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평원군.우경열전 平原君.虞卿列傳
조나라 평원군은 한나라 상당의 태수 풍정(馮亭)과 권모술수를 다투고,초나라에 가서 구원병을 일으켜
국도 한단을 진군의 포위에서 구출해 군주 조왕의 제후에 대한 명성을 회복시켰다.
그래서 제16에<평원군.우경열전>을 서술했다. <太史公自序>
평원군 조승(趙勝: 趙 武靈王의 아들이며 惠文王의 아우)은 조나라의 여러 공자(公子)들 중의 하나다.
여러 공자들 중에서 승이 가장 현명했다. 빈객을 좋아해 그의 집에는 수천 인이 모여들었다. 평원군은
조의 혜문왕(惠文王: B.C. 298-266 在位)과 효성왕(孝成王: B.C. 265-245在位)의 재상이 되고
세 번이나 재상 자리를 떠났으나 세 차례 다시 재상 자리를 회복했고, 동무성(東武城: 河北省 淸河縣)에
봉해졌다.
평원군의 저택은 민가를 향한 이층집이었는데 바로 밑으로는 절름발이가 살고 있었다. 평원군의 애첩이
어느 날 아래를 내려다보다 말고 절뚝거리며 우물물을 긷고 있는 그를 보고 깔깔대고 웃었다. 화가 난
절름발이는 평원군의 집으로 쳐들어와서 항의했다.
[듣건대, 나리께선 계집을 천히 여기시고 선비를 중히 여기시기 때문에 그들이 천리를 마다 않고 문하에
모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불행하게도 병신이오나 그건 제 탓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나리의
애첩까지 저를 보고 비웃는 실례를 범했사오니 그녀를 벌 주시옵소서.]
[그래, 남의 불행을 보고 비웃었으니 그건 결례다. 그녀에게 벌을 주겠다.]
[이미 약속하셨습니다. 그럼 며칠 내로 그녀의 목을 자를 줄 알고 돌아가겠습니다.]
속으론 뜨끔했으나 홧김에 그러는 줄 알고 밝게 웃으며 아무렇게나 대답했다.
[그래, 목을 자르겠으니 걱정 말고 돌아가거라.]
절름발이가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자 평원군은 다시 한 번 피식 웃었다.
[미친놈, 기껏 한 번 웃었다는 이유로 남의 애첩의 머리를 요구하다니.]
그 후로 한 해쯤 지나자 그토록 득실거리던 빈객과 사인(舍人: 家臣)의 반 이상이 문하로부터 떠나 버렸다.
평원군으로서는 괴이쩍은 일이라 마악 떠나려는 빈객 하나를 붙들고 물었다.
[나로선 여러분을 대함에 있어 일찍이 결례한 적이 없기로 어찌하여 떠나가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은지요?]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며 둘째는 계집을 선비보다 더욱 귀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무슨 얘기요? 난 그런 기억이 없는데.......]
[공자께선 애첩의 목을 베겠다는 절름발이와의 약속을 어기셨고, 두번째는 애첩을 신의보다 더욱
아까워하시니 이는 선비를 업신여김과 같습니다. 그래서 떠나려 합니다.]
평원군은 크게 뉘우치고 곧 애첩의 목을 베었으며 절름발이를 찾아가 옛일을 깊이 사과했다. 그러자 그의
문하에는 다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 무렵 제에는 맹상군이 있었고 위(魏)에는 신릉군(信陵君), 초에는 춘신군(春申君)이 있어 뜻하는 바를
위해 서로 힘을 다투어 선비들을 후대했다.
진나라가 한단을 포위하자 조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는 초와 합종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초나라로 평원군이
가게 되었는데 문무의 덕을 겸비한 빈객 20명과 동행하기로 작정했다고 왕께 아뢰었다.
[문사(文辭: 外交)의 교섭으로 성공할 수만 있다면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일이나 여의치 못할 경우에는
초왕을 협박하는 비상수단을 써서라도 합종을 맺고 돌아오겠습니다.]
[무력을 사용하겠다는 얘기요?]
[아닙니다. 제 문하의 의혈 식객 스무 명이면 충분합니다.]
그런데 평원군은 19명을 무사히 가려냈으나 나머지 한 자리에 대해서는 도무지 쓸 만한 인사가 없다고
생각되었다. 그 때 문하에 모수(毛遂)라는 식객이 있었다.
[공자, 일행에 저를 꼭 넣어 주십시오.]
돌아보니 모르는 얼굴이었다.
[댁은 뉘시오?]
[모수라 합니다.]
[스무 명의 교섭단에 들 만큼의 어떤 재주라도 가졌소?]
[데리고만 가 주십시오. 대단히 쓸모가 있을 것입니다.]
평원군은 속으로 웃고 나서 말했다.
[그대는 나의 식객으로 계신 지 도대체 몇 해나 됐소이까?]
[한 삼 년 됐습니다.]
[삼 년씩이나! 무릇 세상의 현명한 선비란 주머니 속의 송곳끝처럼 금세 드러나는 법이요. 그런데도 그대는
내 문하에 삼 년 씩이나 계셨으면서도 나뿐만 아니라 좌우의 누구도 그대를 알지 못하니 결국 그대에게는
아무 재능이 없다는 뜻이 아니겠소.]
[공자의 주머니 속에 바로 오늘 넣어 달라고 청원했을 뿐입니다. 진작 저를 주머니 속에 넣으셨더라면 송곳
끝만 아니라 송곳 자루까지 나왔을 것입니다.]
마땅한 다른 인물도 없었던 데다 모수의 청원이 하도 완강했으므로 일행에 그냥 끼워 넣기로 했다.
그러나 초나라에 도착해서조차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평원군은 합종을 성공시키려고 모수를 뺀 몇 명씩의 대표단을 당상으로 끌고 올라가 열전을 벌였으나
며칠째 결론을 보지 못하고 심지어는 초나라 합종 반대파들에 의해 협상은 완전한 결렬 위기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때 잠자코 있던 모수가, 기진맥진해서 당하로 내려오는 일행들에게 슬며시 물었다.
[오늘도 일은 틀린 것 같소?]
그제서야 모수의 존재를 의식한 다른 일행들이 여전히 조소와 경멸어린 바라보며 대꾸했다.
[완전 결렬이오.]
[방법이 잘못됐으니 그렇겠지요.]
[무어요? 그렇다면 당신이 당상으로 올라가 보구려.]
[가야지요.]
[원 참, 우리가 번갈아 싸우고도 못 해 낸 일을......!]
대꾸도 않고, 모수는 장검을 허리에 찬 채 당상으로 급히 뛰어 오르며 협상 대표인 평원군에게 외쳤다.
[합종의 결론은 이로우냐 해로우냐 딱 두 마디로 요약됩니다. 그토록 간단한 일을 가지고 며칠씩 걸려도
결론을 못 내리니 어찌된 겁니까!]
[누구요?]
[제 가신(家臣)입니다.]
초왕은 모수를 업신여기며 꾸짖었다.
[어서 내려가! 네 주인과 대담하고 있는데 감히 네까짓 게 나서다니!]
초왕의 호통에도 기죽지 않고 오히려 이번에는 장검을 휙 빼들며 소리질렀다.
[대왕께서 저를 꾸짖음은 초나라의 병사 많음을 믿기 때문입니다.그렇지만 그런 생각은 큰 착각이십니다.
지금 열 걸음 안에는 대왕과 저밖에 없습니다. 초나라 병사가 백만이면 무엇합니까. 그러니 대왕의
생명은 제 손안에 들어 있습니다.]
[저놈이!]
[그토록 큰소리치지 마십시오. 그것은 제 주군을 대왕께서 무시하는 처사이옵니다. 은의 탕왕은 70리의
땅만 가지고도 천하의 왕이 되었고 주의 문왕은 백리의 땅만 가지고도 천하 제후들을 신하로
복종시켰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위세로 그 위력을 발휘했기 때문이지 그의 사졸이 많아서가 결코 아닙니다. 지금 초의 땅은
사방 5천 리에 삼지창을 든 병사가 백만입니다. 대왕의 대업을 충분히 성취할 수 있는 대단한 자본입니다.
천하에 대적할 수 없는 강대함입니다.]
[무엇을 말하자는 것이냐.]
[진의 애송이 장군 백기(白起)는 불과 수만 명을 거느리고 와서 진나라와 싸운 일전(一戰)에 언(언).
영(영)을 공략하고 이전에 이릉(夷陵: 湖北省 宜易縣 동쪽)을 불사르고 삼전에 선대(先代: 頃襄王)왕의
능묘를 욕보였습니다. 이것은 초나라에게는 백 대가 지나가도 잊을 수 없는 통한의 과거가 아닙니까.
조에서도 초를 위하여 부끄럽게 여기고 있거늘 도대체 진을 증오할 줄 모르는 초의 대왕께서는 어찌된
것이옵니까.]
[......으음!]
[합종하는 것은 초를 위함이지 조를 위해서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내용도 모르시면서 제 주군 앞에서
저를 꾸짖으시니 이 무슨 당치않은 일이십니까.]
한동안 당상에는 침묵이 흘렀다. 큰 신음을 내뱉은 뒤 초왕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옳소. 선생의 말씀대로요!]
모수는 틈을 주지 않고 물었다.
[합종은 결정된 겁니까?]
[결정했소.]
[그러면 닭과 개와 말의 피(盟約時 天子는 牛馬의 피, 제후는 개.돼지피,大夫 이하는 닭피를 사용했음)를
가져오게 하십시오.]
초왕은 측근에게 시켜 피가 든 동반(銅盤)을 받쳐들고 오게 했다. 동반이 날라져 오자 모수는 그것을 받아
초왕 앞에 무릎을 꿇고 앉으며 말했다.
[마땅히 대왕께서 입술에 먼저 피를 바르십시오. 합종을 맹약하는 의식입니다. 다음은 저의 주군,
그 다음엔 제가 바르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전상(殿上)에서의 합종은 맹약되었다. 그런 의식이 완료되자 왼손에 동반을 들고 내려와
19명의 일행들을 불러 말했다.
[그대들도 당하에서 이 피를 입에 바르라. 타인의 힘으로 일을 성취한 쓸모 없는 자들이긴 하지만
맹약의 증인들로서는 필요한 의식이다.]
평원군은 무사히 합종을 결정짓고 조나라로 귀국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나는 인물을 다시는 감정하지 않겠다. 내가 지금까지 선비의 관상을 보아 온 숫자는 적어도
일천을 넘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잘못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노라 자부해 왔다. 그런데 모 선생의 관상은
결정적으로 잘못 본 경우이다. 모 선생이 한 번 초에 가자 조나라를 구정(九鼎:夏禹氏가 九州의 쇠를
모아 만든 큰 솥. 夏.殷.周 三代의 보물)이나 대려(大呂: 周室의 大鍾으로 天子의 尊位를 象徵)보다
무겁게 만들었다. 모선생이 한 번 놀린 세 치 혀는 백만 명의 군사보다 강했다. 나는 감히
다시는 인물을 감정하지 않겠다.]
평원군은 드디어 모수를 상객(上客)으로 극진히 모셨다.
조의 한단이 포위되었을 때 초의 춘신군이 병사를 이끌어 구원하러 왔고,위의 신릉군도 군명(君命)이라
속이고 위장 진비(晋鄙)의 군대를 탈취해 조를 구원하러 왔다. 그러나 모든 구원조들이 조에 도착하기
전이었다. 한단이 함락 직전이었을 때 평원군은 뜻밖의 방문객을 맞았다.
[한단은 풍전등화 같구려.]
[......뉘시오?]
[여관 관리인의 아들 이동(李同: 이름이 談인데 太史公 부친의 이름과 같기로 고친 듯하다)이라 합니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러 왔소이까.]
[급한 불을 끄러 왔습니다.]
[그대가 불을?]
[저로선 불난 곳을 알 뿐이지 끄는 일은 공자께서 직접하시어야 됩니다.]
[어떻게 말이오?]
[공자께선 조나라가 망하는 게 걱정스럽습니까.]
[조가 망하면 포로가 되어 참형에 처해질 것인데 어찌 걱정이 아니되겠소.]
[저로선 공자께서 천하태평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슬슬 비꼬는 태도가 기분 나쁘고 아주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바쁘오. 할 얘기가 뭐요. 요점만 말하고 물러가시오.]
[말씀드리리다. 한단의 백성들은 궁핍의 극치에 있습니다.]
[적군이 핍박하니 나라가 황폐할 수밖에 없는 거요.]
[말솜씨가 없으니 요점만 말씀드리고 물러가겠나이다. 한단의 백성은 땔감이 없어 죽은 사람의 뼈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식량이 없어 제 자식을 남의 자식과 맞바꾸어 삶아 먹고 있습니다.]
[......그런가.......]
[그런데 공자께선 당신의 후궁과 노비가 몇백이 되고 그들 모두가 좋은 쌀밥과 고기를 먹고 비단 옷으로
감싸고 앉아서 거들먹거리고 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음식은 남아 돌아 썩어서 버릴 지경이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잘못이구려.]
[백성들은 굵은 베옷도 제대로 해 입지 못하고 있으며 그나마 쌀겨나 지게미조차 배불리 먹지 못합니다.]
[.......]
[무기는 다하여 나무를 깍아 창.화살을 만들어 쓰고 있는데 공자께선 종(鍾).경(磬) 같은 것으로 악기를
만들어 풍악을 즐기고 계십니다.]
[.......]
[진이 조를 깨뜨리는 날 이토록 호화로운 것들은 가지고 계신들 무엇에 소용되겠습니까. 조나라가
안전할 수만 있다면 이런 것들을 아무리 많이 가지고 계셔도 무방하겠지요.]
[그래서 어쩌자는 얘기요?]
[본부인 말고는 첩들을 사졸들 사이에 편입시키십시오.]
[그건.......]
[쌓아 두신 곡식과 소장하고 계신 모든 보석과 재물을 풀어 병사들을 배불리 먹이십시오.]
[그런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있겠소?]
[적어도 구원군들이 도착할 때까지는 버틸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해 보겠소.]
워낙 다급하여 평원군은 이동이 시키는 대로 했다. 뜻밖에도 3천 명의 결사대가 형성되었다.
진나라 군사는 30리를 퇴각했고, 초.위의 군사들이 가까스로 도착해 진나라 군사들은 드디어 물러갔다.
이동은 결사대의 선봉에 섰다가 전사하고 말았다. 평원군은 슬피 울며 이동의 아버지를 이후(李侯)에
봉하여 이동의 충성스러움에 보답했다.
우경(虞卿)과 공손룡(公孫龍)이라는 선비가 평원군의 식객으로 있었다.
이상한 소문을 들었는지 공손룡이 말을 달려 평원군에게 갔다.
[웬일이오?]
[한 가지 공자께서 실수하는 일이 있삽기에 서둘러 말씀드리고자 달려왔습니다.]
[내가 실수를?]
[우경이 다녀갔습니까?]
[다녀갔소.]
[한단이 포위됐을 때 제후들이 달려와 진군을 물러가게 한 것이 공자의 공로이니 봉읍을 청하라고 한
적이 있었습니까?]
[분명히 우경은 그렇게 말했소.]
[그런 충고가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옳지 않을 건 또 뭐요?]
[당치도 않은 생각이십니다. 대왕께서 공자를 조의 재상으로 등용하신 것이 공자보다 능력 있는 분이
조나라에 다시 없다고 판단하셨기 때문일까요?]
[글쎄요.......]
[동무성(東武城)을 나누어서 공자께 봉한 것이 공께만 공훈이 있고 딴 사람에게는 없었기 때문일까요?]
[그렇다고 생각지 않소.]
[옳게 보셨습니다. 공자가 조왕의 친척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게 전혀 공훈이 없다고는 말할 수가 없겠지요.]
[그 점은 인정하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공자께서 재상의 인수를
받을 때 스스로 무능하다 하여 사양하지 않았습니다. 봉읍을 대왕께서 증봉해 주시더라도 공께선 사양하지
않을 것입니다. 문제는 사양하지 않더라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습니다.]
[공이 있으니까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겠지요.]
[아니지요. 왕의 친척이기 때문에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는 얘깁니다.]
[무슨 얘기요?]
[우경의 건의가 나빴다는 말씀을 드릴 참이었습니다.]
[글쎄, 그의 건의의 어디가 잘못됐다는 거요?]
[우경은 두 개의 저울추를 쥐고 있습니다. 공께서 봉읍을 얻게 되면 그가 건의했기 때문에 일이 성사된
것으로 주장하여 공께 어떤 보수를 요구할 것이요, 실패하더라도 증봉을 청하도록 했다는 허명으로
공께 은혜를 입혔음을 주장할 것입니다.]
[그럴 듯하오. 허나, 왕의 친척이라고 해서 성(城)을 증봉받지 않는다면 공이 있어도 백성에게 내리는
봉읍 역시 의미가 없는 게 아니겠소.]
[아닙니다. 문제는 공께 있습니다. 왕의 친척이다 아니다는 제쳐 놓더라도 상을 받는 일이 하등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되신다면 벌을 받는 경우에도 왕의 인척임을 배제할 수 있겠습니까.]
[그대의 말이 옳소.]
생각 끝에 평원군은 공손룡의 충고를 듣기로 했다. 평원군은 조의 효성왕 15년에 죽었다.
자손이 대신해 섰으나 후에 조나라와 동시에 멸망했다.
평원군은 평소에 공손룡을 후대했다. 공손룡은 견백동이(堅白同異)의 변(辯)을 잘했다.
추연이 조나라에 들러 지극한 도(道)란 과연 무엇인가를 설파하자 그제서야 평원군은 공손룡을 물리쳤다.
우경이 유세하는 선비로 짚신 신고 챙이 긴 삿갓을 쓰고 와서 조의 효성왕에게 유세했다. 한 번 알현하고
황금 백일(白鎰).백벽(百壁) 한 쌍을 받았고 두 번 알현해서 조의 상경(上卿)에 올랐다. 그래서 우경(虞는
封邑名: 河南省)이라 불렀다.
조나라가 장평(長平)에서 진나라와 싸우다가 대패하면서 한 사람의 도위(都尉: 部隊長)까지 잃었다.
조왕이 근심하여 장군 누창(樓昌)과 우경을 불렀다.
[이겨야 되는 싸움에서 졌소. 이판사판으로 한 번 붙고 싶은데 경들의 생각은 어떻소?]
누창이 먼저 나섰다.
[의미 없는 싸움이 될 것입니다. 차라리 강화하십시오.]
우경도 나섰다.
[안 됩니다. 누창의 강화책은 싸워 보았자 우리가 반드시 패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강화의 주도권은 어차피 진나라가 쥐고 있습니다.]
[그러니 난감한 일이오.]
[대왕께선 진나라가 조나라 군대를 철저히 깨부술 것 같습니까, 아니면 대충 집적거려 보는 것으로
끝난다고 생각되십니까.]
[전력투구할 것 같소.]
[그렇다면 초.위에 보물을 보내어 우리 쪽으로 붙게 하십시오. 초.위는 응할 것입니다.]
[무슨 계략이오?]
[우리 사신이 초.위에 입국하면 진나라는 의심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의심을 해?]
[혹시 합종을 하지 않나 하고 의심하게 되며 우리를 두려워하게 됩니다.그런 다음에야 강화가 가능하게
됩니다.]
[과연 그럴까?]
그러나 조왕은 우경의 건의를 채택하지 않았다. 평양군(平陽君)과 상의한 뒤 정주(鄭朱)를 강화 사신으로
진나라에 보냈다. 어느 날 조왕은 우경을 불러 조롱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진나라가 우리 사신을 내치지 않고 받아들였는데 이 점에 대해서 경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두고 보십시오. 강화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무어라고?]
[천하제후의 축하시벌이 모조리 진나라에 가 있습니다. 진의 재상 응후는 정주를 대우하면서 그가
조나라의 강화 사절이라는 사실을 천하에 알릴 것입니다.]
[그런다고 해서 대우가 달라지는 게 무어 있겠소.]
[우리가 진나라와 강화하는 바를 천하가 알게 되며 그럼으로써 조.위는 우리가 위급해지더라도
구원하지 않게 됩니다.]
[조.위가 우리를 돕지 않는다고?]
[진과 친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들이 왜 우리를 돕겠습니까. 그런 약점을 알고 있는 진나라는 우리를
공격할 것입니다. 강화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과연 그럴까?]
우경의 말이 맞았다. 진군은 진평에서 조군을 크게 깨뜨리고 한단이 포위당하여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진이 한단의 포위를 풀고 나서였다.
조왕은 조학(趙학)을 시켜 진에게 6현을 할양하려는 강화 회담을 시도했다. 우경이 서둘러 입궐해 아뢰었다.
[대왕, 진의 군대가 한단의 포위를 풀고 간 것은 지쳐서 돌아간 것일까요, 아니면 조나라가 예뻐서
그냥 돌아간 것일까요.]
[지쳐서 돌아갔겠지.]
[옳습니다. 진은 한단을 함락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6현을 진나라에 공짜로 주려 하십니까.]
[경의 말이 옳소.]
그런 소식을 들은 조학이 다시 입궐했다.
[대왕, 진나라가 다시 침공했을 때 우리의 힘이 부친다면 그 땐 어떻게 하시렵니까. 강화를 하려야
이미 늦습니다.]
[6현을 미리 할양하자는 얘기요?]
[한나라와 위나라를 보십시오. 그들은 진에 땅을 할애해서 침공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진을 잘 섬기기
때문입니다. 굳이 조나라에만 진이 침범하는 이유를 아셔야 합니다.]
[알겠소. 진에 6현을 바칩시다.]
우경이 다시 입궐해 왕께 아뢰었다.
[강화하지 마십시오. 정 6현을 할양하실 생각이시라면 미리 내놓을 게 아니라 내년에 침공당했을 때
최후의 협상 조건으로 내놓아도 늦지 않습니다.]
조왕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있을 때 진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누완(樓緩)이 돌아왔다.
[진에게 땅을 주는 것과 주지 않는 것, 둘 중에서 어떤 게 상책인 것 같소?]
왕의 물음에 누완은 사양했다.
[신으로선 알 수가 없습니다.]
[사견(私見)이라도 있겠지.]
[그렇다면 말씀드려 보지요. 공보문백(公甫文伯: 魯의 季康子의 從父兄弟)의 이야기를 들으셨습니까.
그가 노나라에서 벼슬하다 죽으니 그의 죽음을 슬퍼하여 규방에서는 두 여자가 자살했습니다.
문백의 모친은 그 소식을 듣고 아들의 죽음에 대해 소리내어 울지 않았습니다.]
[그건 왜 그렇소?]
[문백의 유모가 아들의 죽음에 울지 않는 이유를 그 모친에게 묻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자(孔子)는
현인이었는데 노나라에서 쫓겨날 때 다른 제자들은 그를 따라 떠났지만 문백만 쫓아가지 않았다.
그가 죽으니 두 여자가 동반자살했는데 이는 아들의 성품이 덕인(德人)에게는 박정하고 계집에게는
다정했던 것으로 짐작한다. 그래서 울지 않는다'라고 말했답니다. 이 말은 처첩의 입에서 나오면
질투가 되고 모친의 입에서 나오면 혐오가 됩니다.]
[그런 일화를 무엇 때문에 얘기하고 있는 거요?]
[말의 내용은 같지만 말하는 사람에 따라 듣는 사람의 기분은 달라지는 것입니다. 신은 지금 진나라로부터
방금 돌아왔습니다.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처지에 땅을 베어 주라 말라 하는 바는 기회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그러니까 사견을 묻지 않았겠소. 듣기 민망하더라도 벌을 주지 않을테니 의견을 말해 보시오.]
[그렇다면 땅을 주십시오.]
우경은 다시 입궐해 누완의 의견을 한사코 반대했고 누완은 다시 왕께 설득했다.
[천하의 제후들이 진으로 몰려와 한결같이 선언한 내용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우리는 강자에게
붙어 약자를 누르겠다'였습니다. 진은 강하고 조는 약합니다. 진의 노여움을 사지 마시고 어서 땅을 베어
주십시오.]
우경이 다시 헐레벌떡 입궐했다.
[굳이 조나라 땅을 할양할 생각이시라면 제(齊)에게 주십시오.]
[제에게?]
[제는 진의 심각한 원수입니다. 제는 조의 6현을 얻고 조에게 협력할 것입니다. 조.제 양국은 그로써
전날의 원한을 씻게 되며 두 나라의 합종을 두려워한 진나라가 오히려 조나라에 조공을 바쳐 올 것입니다.
우리는 한.위와 화친을 맺음으로써 진나라의 천하대세에 대한 처지가 완전히 바뀌게 될 것입니다.]
[좋소. 결정했소!]
조왕은 우경을 제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다. 우경의 판단이 옳았던지 우경이 제나라로부터 돌아오기도
전에 진에서는 진 사절이 왔다. 그 소식을 듣고 누완은 멀리 도망쳐 버렸다. 우경은 공로로 성 하나를
봉읍으로 받았다. 얼마 후 위가 합종하자며 조나라로 사신이 왔는데 조왕은 우경과 상의하자고 했다.
입궐하는 길에 평원군에게도 의견을 물었는데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위와 합종하는 게 유리하오.]
우경이 입궐하자마자 조왕이 먼저 실토했다.
