멱산 자락은 경치가 좋으나 좌향(북향)이므로 돈이나 관직이 없는 선비
   → 남산골 샌님, 딸깍발이
- 운종가와 청계천 주변에는 상인, 중인, 평민이 거주
- 청계천 다리 밑에 거지굴 형성
- 서울의 동대문 바깥 : 채소, 땔감 유입
- 서울의 서쪽 포구 : 도고와 난전 성장

 

궁궐의 개념

 

- 서울을 서울답게 만드는 실질적인 요소
- 國王이 기거하며 활동하는 공간. 즉 국왕의 사적인 일상생활 공간
- 국왕은 왕조사회의 주권자이자 최고 통치자이므로 통치행위를 하는 곳, 행정과 정치, 제반
  문화적·이념적 활동의 최고 결정과 감독이 이루어지는 공간.
- 조선시대의 국왕은 궁궐을 벗어나는 일이 거의 드뭄. 국왕을 보필, 보좌해서 국정을 돌보는 고위 관원들이 궁궐 안으로 들어와 공적 행위를 하게 됨.
- 즉 궁궐은 곧 최고의 관부(官府)
- 궁궐에 대한 이해를 통해 당시의 행정, 정치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음.

 

별궁

 

- 別宮
- 서울 도성 안에 위치한 왕실 소유의 궁
- 조선시대에 왕이 사신을 접대하거나 왕이나 왕세자가 비를 맞아들이기 위하여 특별히 마련한
  궁전 또는 왕이 즉위하기 전에 살던 집(잠저)

잠저(潛邸)
  왕세자(王世子)와 같이 정상법통(正常法統)이 아닌 다른 방법이나 사정으로, 즉 새로 나라를 세우거나 반정(反正)으로 임금에 추대되는 사람, 또는 후사(後嗣)가 없어 종실(宗室)에서 왕위를 잇게 하는 경우, 임금으로 추대된 사람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

동궁(東宮)
  왕세자의 궁. 궁궐 내에 위치.

- 인조의 저경궁과 어의궁, 효종의 용흥궁, 영조의 창의궁, 고종의 운현궁 등

 

행궁, 묘궁

 

◈ 행궁(行宮)
   - 임금이 국도(國都)의 왕궁 밖에서 머물던 별궁.
   - 피서(避暑)·피한(避寒)·요양을 위해 짓거나 경승지(景勝地)에 짓기도 하였지만, 통치력의
    효과적인 파급을 위해 지방의 요지에 행궁을 짓거나 능행시 머물기 위한 궁
   - 시흥 행궁, 과천 행궁, 화성 행궁, 북한산성 행궁 등

◈ 묘궁(廟宮)
   - 세자 또는 정비가 아닌 왕의 생모의 사당
   - 경모궁, 칠궁 등

 

 

궁궐 구조의 특징

 

◈ 왕가의 사적인 주거공간과 공적인 통치 및 의식 공간 분리 : 외전과 내전
◈ 신분에 따라 공간 분리
◈ 남녀의 공간 분리 : 연거지소와 시어소

건물들의 신분
Θ 전(殿)-왕이나 왕비, 대비 등 최고 신분의 사람이 활동하는 건물.
Θ 당(堂)-'전'보다 한 격이 떨어지는 사람들의 활동 공간. 왕은 '전'이나 '당'에 기거
  할 수 있지만, 세자는 '전'에 기거할 수 없다. '당'은 규모나 장식의 면에서는 '전'에
  버금간다.
Θ 합(閤)-독립 건물인 경우도 있지만 '전'이나 '당'을 보위하는 경우가 많다. 대체로
  여성이 이용. 규모는 '전'이나 '당'에 비해 작고 장식도 단순.
Θ 각(閣)-독립 건물인 경우도 있지만 전이나 당을 보위하는 경우가 많다. 2층 건물에
  서는 1층에 반드시 '각'자가 붙는다.
Θ 재(齋)-주로 주거용 또는 학문 창작 활동을 하는 건물
Θ 헌(軒)-재보다 낮은 주거용 건물이거나 혹은 업무용 건물. 마루만을 지칭하기도
  한다.
Θ 누(樓)-지면에서 한 길 이상 떨어진 마루방이거나, 2층 건물의 2층.
Θ 정(亭)-휴식, 연회용으로 경치 좋은 곳에 지은 작은 건물

 

 