[위나라가 합종하자고 청해 왔소.]
[위는 잘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과인은 아직 허락하지 않았소.]
[대왕께서도 잘못하고 계십니다.]
[위도 잘못하고 과인도 잘못했다니, 도대체 무슨 뜻이오?]
[작은 나라가 큰 나라와 함께 일을 도모함에 있어 이익은 큰 나라에 있고 작은 나라는 그 화를 입는다고
하였습니다. 작은 나라인 위나라는 화를 자초하고 있으며 큰 나라인 조나라는 그 복을 스스로 원치 않고
있기에 둘 다 잘못이라고 아뢴 것입니다.]
[그런 뜻이었구려. 그러면 합종이 유리하다는 뜻이오?]
[그렇습니다.]
우경은 조나라를 위해 오랜 봉사를 하다가 위제(魏齊)의 사건으로 만호후(萬戶侯)의 지위와 경상(卿相)의
인을 던져 버리고 위제와 함께 대량으로 도망가서 곤궁하게 지냈다.
위제는 위(魏)의 재상이었는데 진의 범수(范수)와는 원수지간이었다.범수가 후일 진나라의 재상이 되어
위제의 목을 강력히 요구하자 친구인 조나라의 재상 우경에게 목숨을 구걸했다.
우경은 위제를 구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자 함께 대량(大梁: 魏都,河南省)으로 달아났다가 위제는
자살하고 우경은 불우한 말년을 거기서 지냈다.
우경은 곤궁 속에서도 많은 책을 저술했는데 <춘추(春秋)>에서 취하고 근세에서 관찰하며 <절의(節義)>
<칭호(稱號)> <취마(취摩)> <정모(政謨)>등을 지으니 여덟 편이었다. 그 내용은 국가의 득실을 비판한 것으로
세상에서는 <우씨춘추(虞氏春秋)>라 칭한다.
나 태사공은 이렇게 생각한다.
평원군은 혼탁한 세상에서 보기 드문 재사(才士)이다. 그러나 대국을 통찰하는 지혜까지는 없었다.
세속에 이욕(利慾)은 지혜를 가린다고 했듯이 평원군은 풍정(馮亭)의 간특한 말을 믿어 장평의 40만 대군을
사지에 빠뜨렸으며 수도 한단을 함몰시킬 뻔했다. 우경은 사태를 고려하여 사정을 참작해 조나라를 위한
교묘한 계략을 획책하였다. 위제의 역경을 보고 참을 수가 없어 부귀를 버리고 대량으로 달아나 곤궁함을
자취했다.
그것은 의(義)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경이 곤궁하지 않았더라면 걸작으로 그의 이름을 후세에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부귀한 몸으로서 빈천한 선비들에게 겸손했고 현명하고 유능한 인물이면서도 못난 사람에게 무릎을
꿇었던 것은 오직 신릉군(信陵君)만이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제17에 <위공자열전>을 서술했다.
<太史公自序>
위나라 공자 무기(無忌)는 위 소왕(昭王)의 막내아들이며 위나라 안희왕(安희王: B.C. 276-243 在位)의
배다른 아우이다. 소왕이 죽고 안희왕이 즉위하자 왕은 공자(公子)를 신릉군에 봉했다.
그 즈음에 범수(范수)가 위에서 망명해 진의 재상으로 있었다. 그는 위에 대한 원한으로 자주 진군을
출동시켜 대량(大梁)을 포위하고 화양(華陽) 부근의 위군을 깨뜨려 위장 망묘(芒卯)를 패주시켰다.
안희왕과 신릉군은 이런 사태를 두고 근심하고 있었다. 위공자 신릉군은 사람됨이 인자하고 겸손했다.
현명하거나 불초하거나를 가리지 않고 겸양으로 교제하며 자신이 부귀하다 하여 교만하게 구는 일이
없었다.
그런 까닭으로 사방 수천 리에서 선비들이 삼천씩이나 모여드니 인근 제후국들은 위공자의 명망이
두려워 감히 군사를 출동시키지 못하고 있음이 어언 십 년이었다. 어느 날 공자는 왕과 쌍륙(雙六)을 놀고
있었다. 병사 하나가 뛰어들어 황급히 고했다.
[북방 국경으로부터 봉화가 전해졌습니다!]
[무어라고?]
왕은 화들짝 놀랐다.
[조나라 군대가 내습해 방금 국경선을 돌파하려 한다는 신호인 듯 싶습니다.]
[야단났구나! 어서 대신들을 소집해 위급에 대처해야지!]
왕이 수선을 피우는데도 위공자는 꿈쩍도 않고 앉아 있었다.
[신릉군은 걱정도 아니 되오!]
왕은 역정을 내었다.
[전연 걱정하실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적이 쳐들어왔는데도 걱정이 아니 되다니!]
[침공이 아닙니다. 조나라 왕의 사냥 행차일 뿐입니다.]
[설마!]
얼마 후 다른 병사가 들어와 아뢰었다.
[조군의 침공이 아니라는 전달이 뒤따라 도착했습니다. 왕의 사냥 행차였답니다.]
위왕은 대경실색했다.
[공자, 그대는 그런 사실을 어떻게 미리 알고 있었소!]
[그야 간단하지요. 그 정도 적의 움직임쯤이야 제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환히 알 수 있지요.]
[그게......!]
[신의 식객 중에 조왕의 일거수 일투족을 소상히 보고해 주는 첩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만 놀라시고
노시던 쌍륙이나 계속하시지요.]
그런 일이 있은 후로 위왕은 공자의 현명함과 능력을 몹시 두려워했다. 그로 인해 공자에게는 국정을
더더욱 맡길 수가 없었다. 후영(侯영)이라는 나이 칠순의 숨은 선비가 있었다. 그는 이문(夷門: 東門)의
문지기였다. 공자가 그의 현명함을 듣고 후한 예물을 준비해 가서 빈객으로 초청하려 했다.
[스스로 몸을 닦아 행실을 바로 하며 수십 년을 지내왔습니다. 제가 곤궁하다 하여 새삼스레 공자의
재물을 받다니요. 사양하겠습니다. 그 대신.......]
후영은 공자가 비워 둔 수레의 상석(上席)인 왼쪽으로 스스럼없이 올라탔다.
[제 친구가 저잣거리의 푸줏간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주해(朱亥)라는 친구인데 쓸 만합니다. 곧장
만나러 가시지요.]
공자는 말고삐를 더욱 공손하게 잡아 후영의 제의대로 시장으로 말을 몰았다. 그런데 후영은 공자를
무시하고 말에서 내려 주해와 오랫동안 얘기를 주고받는 것이었다. 오히려 공자의 시종들이 공자의 온화한
안색을 살피며 욕들을 했다.
[도대체 저 문지기 늙은이와 개백정이 뭐가 대단해서 주인님은 저토록 겸손을 떠는가. 생각 같아서는
지금 당장 저 방약무인한 태도를 짓뭉개고 싶다만.......]
[글쎄 말일세. 지금 집에서는 장군과 재상과 왕족과 빈객들이 잔칫상 앞에서 술잔을 들고자 주인이
돌아오기만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텐데.......]
그래도 공자는 모른 척 말고삐를 잡고 있었다. 후영이 한참 후에 공자 옆으로 돌아왔다. 미안해하는
태도가 전연 없었다. 공자의 집으로 왔을 때는 이미 잔치 자리가 무르익었을 때였다. 그제서야 후영은 공자
앞으로 와서 축수한 뒤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다.
[오늘 제가 저지른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새삼스레 무얼.......]
공자는 여전히 웃는 낯으로 대꾸했다.
[그러시다면 낮의 저의 무례를 용서받은 것으로 알겠습니다.]
[한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주해라는 푸줏간 주인과 주고받는 얘기를 얼핏 엿들으니
대단한 내용이 아닌 것 같습디다. 그러함에도 바쁜 저의 마차를 굳이 막아 선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지요?]
[공자님을 시험해 본 것이었습니다. 어떤 인품이신가 하고요.]
[시험을?]
[저는 이문의 문지기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공자께서는 수레와 말을 이끌고 수많은 눈들이 보고 있는
곳으로 친히 왕림해 주셨습니다.]
[대단한 수고도 아닌 걸 가지고.......]
[그렇지 않습니다. 범인으로는 감히 행할 수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누추한 시장 바닥으로 모셔가서
그것도 오랫동안 서 계시게 했습니다. 다른 분들 같으면 화를 내곤 그냥 돌아갔을 겁니다.]
[현명한 선비를 모시려면 그 정도의 괴로움쯤 마다해서는 안 되지요.]
[보잘 것 없는 장터의 많은 사람들을 보셨습니까. 그 자들은 저와 주해가 누구인 줄 알며, 마차 위에 서
계신 분이 누구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랬을 테지요.]
[그것은 공자님의 명예를 높여 드리기 위해서 취한 행동이었습니다.]
[명예를 높이다니요?]
[저자의 지나가는 사람들은 저를 보고서는 소인배라 수군거렸고 공자님은 성인이시라며 더욱 공손한
태도를 취했습니다. 그러니 공자님의 명예를 더욱 높여 드린 겁니다.]
[자신을 낮추면서까지 저의 명성을 높여 주신 선비님의 깊은 심중은 헤아릴 길이 없소이다.]
[차제에 한 가지 부탁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어떤 부탁이십니까?]
[낮에 들렀던 푸줏간이 생각나십니까?]
[주인이 주해라 하셨던가요?]
[그는 현자(賢者)입니다. 백정이라고 해서 예사로 보셔선 아니됩니다.]
[빈객으로 모실 테니 소개시켜 주시지요.]
[세상이 그를 알아 주지 않지만 주해는 오히려 자신의 무명(無名)을 즐기며 살고 있기로 굳이 세상으로
나오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가서 간절히 부탁해 보지요.]
[성격이 다소 괴팍해서 공자님께 무례하게 굴지도 모릅니다.]
후영의 권고도 있고 해서 공자는 여러 차례 주해를 찾아갔다. 그러나 주해는 공자의 빈객이 되어
주기는커녕 말대꾸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내 부덕의 소치일 따름이다.]
공자는 괴이쩍게 생각하며 항상 빈 수레로 돌아오곤 했다. 위나라 안희왕 2년에 진나라 소왕이 조나라
장평의 군대를 격파하고 한단을 포위해 들어왔다. 하필 조나라 혜문왕의 아우인 평원군의 부인이 공자의
누이였다. 평원군은 위나라 왕과 공자에게 편지를 띄워 조나라를 구원해 달라고 여러 번 요청했다. 이에
위나라 왕은 장군 진비(晋鄙)에게 십만 대군을 주어 조나라를 구원케 했다. 이를 알게 된 진나라 왕은
위나라 왕에게 사자를 보내어 협박했다.
[잘 들으시오. 우리로선 국력을 기울여 조나라를 공격해 이제 내일 아침이나 저녁쯤이면 조의 항복을
받을 수 있게 되었소. 차제에 무엇 때문에 위나라가 나서서 우리 앞길을 막는단 말이오. 대왕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소. 만일 조나라를 구원하는 나라가 있다면 조나라를 친 후 반드시 구원해 준 나라로
군대를 돌려서 쑥밭을 만들어 놓고 말겠다고 하셨소이다.]
위왕은 겁이 많은 사람이었다. 진나라 사자의 위협에 놀라 진비의 진격을 멈추게 한 뒤 업(업) 땅에서
누벽(壘壁)을 쌓고 기다리게 했다.
[조나라를 구원하는 척하고 관망만 하고 있거라. 양쪽의 전세를 가늠하고 있다가 결정할 일이다.]
그것이 위왕의 전략이었다. 조나라는 풍전등화였다. 그렇게 되자 매제인 평원군은 처남인 위공자에게
관개(冠蓋: 네 필의 말이 끄는 높은 벼슬아치의 수레)를 보내어 책망하고 애소했다.
- 제가 위공자의 가문과 혼인 관계를 맺은 것은 공자께서 숭고한 의리를 가지신 분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남의 곤궁함을 보시고 재빠른 구원의 손길이 있을 줄로 알았습니다. 한단은 지금
당장 진나라에 항복할 처지에 이르렀습니다.
사자를 수찰 보내어 이 쪽의 위급을 알렸는데도 구원군이 도착하지 않으니 도대체 어찌 된 영문입니까.
위공자의 드높은 명예와 의리는 어찌되었습니까. 이대로 조나라가 망하도록 내버려 두겠습니까. 설사
공자께서 위나라를 가볍게 여겨 진나라에 항복하도록 둔다 하더라도 공자의 누이의 처지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누이가 불쌍하지도 않으십니까.
위공자는 다급했다. 위왕을 설득하러 갔다.
[조나라가 망하면 위나라도 위험합니다. 의리를 생각해서라도 우리는 조나라를 구출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위왕은 요지부동이었다.
[남의 나라 도와 주려다가 내 나라 망하는 꼴을 난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소. 게다가 나라가 위태로운데
여인 하나쯤 희생되는 게 무어가 그리 대수요. 나는 진나라가 두려워 공자의 요청을 들어 줄 수가 없단
말이오.]
왕궁을 물러나오며 위공자는 비장한 음성으로 하늘을 우러러 외쳤다.
[나 혼자 살기 위하여 조나라의 멸망을 외면할 수는 없다. 나의 의지에 찬성하는 빈객들이 적어도 몇
명은 있을 것이다. 원군은 될 수 없더라도 수레 몇 대 몰아가서 진나라에 대항해 싸우다 죽을 일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나의 명예와 의리를 지키는 유일한 길이거늘.......]
위공자가 단신 구원병으로 출진한다는 소문은 삽시에 퍼졌다. 밤이 되었을 때 후영이 가만히 찾아들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공자께선 혼자 싸우러 나가신다죠.]
[도리가 없지 않습니까. 왕께선 허락을 내려 주시질 않고 저로선 의리를 지켜야 하며.......]
[진정 공자께선 진나라 군대에 부딪치려 하십니까?]
[옥쇄(玉碎)하는 길만이 저를 지키는 길인 줄 압니다.]
[그건 마치 굶주린 범에게 고기를 던져 주는 것과 같은 행동이실 텐데요.]
[도무지 방법이 없으니 그렇게라도 해야겠지요.]
[공자께서 선비를 우대하신다는 명성은 천하에 다 퍼져 있습니다. 이제야말로 대우받아 온 선비가
나서야 할 차례입니다.]
[무릇 전쟁터에서는 선비가 필요 없지요.]
[아닙니다. 기책(奇策)은 선비가 마련하는 법입니다.]
[누가 기책을 마련해 주겠다고 하던가요?]
[저를 우대해 주시고 무례조차 괘념치 않으시던 공자님을 위해 제가 묘책을 하나 선사하겠습니다.]
[묘책이 있겠습니까?]
[장군 진비의 병부(兵符)가 대왕의 침실 안에 간수되어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건 사실입니다. 그렇대서 그게 묘책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지금 왕의 총애를 가장 확실히 받고 있는 여인이 여희(如姬)라고 들었는데요.]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여희만이 대왕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으므로 의심받지 않고 마음대로 왕의 침실을 드나들 수가
있습니다. 여희만이 그 병부를 훔쳐낼 수가 있지요.]
[병부를 훔친다...... 여희가 들어 줄 턱이 있겠습니까.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공자께선 잊으셨군요. 여희에게 은혜를 끼치신 일을.]
[제가요?]
[여희의 아비가 사소한 시비 끝에 어떤 불한당놈한테 피살되었지요.]
[그랬던가요?]
[원수를 갚아 줄 사람을 삼 년씩이나 찾고 있었지만 아무도 여희의 원수를 갚아 주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대왕께서도 여희의 탄원을 무심코 들어 넘겨 버리셨으니까요.]
[그토록 원통한 일이.......]
[그런데 기어코 대신 원수를 갚아 주는 인물이 나타났었지요.]
[그가 누구입니까?]
[선한 일을 하시고도 한사코 잊으셨습니까? 바로 공자께서 하신 일입니다.]
[제가요?]
[여희가 공자님을 찾아가서 울부짖으며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자 공자께서는 흔쾌히 여희의 소청을 들어
주셨습니다. 그 불한당의 죄를 물어 목을 베었습니다. 기억이 나시는지요?]
[듣고 보니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구려.]
[공자님을 위해서라면 여희는 틀림없이 목숨이라도 바칠 것입니다.]
[설마.......]
[가만히 불러 부탁을 해 보십시오. 반드시 병부를 훔쳐 줄 것입니다.]
[사태가 다급해 여희에게 부탁은 해 보겠습니다만...... 만일 병부를 얻는다고 가정했을 때는 어떻게
하지요?]
[곧장 가셔서 진비의 군대를 탈취하십시오. 북으로는 조나라를 구원하고 서쪽으로는 진의 군대를
몰아내니 이는 오패(五覇)가 세웠던 공과 같을 것입니다.]
[그러나 설사 위왕을 위해서는 충신이고 조나라에 대해서는 대공을 세운 격이 되나 위왕을 배반하는
행위임에 틀림없습니다. 어찌했건 일이 다급하니 주신 가르침대로 해 보겠습니다.]
후영이 일러준 대로 위공자가 여희를 불러 부탁하자 과연 병부(兵符: 군사가 움직일 때 신중히 하기
위하여 왕과 병군을 맡은 지방관 사이에 미리 나누어 가지는 신표)를 훔쳐다 주었다.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공자님께 은혜 갚을 길이 없어 몹시 가슴 답답해하였는데 이제는 한을
풀었습니다. 부디 하시는 일이 성공하기만 바랄 뿐입니다.]
여희는 울면서 절을 올렸다.
공자가 길을 떠나려 하자 후영이 찾아와 다시 말했다.
[장수가 변방에서 적군과 대치하고 있을 때에는 군주의 명령이라도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야 그렇게 하는 것이 나라에 이롭기 때문이겠지요.]
[무슨 뜻이냐 하면, 진비가 공자께서 내민 병부를 자신의 것과 맞추어 보고 꼭 맞아 떨어진다 해도
진비가 공자님께 군사를 양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럴 수도 있겠구려. 그 땐 어떻게 하지요?]
[진비가 대왕에게 사실의 진위를 재차 묻게 될 경우 공자님의 처지는 몹시 위태롭게 됩니다.]
[좋은 방책이 없겠습니까?}
[진비를 죽이는 길밖에 없습니다.]
[진비를! 그는 충성스럽고 호방한 백전노장이요. 그런 인물을 내 어찌 죽이겠소!]
[공자께서는 지금 일을 성사시키시려 하는 겁니까 아니면 일이 뒤틀리게 하시려고 작정한 겁니까? 제가
일이 이렇게 될 줄 알고 공자님과 가실 인물 하나를 점찍어 두었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개백정 주해를 아실 겁니다. 철퇴를 귀신같이 쓰는 천하장사입니다.]
[글쎄요. 전날 제가 여러 번 찾아가 빈객으로 모셔 오려 했으나 문전 박대하기 일쑤였는데, 과연 이런
위험한 일에 함께 가 주실까요?]
[분명히 가 줄 겁니다. 자질구레한 예절 같은 것은 신경 안 쓰는 괴짜이지만 내심은 의사(義士)입니다.]
[그럼 가서 부탁해 보겠습니다.]
[부디 잘 다녀오십시오. 저도 마땅히 공자님과 동행해야 될 것이로되 몸이 늙어 오히려 방해만 될
것입니다. 그 대신 공자님께서 떠나신 날짜를 헤아려 진비의 진중에 도착할 때쯤 북쪽 하늘을 바라보며 제
목을 스스로 벰으로써 험지의 동행을 대신하겠습니다.]
[그렇게까지!]
주해는 과연 후영의 말대로 위공자와 동행하는 일을 흔쾌히 승락했다.
드디어 둘은 진비의 진중에 도착했다.
[군사를 내게 넘기라 했소.]
공자는 반쪽의 병부를 진비에게 내밀었다.
진비는 병부를 받아 제것과 맞추어 보더니 딱 맞아 떨어지는데도 불구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많이 수상스런 생각이 드는군요.]
[무엇이 수상하오?]
[저는 지금 십만이라는 대병을 거느리고 최전선에 배치돼 있습니다. 막중한 임무를 지고 있는 몸인데
공자께서 수레 한 대를 달랑 타고 오셔서 병권을 넘겨 달라 하시니.......]
[그럼, 병부를 믿지 못하겠다는 얘기요?]
[너무나 중차대한 일을 대왕의 칙서도 없이 한 마디 말씀으로 임무 교대를 요구하시니 수상쩍을
수밖에요. 진중에서는 대왕의 명령도 듣지 않을 수가 있지요. 다시 확인해 볼 때까지는 병권을 돌려 드릴
수가 없습니다.]
[말이 많다!]
옆에 섰던 주해가 감춰 온 마흔 근짜리 철퇴를 휘둘러 진비의 머리를 사정없이 깨뜨려 버렸다. 진중이
어수선해지자 공자는 병영에 명령을 내걸었다.
- 부자(父子)가 함께 군영으로 소집돼 온 자가 있거든 아버지된 자는 먼저 고국으로 돌아가고, 형제가
있는 경우에는 형이 즉시 귀국할 것이며, 외아들이라면 곧 집으로 돌아가 부모를 공양하라.
위공자는 나머지 8만 명의 대군을 질타해 진나라 군대를 공격했다. 진군은 한단의 포위를 풀 수밖에
없었다. 조나라 왕과 평원군은 몸소 전선까지 나아가 공자를 맞이했다. 그 때 평원군은 동개를 등에 지고
초라하게 옆에 시립(侍立)해 있었고, 조왕은 크게 두 번 절한 후 말했다.
[천하의 현인으로서 자고로 위공자를 따를 만한 의인(義人)은 아무도 없소이다.]
한단성으로 든 지 얼마 있지 않아 위공자가 주둔군에 합류할 즈음 해서 과연 후영이 북쪽을 향해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과연 의인이다!]
위공자는 사후 수습을 해야 했다. 죽은 진비의 수하 장수를 불러 명했다.
[그대들은 군사를 이끌고 본국으로 돌아가시오.]
[공자께서는?]
[나는 귀국할 수가 없소. 생각해 보시오. 나는 진비의 병부를 훔쳐내어 왕의 명령을 사칭해 군사를
움직였고 왕의 충신 진비까지 죽였소. 비록 결과는 좋았다 하나 조나라에는 공훈이 있되 위나라에는
역적이오.]
[그럼 저희들끼리만 귀국하겠습니다. 공자께서는 부디 자중하십시오.]
위나라 군대를 돌아가게 한 뒤 공자는 자신의 빈객들과 함께 조나라에서 무료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대왕께서 노발대발하고 계시다 하니 귀국할 수도 없고 이 곳에 머물자니 무료하기만 하고.......]
위공자의 한탄이 조왕의 귀로 들어갔다. 평원군과 상의할 수밖에 없었다.
[조나라의 은인을 저토록 홀대해서는 안 될 것 같소. 그 은공을 무엇으로 보상하지요?]
[다섯 개쯤의 성읍(城邑)을 내주어 위공자의 것으로 봉해 주면 어떻겠습니까?]
[거 괜찮은 생각이오. 그렇게 합시다.]
위공자는 그 소식을 듣고 내심 기뻐서 혼자 중얼거렸다.
[그러면 그렇지. 은공이 있는 자에게 봉작이 없을 수가 없지!]
주해가 그 소리를 듣고 이맛살을 찌푸렸다. 도무지 말이 없던 주해의 행동이라 위공자는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엇 때문에 그토록 언잖은 표정을 지으시오?]
[자, 들어 보시오. 이 불초 주해가 죽음을 겁내지 않고 공자님을 수행해 온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야.......]
[대개 일에는 결코 잊어선 안 되는 일이 있고 절대로 잊지 않아서는 안 되는 일이 있습니다.]
[내가 무언가 잘못 행한 게 있소?]
[누군가가 공자께 덕을 베풀었다면 그것이야말로 공자께선 잊어선 안 될 일이고 만일 공자께서
누군가에게 덕을 베풀었다면 그야말로 잊어 버려야 되는 일입니다.]
[그건.......]
[조나라가 5개 성으로 공자께 봉한다고 했을 때 공자께서는 교만한 마음으로 당연하다는 듯이
중얼거리셨습니다.]
[봉읍을 받아서 안 될 일이라도 있겠소?]
[되묻겠습니다. 공자께선 조나라의 봉읍 때문에 생명을 건 이 일을 감행했습니까.]
[일에는 마땅히 보상이 따라야 하거늘.......]
[공자께서는 우선 위왕의 명령을 사칭하여 진비의 군대를 빼앗아 조나라를 구한 것입니다. 위에
대해서는 반역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천하의 현인들은 아무도 공자의 반역을 욕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의로운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조나라를 위해 공을 세우려는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조나라를 위한 공훈을 내세우고 조나라로부터 봉읍을 받아 보십시오. 의로움은
없어지고 탐욕만 남게 됩니다.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지요.]
[그대의 말씀이 옳소. 내가 잘못 생각하였소.]
그런 일이 있는 줄도 모르고 조왕은 계단을 청소하고 공자를 맞아 귀빈 대접을 하며, 최고의 예우가
되는 서쪽 계단을 오르도록 했다. 만일 서쪽 계단을 밟아 오르기만 하면 봉읍을 받겠다는 의미가 되는
터였다.
그러나 위공자는 굳이 사양하며 한사코 동쪽 계단을 통해 당으로 올랐다. 뿐만 아니라 위공자는 조왕의
의중을 미리 읽고 있었으므로 봉읍을 내리지 못하도록 입막음을 했다.
[제게 지나친 예우를 하실 생각일랑 마십시오. 분명히 저는 고국 위나라에 대해서는 반역을 저지른
몸입니다. 조나라에 대한 은공 역시 있을 수가 없습니다. 다만 진나라의 침공을 막은 일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공훈이 아니라 의(義) 때문입니다. 제가 만일 봉읍이라도 받았다간 두고 보십시오. 천하가 저의
탐욕을 간파하고는 웃을 것입니다.]
조왕은 밤이 깊을 때까지 술심부름을 하면서도 차마 다섯 성을 바치겠다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위공자의 명성은 그로 인해 더욱 높아지고 많은 빈객들이 그의 당하로 모여들었다. 조왕은 호(호: 河北省
柏鄕邑, 趙邑) 땅을 주어 공자를 시중드는 읍으로 삼게 했다.
한편 위나라로부터는 뜻밖에도 신릉(信陵: 河南省 寧陵縣, 魏邑)의 땅을 위공자에게 봉해 주었다는
소문이 들려 왔다.
[이는 필시 나를 끌어들여 죽이려는 유인책이다. 속을 내가 아니지.......]
끝내 위공자는 조나라에 눌러앉았다. 어느 날 주해가 말했다.
[가까운 곳에 모공(毛公)이라는 처사와 설공(薛公)이라는 처사가 살고 있는데 모두 현인들입니다. 만나
보시지요.]
[그들은 어떤 사람이오?]
[현인은 함부로 얼굴을 내놓지 않지요. 모공은 도박꾼들과 친하며 설공은 술꾼과 친해 작부에 얹혀
산답니다.]
[알 만하오. 후영이 장돌뱅이였고 주해가 개백정이었지만 천하의 현인이었던 것처럼.]
위공자를 따라 주해도 모처럼 웃었다. 공자가 어렵게 어렵게 모공과 설해를 만나 교우를 시작하자
그들이 크게 마음에 들어 몹시 흡족해했다. 그 때문에 공자는 술판과 도박판에서 소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행적이 평원군의 귀로 들어갔다. 위공자의 누이인 그의 아내에게 평원군은 언짢은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여보시오, 부인. 그대 남동생 위공자 말이오. 내가 듣기론 천하에 맞수가 없을 정도의 현인이라
들었는데 실상은 형편없는 인물인 듯하오.]
[왜 그러시는지요....... 제 동생이 무슨 큰 잘못이라도 저질렀나요?]
[친구를 보면 그의 인품을 안다고 했소. 그대 동생은 도박꾼과 술장수 따위와 교류를 한다니 말이오.
혹시 당신 동생이 망령든 것 아니오?]
[그런 행동이 당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그를 만나 단단히 타이르겠습니다.]
누이로부터 사건의 전말을 전해 들은 위공자는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누님, 평원군의 생각이 그러하다면 저는 누님께 작별 인사를 드릴 수밖에 없겠습니다. 평소에 저는
평원군이 현명한 인물이라고 들었습니다. 더구나 그는 의인이라고 모두들 말합니다. 그 때문에 저는
멀리서 평원군을 존경했으며, 위왕을 배반하면서까지 그를 도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보니 그의
명성이 허명임을 알겠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런 말을?]
[사람 사귀는 것을 보면 압니다. 그는 현명한 선비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권세 있고 부귀한
인물들하고만 교류하더군요. 심지어 저의 옳은 교류를 부끄럽게 여겨 비방하시니 차제에 오히려 제가
평원군과의 교류를 끊겠습니다.]
부인은 곧장 위공자의 말을 평원군에게 전했다.
[무어? 오히려 내 충고를 비방하더라고?]
처남 매부 사이에 오고 간 설전의 내용들이 사방에 알려졌다. 그 때부터 천하의 선비들은 더욱 위공자의
문하로 모여들었고 심지어 평원군의 빈객들 중 반 이상이 위공자의 문하로 옮겨가 버렸다.
[처남, 아니 위공자. 내가 잘못했소. 이렇게 관을 벗고 사죄하겠소. 제발 떠나지는 말아 주오!]
그러나 한 번 떠난 인심은 좀처럼 되찾을 길이 없었다.
위공자가 조나라에 머문 지 그럭저럭 10년이 되었다.
천하의 정세도 어지럽게 뒤바뀌고 있었다. 진나라는 위명을 떨치는 위공자가 조나라에 있으므로 감히 그
쪽은 치지 못하고 군대를 동진시켜 끊임없이 위나라를 공격했다.
[큰일이다! 공자의 명성이 그토록 무거운 줄 몰랐다. 신릉군으로 봉했는데도 돌아오지 않으니 이를
어이할꼬. 진나라의 공격을 막으려면 어서 공자가 돌아와야 될 텐데.......]
위왕은 사신들을 계속 보내어 공자의 귀국을 간청했다.
[천만에! 나는 귀국하지 않겠다. 내가 귀국하는 날 전날의 배신을 빌미삼아 즉각 처형할 것이다.
여보게들, 만일 내 집으로 위나라 사신을 들어놓으려거든 죽음을 각오해야 될 것이야. 뿐만 아니라 내게
위나라로 돌아가기를 권하는 자도 같은 인간으로 치부하겠다.]
위공자의 단언이 하도 서슬이 퍼랬으므로 귀국 권유자가 하나도 없었다.
바로 그 때 모공과 설공이 찾아들었다.
[위공자께서는 어째서 서둘러 귀국하지 않으시지요?]
뜻밖의 질타에 공자는 어리둥절해졌다.
[저더러 사지(死地)로 돌아가란 말씀이오?]
[의롭게 죽을 자리를 가리기 때문에 그는 의인이오.]
[무슨 뜻이오?]
[공자께서 지금 천하에 이름이 높은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모르겠소.]
[조나라에서 존중받는 이유는 또 나변(那邊)에 있습니까.]
[무슨 말씀을 하실 참이오?]
[공자의 명성이 높은 것은 배후에 위나라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진나라의 공격을 받아 위나라가
위급한데도 공자께서는 귀국을 미루고 계시니 하도 답답하여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건.......]
[만일 진나라가 대량을 공격하고 선왕의 종묘라도 파괴해 버린다면 공자께서는 무슨 면목으로 천하에
나설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무엇이 두려우십니까. 위국의 병부를 뺏어 조나라를 도울 적에는 두렵지 않으셨습니까? 의인은 죽을
자리를 알고 있기 때문에 의인이며 그 때문에 천하에 이름이 드높은 것입니다.]
공자는 갑자기 안색이 변했다.
[내가 어리석었소. 서둘러 귀국하겠소이다.]
마차를 몰아 위나라로 돌아가면서도 공자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래...... 죽음의 명분을 알고 있으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
위나라 왕은 공자를 보자 우선 울음부터 터뜨렸다.
[오오, 공자. 과연 돌아와 주었구려. 전날은 내가 잘못했소. 천하에 부끄러움이 없는 그대의 의로움은
생각 못 하고 작은 배신만 섭섭해 했구려. 자, 어서 상장군(上將軍)의 인을 받으시구려.]
공자는 모공과 설공의 귀국 충고를 속으로 한없이 고마워하고 있었다.
위나라 안희왕 30년 때였다.
공자는 제후들에게 사신을 보내어 자신이 상장군이 되었음을 알렸다.
[위공자는 천하의 의사(義士)이시다. 어서 군대를 보내어 그를 도와야 한다!]
공자는 다섯 나라의 군대를 이끌고 하외(河外: 黃河의 서쪽)로 나가 진장 몽오(夢오)를 패주시켰다.
승승장구한 위공자는 진나라 대군을 추격해 드디어 함곡관에 이르렀다. 그 때 이후로 진군은 함곡관을
감히 나올 수가 없었다.
그 무렵에 공자의 위세는 천하에 떨쳐 제후의 빈객 중에서 공자에게 병법을 바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를 묶어 위공자 병법(魏公子 兵法)이라 스스로 이름지었다.
진왕은 위공자가 존재하는 한 함곡관 밖으로 진격할 수가 없었으므로 공자의 손에 죽은 진비의 빈객
하나를 매수했다.
[금 십만 근을 풀어 줄 터이니 어떻게 하든 위왕과 공자 사이를 이간시켜라.]
빈객은 부지런히 공자에 대한 좋지 않은 헛소문을 퍼뜨려 드디어 왕의 귀에도 공자를 의식하게 하는
말이 들어갔다.
[대왕, 요상스런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무언고?]
[공자께서는 10년 간이나 조나라에 망명해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거기서 어떤 계략을 꾸미고 있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계략을?]
[그는 지금 위국의 상장군이며 제후의 장군들 역시 그의 휘하에 있습니다.]
[그게 어쨌다는 건가?]
[제후들은 오로지 위의 공자 말씀만을 듣지 대왕의 말씀은 듣지 않습니다.]
[설마.......]
[공자의 명성만을 알고 대왕의 존재는 안중에 없습니다. 공자께선 이런 때를 이용해 남면(南面)하여
왕이 되려 한다는 소문이 자자합니다.]
[그럴 리가.......]
[제후들도 공자의 위세나 인품을 존경하여 힘을 합쳐 왕으로 세우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소문까지
있습니다.]
[모략이 아니겠소?]
[부디 누군가의 모함이기를 바라지만 우환은 그 싹이 자라기 전에 제거하는 게 옳다는 말도 있습니다.
최소한의 조치로 그의 병권이라도 빼앗아 버리십시오.]
위왕이 긴가민가하여 망설이고 있을 때 진나라에서는 축하 사절을 보내 왔다.
[현명하신 공자께서 왕으로 등극하셨다는 소문을 듣고 여러 가지 예물을 가지고 축하하러 왔습니다.]
이쯤 되자 위왕도 공자를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머뭇거려선 안 되겠다. 그의 대장인을 뺏어 버려야지.]
그렇게 되어 상장군은 교체되었다. 공자는 중상 모략에 의해 대장군에서 떨어진 사실을 감지하고
이후로는 신병을 구실로 왕이 불러도 입조하지 않았다.
그 날 이후로 공자는 빈객들과 더불어 인심을 한탄해 밤낮으로 통음하며 여색에 탐닉했다. 그렇게
살아가기를 4년, 그의 몸이 지탱될 리가 없었다. 마침내 공자는 술병으로 세상을 등진다. 바로 그 해에
위의 안희왕도 죽었다.
진나라는 위공자가 죽었다는 소문을 들은 즉시 몽오를 시켜 위나라를 공격했다. 20여 개 성을 함락시킨
몽오는 처음으로 동군(東郡)을 설치했다. 그 후로 진나라는 위나라를 잠식해 들어가서 18년 뒤 위의
가왕(假王)을 사로잡고 대량을 도륙했다.
한(漢)의 고조 유방이 아직 어리고 미천할 때 공자의 현명함에 대하여 자주 들었다. 그 때문인지 천자의
위에 오르면서도 대량을 지나칠 적마다 공자를 위해 언제나 제사를 지냈다.
고조 12년에는 경포(경布)를 치고 돌아오는 길에 다섯 집의 묘지기를 두고 대대로 공자의 제사를 해마다
사철 받들게 했다.
나 태사공은 이렇게 생각한다.
천하의 공자들 중에는 많은 선비와 즐겨 교유한 이들이 많다. 그러나 위공자의 명성이 제후들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었던 것은 이유가 있다.
신릉군은 초목이나 저잣거리에 숨어 살거나 떠도는 은자나 현자와 교유하고 그 신분이 낮고 비천한
이들과 만나는 것을 꺼리지 않으며 그들의 말을 귀담아 듣고 실천에 옮겼다. 그들과의 만남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은 그의 명성은 결코 허명이 아니다.
18. 춘신군열전 春申君列傳
주군을 위해 한몸을 바쳐 획책하고 강한 진(秦)의 수중에서 초의
고열왕(考烈王: B.C. 262-238 在位)을 탈출시키고 유세하는 선비들을 남쪽
초로 오게 한 것은 황헐(黃歇: 春申君)의 의기(意氣)에 의한 것이다.
그래서 제18에 <춘신군열전>을 서술했다. <太史公自序>
춘신군은 초(楚)나라 사람이다. 이름은 헐(歇)이었으며 성은
황씨(黃氏)이다. 여러 나라에 유학하여 아는 것이 많았으며 초의
경양왕(頃襄王)을 모시고 있었다. 황헐은 변설(辯舌)에 능했으므로
경양왕은 그를 진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다.
그 때 진의 소왕은 백기(白起)를 시켜 한(韓)과 위를 공격해
화양(華陽)에서 크게 무찔렀으며 위의 장수 망묘(芒卯)까지 사로잡았다.
이렇게 되자 한과 위는 진에게 굴복해 진을 섬겼으며 진의 소왕은 백기를
시켜 한.위와의 연합군으로 초나라를 치려 하고 있었다.
그런 찰라에 춘신군은 진나라에 사신으로 도착하게 되었고, 그 일이 있기
이전에 진나라는 백기를 초에 원정 보내어 무(巫).검중(黔中)등의 군을
탈취했으며 언.영을 함락시켰고 동쪽의 경릉(竟陵)에까지 이르렀다. 그로
인하여 초의 경양왕은 동으로 파천해 수도는 진현(陳縣)에까지 물러나와
있었다.
전날, 초의 회왕이 진의 속임수에 넘어가 진에 입조했다가 귀국하지 못한
채 그곳에서 객사한 일이 있었다. 경양왕은 바로 그 회왕의 아들로
진으로서는 초를 만만하게 보았으며, 황헐은 진이 군대를 몰아 초로
쳐들어오지나 않을까 몹시 초조해하고 있던 중이었다. 진에 도착한 황헐은
우선 진왕에게 글부터 올렸다.
- 천하에 진과 초보다 강한 나라는 없습니다. 듣자오니 대왕께서 지금
초를 치려 하신다는데 이는 천부당 만부당한 일입니다. 그것은 마치 두
호랑이가 싸우는 바와 같아 두 맹수가 동시에 기진맥진해지면 그 피폐한
틈을 타는 것은 볼품 없는 사냥개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초를 치실 게 아니라 초와 친해지십시오. 우선 그 이로움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신이 듣건대, '모든 사물은 극단에 이르면 제자리롤
돌아오며, 겨울이 다하면 여름으로 돌아오고, 쌓은 일이 극한에 달하면
붕괴의 위기가 오니 마치 장기짝을 쌓는 일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귀국의 팽창 상태가 바로 이와 비슷합니다.
지금 진의 파도는 천하에 두루 퍼져 있습니다. 토지는 동서의 변경까지
뻗어 인류가 생긴 이래 귀국처럼 만승의 땅을 소유한 경우는 아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선제이신 혜문왕과 장왕 그리고
대왕에 걸친 3대에 이르러서도 제(齊)나라와 국경을 접함으로써 한과 위의
허리를 끊으려는 뜻을 아직도 여전히 가지고 계십니다.
지금 대왕께서는 성교(盛橋)를 한나라 재상으로 보내 한의 땅을 진의
판도에 넣어 버렸습니다. 이것은 대왕께서 군사를 사용하시거나 위협을
가하지 않고도 백 리의 땅을 그냥 손에 넣은 바가 되니 역시 이는 대왕께서
유능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대왕은 다시 병사를 일으켜 위를 쳐서 대량의 출입구를 막고 하내를
공략하고 연(燕).산조(酸棗).허(虛).도(桃: 모두 河南省의 魏地)를
함락시키고 형(邢)으로 돌입하니 위의 군사는 구름처럼 흩어지고 겁이 나서
그 누구도 구원하려 들지 않았으니 이 또한 대왕의 무공이 크다고
하겠습니다.
대왕은 병사들을 일단 쉬게 한 뒤 3년 후 군사를 다시 일으켜
포(蒲).연(衍).수(首).원(垣)을 병합하고 인(仁).평구(平丘)에 박두하며
황(黃).제양(濟陽: 모두 山西省의 魏地)의 성문을 닫아 나오지 못하게 하니
결국 위는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대왕은 다시 복수(복水: 河南.河北省을 흐름).마(磨: 복수에 임한 邑)의
북쪽을 쪼개고 제.진 사이의 허리를 뺏고 초.조 사이의 등골뼈 부분을
절단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천하의 제후들이 대여섯 차례나
회동했으면서도 감히 구원할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역시 대왕의 위력이
극도에 달했기 때문입니다.
대왕께서 만약 이제까지의 공을 견지하고 위력을 지키며 더 이상의 공략
야심을 물리치고 인의(仁義)에 맞는 정당한 영토를 살찌게 하여 후일의
우환이나 경계하신다면 삼왕(三王: 夏의 禹.殷의 湯.周의 文王)에 다시
대왕을 더할 필요도 없이 대왕께선 위대하시며, 다섯(五? : 齊의 桓公.宋의
襄公.秦의 穆公.晋의 文公.楚의 莊王)에 대왕을 더하여 여섯 패로 할
번거로움도 없이 대왕의 업적은 크나큰 것입니다.
그러나 대왕께서 만약 백성의 숫자 많음을 믿고 병력의 강대함만 빌려
위를 깨뜨린 위세를 몰아 무력으로 천하 제후를 신하로 삼으려는 무리를
하신다면 후환이 있지 않을까 심히 두렵습니다.
<시경(詩經)> <大雅.탕편(蕩篇)>을 보면 '시작을 잘못하는 사람은
없어도 끝맺음을 잘하는 사람은 드물다'라고 되어 있으며, <역경(易經)>
<미제괘(未濟卦)>에는 '여우가 물을 건널 때 처음에는 꼬리를 적시지
않으려고 조심하다가 물을 다 건넌 순간 방심하여 기어코 꼬리를 적셔
버린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시작하기는 쉽고 끝맺음은 어렵다는
뜻입니다.
이는 지씨(智氏: 晋의 卿으로 智伯瑤)는 조를 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유차(楡次)의 화(禍: 楡次는 山西省 陽曲縣 남동, 지백요가
여기서 죽었음)는 알지 못했음과 같습니다. 오(吳)나라가 제나라를 치는
것이 편리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간수(干隧)의 패(敗: 간수는 江蘇省 吳縣의
북서, 吳王 大差가 여기서 죽었음)를 짐작 못 했음과도 같습니다.
지씨와 오는 큰 공적이 없었던 바는 아니나 목전의 이익에만 몰두하다가
후환을 감지하지 못한 것이며, 오왕이 월나라를 믿고 제를 쳐
애릉(艾陵)에서 승리했습니다만 돌아와 월왕에게 삼저(三渚: 江蘇省
太湖에서 흘러나가는 松江.누江.東江, 즉 三江)의 물가에서 사로잡히는
경계는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지씨는 한.위를 믿고 그들의 군사로 조를 쳐
진양성(晋陽城: 趙氏의 居城, 山西省 太原縣)에서 승리의 순간을
맛보았으나 한.위가 반기를 들어 지백요는 착대(鑿臺) 밑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지금 대왕께서는 초를 망하게 하는 것이 한.위를 강하게 하는 결과가
된다는 사실을 잊고 계십니다. <일시(逸詩)>에 보면, '큰 세력을 지닌
자는 먼 곳을 안정시키고 굳이 건너가 공격치 않는다네'라고 돼 있습니다.
이런 시(詩)로 판단한다면 초는 우방이요 이웃 한.위는 적국입니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교언편(巧言篇)>을 읽으면, '팔팔 뛰는
교활한 토끼도 사냥개를 만나면 사로잡히고, 저쪽이 어떤 야심을 품고
있으면 이쪽도 그걸 헤아릴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대왕은 한.위를
공격하다 한.위가 대왕께 호의를 가졌다고 생각하시는 건 마치 오가 월을
믿었던 경우와 유사합니다.
신은, '적은 용서해선 안 되며 또한 시기를 놓쳐서도 안 된다'고
들었습니다. 진의 침공을 우려해 한.위가 언사를 낮춤은 속임수로
짐작됩니다. 왜냐하면, 귀국에선 대대로 한.위에 베푼 덕이 없고 차라리
원한만 사 왔기 때문입니다.
대체로 한.위의 부자(父子) 형제가 귀국과의 전쟁에서 죽음을 당한 게
어언 10대(代)에 이르고 있습니다. 사직과 종묘는 파괴되고 배가 갈리고
창자가 끊어지고 목이 잘리고 턱이 부서지며 목과 몸이 떨어져 풀밭과
진펄에 멋대로 뒹굴고 두개골이 거꾸로 처박힌 채 국경에서 마주보고
있습니다.
거기다 남녀노소의 목과 손목이 줄에 묶인 채 포로의 무리로 길게 거리를
잇고 죽은 자의 영혼이 외롭게 슬퍼해도 제사를 지내 줄 유족조차도
없습니다. 백성들은 안주하지 못하고 가족들은 산지사방 흩어져 남의 종이
된 사람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런 한.위를 믿고 그들의 힘을 빌려 함께
초나라를 치려 하시니 대체 어찌된 일입니까.
뿐만 아니라 대왕께서 초를 친다면 어느 지점부터 출병하시렵니까.
원수인 한.위에게 진군로를 빌리겠습니까. 혹시 대왕의 군사들이 출병 그
날로 돌아오지 못할까 사뭇 두렵습니다.
만약 대왕께서 통로를 한.위에게 빌리지 않는다면 필시 수수(隨水)의
오른쪽 기슭의 땅〔河南省〕을 치게 됩니다. 그 땅은 넓고 큰 강과 산림
계곡이어서 식량이 생산되지 않는 곳입니다. 이런 땅을 설혹 얻는다
하더라도 초나라를 쳤다는 명목은 있을지 모르나 실속은 없습니다.
그리고 대왕께서 초를 공격하는 날에는 제.한.위.조 네 나라가 한꺼번에
대왕에게 덤빌 것입니다. 진.초의 병사가 장기간 어우러져 싸우고 있을 때
위가 출병해 유(留).방여(方與).질(질).호릉(湖陵).탕(탕).소(蕭).상(相:
모두 宋의 故地로 여기서는 楚地)을 칠 것이니 송의 옛 땅은 모두 위의
것이 될 것입니다.
또 제는 남쪽으로 초를 칠 것이니 사수(泗水: 山東.江蘇 兩省을 흐르는
江) 연안은 모두 제에게 뺏길 것입니다. 이 곳은 모두가 사통팔달의 비옥한
땅입니다.
결국 위.제가 옥토를 균점(均霑)하게 됩니다. 즉 대왕께서 초를
깨뜨림으로써 한.위를 중원 지대에서 살찌게 하고 제를 강국으로 만드는
일이 됩니다. 한.위가 강하게 되면 진에 대적할 것이고 제는 남쪽으로
사수를 경계하여 동으로 바다를 지고 북으로 황하를 의지하게 됨으로
그들에겐 배후의 우환이 없어지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제.위보다 강한
나라가 천하에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제.위가 땅을 얻고 이익을 챙긴 뒤 진의 하급 관리들을 받드는
척 속인 후 한 해 뒤엔 비록 그들이 황제는 못 된다 하더라도 대왕께서
황제가 되는 일을 충분히 방해할 수 있는 힘을 지닐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대왕께서는 광활한 국토와 많은 인구와 강한 병력을 가지고
사단(事端)을 일으킨다는 점은 대왕의 실책이라 사료됩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초와 친하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은 없습니다. 진.초가
동맹하여 한에 대처하면 한은 반드시 복종할 것입니다. 산동의 험준한
지리(地利)로써 옷깃을 삼고 굽이진 황하의 이로움으로 띠를 삼는다면
한나라는 반드시 귀국의 관문이나 지키는 제후로 떨어질 것입니다.
이렇게 한 후 10만의 병사로 정(鄭: 韓都, 河南省)나라에 진주하면
양(梁: 魏)은 간담이 서늘해질 것이고 위의 허(許).언릉(언陵)은 성문을
걸어 잠구고 상채(上蔡).소릉(召陵: 모두 魏地, 河南省)과 왕래가 끊겨 위
또한 귀국의 제후국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대왕께선 일단 초와 우호 관계를 맺고 만 대의 전차를 가진 두 나라를
진의 영향권 안에 두고 제와 국경선을 사이에 두게 하여 견제토록 하면
제의 오른쪽 땅을 팔짱만 낀 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대왕의 판도는 동해에서 서해(西海: 西方)를 하나로 꿰뚫어 천하의
허리를 장악하게 됩니다. 이렇게만 되면 연.조는 제.초의 원조를 받을 수
없고 제.초는 연.조와 가깝게 될 수가 없게 됩니다. 이런 연후에 연.조를
위협하면서 제.초를 흔들면 네 나라는 맹공을 퍼붓지 않더라도 항복해 올
것입니다.
진의 소왕이 모두 읽은 후 흡족한 듯이 말했다.
[백기의 출발을 중지시켜라. 황헐의 설득이 가하다.]
진은 곧 한.위에 대하여 사과하고 초에는 예물을 보내 동맹국이 될 것을
약속했다. 황헐은 진왕의 약속을 받아낸 뒤 일단 초로 돌아왔다가 태자
완(完)과 함께 진으로 인질이 되어 들어갔다. 이들은 진에서 오래
억류되었다.