궁궐의 요건-공간구조

◈ 외전(外殿)-국왕과 신료들이 의식(儀式) 행사를 통하여 공식적으로 만나는 공간. 중심 건물
    이 법전(法殿)
◈ 내전(內殿) - 국왕과 왕비의 기거, 활동 공간.
   국왕의 침전(寢殿) - 연거지소(燕居之所)
   왕비의 침전이자 시어소(時御所) - 중궁전(中宮殿)
◈ 동궁(東宮)-세자(世子)이 기거, 활동 공간.
◈ 궐내각사(闕內各司)-궁궐에 들어와 근무하는 관원들의 관청 공간.
◈ 궐외각사(闕外各司)-궁궐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궁궐 부근의 관아.
◈ 생활 기거 공간-궁궐에 사는 왕실 및 이들을 수발하는 궁녀, 내시 등의 공간.
◈ 후원(後苑)-휴식, 집회 등을 위한 숲, 공터.


경복궁도
궁궐景福宮昌德宮昌慶宮慶熙宮慶運宮
法 殿勤政殿仁政殿明政殿崇政殿中化殿
便 殿思政殿宣政殿文政殿資政殿 
燕居所康寧殿熙政堂歡慶殿隆福殿咸寧殿
王 妃交泰殿大造殿通明殿會祥殿觀明殿
王大妃慈慶殿 慈慶殿長樂殿 
東 宮繼照堂重熙堂時敏堂興政堂德慶堂
正 門光化門敦化門弘化門興化門仁化門

 

법궁과 이궁

 

◈ 법궁(法宮)
    정궁.
    궁궐로서 모든 요건을 갖춘 제일의 궁궐.

◈ 이궁(離宮)
    궁궐로서 모든 요건을 갖춘 제이의 궁궐.
    법궁에 뜻하지 않은 변고가 생겼을 때, 혹은 왕의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 옮기고 싶을 때 옮겨
  가서 상당기간 활동하는 또 다른 궁궐
    법궁보다 격이 한단계 낮긴 하지만 법궁과 마찬가지로 왕의 공식 활동공간

 

 

법궁-이궁 양궐체제

 

 


朝鮮日本琉球國圖

1592(선조) 임진왜란 발발.
      선조 몽진 길에 오름.
      왜군 서울에 침입.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등 불탐.
1593(선조) 왕과 정부 일행 환도.
      정릉동 행궁을 거처로 삼음.
1608(광해) 창덕궁의 중요 건물 건립.
1611(광해) 창덕궁으로 일시 이거.
      정릉동 행궁을 경운궁으로 명명.
1615(광해) 경운궁에서 창덕궁으로 완전히
      이어.
1617(광해) 仁慶宮, 慶熙宮 영건 시작.
1623(광해) 인조반정.
      인조는 慶運宮 別堂에서 즉위.
1624(인조) 이괄의 난으로 창덕, 창경궁이 불
      타니 인조는 경희궁에 移居.
      * 경희궁은 西闕, 창덕·창경궁은 東闕.
1647(인조) 창덕궁으로 이어.
1776(정조) 창덕궁 후원에 奎章閣 건립.

1865(고종) 경복궁 중건 사업 시작.
1868(고종) 신궁(경복궁)으로 이어. 정무 개시.
1884(고종) 갑신정변, 청일 전쟁
      왕은 북묘, 오조유의 영방, 청의 司馬 袁世
      凱의 영방 등으로 피난. 창덕궁으로 환어.
1885(고종) 창덕궁을 떠나 경복궁으로 이어.
1894(고종) 동학혁명
      일본 공사 大鳥圭介가 침략군을 이끌고 경
      복궁 내에 난입, 왕을 위협하여 친일 내각
      조직.
1895(고종) 乙未事變
1896(고종) 俄館播遷
1897(고종) 慶運宮으로 환어.
      국호를 大韓帝國으로 고침.
1907(고종) 고종 강제 퇴위.
      太皇帝의 宮號를 "德壽"로 결정.
1907(순종) 昌德宮으로 이어.
      창경궁 報漏閣이 있던 일대에 동물원 개
      설.
1909(순종) 창경궁에 동물원, 식물원, 박물관
      낙성.
      경희궁 자리에 일본인 중학교 설치.
1910(순종) 한일합방.
      경복궁의 많은 건물을 일제가 헐어 방매.
1911 창경궁을 "昌慶苑"으로 개칭.
1917 창덕궁 대화재

출처
원문링크 : [문화로 보는 한국사] 5주차 서울 궁궐 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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