경양왕이 병이 들었는데도 태자를 귀국시켜 주지 않는 진의 처사가
문제였다. 황헐은 곰곰이 생각한 뒤 한 가지 계략을 짜냈다. 마침 태자
완이 진의 재상 응후와 친분이 두터웠던 점을 빌미로 한 것이다. 황헐은
응후를 찾아갔다.
[승상, 격무에 무고하신지요? 방문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오라 저희 태자
완과 친밀하시다는 얘기를 들어서.......]
[친하게 지내지요. 예절바른 분이시라...... 한데?]
[지금 초왕께서 병이 위중하십니다.]
[소문으로 들었습니다.]
[아들된 태자 완이 귀국을 하셔야 될 텐데.......]
[저희 진왕께서 허락을 내리시지 않을 겁니다.]
[대왕께 한번 말씀드려 주십시오.]
[헛수고일 뿐입니다.]
[다시 상기시켜 드리지만 저희 태자와 친한 사이시니 밑져 봐야
본전이니까 제발 조금만 수고 좀 해 주십시오.]
[초왕께서 위독하다 하시어 금세 태자를 귀국시켜 드리자는 간청은
명분이 약하지 않습니까.]
[명분은 비중을 더함에 따라 듣기에 달라질 수도 있겠지요.]
[우선 상국(相國)인 저한테부터 설득해 보시지요.]
[초의 태자가 귀국함으로써 진에게 유리한 점부터 말씀드리지요. 태자는
현왕이 서거하는 즉시 귀국하는 대로 즉위하게 될 것입니다. 우선 승상의
덕을 입어 귀국한 데다 평소에 친분이 두터우셨으니 승상의 은덕이 한없이
크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초는 진나라를 정중하게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동맹국과 찬선하는 길이며 만승지국에 은덕을
입히는 길이 되니 그것이 명분입니다.]
[태자를 귀국시키지 않을 경우의 진의 불이익은 무엇입니까?]
[귀국하지 못한 태자는 함양의 무위무관(無位無官)한 일개 백성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초는 다른 인물로 태자를 세우면 되는 일이고 그가 허락지
않음으로써 동맹국으로서의 약속은 깨어지고 화친은 끝날 수도 있게
됩니다. 진으로선 양책이라 볼 수 없지요.]
고개를 끄덕거린 응후가 입궐해 그대로 진왕에게 상주(上奏)했다. 그러나
진왕의 결심은 요지부동이었다.
[상국의 의견이 그럴 듯하긴 하나 우선 초나라 태자의 사인(舍人)을
사신으로 보내 초왕의 병문안을 드리게 하고...... 그들이 돌아온 뒤에나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이를 전해 들은 황헐은 할 수 없다 생각하고 태자 완에게 은밀히 계략을
건넸다.
[진나라가 태자를 억류해 두려는 것은 그로 인한 어떤 이익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한데 실제로 태자께선 그들에게 줄 만한 힘도 이익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결국 진을 빠져 나가셔야 되겠는데.......]
[도망을?]
[모험을 감행하셔야 되겠습니다. 만약 초왕께서 급작스레 수명을
다하시게 될 때 태자께서 초에 계시지 않으면 양문군(陽文君: 楚王의
兄弟)의 두 아들 중 한 분이 왕위에 오릅니다. 그런 사태를 가만히 앉아서
맞지 않으시겠다면 탈출의 모험을 감행하십시오.]
[태부께서도 함께 가시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남아서 뒤처리를 맡겠으니 걱정 마시고 먼저 떠나
주십시오.]
결국 태자는 자신이 데리고 있는 사인의 마부로 위장하고 함곡관을 빠져
나갔다. 황헐은 태자의 숙사에 대신 머물며 태자의 병을 칭탁(稱託)해
한동안 외출도 하지 않았다. 진군이 추적할 수 없을 만큼 태자가 멀리
도망쳤을 것이라고 가늠되는 즈음해서, 황헐은 자진해 진왕 앞으로
나아갔다.
[초의 태자는 진작 귀국 길에 올라 관문을 멀리 벗어났을 것이옵니다.
모든 일은 제가 시킨 것이오니 신에게 죽음을 내려 주십시오.]
[저놈을 당장 하옥시켜라!]
초 태자가 탈출한 사실이 확실해지자 진왕은 황헐에게 자살을 명했다. 이
때 응후가 나섰다.
[대왕, 그것은 현명치 못한 처사이옵니다. 황헐은 신하된 자로서 주군을
위해 한몸을 내던져 할 일을 다했습니다.]
[그렇더라도 과인을 감히 능멸한 죄가 있다.]
[작은 잘못은 책하지 마시고 큰 이득을 챙기십시오.]
[큰 이득이라고?]
[태자가 즉위하면 반드시 황헐을 등용할 것입니다. 벌하지 않고 돌려
보냄으로써 그를 은혜 입게 하시고 그로 인해 초와 화친을 계속 도모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렇게 되어 황헐은 무사히 초나라로 돌아갔다. 헐이 도착한 지 석 달
만에 경양왕이 죽고 태자 완이 즉위하니 이가 곧 고열왕(考烈王)이다.
고열왕 원년에 황헐을 재상에 임명하고 춘신군(春申君)에 봉해
회수(淮水)의 북쪽 땅 12현을 하사했다. 얼마 지나서 황헐은 생각하는 바가
있어 초왕에게 진언했다.
[회수 북쪽 땅은 초의 변경이며 제와 접해 있어 정치적으로 급속히
처리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군(郡)으로 개편해 직할하는 것이 편리합니다.
차제에 신의 봉읍인 회북(淮北) 12현을 되돌려 받으시고 대신 강동(江東:
楊子江 下流 남부)으로 바꿔 주십시오.]
[승상의 뜻대로 하시오.]
초왕은 쾌히 승락했다. 그렇게 되어 춘신군은 옛적 오의 폐허에 성을
쌓고 자신의 도읍으로 만들었다. 춘신군이 초나라 재상이 되었을 즈음에는
제의 맹상군.조의 평원군.위의 신릉군이 있어 유능한 선비들을 앞다투어
빈객으로 맞이하려 서로 힘을 기울이고, 그들의 힘으로 국력을 신장시키고
또한 권력을 유지하려 했다.
춘신군이 초의 재상이 된 지 4년 만에 진나라가 조의 장평에서 40만
대군을 격파하고 이듬해 한단을 포위하자 병사를 이끌고 가서 조나라를
구했다. 또 고열왕 8년에는 북쪽으로 진격해 노나라를 멸하고 순경(筍卿)을
난릉(蘭陵)의 현령으로 삼았다.
초나라로선 이 무렵이 가장 강대했던 시절이었다. 강대함을 자랑하는
초나라로 조의 평원군이 감사 시절을 보냈다. 조나라에선 자국이 허약한
나라가 아니라는 과시를 하느라고 사신들에게 대모(대瑁)로 비녀를 만들고,
도검(刀劍)의 칼집을 주옥으로 장식한 차림으로 우선 춘신군에게 면회를
청했다.
춘신군에게는 3천여의 빈객이 있었는데 거의가 주옥으로 장식한 신을
신고 나왔으므로 되려 사절들은 크게 망신만 당했다. 진나라에서는
장양왕이 즉위해 여불위를 재상으로 삼아 문신후(文信侯)에 봉하고
동주(東周)를 탈취했다. 진의 인근국들은 끊임없이 진의 침공에
시달렸으므로 모두들 전전긍긍했다.
춘신군이 재상이 된 지 22년이었다. 제후들을 불러모아 합종(合從)을
맹약하고 서쪽 진나라에 대항하기로 했다. 초왕이 합종의 맹주가 되었으며
춘신군이 실제의 종약장(從約長)이었다. 그런데 제후의 군대가 함곡관에서
진의 군대에게 대파되었다. 초왕은 그 책임을 춘신군에게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무슨 망신살이오. 상국의 지혜가 옛적만 못한 게 아니오!]
그 사건으로 인해 춘신군은 고열왕과의 사이가 많이 서먹서먹해졌다.
춘신군의 빈객 중에 관진(觀津) 출신인 주영(朱영)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이런 건의를 했다.
[사람들은 초나라는 강대한데 승상께서 군대를 약화시켜 나라가
약해졌으며 자주 침공을 당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선왕 시절에 진나라와의 선린을 20년 동안이나 지속해
오는 동안 초는 진으로부터 한 번도 공격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진이
초나라를 예뻐해서가 아니라 맹애(맹隘: 河南省 信陽縣의 南東 平靖關)의
요새를 넘어 초를 친다는 사실이 불편했기 때문이며, 진군로를 동서
양주(兩周)에게서 빌려 한.위를 배후에 두고 초를 친다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위나라는 곧 멸망할
형편이므로 도무지 허.언릉 땅을 아낄 처지가 아니어서 진나라에게 할양해
주었던 것입니다. 이제 진나라의 군대는 우리 초나라의 수도 진(陳)과 불과
160리 거리를 두고 대치하게 되었습니다. 고로 제가 보는 바로는 진나라와
초나라는 매일 전쟁을 치르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게 좋겠소?]
[대왕의 신임도 한 번 더 묻는 뜻에서 차제에 수도를 수춘(壽春: 安徽省
壽縣)으로 옮기도록 건의해 보십시오.]
주영의 말대로 천도의 허락이 내려지자 춘신군은 그제서야 가슴을
쓸었다. 초의 고열왕에게는 지식이 없었다. 재상인 춘신군은 걱정이 되어
자식 잘 낳는다는 체형의 여인을 골라 왕에게 여럿 바쳤으나 끝내
허사였다.
[문제는 왕에게 있다. 어떻한다......?]
그럴 즈음이었다. 이원(李園)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에게는 절색의
누이동생이 하나 있었다. 이원은 동생을 바쳐 벼슬이나 얻어 보려고
초왕에게 접근할 계략을 꾸미고 있던 중 주막에서 우연히 고열왕이
고자일지 모른다는 소문을 듣고 별수없이 그 계획을 포기하기로 했다.
차라리 재상인 춘신군에게 넘겨 그를 통해 벼슬 자리를 얻는게 빠르겠다
싶었다.
그래서 이원은 춘신군의 사인(舍人)이 되었다. 빈객으로서보다는 그의
가신이 되는 게 목적 달성에 첩경이라 믿었다. 어느 날 이원은 휴가를 얻어
나갔다가 고의로 귀가하는 기일을 늦추었다. 춘신군이 그 이유를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토록 마음대로 늦어도 되는가.]
[벌을 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소인은 소인대로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습니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니?]
[죄가 있다면 제 여동생이 경국지색이기 때문입니다.]
[무어라?]
[소인은 조나라가 고향입니다. 부모님이 거기 계시기로 뵈러 갔다가
기왕에 누이의 미색이 궁중까지 알려짐으로 해서 부모님이 고통을 당하고
계시므로 그걸 해결하느라 늦었습니다.]
[그대 동생이 미색과 부모의 고난이 무슨 상관이냐?]
[조왕께서 동생을 바치라 하셨습니다.]
[왕의 요구인데 바치면 될 게 아니더냐?]
[동생은 죽어도 조왕한테는 시집 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 처리를 해 놓고 왔느냐?]
[초나라로 데려왔습니다.]
[이 곳에 와 있다는 얘기더냐?]
[소인이 숨겨 두고 있습니다.]
[한 번 만나 보아도 괜찮겠느냐?]
[어느 안전이라고 소청을 거절하겠습니까. 곧 데려오지요.]
이원의 동생을 만나 본 춘신군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호기심으로 불러 본
것이었는데 만나 보니 과연 절색이었다.
[네 여동생을 나한테 줄수는 없겠느냐?]
[뜻밖입니다만...... 제 동생이 원한다면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그 때부터 이원의 여동생은 춘신군의 총애를 받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동생이 춘신군의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이원을 알게 되었다.
슬그머니 엉뚱한 욕심이 생겨 동생을 불러내어 괴이한 계략을 짜고 그녀를
설득했다.
동생은 별수없이 오라비의 계략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한가한 틈을 타서
이원의 누이동생은 춘신군에게 간곡히 말했다.
[초왕께서 나리를 사랑하고 대접하는 정도가 대왕의 형제라 해도 그만큼
깊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대왕께서는 자식이 아니
계십니다.]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 거냐?]
[나리께선 스무 해 넘어 재상 자리에 계셨습니다. 대왕께서 서거하시어
자식 아닌 공자들 중의 한 분이 즉위하셨을 때의 나리의 처지가
걱정스럽다는 말씀을 올릴 참이었습니다.]
[그 점을 내가 생각 못 해 본 바는 아니나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아닌가?]
[나리께서 오래 상국의 자리에 계시면서 부지중에 공자들께 실례를 범한
사건이 한두 가지가 아닌 줄로 짐작됩니다. 때문에 대왕의 형제분이
즉위하였을 때 나리께 화가 미치지 않을까 그것이 심히 두렵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으나 어찌하겠느냐?]
[재상의 인수와 강동의 봉지는 말할 것도 없고 신변에 참화가 미치지
않을까 그게 심히 두렵습니다.]
[네 얼굴을 보니 묘책이 있는 것 같은데, 두렵다 두렵다 하지만 말고
어서 네 심중이나 아뢰어라.]
[감히 말씀드리지요. 나리의 아이를 임신한 사실은 저와 나리밖에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상국 나리의 존귀한 지위를 이용하셔서 저를 대왕께 바쳐 주십시오.]
[무어라?]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입니다. 제가 대왕의 아이를 낳아 드리면 대왕께선
반드시 저를 총애하실 것입니다. 혹시 하늘이 도와 아들을 낳게 되면
공자께서 왕으로 즉위하는 불상사도 없이 우리 아이는 태자가 될 것이고,
태자가 즉위하면 나리께서 섭정할 수밖에 없게 되며, 나리께선 왕의 실제
아버지가 되고 초나라 전부는 나리의 것이 됩니다. 화를 입는 일보다 훨씬
낫지 않겠습니까. 이제 어찌하시렵니까?]
[두 번 다시 그런 소릴 입밖에 내지 말라!]
그렇게 큰소리쳤지만 춘신군은 애첩의 간청이 일리 있다고 생각했다.
일단 애첩을 자택에서 멀리 내보낸 춘신군은 가만히 왕께 아뢰었다. 이원의
누이동생을 만나 본 초왕은 혹하여 이내 총애하게 되었다. 그 후
사내아이를 낳자 태자로 책봉했으며 그녀를 왕후로 삼았다.
초왕은 왕후의 오라비 이원을 중용하여 측근에 두었다. 춘신군이 재상이
된 지 25년이었다. 왕이 병들었을 때 모사 주영이 가만히 춘신군을
찾아왔다.
[세상에는 뜻밖에 오는 복이 있으며 또 뜻밖에 오는 화도 있습니다.
그런데 승상께선 뜻밖의 일이 벌어지는 세상에 사시면서 뜻밖에 수명을
달리하실 군주를 모시고 계시면서도 어찌 뜻밖의 일을 감당할 사람을
측근에 두지 않으십니까?]
황당스런 말이라 춘신군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되물었다.
[뜻밖에 찾아오는 복이라 했소?]
[승상께선 초의 재상이 되신 지 어언 스물 다섯 해입니다. 대왕께선
위중하시니 언제 승하하실지 모릅니다. 그 때 승상께선 어린 군주를 도와
옛날의 이윤(伊尹: 殷의 賢相)이나 주공(周公: 周武王의 아우, 周公旦)처럼
섭정을 하시다 왕이 성장하면 권력을 돌려 주든지 아니면 남면하여 고(孤:
諸侯의 自稱代名詞)라 칭하며 초나라를 접수하는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뜻밖의 복이라 합니다.]
[그럼, 뜻밖의 화는 또 무엇이오?]
[왕후의 오라비 이원의 문제입니다. 그는 사악한 자로 춘신군의 존재
때문에 권력을 좌지우지할 수가 없다고 생각하여 승상을 원수처럼 여겨
거세할 기회만 노리고 있습니다. 그는 병권을 잡고 있는 처지도 아니면서
벌써 오래 전부터 사병(私兵)을 은밀히 양성하고 있으니 그 기미가 아주
심상치 않습니다. 만일 대왕께서 갑자기 운명하시는 날 그는 틀림없이
사병을 이끌고 왕궁으로 쳐들어와 권력을 장악한 뒤 승상을 척살할
것입니다. 이것이 뜻밖의 화라는 것입니다.]
[뜻밖의 인물이란 또 누구이겠소?]
[두고 보십시오. 대왕이 승하하는 날 반드시 이원이 먼저 입궐해 승상을
해칠 것이니, 제가 입궐해 있다가 들어오는 이원을 먼저 처치할 수 있도록
승상께선 저를 낭중(郎中: 宮中의 官)에 임명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뜻밖의
화를 막아 줄 뜻밖의 인사(人士)인 것입니다.]
곰곰 생각에 잠겨 있던 춘신군은 흔연히 말하였다.
[그대가 하신 말씀들은 나와 전연 무관하오.]
[저런!]
[내가 이원의 연약한 성품을 미리 알거늘 어찌 그토록 엄청난 일을
꾸미겠소. 그냥 내버려 두시오.]
주영은 자신의 말이 춘신군에게 먹혀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머잖아 자신의 몸에 화가 미칠 것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멀리
도망쳐 버렸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17일 만에 고열왕이 죽었다. 이원은 과연 사병들을
거느리고 입궐해 극문(棘門: 宮門名)에서 매복해 있다가 춘신군이 들어오자
그를 찔러 죽였다.
[이 자의 입에서 왕후 임신의 비밀이 새어나올까 얼마나 걱정했던지!]
이원은 춘신군의 머리를 베어 극문 밖으로 던진 후 사병들을 몰아가서
춘신군의 가족들을 모조리 도륙해 버렸다. 춘신군의 아들, 이원의
누이동생이 낳은 어린 태자가 즉위하니 이가 곧 초의 유왕(幽王)이다.
나 태사공은 이렇게 생각한다. 일찍이 춘신군이 제 한 몸을 던져 진의
소왕을 설득하고 초의 태자를 귀국시킬 때만 해도 얼마나 충성스럽고
지혜로왔던가. 나중에 이원의 간계에 넘어가고 목숨까지 잃게 된 것은 그의
노망 탓이었으리라. 옛말에 있던 대로 '바로 결단해야 할 것을 결단하지
않으면 도리어 화를 입는다'던 말이 맞는가 보다. 주영의 말을 믿지 않은
것도 그의 노쇠 탓이었으니.......
@
19. 범수.채택열전 范수.蔡澤列傳
위제(魏齊: 魏의 宰相)에게서 받은 모욕을 능히 참고 강한 진(秦)나라의
재상이 되어 위세를 떨쳤다. 현인을 추천하여 그에게 지위를 양보한 두
사람이 있다. 그래서 제19에 <범수.채택열전>을 썼다. <太史公自序>
범수(范수: 혹은 范? 라고도 주장한다. 錢大? , 武英殿本 <史記>,
丁若용의 <雅言覺非>에서도 ?라 했음)는 위나라 사람이며 자는 숙(叔)이다.
제후를 유세해 위나라 왕을 섬기고자 했으나 집이 가난해 노자를 마련할
수가 없었다.
그는 우선 위의 중대부(中大夫) 수가(須賈)를 섬겼다. 수가가 위의
소왕(昭王)을 위해 제(齊)에 사신으로 갈 때 범수가 수행했다. 체류한 지
수개월이 지났으나 제의 회답을 얻지 못했다. 제의 양왕은 범수가
웅변이라는 인물됨을 듣고 사람을 시켜 금 10근과 쇠고기와 술을 내렸다.
범수는 이것이 나중에 문제가 될 줄 알고 쇠고기와 술은 받되 금은 돌려
주었다. 수가가 나중에 이 사실을 알았다.
[이런 변이 있나! 범수 따위가 무엇 때문에 이런 후한 대접을 받는가.
이는 필시 위나라의 비밀을 제나라에게 고해 바친 대가일 것이다!]
이윽고 이들이 위나라로 귀국했다. 수가는 노여움을 품고 있다가
귀국하자마자 위나라 재상이며 실력자인 공자(公子) 위제(魏齊)에게 그런
사실을 일러 바쳤다. 일의 잘못됨이 범수에게 있었다고 덮어씌우기 위한
계략이었다.
위제 역시 불같이 노했다. 가신을 시켜 범수를 매질해 이를 뽑고
갈비뼈를 꺾게 했다. 조금만 더 얻어맞으면 목숨이 끊어질 것 같았다. 죽은
척하고 누워 있자 사인들이 범수를 멍석에 둘둘 말아서 측간 구석에다 내다
버렸다. 그리고는 오줌 마려운 빈객들이 그에게 오줌 세례를 주게 했다.
그토록 범수를 철저하게 욕보인 이유는 국가 기밀을 누설한 자는 저렇게
된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였다. 범수는 멍석 속에 누워 자신을
지키는 사람에게 간청했다.
[나를 살려 줄 수 없겠소?]
[내가 당신을 어떻게?]
[이 곳으로부터 나를 탈출만 시켜 준다면 훗날 반드시 큰 은혜를
갚겠소.]
[보상 때문은 아니지만...... 참으로 딱하게 됐소. 아무튼 기회나
봅시다.]
얼마 뒤 지키던 자가 위제에게 보고했다.
[저자가 죽은 듯합니다. 그의 몸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측간엘 갈 수가
없군요.]
[그렇다면 멀리 갖다 내다 버려라.]
위제는 취한 김에 쉽게 말해 버렸다.
그래서 범수는 일단 목숨을 보전할 수가 있었다.
후에 위제는 범수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잡아들이게 했다.
위나라 사람으로 정안평(鄭安平)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범수의 인물됨을
알고 있었던 터라 그를 데리고 일단 숨어 버렸다. 범수는 이름을 바꾸어
장록(張祿)이라 부르고 있었다. 바로 그 무렵에 진의 소왕의 알자(謁者:
王의 接待官)인 왕계(王稽)가 위나라로 왔다. 정안평이 신분을 속인 채
하인이 되어 왕계를 모셨다. 왕계는 위나라를 떠날 때가 되었을 때
정안평에게 지나가는 소리처럼 물었다.
[혹시 내가 서쪽〔秦〕으로 데리고 갈 만한 인물이 없던가.]
정안평은 기회란 바로 이 때다 싶어 대답했다.
[마침 제가 살고 있는 동네에 장록 선생이라는 천하의 현인이 있습니다.]
[그를 데려오라.]
[그분 역시 주인님을 뵙고 천하 형세를 논하고자 하나 그를 죽이겠다는
원수가 있어 감히 모셔 올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심야에 가만히 데려오면 되잖은가?]
그렇게 되어 범수는 정안평의 안내를 받아 한밤중에 가만히 왕계를 만날
수가 있었다. 왕계는 담론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범수의 인물됨을 환히
알아 차렸다.
[선생께선 이길로 물러가 삼정(三亭: 魏 國境의 亭名)에서 기다려
주시겠소?]
몰래 약속을 받은 범수는 가만히 물러갔다. 왕계가 위나라를 떠나
삼정으로 가서 범수를 수레에 태우고 남쪽을 들러 진나라로 들어갔다.
호관(湖關: 咸陽의 동쪽, 河南省 ?鄕縣의 동쪽)에 이르렀을 때였다.
일대의 거기(車騎)가 서쪽에서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범수가 왕계에게
물었다.
[누구의 행차이옵니까?]
[재상 양후(穰侯: 魏 ?)께서 동쪽 현읍을 순찰하고 계시군요. 소개시켜
드릴까요?]
[아닙니다. 제가 들은 바로는 양후는 진나라의 정권을 독단으로 휘두르는
인물로 특히 제후국에서 오는 세객들을 유달리 싫어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 저를 보면 반드시 욕보일 것이니 잠시 수레 속에 숨어
있겠습니다.]
얼마 안 되어 양후가 다가와 왕계의 수레를 멈추게 했다.
[수고가 많네. 관동(關東: 函谷關의 동쪽)에는 별일 없던가?]
[없습니다.]
[그대는 제후국에서 세객 같은 자를 데려오진 않았겠지?]
[구태여 데려올 필요를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런 자들은 남의 나라나 어지럽히는 무익한 자들일 뿐이지.]
양후가 떠난 뒤에 범수는 왕계에게 말했다.
[수레 속에 사람이 있지 않나 의심은 하면서도 수색은 하지 않더군요.
양후는 지모의 인사로 들었는데 뜻밖입니다.]
그러면서 내뺄 몸짓을 했다.
[아니, 어딜 가시려는 겁니까?]
[두고 보십시오. 양후는 곧 후회하고 반드시 되돌아올 것입니다.
멀찌감치 가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아니나다를까 왕계가 10리쯤 갔을 때 양후가 기병들을 몰고 와 급하게
수레 속을 수색했다.
[장록은 무서운 인물이다!]
왕계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수레 속에 세객 따위는 없었으므로 양후는 기병들을 데리고 물러갔다.
왕계는 범수를 찾아 다시 수레에 태우고 함양(咸陽: 秦都, 섬西省)으로
들어갔다. 왕계가 사신갔던 일을 진왕에게 보고하는 자리에서였다.
[위나라의 장록 선생이라는 훌륭한 인물이 있습니다. 그는 '진나라는
달걀을 쌓아 놓은 것보다 위태롭지만 내 말을 들으면 안태할 텐데'라고
말했습니다. 수레에 태워 데리고 왔으니 한번 만나 보시겠습니까?]
[그만두어라. 나는 세객 따위는 믿지 않는다.]
진왕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범수는 초라한 숙사에서 질나쁜 음식을
들며 한 해가 넘도록 하는 일 없이 지내고 있었다. 당시는 소왕이 즉위한
지 36년이었다. 그 동안 남쪽 초 땅의 언.영을 빼앗았고, 초왕이 진나라에
억류된 채 객사했었다.
또 동쪽으로 제의 민왕을 깨뜨리고 한때 제(帝)라 칭하다가
그만두었었다. 그리고 삼진(三晋: 韓.魏.趙)을 자주 괴롭혔다. 기고만장한
소왕이 세객의 말을 귀담아 들을 턱이 없었다.
양후와 화양군(華陽君)은 소왕의 모친인 선태후(宣太后)의 아우이고,
경양군(涇陽君)과 고릉군(高陵君)은 모두 소왕의 친동생들이었다. 양후가
재상의 자리를 차지했으므로 나머지 세 사람은 번갈아 가며 장군이 되어
봉읍을 받았다. 모두 태후와의 연고로 사가(私家)의 부유함이 왕실을
무색케 했다.
양후가 진의 장군이 되어 한.위를 넘어 제의 강수(綱壽: 山東省 寧陽顯
북동)를 쳐서 자신의 봉읍인 도(陶)를 확장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범수는 이 때다 하고 진왕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 저는 '현명한 군주는 정치를 할 때 공이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상을
주고, 능력이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관직을 주고, 노고가 큰 자에게는 그
봉록을 후하게 하고, 공적이 많은 자에게는 그 작위를 높이고, 능히 많은
사람을 다스릴 수 있는 자는 그 관직을 높인다.
그런고로 능력이 없는 자는 감히 직을 맡지 않아야 하며, 능력 있는 자는
또한 그 재능을 스스로 감출 수가 없다'고 듣고 있습니다. 만약 제 말이
옳다고 생각되신다면 원컨대 그것을 실행하시어 그 길에서 더욱 큰 이익을
얻으시고, 제 말이 옳지 않다고 생각되신다면 그토록 저를 오랫동안 이
곳에 머무르게 해도 무익한 일이 될 뿐이라 생각됩니다.
[웬 잔소리꾼의 상주문이냐.]
- 옛말에도 '용렬한 군주는 사랑하는 자를 상주고 미워하는 자를 벌
주나, 현명한 군주는 상은 반드시 공 있는 자에게만 주고, 형벌은 반드시
죄 있는 자에게만 내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 가슴은 침질(침質: 死刑할
때 쓰는 絞首台나 과녁 혹은 모창 및 칼)에 댈 만한 가치도 없으며 허리는
부월(斧鉞: 큰 도끼, 무거운 刑罰을 뜻함)을 기다릴 자격도 없는 천한
몸입니다.
그런 자가 감히 자신도 없는 말을 지껄여 왕의 마음을 시험하는 짓 같은
일을 하겠습니까. 설사 저를 비천한 놈이라 경멸하신다 하더라도 저를
보증하고 추천한 왕계만은 왕을 배신한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은
믿으시겠지요.
[그야 당연한 일이겠지.]
- 제가 듣기로는. [주(周)에 지액(砥액).송에 결록(結錄).양(梁)에
현려(縣藜).초에 화박(和朴)이라는 아름다운 옥이 있습니다. 이 네 개의
보옥은 흙에서 나온 것으로 처음에는 명공도 명옥(名玉)이란 것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만 결국은 천하의 명기(名器)가 됐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성왕(聖王)께서 무능하다 하여 버린 자라 해도 반드시 국가를 부강하게 할
수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옳은 소리이긴 하다. 그런데.......]
- 저는 또 '집을 번창하게 하는 인재는 나라 안에서 구하고, 나라를
번창하게 하는 인재는 천하에서 구한다'고 들었습니다. 만약 천하에 명민한
군주가 있을 때 다른 군주가 자기 나라를 융성케 못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명민한 군주가 남의 번영을 막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명의(名醫)는 병자의 생사를 짐작하고 성군(聖君)은 일의 성패를 밝게
합니다.
이로우면 이것을 행하고 해로우면 버리며 의심스러우면 좀더 이것을
시험해 봅니다. 이런 점은 순 임금이나 우 임금이 재생하더라도 다시 하실
일입니다. 이 이상 심각한 문제에 관해서는 감히 서면에는 적지
않겠습니다. 가벼운 일들은 또한 대왕께 들려 드릴 가치도 없습니다.
생각해 보면 왕께서 지금까지 저를 버려 둔 것은 제가 우매해 왕의 마음을
움직일 만한 일이 없었기 때문이겠지요.
그렇더라도 저를 추천한 왕계가 비천하여 제 말을 들어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바는 아니겠지요. 만약 그렇지 않다고 생각되신다면 바라건대,
저에게 궁궐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라도 주시어 존안을 우러러뵐 수 있는
영광을 베풀어 주십시오. 그 때 만일 제가 드리는 말씀 중에서 한 마디라도
쓸 만한 것이 없다면 대왕의 심사를 어지럽힌 죄로 달게 주벌(誅罰)에
복종할 따름입니다.
[역전거(驛傳車)를 보내어 급히 그를 불러 오도록 하라!]
왕은 몹시 기뻐하며 범수를 만나 볼 것을 서둘렀다. 범수는 별궁에서
왕을 알현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수레에서 내린 범수는 모른 척하고
긴 회랑을 돌아 본궁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환관들이 그런 범수를 용서할
리가 없었다.
[서라!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감히 달려 들어오느냐!]
범수는 시치미를 뚝 떼고 말했다.
[여기가 어디요?]
[대왕께서 계시는 왕궁인 줄 몰라서 그러느냐?]
저만큼 왕의 행차가 보였다. 그래도 범수는 못 본 척 소리를 질렀다.
[진나라에도 왕이 계시오?]
[무어라고!]
[내가 듣기로는 진에는 왕은 계시지 않고 태후와 양후만 있다고
하던데.......]
[무엄한 놈!]
범수와 환관들이 다투는 소리를 듣고 진왕이 급히 소리쳤다.
[그만두어라.......]
왕은 주위를 돌아본 후 범수에게 말했다.
[사과하겠소. 과인은 진작 선생의 가르침을 받았어야 했소.]
왕은 범수를 궁중으로 데리고 갔다.
[변명 같지만 선생을 그 동안 만나지 못한 것은 때마침 의거(義渠:
西戎의 國名)와의 사태〔소왕의 모친인 선태후가 의거왕과 사통해 두
아들을 두어, 甘泉에서 소왕을 암살할 계획을 짜다가 발각된 일〕때문에
아침 저녁으로 과인이 태후의 지시를 받느라고 여가가 없었소. 이제는 그
사태도 가라앉아 정리되었으니 기꺼이 선생의 가르침을 받고자 하오. 삼가
주객의 대등한 예를 하고 가르침을 받겠소이다.]
범수가 소왕을 만나는 장면을 본 군신들은 모두 숙연한 낯빛을 하고
자세를 바로잡지 않는 자가 없었다. 진왕은 좌우의 근신들을 물리치고
궁중을 비게 한 뒤 비로소 범수에게 물었다.
[선생은 과인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겠소?]
[아, 예 그저.......]
[부디 그 내용을 과인에게 들려 주시오.]
[그렇지만.......]
진왕은 이번에는 무릎을 꿇고 청했다.
[선생은 끝내 과인에게 가르침을 주시지 않을 작정이오?]
[감히 그럴 수야 있겠습니까. 제가 듣기로는 옛날, '태공망 여상(呂尙)이
주의 문왕을 만났을 때 어부의 몸으로 위수(渭水) 가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만난 것은 두 사람의 교제가 그 때까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상이 문왕을 설득한 후에는 문왕이 그를 태사(太師)로 삼아
같은 수레에 태워 함께 돌아갔습니다. 그것은 그의 언설이 심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문왕은 여상의 힘으로 공업을 성취하고 드디어
천하의 패자로 군림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만일 처음에 문왕이 여상을
멀리해 심원한 데까지 말하지 못하게 했더라면, 주의 천자는 덕이 없는
것이 되고 문왕과 무왕은 모두 그의 왕업을 성취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랬을 거요.]
[저는 지금 외국에서 온 떠돌이 신세입니다. 대왕과의 교분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왕께 말씀드리고자 하는 내용은 모두 왕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뿐입니다. 특히 대왕의 혈연 관계에 대한 것뿐입니다.]
[짐작은 했소이다.]
[고로 저는 충성을 다하려 해도 아직 대왕의 마음을 짐작할 수 없기에 세
차례나 물으셔도 선뜻 대답을 못 한 것입니다. 제가 형벌이 두려워서 선뜻
말씀드리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어전에서 말씀드리고 전각 뒤에서 제 몸이
복죄될 것을 알지만 구태여 피하려 하지는 않겠습니다.
대왕께서 진실로 제 말을 실행해 주시기만 한다면 사형을 받아도 근심할
일이 못 되며 떠도는 신세가 되어도 후회하지 않겠습니다. 몸에 옻칠을
하여 나병 환자처럼 보이고 머리털이 흐트러져 광인처럼 보인다 해도 저는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지는 않겠습니다.]
[충직스런 말씀이오.]
[오제(五帝)와 같은 성인도 죽고 삼왕(三王)과 같은 어진 이도
죽었습니다. 오백(五伯: 五覇)과 같은 현인도 죽고 오획.임비(烏비.任鄙:
모두 古代의 力士들) 같이 힘센 자들도 죽음을 면치 못했으며
성형(成荊).맹분(孟賁).왕경기(王慶忌).하육(夏育)과 같은 용사도
죽었습니다. 죽음이란 인간으로서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반드시 죽음을 바칠 추세에 놓여 그것이 진나라에 도움이 될 일이라면
이것이야말로 제가 크게 바라는 바입니다.]
[감동적인 말씀이오.]
[오자서는 초를 탈출할 때 자루 속에 숨어 수레에 실려서 소관(昭關:
吳.楚의 國境에 있던 楚의 關所, 安徽省 含山縣 북서)을 빠져나와 밤에는
가고 낮에는 숨어 육수(陸水: 要水, 湖北省 通城縣의 幕? 縣에서 發源)에
도착할 무렵에는 입에 넣을 것이 없었습니다.
오(吳)의 시장에서는 무릎으로 걷기도 하고 엎드려 기기도 했으며,
머리를 땅에 대고 웃통을 벗은 채 절하기도 했으며 배를 두드리고 피리를
불면서 거지노릇까지 했습니다만 기어코 오나라를 일으켜 오왕 합려를
천하의 패자로 만들었습니다. 제게 오자서처럼 계략을 다하게 해 주신다면
옥에 갇힌들, 평생 대왕을 뵐 수 없게 되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기자(箕子: 殷末의 賢人)나 접여(接與: 春秋時代의 隱士)가 비록 몸에
옻칠을 하여 나병 환자처럼 머리털을 흐트려 광인처럼 보이게는 했으나
자기 군주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습니다. 그러하니 만약 제가
기자와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현명한 군주를 도울 수 있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저는 영광으로 생각하겠습니다.]
[그토록 과격한 표현을 할 필요는 없소이다.]
[아닙니다. 좀더 들어 주십시오. 다만 제가 두려워하는 바는 제가 죽은
후 천하의 인사들이 제가 충성을 다하고서도 몸이 주살되는 것을 보고,
입을 막아 구태여 말하지 않고 발길을 돌려 진나라로 가지 않으려 하게
될까 하는 점입니다.]
[좋소이다. 어서 하고자 하시는 말씀을 해 주시오.]
[바로 말씀드리지요. 만약 대왕께서 지금처럼 위로는 태후의 위엄을
두려워하고 아래로 간신의 아첨에 미혹되어 깊은 궁중에만 앉아 여인들의
치마폭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정사를 간신들의 손에만 맡겨 오랫동안
혼미에 빠져 현명한 신하와 간악한 신하를 구별하지 못하시니 그것이
걱정스럽습니다.]
[과인이 그러했소?]
[대단히 위태로운 지경에 계십니다. 자칫 종묘가 멸망할 만큼 대왕
자신께서는 사고 무친의 고립에 빠져 계십니다.]
진왕은 다시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곰곰 생각해 보니 진정으로 그러하오. 우리 진나라는 먼 벽지에 있으며
과인 또한 어리석고 불초하니 그런 사정을 어찌 알았겠소. 이 때 다행히도
선생께서 와 주신 것은 선왕(先王)의 종묘를 무사히 지키라는 선조의
음덕인 것 같소. 그러니 금후로는 선생의 가르침에만 따를 뿐이오. 결코
과인을 의심하지 마오.]
범수와 진왕은 다시 일어나 서로에게 맞절을 했다.
그런 후 범수는 입을 열어 진왕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대왕의 나라는 사방이 산천으로 둘러싸인 천연의 요새입니다. 북에는
감천산(甘泉山: 陜西省 渟化縣 북서)과 곡구(谷口: 陜西省 涇陽縣 북서)가
있고 남으로는 경수(涇水)와 위수를 띠고 농(농: 甘肅省)과 촉(蜀:
四川省)이 서쪽에 있고 함곡관과 상판(商阪: 陜西省 商縣 동쪽)이 동쪽에
있습니다.
특공대가 백만 명이며 전차가 천대, 유리하면 나가 싸우고 불리하면
안에서 지키니 이것이야말로 바로 왕자(王者)의 땅입니다. 백성 또한
사투(私鬪)에는 겁을 먹지만 공전(公戰)에는 용감하니 이것 또한 왕자의
백성입니다.]
[그렇다면 과인은 그 두 가지를 아울러 가지고 있는 셈이구려.]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잘 생각해 보십시오. 사실 진나라 병사의 용기나
수많은 거마(車馬)를 가지고 제후국들을 평정하는 일은 마치 한로(韓盧)
같은 명견(名犬)을 달리게 해서 다리 저는 토끼를 쓰러뜨린 것처럼 쉽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런 공업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가 뭐지요?]
[한 마디로 대왕의 군신들이 자기 책임을 감당하는 자가 없고 함곡관을
15년 동안이나 닫아 두었기 때문이지요.]
[양후가 강수를 치려고 준비 중이오.]
[바로 그 계략이 잘못되었다고 말씀드리는 중입니다. 어째서 산동(山東:
關東, 효山 以東)을 넘보지 않습니까.]
[강수를 치는 계략이 어째서 잘못되었다는 거지요?]
[남의 나라인 한나라.위나라의 땅을 넘어 제나라 강수를 친다는 게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마치 옛적 제나라 민왕이 남쪽 초나라를 쳐서
장군까지 죽이고 천리의 땅을 넓혔습니다만 결국 한 치 한 자 땅도 얻지
못한 일과 같습니다.]
[그건 형세가 땅을 보유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겠소?]
[문제는 그 다음에 있었습니다. 제나라 군사를 총동원해 초나라를 쳤기
때문에 싸움에는 이기고도 나라는 피폐해졌습니다. 그것을 이유로 군신간에
불화가 생겼으니 이를 눈치챈 제후국들이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제나라의
병사들은 욕보고 병기는 파괴되었지요.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진나라가 소수 병력을 동원해 보았자 제나라는 끄덕도 안 할 것이고,
대군을 출병시켰을 경우 진나라에 이롭지 않을 경우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며, 물론 자국의 병력은 아끼면서 한.위 두 나라의 군사를 전면적으로
끌어내자고 하시겠지만 그들 동맹국들도 유사시에는 늘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처지에 내 나라를 허술하게 비우고 남의 나라를 훌쩍 건너 먼
나라를 공격하다니요. 결국 제나라에서도 책임은 왕에게로 돌아갔습니다.
그 때 제왕은 '문자(文子: 孟嘗君 田文)가 그 계략을 세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대신들은 난을 일으켰고 전문은 도망쳤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렇구려.]
[실상 제나라가 크게 패한 이유는 초를 치면서 한.위를 살찌게 한 데
있지 않겠습니까. 이른바 '역적에게 무기를 빌려 주고 도둑에게 양식을
준다'는 꼴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게 진나라에 유리하겠소?]
[먼 나라와는 교제하고 이웃나라를 공격하십시오.]
[원교근공(遠交近攻)?]
[그렇게 하면 한 치의 땅을 얻어도 왕의 땅이 되고 한 자의 땅을 잃어도
왕의 땅이 됩니다.]
[기왕의 계략이 잘못되었다?]
[옛날 사방 5백 리밖에 안 되는 중산국(中山國)을 병탄했지요. 조나라는
공도 이루고 명성도 얻고 이익도 있었지요. 제후국들이 이를
배아파하면서도 조나라를 해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럼 천하 중앙에서 중추의 땅을 차지하고 있는 한.위를 치라는
뜻이오?]
[천하의 패자가 되시려면 방법을 달리하셔야 합니다.]
[어떻게?]
[우선 중앙의 나라들과 친근하게 지내십시오.]
[그건 얘기가 다르잖소?]
[자신이 천하의 중추가 되면 됩니다. 그런 후에 초나라와 조나라를
위협하십시오.]
[두 나라를 한꺼번에 말이오?]
[초가 강하면 조와 친근하고, 조가 강하면 초와 친근하십시오.]
[초와 조가 동시에 친근할 수도 있지 않소?]
[그 땐 제나라가 진을 두려워하겠지요. 제나라는 분명히 겸손한 말로
예물을 후하게 하여 진나라를 섬길 것입니다. 제나라와 친근하게 되면
한.위는 저절로 손아귀에 들어옵니다.]
[위나라와 친하려고 한 지는 오래요. 그러나 워낙 변덕이 심해서 믿을
수가 없구려.]
[대왕께선 말을 겸손하게 하고 예물을 무겁게 하여 위를 섬기십시오.
그러나 그것이 싫으시거든 땅을 할양하여 환심을 사십시오. 그조차
싫으시거든 병사를 일으켜 치십시오.]
[좋소. 그대의 가르침 중에 가장 마음에 드오!]
그 때부터 진왕은 범수를 객경(客卿)에 임명하고 군사(軍事)에 관한 일을
계획하게 했다. 한편으로 범수의 계략에 따라 오대부(五大夫: 秦의 爵位)인
관(관)을 시켜 위나라 회(懷: 河南省 武陟縣 서쪽)를 쳐 빼앗고 2년 후에는
형구(刑丘)마저 정복했다. 어느 날 객경 범수는 소왕에게 간했다.
[진나라와 한나라의 지형을 살펴보면 수를 놓은 것처럼 서로 엇갈려
있습니다. 진나라에 한나라가 있음은 비유컨대 나무에 좀벌레가 있음과
같고 사람의 내장에 병이 있음과 같습니다. 어찌 이를 제거치 않을 수
있겠습니까. 천하에 변고가 없으면 다행입니다만 만약 변고가 일어나면
한나라보다 더 큰 우환 덩어리가 없습니다. 미리 징벌하십시오.]
[한나라가 그토록 만만하겠소?]
[군사를 보내 형양(滎陽)을 공격하면 공(鞏)과 성고(成皐: 모두
河南省)의 교통이 막히며 북쪽 태행산(太行山)의 길을 끊으면 상당(上黨)의
군사는 내려오지 못합니다. 그러니 한번 군사를 일으켜 형양을 치면
한나라는 세 쪽이 나 버립니다. 한이 꼼짝없이 망한다는 것을 빤히 알면서
어찌 진의 말을 듣지 않겠습니까.]
[아, 그렇게만 되어 준다면 패업 달성의 계획도 한번 세워 볼
만한데.......]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범수는 날이 갈수록 진왕과 사이가 가까워졌다. 계책이 받아들여져
성공한 사례도 부지기수였다. 왕의 신임이 두터워졌다고 생각한 범수는
그제서야 전부터 하고 싶었던 심중의 말을 꺼냈다.
[제가 산동(山東: 여기서는 魏)에 있을 때 제나라에는 전문(田文:
孟嘗君)이 있다는 명성은 들었습니다만 왕이 있다는 소문은 듣지
못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진나라에는 태후와 양후와 화양군.고릉군.경양군의
명성은 들었습니다만 대왕의 존재는 듣지 못했습니다.]
[무슨 얘기요?]
[국정을 마음대로 처리하는 자를 왕이라 하고, 인간의 이해를 마음대로
좌우할 수 있는 권능의 소유자를 왕이라 하며, 생사여탈의 권력을 가진
자를 왕이라 합니다.]
[옳은 말씀이오.]
[그런데 지금의 형편은 어떻습니까? 태후께서는 당신의 마음대로 국정을
행사하시고, 양후는 외국으로 사신을 가도 왕께 보고조차 하지 않는
지경이며, 화양군과 경양군 역시 백성을 처단하는 일을 두려움 없이
행사하고 있으며, 고릉군은 관리들을 마음대로 진퇴시키는 인사권을
휘두르면서 왕의 재가는 청하지도 않습니다. 이토록 진나라에는 네 분의
존귀한 사람이 버티고 있으며 왕은 그 밑에 있게 되니 실제의 왕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며 국가는 위태롭기 마련입니다. 왕의 권력이 기울어지면 그
명령 역시 왕으로부터 나올 수가 없습니다.]
[글쎄요, 그것이.......]
[저는 '나라를 잘 다스리는 자는 국내에선 그 권위를 굳게 하고 국외로는
그 권위를 무겁게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양후는 왕의 무거운
권위를 대신 쥐고 흔들며 제후들은 제재하고 천하의 땅을 갈라 부절을
마음대로 보내고 있으며, 적국을 정복하고 타국을 제 마음대로 치는 등
진의 국정을 전단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쟁에 이기고 공격한 땅을 국가에 돌리는 것이 당연지사인데 그는
그 이익을 자신의 봉읍인 도국(陶國)으로 거두어들이고 그 손해는
제후들에게 뒤집어씌웁니다. 결국 전쟁에 지면 그 원한은 백성에게
돌아가고 그 화는 사직으로 돌아갑니다. 고시(古詩)에도, '나무 열매가
너무 커지면 그 가지를 꺾고 가지가 꺾이면 그 나무의 정기가 상하네'라고
되어 있습니다. 국내의 대읍(大邑)이 지나치게 커지면 그 나라는 위태롭고,
그 신하를 지나치게 존중하면 군주를 멸시하게 마련입니다.]
[그렇소!]
[최저(崔저)와 요치(요齒)가 제나라 국정을 맡아 군주인 제의 민왕에게
화살을 쏘아 그의 넓적다리 심줄을 뽑아서 묘(廟)의 대들보에 걸어 하룻밤
만에 민왕을 죽게 했습니다. 또 이태(李兌)는 조나라 국정을 맡아
주보(主父: 趙의 武靈王)를 사구(沙邱: 河北省 平鄕縣 북동)에 가두어 백일
만에 굶어 죽게 했습니다.
진나라 역시 태후와 양후가 국정을 맡고 고릉군과 화양군과 경양군에
합세해 진왕을 무시하니 이것 역시 요치나 이태의 무리와 다를 바
없습니다. 저 하.은.주 3대의 나라가 멸망한 탓도 군주가 정권을 오로지
신하에게 맡기고 음주에 탐닉하거나, 말을 달려 주살로 수렵이나 하며
정사를 돌보지 않은 탓입니다.
대체로 정권을 위임받은 신하는 능력 있는 자를 질투하며 말을 누르고
위를 가리워 사욕을 채웁니다. 주군을 위하여 계략하지 않고 주군도 그
잘못을 깨닫지 못하므로 나라를 잃는 것입니다.
지금 진에서는 유질(有秩: 鄕戶五千을 관리하는 大夫) 이상의 고급
관리에서 왕의 밑에 있는 좌우 근신에 이르기까지 상국(相國: 양후를
가르킴)의 사람이 아닌 자가 없으니 대왕께선 완전히 조정에서 고립되어
계신 셈입니다. 끔찍한 가정일지 모르나 천수를 누려 대왕이 돌아가신 뒤의
이 나라 왕은 아마 대왕의 자손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듣고 보니 소왕은 두렵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를 어떻게 조처하면 좋겠소?]
[소문이 나든가 일을 미적거릴 경우 오히려 대왕께서 화를 입으실 수도
있습니다. 일을 처리하시려거든 과단성있게 당장 하십시오.]
[좋소! 태후를 폐하고 양후.고릉군.화양군.경양군을 함곡관 밖으로
추방하겠소.]
소왕이 전격적으로 그렇게 단행하니 그들도 왕에게 미리 손쓸 수도 없게
되었다. 양후의 인수를 거두어 대신 범수에게 재상의 벼슬을 내리고 양후를
도(陶)로 돌아가게 했다.
도 땅으로 떠나는 양후의 짐수레는 1천 대가 넘었다. 함곡관에 도착해
관리가 양후의 짐을 조사하니 그 보기(寶器)나 진귀한 물품이 과연 왕실의
그것보다 많았다.
진나라는 범수를 응(應: 河南省)에 봉하여 응후(應侯)라 불렀다. 진의
소왕 41년이었다. 범수가 진에서 재상의 자리에 올랐지만 장록이라 부르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의 정체를 몰랐다. 위나라에서도 범수는 이미 죽은
지 오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때 위나라는 진이 한과 위를 치려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급해진
위나라에서는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수가를 사신으로 서둘러 진에
보냈다.
수가가 도착하자 이 소식을 들은 범수는 아무도 모르게 남루한
옷차림으로 수가의 숙사를 찾아가 기웃거렸다. 범수를 본 수가는 깜짝
놀랐다.
[어, 그대는 범숙(范叔: 叔은 范수의 字)이 아닌가. 웬일인가? 그동안
별일 없었는가?]
[죽지 않고 살아 있습니다.]
[진나라에서 만나다니 뜻밖이군. 그래, 진에 와서 유세라도 해 봤는가?]
[저 따위가 무슨 유셉니까. 그 때 제가 위의 재상에게 죄를 짓고 간신히
도망해서 이 곳으로 숨어 들어왔을 뿐이지요.]
[그래, 지금은 무엇하고 있는가?]
[남에게 고용되어 품팔이를 하면서 입에 풀칠하고 살지요.]
[몹시 곤궁하게 보이는군.]
수가는 범수를 불쌍하게 생각했던지 자기의 솜옷을 한 벌 꺼내 주었다.
[감사합니다.]
[한데, 진나라에서는 장군(張君)이 재상이라고 들었는데 그분에 대해서
자네는 좀 알고 있는가?]
[훌륭하신 분이지요.]
[그 사람은 왕의 총애를 받아 국정을 재상 혼자의 손으로 일체
결재한다고 들었는데 그게 사실인가?]
[사실입니다.]
[이번에 내가 지고 온 사명의 승패가 재상인 장군의 손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네. 누가 재상에게 다리 놓아 줄 만한 사람이 없겠는가?]
[계십니다. 제 주인과 절친한 사이거든요.]
[아, 그 참 잘 됐네. 내가 재상을 만날 수 있도록 자네가 중간에서 힘 좀
써 주게.]
[그러지요.]
[한데 말일세. 불행히도 내 말이 병든 데다 마차 바퀴마저 부러졌거든.
어디 네 필 말이 끄는 큰 수레를 구할 수가 없을까? 그래야만 재상께서
나를 만나줄 게 아닌가.]
[그야 문제 없습니다. 우리 주인께선 너그러우시니 간청하면 빌려 주실
것입니다.]
[고맙네.]
그래서 범수는 곧장 돌아가 네 필 말의 큰 수레를 끌고 왔다.
[타십시오.]
[지금 어디로 가는 건가?]
[재상의 관저로 바로 가시면 됩니다. 지금 저희 주인도 거기
계시거든요.]
범수는 수가를 태워 재상의 관저 쪽으로 달려 들어갔다. 모두들 엄숙히
경례를 했고 혹은 바쁘게 숨어 버렸다.
[왜들 저러나? 자네와 나를 보고 모두들 최고의 예우를 다하고 있으니.]
[저희 주인님의 마차를 보고 올리는 예의올시다.]
[그대 주인님도 대단히 존경받는 분인가 보지.]
재상 관저의 문에 이르렀다. 범수가 수레에서 뛰어내리며 수가에게
말했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재상께 면회 신청을 하고
나오겠습니다.]
범수가 안으로 들어간 뒤 수가 혼자 기다렸다. 그런데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소식이 없었다. 답답함을 견디지 못한 수가가 문지기에게
물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범숙은 왜 나오지를 않나?]
[범숙이 누구요?]
[나와 함께 수레를 타고 와서 먼저 들어간 사람 말이오.]
[이 사람 미쳤군! 우리 나라 재상을 일컫다니!]
[무어요!]
수가가 파랗게 질려 있는데 그 때 안으로부터 사인 하나가 달려나왔다.
[들어오시랍니다.]
기가 막혔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생각 끝에 웃통을
벗고 무릎으로 걸어서 안으로 들어갔다. 사죄하는 뜻이었다. 한 곳에
이르자 장막이 걷히더니 수많은 시종들을 거느린 범수가 정장 차림으로
나타났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수가는 땅에다 머리를 조아렸다.
[죽을 죄?]
[당신께서 이토록 높은 청운(靑雲: 立身出世)에 오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까막눈이 알 턱이 없었겠지.]
[당신을 보는 눈이 없었으니 앞으로는 천하의 서적을 읽지 않을 것이며
천하사에 관여하지도 않겠습니다. 가마솥에 끓여 죽여도 좋을 만한 죄를
지었습니다만 용서하시어 저 북쪽 오랑캐의 땅으로나마 추방해 주십시오.]
[그건 내 뜻대로 할 일이다. 그런데 너는 스스로 죽을 죄를 지었다고
말했다. 그 죄상이 몇 개나 된다고 생각하느냐.]
[머리털을 모두 뽑아 헤아린다 해도 속죄하지 못할 만큼 많습니다.]
[그렇지는 않다. 딱 세 가지가 있을 뿐이다.]
[예에?]
[옛날 초나라 소왕 적의 신포서(申包胥)는 초나라를 위해 오나라 군사를
물리쳤다. 그래서 초왕은 그에게 형(荊: 楚의 별명) 땅 5천 호에 봉하려
했지만 포서는 받지 않았다.
왜 안 받았는지를 아느냐? 그가 오군을 물리친 것은 조상의 무덤이 형에
있었기 때문이며 새삼스레 초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조상의 무덤이 위나라에 있거늘 내가 과연 위나라를 배반할 생각이
있었을까? 그런데도 너는 전날 내가 제나라에 내통했다고 나를 위제에게
중상했다. 이것이 네 죄의 하나이다.]
[죽여 주십시오!]
[위제가 나를 욕보이기 위해 측간에다 걸레가 다 된 내 몸을 던져 버렸을
때 너는 그것을 전연 말리지 않았다. 이것이 네 죄의 둘이다.]
[죽여 주십시오.]
[위제의 빈객들이 술에 취해 돌아가며 내 몸에다 소피를 보았을 적에
너마저도 내게다 오줌을 싸지 않았느냐. 어찌 그럴 수가 있던가!]
[죽여 주십시오!]
[죽여 줘?]
[용서하십시오!]
[벌레 같은 놈! 그렇지만 네 목숨만은 살려 준다.]
[예에?]
[조금 전 초라한 내게 옛 친구를 생각하는 은은한 정으로 솜옷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 솜옷이 너를 살린 것이다. 어서 돌아가거라!]
사과하고 용서하는 과정은 거기서 끝났다. 범수는 심란했다. 그 길로
곧장 왕궁으로 들어가 소왕에게 사신 수가와의 사이에 있었던 사건과 전후
사정을 낱낱이 고했다.
[과인도 생각하는 바가 있으니 일단 그 자들을 귀국시키시오.]
범수가 제후의 사신들을 초청해 성대한 잔치를 베풀고 있을 때 마침
수가가 귀국 인사를 하기 위해 찾아왔다. 그러나 수가만은 당상에 앉히지
않았다. 굳이 당하에 앉힌 뒤 말죽〔茉豆: 馬草를 자른 것과 콩을 섞은
죽〕을 그의 앞에다 놓고 이마에 먹물들인 죄인 둘을 수가의 양 옆에 앉힌
뒤 음식을 말처럼 먹게 했다.
[네가 굳이 찾아들었으니 귀띔해 주는 말인데, 위왕한테 말해서 지체없이
위제의 목을 가져오지 않으면 대량(大梁: 魏都)을 쳐서 쑥밭을 만들어
놓겠다고 전해라!]
수가는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쳤다. 귀국해서 수가는 위왕에게
진나라에서 있었던 일을 빠짐없이 아ㄹ다. 소식을 들은 위제는 두려워서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조나라로 도망친 위제는 평원군 밑에 숨어
버렸다. 범수를 위나라에서 데려온 왕계가 어느 날 재상 범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일에는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세 가지가 있고 혹 알고 있다 하더라도
속절없는 일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그게 무어요?]
[국왕께서 언제 붕어하실지 모르는 일이 예측할 수 없는 일의 첫째며,
재상께서 언제 그 관직을 잃게 되실지 알 수 없는 것이 예측 못 하는 일의
둘째며, 제가 갑자기 구렁텅이에 빠져 죽을지 알 수 없는 것이 예측 못
하는 일의 세 번째입니다.]
[갑자기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시오?]
[대왕께서 갑자기 붕어하시면 당신이 저를 등용하도록 왕께 진언 못 한
미안한 마음을 갖는다 하더라도 그 때는 이미 어쩔 수 없을 것이며,
승상께서 갑자기 그 자리를 떠나실 경우 제게 대하여 미안한 마음을 갖는다
하더라도 어쩔 수가 없을 것이고, 제가 갑자기 구렁텅이에 빠져 죽는
경우에도 승상께서 제게 미안한 마음을 갖는다 해도 그 땐 이미 어쩔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알아 들었으니 그만하시오.]
범수는 유쾌하지 않았으나 왕계에 대한 전날의 은혜를 생각하여 왕궁으로
들어가 할 수 없이 왕에게 말했다.
[왕계처럼 진나라에 대한 충성심을 가진 자가 아니었더라면 저는 함곡관
안으로 들어올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또 대왕과 같이 현성(賢聖)의 인군이
아니었던들 저는 존귀한 지위에 오르지 못했을 것입니다. 지금 저의 벼슬은
재상에 이르고 작위는 열후(列侯)에 봉해졌으나 왕계의 관직은 아직도
알자(謁者)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는 신을 데려오게 한 데 대한 보답이
아닌 듯합니다.]
[옳은 생각이오. 그를 중용하겠소.]
그래서 소왕은 왕계를 불러 하동(河東: 黃河의 동부) 태수에 임명했다.
그런데 왕계가 하동 태수로 부임한 지 3년이 지나도 조정에 태수로서의
정무 보고를 한번도 해 오지 않아 범수는 그 점을 의아스럽게 생각했다.
범수는 이번에는 또 정안평을 소왕에게 추천했다. 그는 전날 위나라에서
범수를 숨겨 목숨을 구해 주었고 또한 왕계에게 소개한 인물이었다. 소왕은
즉각 정안평을 장군으로 삼았다. 범수는 자신의 가재를 털어 전날 곤궁할
때 은혜 입은 자들에게 모두 보은했다. 단 한 번의 끼니라도 대접받은
자에게는 반드시 보상하고 그 대신 눈이라도 한 번 흘긴 원한에 대해서는
반드시 보복했다.
범수가 진나라 재상이 된 지 2년인 진의 소왕 42년에는
소곡(少曲).고평(高平: 모두 韓地, 河南省)을 쳐서 빼앗았다. 이즈음에
진의 소왕은 위제가 평원군 집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범수의 원수를 갚아 주고 싶었다. 그래서 우선 평원군에게 친선하자며
속임수 서신을 보냈다.
- 과인은 당신의 고귀한 뜻을 잘 듣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분을 초월해
선비로서의 교제를 하고자 하니 공께서는 꼭 한번 왕림해 주십시오. 그대와
열흘 동안 주석을 함께 했으면 합니다.
평원군은 진의 무서움을 알고 있었다. 진왕의 말이 그럴 듯하다고
생각되어 즉시 진으로 들어가 소왕을 만났다. 소왕과 평원군은 수일 간
잔치를 열며 다정하게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소왕은 얼굴빛을 고치더니 평원군에게 간곡히 말했다.
[옛날 주의 문왕은 여상을 얻어 태공(太公: 祖父)이라 존칭하였고, 제의
환공은 관이오(管夷吾: 管仲)를 얻어 중보(仲父: 叔父)로 존경했습니다.
범군(范君) 역시 과인에게는 숙부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범수의
원수가 바로 당신의 집에 있습니다. 제발 사신을 돌려 보내 그 원수의
머리를 가져오게 해 주시오.]
[그것은 불가합니다.]
[과인의 청을 거절하면 당신을 함곡관 밖으로 내보내지 않겠소.]
[존귀할 때 교제하여 벗을 만드는 것은 비천하게 되었을 때 도움을
받자는 것이며, 부유할 때 교제하여 벗을 만드는 것은 가난하게 되었을 때
도움을 받자는 것입니다. 위제는 제 벗입니다. 설사 제 집에 있다 하더라도
내놓을 수는 없으나 그가 제 집에는 없습니다.]
딱 잡아떼므로 소왕은 할 수 없이 조왕에게 직접 편지를 써서 보냈다.
- 왕의 아우 평원군은 지금 진나라에 와 있으며, 나와 범군의 원수인
위제는 지금 평원군의 집에 있습니다. 왕께선 속히 사신을 시켜 위제의
목을 진으로 가져오게 하시오. 청을 거절할 경우 진은 부득이 병사를
일으켜 조나라를 칠 수밖에 없으며 왕의 아우 또한 함곡관 밖으로
내보내지는 않겠습니다.
조왕은 더럭 겁이 났다.
[목을 맞바꾼다면.......]
조왕은 평원군을 살리기로 했다. 그래서 몰래 병사들을 보내어 평원군의
집을 포위하도록 했다. 미리 소문을 들은 위제는 가까스로 평원군의 집을
도망쳐 나와 조나라 재상 우경한테로 달려갔다.
[살려 주시오.]
우경은 곰곰 생각했다. 어떤 식으로 설득해도 조왕은 들어 줄 것 같지
않았다.
[일단 함께 도망이나 치고 봅시다.]
우경은 돌연 재상의 인수를 풀어 놓고 위제와 함께 조나라를 벗어났다.
[어디로 가지요?]
[글쎄요. 의탁할 만한 인물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우선 대량으로 가서
신릉군의 도움을 받아 초나라로 들어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달리 방법은 없겠습니다.]
그래서 둘은 간신히 신릉군한테 도착했다.
그러나 신릉군은 차일피일하고 둘을 만나 주려 하지 않았다.
[진나라가 두려운 모양이지요?]
[아아, 다 틀렸다!]
어느 날 신릉군은 빈객들이 있는 데서 지나가는 말처럼 넌지시 물었다.
[도대체 우경이란 사람은 어떤 인물인가?]
후영(侯영)이 마침 곁에 있다가 대답했다.
[남이 나를 이해한다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만 내가 남을
이해한다는 것 또한 예삿일이 아닙니다. 저 우경이란 인물은 짚신을 신고
챙이 긴 삿갓 쓴 보잘것 없는 차림으로 처음에 조왕을 알현했습니다.
그런데 한 번 뵙고 흰 도리옥 한 쌍과 황금 백 일(鎰)에 임명되고, 세 번
뵙고 재상의 인수에다 만호후(萬戶侯)에 봉해졌습니다. 그 때 천하
사람들이 그와 사귀려고 앞을 다투어 몰려갔습니다.
그런 우경에게 곤궁해진 위제가 매달리자 존귀한 작록도 전연 중요시하지
않고 재상의 인수도 풀어 버리고 만호후의 신분도 내버린 채 위제를 데리고
몰래 숨어서 왔습니다. 다른 선비의 곤궁함이 더욱 위급하다 하여 자신을
돌보지 않고 공자(公子)께로 찾아왔는데 공자께선 '도대체 저들이
누구냐'고 물으시니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과연 남이 나를 알아 주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만 내가 남을 알아 주는 일 또한 쉽지 않군요.]
그 말에 신릉군은 크게 부끄러워하였다. 서둘러 수레를 끌고 두 사람을
만나러 나갔다. 그러나 신릉군이 만나기를 주저한다는 소문을 듣고 위제는
분노와 절망으로 제 목을 찔러 죽고 난 후였다. 어쨌든 위제의 목을 얻은
조왕은 진나라에 보냄으로써 평원군을 귀국시킬 수 있었다.
소왕 43년에 진은 한나라의 분(汾).형(형: 둘 다 山西省 曲沃縣 부근)을
공격해 빼앗고 황하변의 광무(廣武: 山西省 代縣 서쪽)에 성을 쌓았다.
이로부터 5년 후 소왕은 응후 범수의 계략을 채택해 조나라로 간첩을
보내어 조를 속였고, 그로 인해 조는 염파(廉頗) 대신 마복군(馬服君:
趙?)의 아들 조괄(趙括)을 장군으로 삼았다.
그럼으로 해서 진나라는 장평에서 조군을 크게 깨뜨리고 드디어
조도(趙都) 한단(한鄲)을 포위할 수 있었다. 이 즈음에 응후는 무안군
백기와 사이가 벌어져 그를 소왕에게 참언해 죽였다. 한단은 장군으로
추천된 정안평에게 치게 했다. 그런데 정안평이 지위를 잘못해서 오히려
조군에게 포위되고 말았다. 살아날 길이 없었다. 다급해진 정안평은 병사
2만을 고스란히 이끌고 조나라에 항복하고 말았다.
범수는 기가 막혔다. 속절없이 죄를 입게 된 것이다. 진나라 법률은
사람을 추천해 그 추천받은 자가 실패하면 둘 다 같은 죄로 처벌받게 되어
있었다. 그 죄는 삼족이 체포당하는 죄였다. 범수는 짚을 깔고 그 위에
앉아 벌 내리기를 청했다. 그러나 진의 소왕은 응후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전국에 영을 내렸다.
- 감히 정안평 사건을 입밖에 내는 자가 있으면 정안평과 같은 죄를 받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소왕은 응후에게 평소보다 더욱 많은 먹을 거리를 내려 그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애썼다. 그런데 그로부터 2년 후였다. 설상가상으로
하동 태수 왕계가 제후들과 내통하다가 법망에 걸려 주살되었다. 범수는
더욱 의기소침해질 수밖에 없었고 소왕은 조정으로 나와 자신의 불민함을
탄식했다. 범수는 몸둘 바를 몰랐다.
[소신이 듣기로는 '군주가 근심하면 신하는 욕을 보고 군주가 욕을 보면
신하는 죽는다'고 합니다. 지금 대왕께서 조정에 나와 근심하시니 이것은
신에게 잘못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디 저의 죄과를 말씀하시어 벌
주십시오.]
[아니오 아니오, 초나라 철검(鐵劍)은 날카롭지만 배우(俳優)들은
졸렬하다고 했소. 철검이 예리하면 사졸들은 용감할 것이며 배우가
졸렬하면 그 사려(思慮)는 심원할 것이오. 심원한 사려를 가지고 용감한
병사들을 구사해서 초가 진을 공격할까 그것이 두렵소. 그러나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지 않겠소.
대개 물건이란 평소에 갖추어 놓지 않으면 화급한 경우에 대처할 수
없소. 지금 무안군은 죽고 정안평 등은 배반하였소. 도무지 국내에는
양장(良將)이 없고 동시에 국외에는 적국뿐이오. 또 누구를 죄 주란
말이오. 과인이 탄식한 것은 그 때문이오.]
소왕의 의도는 응후를 격려하는 데에 있었다. 그러나 범수는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이 때 채택(蔡澤)이 그런 소문을 듣고 진나라로 왔다.
채택은 연나라 사람이다. 사방을 유학한 뒤 벼슬 자리를 얻으려고 제후들
사이를 대국이든 소국이든 닥치는 대로 돌아다녔으나 등용될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의기소침해져서 유명하다는 당거(唐擧: 魏의 觀相家)한테로
관상을 보러 갔다.
[들리는 말로는 선생께선 이태(李兌: 趙의 宰相)의 관상을 보고, '백일
이내에 대권(大權)을 잡겠다'고 했고 또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이오?]
[사실이오.]
[그렇다면 내 관상도 좀 보아 주시오. 복채(卜債)는 두둑이 내겠소.]
[그러시오.]
당거는 채택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잔잔히 웃으면서 말했다.
[선생의 코는 납작하고 어깨는 넓고 이마는 튀어나오고 콧마루는
함몰했고 두 다리는 휘었소.]
[좋다는 거요, 나쁘다는 거요?]
[성인(聖人)의 관상이오.]
[무어요?]
[원래 '성인의 관상은 보아도 알 수 없다'고 했소.]
[그럴지도 모르지. 부귀라는 것은 이미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니까.
그런데 말이오.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은 수명인데, 얼마나 살겠소?]
[앞으로 43년을 더 사오.]
[그렇다면 충분하오.]
채택은 의기양양해서 조나라로 떠났다. 가면서 자기 마부에게
지껄여댔다.
[내가 고량진미를 먹고 준마를 달리며 황금 인장을 품에 넣고 자줏빛
인수(印綏: 大夫 이상만 使用함)를 허리에 차고 군주 앞에서 절하는 고귀한
신분만 된다면 앞으로 43년이면 충분하다.]
그래서 조나라로 가서 유세했으나 추방되고 말았다. 이번에는 한나라와
위나라로 갔다. 그런데 가는 도중에 가마솥과 다리 굽은 솥을 도둑맞고
말았다. 낭패스러웠다. 불길한 징조 같아 다시 의기소침해 있는데 주막에
들렀다가 우연히 응후의 요즘 처지를 흘려 듣게 된 것이다.
[음, 이건 좋은 소식이다!]
채택은 즉시 서쪽 진나라로 향했다. 범수가 심란해하고 있는데 사인
하나가 들어와 넌지시 일러주었다.
[웬 자가 주인님을 욕하고 다닙니다. 잡아 올까요?]
[나를 욕해? 그래, 내게 대하여 어떤 욕을 한다더냐?]
[그 자 말이 '나는 연나라의 세객 채택이다. 천하의 걸물이며
박학다식하고 지혜로운 선비지. 내가 딱 한 번 진왕을 뵙기만 하면 응후
따위는 단번에 궁지로 몰아넣을 텐데. 그의 자리를 금세 내가 빼앗아 버릴
텐데'라며 떠들고 다닙니다.]
[미친 놈이군. 내 이미 오제(五帝)와 삼대〔夏.殷.周〕의 사적과
백가(百家)의 학설에 통달해 어떤 논객들의 변론도 논파해 버렸거늘 무어
나를 궁지로 몰아넣어? 게다가 내 지위까지 뺏어?]
[묶어 올까요?]
[의도적으로 떠들고 다니는 것 같다. 선비라면 그렇게 대할 수는 없지.
짐짓 모셔 오너라.]
얼마 후 채택이 불려 들어왔다. 그는 들어와서 범수에게 아무렇게나
인사했다. 그렇지 않아도 범수는 채택에 대하여 과히 좋은 감정이
아니었는데 그의 거만한 행동을 보자 화가 치밀었다.
[그대가 나를 비방했는가?]
[그렇습니다.]
[나를 대신해서 진나라 재상이 된다고 떠들고 다녔는가?]
[들으셨군요.]
[나를 궁지로 몰아넣어?]
[그쯤이야 너무도 간단하지요.]
범수는 분을 억누르며 말했다.
[그렇다면 그 이유를 설명해 보게.]
[말씀드리지요. 무릇 계절에는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이 있습니다.
싫더라도 계절은 어쩔 수 없이 바뀌어 갑니다. 마치 그 계절이 자신이 이룬
공(功)의 임무를 끝내고 바뀌어 가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대개 사람이 태어나서 온 몸이 건강하여 손발이 잘 놀고 귀가 잘 들리고
눈이 잘 보이며 여전히 지혜롭다면 이는 선비로서 크게 취할 바가
아니겠습니까.]
[누가 아니래.]
[어짐을 바탕으로 하여 의로움을 지키며 도를 행하고 덕을 배풀어 자기의
지향하는 바가 천하에 공감을 얻어, 천하 사람들이 그를 그리워하고
친근하다 생각하며 그를 사랑하고 존경하고 사모하여 누구라도 그를 군주로
받들도록 만드는 능변(能辯)이 있다면, 이는 지혜로운 선비로서 바람직한
소원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부귀하고 명예스럽고 영화로운 몸이 되어 만물을 잘 다스려 각각 제
위치를 찾게 만들고, 수명은 장수하여 요절하지 않고, 천하 사람들이
전통을 이어받아 자기의 사업을 완성해 후세에 영원히 전하고,
명실상부하게 잡된 것 없이 그 덕택에 천리에 퍼져서 칭송되어 천지와 함께
그 운명을 같이 한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도덕의 증거이며 성인이 말하는
경사요 상서로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저 진나라의 상군(商君)이나 초나라의 오기(吳起)나 월나라의 대부
종(種)과 같은 사람들은 그런 의미에서 과연 본받아도 좋을 만한
인물들입니까?]
범수는 과연 채택이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어 설득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래서 짐짓 그들을 옹호하기로 작정했다.
[무어, 안 될 건 또 뭐가 있나. 저 공손앙〔商君〕이 효공을 섬길 때 두
마음이 없어 심신을 다했고 공사에 진력하여 사사를 돌보지 않았다. 형벌을
제정해 간사한 행위를 금하고 상벌을 공평하게 하여 치평(治平)을 가져오고
마음 속을 털어놓아 진정을 보여 주지 않았나.
주위의 원망을 무릅쓰고 옛 친구를 속여서까지 위의 공자 앙을 사로잡아
진의 사직을 평안하게 하여 백성을 이롭게 했다. 드디어 진을 위해 적장을
사로잡고 적군을 깨뜨려 영토를 확장한 것이 천리에 미쳤지.]
채택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오기는 또 어떠냐. 초의 도왕을 섬길 때 사리가 공익을 해할 수 없도록
하고, 참언이 충신을 가릴 수 없도록 하고, 확신 없는 말에 남과 동조하지
않고, 확신 없는 행위로 남에게 용납되려고도 하지 않았다. 위험하다 해서
정당한 행위를 달리하려고도 않았고, 의로운 행위라면 곤란을 피하지
않았고 군주를 패자로 만들고 국가는 강대하게 하기 위해서는 불행을
당하기를 사양하지 않았잖는가 말일세.]
범수는 듣고 있는 채택의 눈치를 흘끔 한 번 본 후에 말을 계속했다.
[대부 종이 월왕 구천을 섬길 때는 군주가 곤고(困苦)나 치욕을
당하더라도 충성을 게을리하지 않고, 군주가 절멸(絶滅)과 위망(危亡)에
직면해도 내능을 다하여 떠나가지 않고, 공업을 성취하더라도 자랑하지
않고 부귀한 몸이 되어서도 교만하거나 게으르지 않았다.
이 세 사람과 같은 인물은 의의 극치이며 충신의 모범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군자는 의를 위해 위난에 죽고 죽음을 볼 때 마치 제 집으로
돌아가듯 하는 것이다. 살아서 치욕을 겪는 것보다 죽어서 영예로운 것이
낫지 않나. 그래서 선비는 제 몸을 죽여서 명예를 성취하는 것이거든.
그러니까 오로지 의롭기만 하다면 죽더라도 유한은 없지. 그러니 어찌 이
세 사람을 선비가 갈망하는 훌륭한 대상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채택도 지지 않고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군주가 성인이며 신하가
현명하다는 것은 천하의 복입니다. 군주가 지혜로우며 신하가 결백
정직하다는 것도 나라의 행복입니다. 부친이 자애롭고 자식이 효성스러우며
남편이 성실하고 아내가 정숙하다는 것은 가정의 행복입니다. 그런데
비간(比干)이 충성했지만 은나라를 보존하지 못했고 오자서가 지혜로웠지만
오를 온전하게 하지 못했고 신생(申生: 晋 ?公의 太子)은 효도했지만
진(晋)나라는 어지러웠습니다. 이처럼 충신.효자가 있으면서도 나라가
망하고 혹은 어지러워진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나는 신하의 의로움을 말했을 뿐이네.]
[들어 보십시오. 그것은 지혜로운 인군과 현명한 아버지가 없어, 충신과
효자의 말을 들을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하에서는 그 인군과
아버지를 오욕스런 인간으로 천시하고 그 신하와 자식을 동정했습니다.
그렇듯 이제 상군.오기.대부 종은 신하로서 훌륭했지만 그 인군은 그렇지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이 세 사람이 공을 세우고도 그만큼 보답을 받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한데도 어찌 불우하게 죽은 것 자체를
부러워할 사람이야 있겠습니까. 만약 죽은 후에야 비로소 충성스럽다고
명성은 얻는 것이라면 미자(微子)는 인자(仁者)하다 할 수 없고 공자는
성스럽다 할 수 없고 관중은 위대하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무릇 사람이 공명을 세울 때 어찌 그 성공이 완전하기를 기대하지
않겠습니까. 최상이란 몸과 명성이 온전한 것이며, 명성은 모범되면서 몸이
죽는 것은 그 다음이며, 오욕된 이름 아래 그 몸만 온전한 것은
최하입니다.]
[그건 그대의 논리겠지.]
[그렇다면 한 가지 묻겠습니다. 저 상군.오기.대부 종과 같은 사람들은
신하로서 충성을 다 바치고 공을 이루었다는 점은 가히 바람직한
일이었지만, 굉요(굉夭)가 문왕을 섬기고 주공이 성왕(成王)을 보좌한 일은
보다 성스럽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군신의 일치라는 점에서
본다면 상군.오기.대부 종과 굉요.주공 중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야 상군.오기.대부 종이 미치지 못하지.]
[그렇다면 승상의 주군께서 자비로우시어 충성된 신하를 신임하고, 오래
정든 신하를 후대하며, 현명하고 지혜로워 도를 지킬 줄 아는 선비들과
밀접하게 교제하고, 의를 지켜서 공신을 저버리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진의
효공, 초의 도왕, 월왕 구천과 비교해 어느쪽이 더 낫다고 생각하십니까?]
[아직은 알 수 없군 그래.]
[지금 승상의 주군께서 충신을 신임하는 정도는 진의 효공, 초의 도왕,
월왕 구천만 못하다고 생각됩니다.]
[무슨 근거로.]
[승상께선 재주를 발휘해 주군을 위하여 위태로운 것을 안정시키고,
정사를 정비해 난을 다스리고, 병력을 강화해 우환을 없애고 곤란을
타개했으며 영토를 넓히고 곡식을 넉넉히 심어 국가를 부강하게 하고
가정을 풍족하게 하며 주군을 강하게 하여 사직을 존중하고 종묘를
빛냄으로써 천하에서 감히 주군을 업신여겨 속이지 못하게 하여 주군의
위엄이 국내를 뒤덮게 하여 떨게 만들고, 공력이 만리 밖으로 나타나고
명성과 그 광휘가 천 대에까지 전하게 한다는 점에서는 승상과
상군.오기.대부 종과 비교해 어느 쪽이 낫습니까?]
[그건 내가 못하지.]
[좋습니다. 지금 승상께선 주군이 충신을 신임하고 오래 정든 신하를
잊지 않기로는 효공.도왕.구천만 못하고 승상의 공적이나 주군의 총애나
신임받는 정도가 상군.오기.대부 종만 못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승상의 봉록과 지위는 많고 높아 그 재산은 앞의 세 사람보다 많습니다.]
[그건.......]
범수는 처음으로 당황했다.
[만약 승상이 지금 자리에서 물러가지 않고 있다가 닥쳐올 환란이 앞의
세 사람보다 심하게 위태롭다는 점을 생각해 보신 적은 없으신지요. '해가
중천에 오르면 서쪽으로 자리를 옮기고, 달도 차면 기운다'는 옛말도
있습니다. 만물이 왕성했다 쇠퇴하는 것은 천지간의 변하지 않는
이치입니다. 나아가고 물러가는 것, 굽히고 펴는 것이 그 시대의 사정에
따라 변하는 것이 바로 성인(聖人)의 변치 않는 도리입니다. 그래서 나라에
도가 행해지고 있으면 벼슬하고, 나라에 도가 행해지지 않으면 은퇴해야
합니다.]
[은퇴라.......]
[성인은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飛〕 용이 하늘에 있으니 덕 있는 자를
보기에 편리하고 〔<易經>乾卦, 聖人이 天子가 되면 벼슬한다는 뜻〕'
'의롭지 못하면서 부귀하다는 것은 나에게 뜬구름이나
다름없다〔<論語><述而篇>〕'라고요.
지금 승상께선 옛적 품었던 원한을 이미 풀고 입었던 은덕도 모두 갚아
하고자 하는 바들이 모조리 달성되었습니다. 그러고서도 변화에 대응하는
계획을 세우지 않으니 답답할 뿐입니다. 물총새.따오기.코뿔소.코끼리 같은
새나 짐승은 그들 거처가 그렇게 안전한 곳은 아니지만 실제로 잡혀 죽게
되는 이유는 먹이를 탐내기 때문입니다.
소진과 지백의 지혜가, 욕된 것을 피하고 피살된 위험에서 멀리하기에
충분했던 것이나 실상 피살될 이유는 이익을 탐내기에 정신없이 날뛰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인은 예의를 마련해 욕심을 절감하고 백성에게서
거두어들이는 조세에도 한계를 정했고, 사역시키는 데도 한가한 틈을 타서
시키는 제한을 두었습니다.
그러므로 지향하는 바가 지나치지 않고 행동하는 바가 교만하지 않고
항상 도에 어긋남이 없었기 때문에 그것은 천하사람들에게 모범이 되어
그를 영원히 성인으로 떠받들게 되는 것입니다.]
범수는 묵묵부답으로 듣고 있었다.
[옛날 제의 환공은 제후를 아홉 차례나 규합해 천하를 크게 바로잡았지만
규구(葵丘: 河南省 考城縣)의 회맹 때에 가서는 교만한 생각을 품었기
때문에 이반한 나라가 9개 국이나 생겼습니다. 오왕 부차는 그 병력이
강하기가 천하 무적이었지만 그 용맹과 강대함만 믿고 제후들을 가볍게
보아 제.진(晋)을 담박에 능가하려다 오히려 제 한몸도 죽고 나라까지
멸망했습니다.
하육(夏育).태사 교(太史교: 인물 미상) 같은 용사가 고함 소리 하나로
3군을 놀라게 했으나 하찮은 잡병에게 죽었습니다. 이것 모두가 극성의
형세를 타고 본연의 도리로는 돌아오지 않으며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고
절제할 줄 모르는 데서 온 화였습니다.
저 상군(商君)은 진의 효공을 위해 법령을 밝히어 부정의 근원을 막고,
공이 있으면 작위를 높여 반드시 상 주고, 죄가 있으면 반드시 벌 주고,
저울을 공평하게 하고 길이를 재는 일과 부피를 헤아리는 것을 바르게 하는
등 도량형을 바로잡았으며, 물가를 조절하고 밭고랑을 정리하였습니다.
이토록 백성의 직업을 안정시켜 풍속을 통일하고, 농업을 권장해
생산력을 중대시켰으며, 한 집안에서 두 가지 생업을 못 가지게 하고
농업에 힘써 식량을 축적시키고 군사 훈련을 실시했습니다. 그래서 그
군사를 출동시키면 영토가 확장되고, 휴전하면 국가의 부력이 증대돼
있으므로 진은 천하 무적의 위력을 제후에 과시해 진나라의 대업은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대업을 이룬 후에 상군은 드디어 자신이 거열형을
받아 죽었습니다.]
채택이 그쯤 얘기했을 때에 범수는 아무 대꾸없이 가늘게 한숨만 쉬었다.
[초나라는 사방이 수천 리, 갈래진 창을 가진 병사가 백만이나 되는
대국입니다. 그러나 백기는 수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초군과 싸워 한 번
싸움에 언.영을 공략하고, 이릉을 불태우고, 두 번 싸움에 촉.한을
병합하고 또 한.위를 넘어서 강대한 조나라까지 공격해 북쪽으로
마복군〔趙括〕을 묻어 죽이고 장평성 밑에서 40여만 명의 군사를 섬멸하니
흐르는 피는 내가 되고 아우성 소리는 우레와 같았습니다.
그리고는 드디어 한단을 포위함으로써 진의 제업(帝業)은
이루어졌습니다. 초와 조가 천하의 강국이면서도 원수인 진을 감히 치지
못한 것은 백기의 위세 때문이었습니다. 백기가 항복시킨 성채만도 70여
성이나 됩니다. 그런 대공을 성취한 뒤에 백기는 드디어 검을 받아
두우(杜郵)에서 자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오기(吳起)는 초의 도왕을 위해 법률을 세우고, 대신들의 지나친 권위를
삭감하며, 무능한 자를 파면시키고, 불필요한 행사를 없애고, 급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관직을 줄이고, 왕실의 사사로운 청탁을 막고, 초나라
풍속을 통일하며, 놀면서 돌아다니는 백성이 없게 하고, 용사와 전투를
겸하는 병사를 정예화 하여 남쪽으로 양주(楊州)의 월나라를 수중에 넣고,
북쪽 진(陳).채(蔡)의 땅을 병합하고 연횡책을 깨뜨리며 합종책을
흐트러뜨리고, 유세하는 자가 입을 열 기회를 주지 않았으며, 파당을 맺는
것을 금하고, 백성들이 신바람이 나도록 격려하고, 초나라의 정사를 확고
부동하게 하였으므로 그 군대는 천하를 떨게 하여 위세로 제후들을 복종케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공이 이루어진 다음에는 드디어 지해(枝解: 몸.손발을
잘라내는 형벌)의 형을 받았습니다."
범수는 무슨 소리인가를 속으로 중얼거렸고 채택은 못 들은 척 말을
계속했다.
[대부 종은 월왕 구천을 위해 계획을 깊이하고 원대한 꾀를 짜내어
회계에서 위기를 모면케 하고, 망할 뻔한 나라를 존속시키고 오욕을
영광으로 뒤바꾸어 놓았습니다. 초야를 개간해 성읍(城邑)으로 만들고
토지를 개척해 곡식을 심었습니다.
사방의 선비들을 이끌고 상하의 힘을 모아 구천의 현명함을 보좌해 오왕
부차에게 원수를 갚고 드디어 강포한 오왕을 사로잡아 월의 패업을
성취시켰습니다. 그의 공적은 누가 보아도 분명하고 위대했는데도 월왕
구천은 그를 배신해 죽이고 말았습니다. 어째서 앞에 든 네 사람이 그토록
큰 공을 이루고도 화가 몸에 미쳤을까요.
두말 할 필요도 없이 영광의 절정에서 은퇴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펴기만 하고 굽힐 줄은 모르며, 가기만 하고 돌아올 줄 모른다'는
격언을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범여(范여)는 그 이치를 알았으며 그렇기에
초연하게 세상을 비껴나가서 도(陶) 땅의 주공(朱公)으로 길이
번영했습니다.]
[그럴 듯하오.]
[승상께선 도박하는 자들을 본 적이 있으시겠지요. 어떤 사람은 크게
걸어 단판 승부를 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조금씩 걸어 서서히 승부를
내기도 합니다.]
[나는 어떤 축에 속하오?]
[당신께선 진의 재상이 되어 계략이 자리 바깥으로 벗어나지 않게 하고,
그 꾀가 궁전 바깥으로 나가지 않게 하면서 가만히 앉아 제후들을
제어하고, 삼천(三川: 河南省 伊水.洛水.黃河가 合流하는 지방) 땅의 부를
옮겨 의양(宜陽)을 충실하게 만들고, 양장(羊腸)의 험한 지형을 돌파해
태항산(太行山)으로 가는 길을 막고, 또 범(范)과 중행(中行)으로 가는
삼진(三晋)의 길을 차단해 6국이 합종할 수 없게 하고, 천릿길에
잔도(棧道: 산골짜기나 절벽 사이에 놓는 다리)를 놓아 촉(蜀).한(漢)과
교통할 수 있게 하여 천하 제후들이 모두 진을 두려워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래서 진의 욕망은 달성되고 승상의 공적은 극도에 달했습니다.
도박꾼으로 치면 어떤 축에 드시냐고요? 그야 승상께선 당연히 단판
승부형이지요.]
[그것이 어째서 나쁘다는 거요?]
[나쁘다는 게 아니라 이제는 부자 몸 아끼듯 조금씩 조금씩 걸어 승부를
걸 때가 왔다는 뜻입니다. 즉 승상께서 은퇴할 때가 왔다는 의미이며, 만일
이제까지의 공을 나누어 가지지 않는 한 승상께서도 상군.백기.대부 종과
다를 게 없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듣기로는 '물을 거울로 삼는 자는 제
용모를 볼 수 있고, 사람을 거울로 삼는 자는 그 길흉을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일서(逸書)>에도 '성공했으면 그 자리에 오래 있지 말라'고 했습니다.
어째서 승상께선 이 기회에 재상의 인수를 돌려 현자(賢者)에게 물려주고
은퇴하여 암혈(巖穴)에 거주하며 냇가로 산보나 하지 않습니까? 그렇게만
하신다면 백이(伯夷)같이 청렴하다고 칭송될 것이고 영원한 응후로
불리어져 자자손손 제후의 지위가 보장될 것입니다.]
[옳은 말씀이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허유(許由)나 연릉(延陵)의 계자(季子: 李禮)같이
겸양하다는 칭찬을 받을 것이고 왕자교(王子喬)나 적송자(赤松子: 둘다
仙人)같이 장수할 것입니다. 끝으로 한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역경>에
'항룡(亢龍: 높게 올라간 용, 즉 부귀 영달한 인간)에게는 후회가
있다'라고 씌어 있습니다.]
범수는 진심어린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좋은 말씀이오. 내가 듣기로도 '하고자 하여 그칠 줄을 모르면 그
하고자 하는 바를 잃고, 소유하고서도 만족할 줄 모르면 그 소유하고 있는
것조차 잃는다'고 했소. 깨닫지 못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선생이 나를
일깨워 주어서 감사하오. 삼가 가르쳐 주신대로 따르리다.]
범수는 채택을 상객으로 대우했다.
며칠 후 범수는 궁중으로 들어가 진의 소왕에게 말했다.
[신의 빈객 중에 요즘 산동(山東)에서 새로 온 채택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어떤 인물이오?]
[삼왕(三王)의 사적와 오패의 업적이며 세속의 변화에 대해서도 소상히
알고 있는 천하의 재사(在士)입니다.]
[그대와 비교해 어떻소?]
[신보다 훨씬 뛰어납니다. 이제까지 많은 사람을 만나 보았지만 그만한
인물은 없습니다. 진나라 정사를 맡기기에 충분한 인물입니다. 그래서 감히
추천하는 바입니다.]
소왕이 채택을 불러 함께 담소해 보니 그 재주가 썩 마음에 들었다. 몹시
기뻐하며 그를 객경(客卿)으로 삼았다. 한편 범수는 신병을 핑계삼아
재상의 인수를 돌렸다. 소왕은 굳이 응후를 유임시키려 했으나, 범수가
신병이 위독하다고 하자 할 수 없이 재상의 인수를 받아들였다.
소왕은 범수의 충고를 받아들여 채택을 재상에 임명했다. 그리고 채택의
계략대로 주나라 왕실의 토지를 손에 넣었다. 채택이 진나라 재상이 된 지
몇 개월이 지났을 때였다.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채택을 참소했다.
[내가 앉을 자리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채택은 재상의 인수를 돌려 주었다. 그러나 채택은
강성군(綱成君)으로 호칭되었다. 진나라에 거주한 것이 10년이었고, 그
동안 소왕.효문왕(孝文王).장양왕(莊襄王)을 섬겼으며, 나중에 시황제도
섬겼다. 진나라를 위하여 연나라에 사신을 갔으며, 3년 후 연의 태자
단(丹)을 진나라에 볼모로 오게 했다.
나 태사공은 이렇게 생각한다. 한비자의 말 중에 '소매가 긴 자는 춤을
잘 추고 돈이 많은 사람은 물건을 잘 산다〔買〕'는 것이 있다. 그 말은
옳은 것 같다. 범수와 채택은 둘 다 변설이 종횡 무진하고 권모 술수와
임기응변에 능한 인물들이다. 그런데도 다른 나라 제후들에게 유세하여
백발이 되도록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 것은 그들의 계책이 졸렬해서가
아니라 유세한 그 나라의 실력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이 비록 나그네 신세로 진나라에 들어갔으나 연속해서
경상(卿相)의 지위에 올랐으며, 천하에 그 공적을 드날린 것은 참으로
진나라와 열국의 힘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선비에게는 역시 운.불운이라는 것이 있다. 세상에는 이
두 사람보다 훨씬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도 그 뜻을 이루지 못한 인물들이
얼마나 많은가. 어쨌든 이 두 사람도 곤궁에 처하지 않았던들 그토록
분발하여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
20. 악의열전 樂毅列傳
자기의 계략을 실행해 5개 국의 군대를 연합하였고, 약소한 연(燕)을
위해 강한 제나라에게 원수를 갚아 그 선군(先君)의 치욕을 씻었다. 그래서
제20에 <악의열전>을 서술했다. <太史公自序>
악의(樂毅)의 선조 중에 악양(樂羊)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악양은
위(魏)나라 문후(文侯: B.C. 424-387 在位)의 장군이 되어 중산국을
정벌했다. 그래서 문후는 악양을 영수(靈壽: 中山國의 地名, 河南省)에
봉했다. 악양이 죽자 영수에 장사지냈으므로 자연히 후손들은 영수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 후 중산국이 나라를 회복했지만 조나라 무령왕(武靈王) 때에 다시
조나라가 중산을 멸망시켰다. 바로 이 무렵, 악씨의 후손 중에 악의가
있었다.
악의는 현명했고 특히 병법(兵法)을 좋아했다. 조나라에서 그를
등용했으나 무령왕이 사구(沙邱)의 난(亂: 趙 武靈王이 아들 何를 王으로
세우고 맏아들 章을 代의 安陽君으로 봉했다. 그리고 자신은 王父라
일컬으며 沙邱의 宮에 있었는데, 맏아들 章이 亂을 일으켜 主父가 있는
사구의 궁에 이르렀다. 그러자 公子 成과 李? 가 사구의 궁을 포위했고
장을 죽였으며 주보 역시 3개월 동안 포위된 채 굶어 죽었다)으로 죽자
조나라를 떠나 위나라로 갔다.
그 당시 연(燕)나라에서는 자지(子之)의 난(亂: 자지는 연왕 快의 재상.
연왕 쾌가 어리석어 국정을 자지에게 일임하자 나라는 크게 혼란했다. 이런
틈을 타 제나라 민왕이 연나라를 크게 깨뜨리고 쾌를 죽였으며 자지는 젓을
담갔다)이 일어나고 이 틈에 제가 연을 깨뜨렸으며, 연의 소왕은 제나라를
원망해 복수할 것을 한 번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연나라는 약소국인데다 대륙 구석으로 치우쳐 있어 그 힘으로는
제나라를 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연왕은 우선 몸을 낮추어 겸손한 태도로
인재를 불러 모았다. 그 중의 한 선비가 곽외(郭외)였다.
이 때 악의가 위나라 소왕의 사자가 되어 연나라로 갔다. 연왕은 악의를
최고의 빈객으로 대우했다. 이에 악의는 아경(亞卿: 上卿 다음 가는
大臣)에 올랐다. 그 무렵 제의 민왕은 강대해져서 남쪽으로 초나라 재상
당말(唐말)을 중구(重邱: 山東省 聊城縣)에서 깨뜨리고, 서쪽으로
삼진(三晋: 韓.魏.趙)을 관진(觀津)에서 꺾었다. 그런 후 삼진과 힘을 합해
진(秦)을 쳤다.
또한 조나라를 도와 중산국을 멸망시켰으며 송나라도 격파해 천여 리의
영토를 넓혔다. 진나라 소왕과 우열을 다투듯 일시적으로 제(帝) 칭호를
사용하기도 했으며, 많은 제후들이 진을 배반하고 제나라에 기울자 제의
민왕은 더욱더 기고만장해졌다. 한편 제나라는 연일 계속되는 침략의 부담
때문에 백성에게 과중한 세금을 부과했다. 이 때 연의 소왕이 제나라를 칠
것을 주장했다. 그러자 악의가 말했다.
[그것은 힘든 일입니다.]
[어째서?]
[일찍이 제나라는 패업을 성취한 환공의 여광이 남아 있으며 토지는
광대하고 인구는 많습니다. 연나라 단독의 힘으로는 어렵고 굳이 대왕께서
제나라를 치고 싶으시면 조나라 초나라 위나라와 연합해 공동으로 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다면 그대가 세 나라를 돌며 동맹을 맺고 오시오.]
그렇게 되어서 악의는 조의 혜문왕(惠文王) 등과 또한 초.위와도
동맹했다. 그런 합종에 설득력이 있었던 것은 교만하고 난폭한 제의 민왕을
제후들이 몹시 미워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연의 소왕은 국내 병력을 총동원했다. 악의를 상장군(上將軍)에
임명했으며, 조의 혜문왕도 상국(相國)의 인(印)을 악의에게 주었다.
이에 악의는 조.초.한.위.연의 연합 군사를 끌고 제나라를 쳐서
제수(濟水) 서쪽〔山東省〕에서 크게 이겼다.
제후의 군사들이 모두 회군한 뒤에도 악의는 연나라 군사만을 이끌고
제의 임치〔齊都, 山東省〕에 육박했다. 제의 민왕은 제수 서쪽에서 패해
거(거: 山東省)로 도망가 틀어 박혔다. 악의는 정복한 제나라 땅을
순시하며 정령(政令)을 내렸다. 임치로 진입해서는 제의 보물과 재화와
제기(祭器) 등을 탈취해서는 속속 연나라로 보냈다.
연의 소왕은 몹시 기뻐하며 몸소 제수 가까이까지 나가 군사들을
위로하고 상을 주었으며 잔치를 베풀었다. 악의를 창국(昌國: 山東省 ?川縣
북동)에 봉해 창국군(昌國君)이라 불렀다.
연의 소왕은 전리품을 거두어 연으로 돌아가면서 악의에게 아직 항복하지
않은 제나라 성읍을 치도록 명령했다. 악의가 제나라에 머물며 정령을
내리고 70여 개의 성을 탈취하기를 어언 5년, 그러나 거(거)와
즉묵(卽墨)만은 항복 받을 수가 없었다.
그 때 연의 소왕이 죽었다. 그의 아들이 연의 혜왕(惠王: B.C. 278-272
在位)이 되었다. 그러나 혜왕은 태자 때부터 악의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기회를 보아 파직시키려 하고 있었다.
제나라 전단(田單)이 그런 기미를 눈치챘다. 이에 간첩을 풀어 연나라로
보내 이런 소문을 퍼뜨리게 했다.
[제나라 성읍으로 항복하지 않은 곳은 딱 두 곳뿐이다. 그것은 악의가
공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간을 끌면서 제나라에 머물다가 왕이 되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혜왕은 악의를 의심하고 있었는데 그런 소문을 듣자 덜컥
불안해졌다.
[악의를 그냥 둔다는 것은 위태롭다. 불러서 죄를 뒤집어씌워야 겠어.]
연의 혜왕은 전격적으로 악의를 장군직에서 파면시켜 버렸다. 대신
기겁(騎겁)을 장군으로 보내며 악의를 본국으로 소환했다. 악의는 귀국하면
주살될 것을 눈치챘다. 그래서 서쪽으로 도망쳐 조나라에 항복했다.
조나라에서는 악의를 관직에 봉하고 망제군(望諸君)이라 칭하여
우대했다. 그러면서 은근히 연나라와 제나라를 위협했다. 군략가 악의가
파면된 것을 안 제나라 전단은 기겁의 군대에게 싸움을 걸었다.
궤계(詭計)로써 연군을 속여 즉묵성 아래서 기겁의 군대를 대파하고 북쪽
황하까지 추격하면서 잃었던 제의 성읍을 모조리 회복했다. 그래서
양왕(襄王: ? 王의 아들)을 거 땅에서 맞아 임치로 되돌아갔다.
연의 혜왕은 뒤늦게 후회했다. 악의를 기겁과 교체한 때문으로 군사가
격파되고 장군을 잃고 제의 땅을 잃게 되었다. 또한 연나라가 피폐한 틈을
노려 조나라가 악의를 기용해 연을 치러 오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그래서
혜왕은 사신을 시켜 악의에게 달래는 서신을 보냈다.
- 선왕(先王: 昭王)께서는 나라 전체를 장군에게 맡겼었소. 그만큼
장군을 신임했기 때문이며, 또한 장군이 연나라를 위하여 제를 격파하고
선왕의 원수를 갚았을 때 천하에서 장군에 대하여 떨지 않는 자가 없었소.
과인이 어찌 감히 장군의 공로를 하루인들 잊었겠소.
때마침 선왕이 군신들을 버려 둔 채 붕어하시자 좌우 군신들이 새로
즉위한 과인의 판단력을 그르치게 했소. 사실 과인이 장군과 기겁을 교대한
것은 장군이 오랫동안 전쟁터를 돌며 더위와 비바람에 시달리는 것을
안타까워 잠시 귀국해 휴식을 취하도록 하려 했던 조처였소. 그런데 장군은
그 조처를 오해해 연을 버리고 조나라에 귀복해 버렸소. 장군 자신을
위해서 그런 결단을 내린 일은 좋았을지 모르나 선왕께서 장군을 후대했던
사실을 생각하면 어찌 그럴 수가 있소.
악의는 연의 혜왕이 보낸 편지를 읽은 뒤 사신을 통해 답신을 보냈다.
- 제가 재능이 없는 탓으로 왕명을 받들어 모시어 좌우 근신들의 뜻을
따르지 못한 채 선왕의 명철하심에 손상을 입히고 족하(足下: 王)의 높으신
덕에 해를 끼칠까 염려되어 조나라로 도망쳐 왔습니다. 지금 족하는 사신을
보내 제게 죄를 꾸짖으셨습니다. 그래서 지금 저는 선왕께서 저를 총애하신
본래의 이유를 살피지 못하고 또 제 선왕을 섬긴 본래의 뜻을 명백히
이해하지 못할까 염려되어 서면으로나마 대답해 드리는 바입니다.
[이게 무슨 뜻인가?]
- 저는 '현성(賢聖)한 군주는 친근하다는 이유로 봉록을 내리지 않으며,
공로가 많은 자에게만 상을 주고 능히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자에게만 그
관직에 있게 한다'고 들었습니다. 고로 사람의 재능을 통찰해 관직을 주는
분은 대업을 성취하는 군주이며, 군주의 행위를 정당하게 논평해 임금을
섬기는 자는 공명을 세우는 선비입니다.
제가 가만히 선왕의 거동을 관찰해 본 결과, 세속의 군주보다 높은 뜻을
지니고 계시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사자로서의 부절(符節)을
위나라에서 빌려 가지고 연나라로 들어갔습니다. 선왕께선 저를 잘못
발탁하여 빈객 가운데 끼게 하고 뭇신하들의 위에 서게 하며, 일족과
상의함이 없이 아경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제가 책임을 감당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습니다만 한편 왕명을 받들고 가르침을 받아 들인다면 다행히
일을 대과 없이 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어 대왕의 명령을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귀국하겠다는 얘긴가 오지 않겠다는 뜻인가?]
- 신왕께서는 제게 명하기를 '과인은 제나라에 대한 원한과 노여움이
크다. 그래서 연나라 국력의 미미함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제를 치고자
하는 마음 간절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찍이 제나라는 환공이
성취한 패업의 여광이 남아 있으며, 전쟁에 크게 승리한 경험이 풍부한
나라입니다.
그러니 대왕께서 제를 치시려면 천하 제후와 동맹하여 이를
도모하십시오. 게다가 회수 이북의 옛 송나라 땅은 초나라 위나라가 얻고
싶어하는 땅이며, 조나라까지 동조하여 4개국이 동맹하여 제를 공격하면
크게 격파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옳다고 생각하신
선왕께서는 부절을 마련해 저를 사신으로 보내시어 기어코 군사를 일으키게
만드셨고 또 제를 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사실이 있었던가?]
- 하늘의 도움과 선왕의 위광(威光)에 힘입어 하북의 조나라.위나라가
선왕을 따라 제수 가에 모였습니다. 연합군은 명을 받들어 제나라 군대를
대패시켰습니다. 복장을 가볍게 차린 정예병이 먼저 적군을 추격해 가서
드디어 제나라 수도 임치에 이르렀더니 제왕은 겨우 몸만 빠져 나가 거
땅으로 피신했습니다.
한편 제나라의 주옥.재보.전차.무기.진기(珍器) 등의 전리품들을 거두어
모조리 연으로 옮겨 보냈습니다. 제나라에서 가져온 기물은 영대(寧臺:
燕의 臺名)에 진열하고 대려(大呂: 齊의 種名)는 원영(元영: 燕의 宮名)로
돌아오고, 계구(계丘: 燕都, 河北省, 현 北京)에는 제의 민수(민水: 山東省
萊蕪縣 북동) 가에서 생산하는 대숲이 이식되었습니다.
오백(五伯: 五覇)이라도 선왕보다 더 큰 업적을 세운 분은 없습니다.
만족해하신 선왕께서는 땅을 갈라 저를 봉하여 소국(小國)의 제후에 비길
만한 지위로 오르게 했습니다.
[듣고 보니 악의의 공적은 컸구나.]
- 저는 '현성한 군주는 그 대업이 손상됨이 없이 사서(史書)에 기록되고,
선견지명을 가진 선비가 공명을 이루면 역시 손상됨이 없이 후세에
칭송된다'고 들었습니다. 선왕께서는 보복으로 원한을 씻고, 만승의 강국
제나라를 평정했으며, 8백 년 동안이나 축적해 놓았던 제나라
보물들〔太公望에서 ? 王에 이르기까지의 보물〕을 삽시에 거두어들이고,
붕어하신다 하여도 생전의 가르침이 쇠하지 않도록 국사를 담당할 신하가
그 법령을 정비해 적(嫡).서(庶)의 분수를 지키게 했으며, 이런 가르침을
백성에서 노예에까지도 미치게 하여 후세의 교훈이 되게 한 것은 모두
선왕의 덕망 때문이었습니다.
[선왕의 공업을 내가 훼손시켰구나.]
- 저는 또 '시작을 잘한다 해서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며, 시작이
훌륭하다 해서 반드시 끝맺음도 훌륭한 것은 아니다'고 들었습니다. 옛날
오자서의 의견이 오왕 합려에게 청허되어 초의 국도 영까지 진격했습니다.
그런데 오왕의 아들 부차는 자서의 의견이 그르다 하여 오히려 죽음까지
내리고 그 시체를 말가죽에 싸서 양자강에 띄웠습니다.
부차는 선왕의 정책을 답습만 해도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자서의 시체를 양자강에 가라앉히고도 후회할 줄 몰랐습니다.
그리고 자서 역시 두 군주의 기량이 같지 않다는 것을 재빨리 통찰하지
못했기 때문에 양자강에 시신이 빠지는 처지가 되도록 제 의견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의 경우에는 죽음을 모면하고 공을 세워서 선왕의 업적을
밝히는 것이 신하된 자로서의 최상책인 듯하며, 참언과 오욕스런 비방을
받았다 하여 선왕의 명성을 훼손시키는 일은 크게 두려워하여야 할 일인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런고로 예측하지 못했던 죄를 입은 신이 요행히
조나라를 도와 연나라를 침으로써 앞서 범한 죄를 요행으로 면해 보려는 것
같은 행위는 도의상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정작 다행이야.]
- 저는 또 '군자는 절교는 할망정 상대의 단점을 말하지는 않으며,
충신은 그 나라를 떠나더라도 결백을 표명하여 군주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비록 무능하나 자주 군자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다만 왕께서 좌우 군신들의 의견만 경청하신 나머지 저의
행위를 자세히 살피시지 못하게 되시지나 않을까 염려되어 실례인 줄
알면서도 감히 이 글을 올리는 바입니다.
연의 혜왕은 악의를 해칠 생각을 가졌던 점을 깊이 후회했다. 악의는
즉시 돌아오지 않았으므로 연왕은 악의의 아들 악간(樂間)을
창국군(昌國君)에 봉했다. 악의는 그 후 조와 연 사이를 왕래하면서
연나라와도 다시 친했다. 연.조 두 나라에서는 동시에 그를 객경으로
삼았다.
악의는 조나라에서 죽었다. 악간이 연에 거주한 것이 30여 년이나
되었다. 연왕 희(喜: B.C. 254-222 在位)가 재상 율복(栗腹)의 계략을
받아들여 조나라를 치자고 했다. 창국군 악간이 간언했다.
[조나라는 사방의 적국과 싸워 온 경험이 풍부한 나라입니다. 싸워도
이길 수가 없으며, 이제까지의 선린으로 보아 쳐서도 안 됩니다.]
그러나 연왕은 악간의 충고를 듣지 않고 지체 없이 조나라를 공격해
들어갔다. 조나라에서는 장군 염파(廉頗)를 시켜 연에 맞서게 했다. 염파는
율복의 군사를 호(호: 河北省 柏鄕縣 북쪽)에서 맞아 대패시키면서 율복과
악승(樂乘)을 사로잡았다.
악승은 악간의 친족이었다. 상황이 난처해지자 악간은 슬며시 조나라로
달아났다. 드디어 조나라가 연을 포위하니 연나라는 땅을 갈라 준 끝에
가까스로 강화할 수 있었다. 연왕은 악간의 간언을 듣지 않은 것을 몹시
후회했으나 아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대신 연왕은 조나라에 가 있는
악간에게 사신을 통해 편지를 보냈다.
- 은의 주왕 때의 기자(箕子)는 자신의 의견을 들어 주지 않더라도 왕의
뜻을 거슬려 가면서까지 간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소. 상용(商容)도 주왕을
간하며 목적 달성은커녕 몸만 욕을 당했으나 그래도 주왕이 마음을 돌릴
것을 소원했소.
그러나 국정이 어지러워지고 민심이 이반하며 죄수가 멋대로 탈옥하는
사정에 이르자 두 사람도 어쩔 수 없이 은퇴한 것으로 알고 있소. 그런데도
주왕이 걸왕과 같은 폭군이라는 악명을 얻었으나 앞의 두 사람은 충신이며
그 명예로운 이름을 잃지 않았소. 아다시피 그들은 나라를 근심하는 일에
정성을 다했기 때문이오.
그런데 지금 과인은 어리석긴 하나 주왕과 같이 포악하진 않고, 연나라
백성이 비록 문란하긴 하나 은나라 백성만큼 심하지는 않소. 한 집안에
분쟁이 있으면 서로 성의를 다해 노력해 화합을 모색해야 하거늘 그대는
마치 이웃에다 불평을 선전하는 것처럼 과인을 간하지도 않고 이웃 나라인
조로 도망쳐 가 버리니 그것은 인간의 도리가 아닌 듯하오.
그러나 악간과 악승은 연왕이 애초 계략을 듣지 않고 충언을 마다한
사실만 원망하면서 끝내 조나라에 머물고 말았다. 조나라는 악승을 봉하여
무양군(武襄君)으로 삼았다.
그 이듬해에 악승과 염파가 조나라를 위하여 연나라를 포위했다. 놀란
연나라가 후한 예물로 조나라에 조공해 왔으므로 그제서야 조는 포위를
풀어 주었다. 그 5년 후에 조나라의 효성왕이 죽었다. 조의 양왕(襄王:
悼襄王)이 서자 염파를 대신해 악승을 장군으로 삼았다.
이에 화가 난 염파는 악승을 습격하니 악승은 대패하여 달아나고, 염파
역시 조나라에 머물 수가 없어 위나라로 망명해 들어갔다. 그 16년 후에
진나라는 조나라를 멸망시켰다. 다시 20여 년 뒤에 고제(高帝: 漢의 高祖,
劉邦)가 옛적 조나라 땅을 지나가다가 문득 생각난 것이 있어 근신에게
물었다.
[악의에게 후손이라도 있었던가?]
[악숙(樂叔)이라는 자가 살고 있습니다.]
[악의와 어떤 관계냐?]
[손자입니다.]
[불러 오너라. 현자(賢者)의 자손이다.]
그래서 악숙이 고제에게 불려 왔다. 고제는 악숙을 악향(樂鄕: 河北省
?縣 부근)에 봉하고 화성군(華成君)이라 불렀다. 또한 악씨의 일족 중에는
악하공(樂瑕公)과 악신공(樂臣公)이 있었는데, 조나라가 진에 멸망되려 할
때 제나라 고밀(高密: 山東省)로 망명했었다. 특히 악신공은
황제(黃帝).노자(老子)의 학문에 능통하여 제나라에서는 명성이 높은
현사(賢師)로 칭송되었다.
나 태사공은 이렇게 생각한다. 일찍이 제의 괴통(괴通: 漢楚抗爭時의
說客)과 주보언(主父偃: 漢初의 策士)은 악의가 연왕에게 회답한 글을 읽을
때마다 읽기를 멈추고 울지 않을 때가 없었다고 한다.
악신공은 황제.노자의 학문을 배웠다. 그 학문의 조사(祖師)는
하상장인(河上丈人)이라는 인물인데 그의 내력은 알 수 없다. 하상장인은
안기생(安期生)을 가르치고, 안기생은 모흡공(毛翕公)을 가르치고,
악신공은 합공(합公)을 가르쳤고, 합공은 제나라
고밀(高密).교서(膠西)에서 그 학문을 전수해 조상국(曺相國: 曺參)의
스승이 되었다.
@
21. 염파.인상여열전 廉頗.藺相如列傳
인상여는 강대한 진나라에 대하여 자기의 뜻을 마음껏 발휘했고 한편으로
염파에게는 자신을 낮추어 그의 주군에게 몸을 바쳤다. 그래서 그 주군과
함께 제후들에게 존경받는 존재가 되었다. 그리하여 제21에
<염파.인상여열전>을 서술했다. <太史公自序>
염파는 조나라의 훌륭한 장군이다. 조나라 혜문왕 16년에 염파는 조나라
장군이 되어 제의 진양(晋陽: 陽晋의 잘못으로 山東省 曹縣 북쪽)을 공격해
크게 공략한 공으로 벼슬이 상경(上卿)에 이르렀다.
제후들에게는 그의 용맹 또한 잘 알려져 있었다. 인상여는 조나라의
환관이었으며 또한 영(令: 大臣)인 목현(목賢)의 가신이 되었다. 조의
혜문왕이 초(楚)의 화씨벽(和氏璧: 卞和가 山中에서 얻어 楚王에게 바친
名玉)을 손에 넣었다. 진의 소공이 이 소식을 듣고 진나라 15개의
성시(城市)를 주는 대신 그 벽을 보내 주었으면 하고 청원했다.
조왕은 대장군 염파와 여러 대신들을 불러 상의했다.
[벽을 진나라에 주어 보았자 성시를 얻지 못할 것이며 결국 속임수에
넘어가 벽만 빼앗기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벽을 보내지 않으면 그것을 핑계로 침공해 올텐데 그 점
역시 근심스럽습니다.]
의견들이 분분했다. 그래서 방침을 확정짓지 못한 채 일단 진나라로 회답
사신을 보내 보기로 결론이 났다. 그러나 사안이 무척 중차대한지라 누구를
사자로 보낼 것인가도 문제가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때 환관의 영인
목현이 나섰다.
[저의 가신 중에 인상여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왕이 물었다.
[그는 어떤 사람이오?]
[한때 제가 죄를 짓고 몰래 연나라로 도망치려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가신인 인상여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당신께선 연왕과 어떤 연고로
알게 되었습니까' 하기에, '일찍이 왕을 모시고 연으로 갔다가 국경
부근에서 연왕을 만났는데 그 때 가만히 내 손을 잡으며 친구가 되기를
원했다'고 대답해 주었지요.
그 때 상여가, '그것은 어리석은 판단입니다. 지금 당신이 도망해 연으로
가면 필시 당신을 묶어 조나라로 돌려보낼 것입니다. 어째서 그러냐 하면,
전날 연왕이 당신과 사귀고자 한 것은 조는 강하고 연은 약하기에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미리 다짐해 둔 것이고, 지금 형세는 당신으로 인해
조나라가 화를 낼 것을 두려워하여 절대로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차라리 당신은 조왕께 웃통을 벗고 부질(斧質: 處刑하는 데
쓰이는 도끼와 臺)에 엎드려 처벌을 청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혹시 형벌을 면하는 수도 있으니까요' 하며 충고했습니다.
그 때 저는 상여의 충고대로 했더니 다행히 대왕께선 용서해 주신 데다,
속으로 인상여란 인물이 대단한 현사란 사실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를 불러서 물어 보는 게 좋겠소.]
그렇게 되어 인상여가 불려 왔다.
왕이 물었다.
[진왕이 15개의 성시를 과인의 벽과 교환하자고 하는데, 어떻소. 주어야
옳겠소, 아니면 거절하는 게 옳겠소?]
[거절할 수는 없습니다. 진나라는 조나라보다 강하니 허락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진왕이 과인의 벽만 챙기고 성시를 돌려 주지 않을 것 같으니까 하는
얘기 아니겠소.]
[진나라가 먼저 벽과 성시를 교환하자고 말했으니 만일 조에서 그 조건을
거절하게 되면 잘못은 조나라에 있게 됩니다. 대신 조에서 벽을 주었는데도
진이 성시를 내주지 않으면 잘못은 진나라에 있게 됩니다. 그러하니 두
계책 중 오히려 벽을 주어 버리는 계책을 선택함으로써 잘못을 진나라에
지우는 편이 낫다고 판단됩니다.]
[결국 가만히 앉아 벽만 빼앗기는 결과가 되겠구려.]
[사신을 일단 보내시지요.]
[그토록 어려운 심부름을 과연 누가 하겠소?]
[대왕께서 적당한 인물이 없다고 판단되신다면 저를 사신으로
보내십시오.]
[그대가?]
[성시가 조의 손으로 들어오면 벽을 진에 두고 올 것이고 진이 성시를
주지 않으면 벽을 다시 조나라로 가져오겠습니다.]
[그조차 자신은 없지만 별수가 없소. 그대가 가 보시오.]
그렇게 되어서 인상여는 벽을 받들어 서쪽 진나라로 건너갔다. 진왕이
장대(章臺: 秦 王城 內의 臺名, 陜西省 長安縣)에 앉아 상여를 거만하게
굽어보았다. 상여가 벽을 받들어 진왕에게 올리자 진왕은 입이 째지게
기뻐했다. 좌우에선 만세 소리까지 들렸다. 모두들 몹시 좋아했다.
그러면서도 누구의 입에서도 15개의 성시를 가져가라는 말이 없었다.
진왕은 자기 손으로 직접 벽을 쓰다듬으며 좌우 군신들과 궁녀에게도 만져
보게 하며 벽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인상여는 진왕이 조나라에 성시를
돌려 줄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음을 눈치챘다. 인상여가 진왕에게 말했다.
[어떤 옥에라도 티가 있기 마련이지요.]
다시 벽을 살펴본 진왕은 의외라는 듯이 중얼거렸다.
[과인의 눈에는 보이지가 않는구려.]
[어디 제게 주어 보십시오.]
벽을 돌려 받은 인상여는 몇 걸음 뒤로 물러나 궁중 기둥에다 몸을
의지하고는 머리카락이 치솟아 관을 찌르도록 분노한 목소리로 소리질렀다.
[잘 들으시오! 대왕께선 벽을 얻을 욕심으로 사자를 시켜 조왕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물론 조나라 군신들은 의논을 했습니다. 그러나
한결같이 '진은 탐욕하며 자신의 강함만 믿고 속임수로 벽을 구하고 있는
것 같다.
진이 벽을 대신해 성시로 보상할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소신은 진나라에 벽을 주자고 간청했습니다. '보잘것 없는 서민의
교제에도 서로 속이지 않는데 하물며 진나라 같은 대국이 속임수야
쓰겠습니까. 믿고 줍시다.' 그 결과 생각을 바꾸신 조왕께선 닷새 동안
목욕 재계하고 저를 시켜 벽을 받들어 삼가 진나라 궁중으로 보내게 했던
바입니다.
말하자면 대국의 위엄에 대한 최소의 경의 표시를 한 뒤 벽은 진나라에
도착됐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지금 도착해 보니 대왕께선 벽을 가져온
사신을 빈객으로 대우하기는커녕 예절 없이 신하처럼 대하며 벽을 일개
궁녀에게까지 돌려 희롱했습니다. 그런 대왕의 행동에서 보상으로 성시를
줄 리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제가 벽을 도로 돌려 받았던 것입니다.
만일 이런 상황에서 저를 겁주어 벽을 뺏으려 하시겠다면 이 벽과 함께
제 머리를 부딪쳐 깨고 말겠습니다!]
정작 인상여가 기둥을 노려보자 진왕은 황급히 말렸다.
[가만!]
실상은 인상여의 머리가 깨어지는 것을 두려워했던 게 아니라 벽이
깨어진다는 사실을 훨씬 겁냈다.
[무엇입니까?]
[15개의 도읍을 조나라에 돌리겠소. 어서 지도를 가져오너라.]
관리가 진나라 지도를 가져오자 진왕은 여기저기에다 손가락으로 찍었다.
그 역시 속임수임을 단정한 인상여는 진왕에게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시다시피 화씨벽은 천하가 공동으로 전하는 보배입니다. 누구나
아끼는 천하의 명옥입니다. 조나라 역시 이 벽을 아꼈으나 진왕의 위엄이
두려워 감히 바치기로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조왕께 이 벽을 보낼 때 닷새
동안이나 재계했습니다. 이것을 받는 대왕 역시 닷새 동안 마땅히 재계하고
구빈(九賓)의 예(禮: 王이 빈객에 대해 행하는 9가지 儀禮)를 궁정에서
행해여만 합니다. 그제서야 저는 감히 벽을 올리겠습니다.]
진왕은 체면상 벽을 강탈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5일 동안 재계할 것을
약속했으며 상여를 광성전사(廣成傳舍)에 머물게 했다. 인상여는 자신의
종자 한 사람을 조용히 불렀다.
[너는 이 벽을 품 속에 몰래 숨겨 가지고 가만히 진나라를 빠져
나가거라. 남루한 옷일수록 좋다.]
눈치를 챈 종자가 물었다.
[벽은 조나라가 다시 찾게 될지는 모르나 주인님의 목숨이
위태롭습니다.]
[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벽이 조나라로 몰래 돌아가고 난 후였다. 진왕은 닷새 후 구빈의 예를
궁중에서 베풀며 인상여를 인견했다.
[과인은 그대가 일러준 대로 모두 이행했소. 벽을 돌려 주오.]
[진나라의 목공(목公) 이래로 20여 명의 군주가 계셨으니 아직까지 한
분도 약속을 지킨 분이 없었습니다. 소신의 입장에서는 대왕에게 속고
조나라를 저버리게 될까 그것만이 두렵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시켜 벽을
가지고 몰래 조나라로 돌아가게 했던 것입니다.]
[무어라고!]
[진나라는 강하고 조나라는 약합니다. 지금이라도 대왕께서 단 한 사람의
사자라도 조나라에 보내면 지체없이 벽을 받들고 올 것입니다. 강한
진나라가 먼저 15개의 도성을 갈라 조에게 넘겨 준다면 어찌 감히 조나라가
대왕에게 벽을 내놓지 않는 죄를 짓겠습니까.]
[무엄하다! 저자를 당장 탕확(湯확: 삶아 죽이는 刑에 쓰는 다리없는 큰
가마)에 처해야 겠다.]
[아아, 우리가 속다니!]
근신들이 분노하고 탄식했다.
[소신이 대왕을 속였으니 그 죄 속어 마땅합니다. 다만 저를
죽이시더라도 충분히 상의한 후에나 하십시오.]
인상여를 일단 끌어낸 후 진왕은 근신들과 상의했다.
[지금 인상여를 죽인다고 해도 이미 벽은 얻을 수 없는 게 아니겠소?]
근신들도 흥분을 가라앉히고 모두 제 정신으로 돌아온 듯했다.
[그렇습니다. 그로 인해 진과 조의 우호만 끊어지고 말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약속만 지켰다면 어찌 조왕이 한 개의 벽 때문에 진을
속이겠는가?]
[그렇다면 오히려 상여를 후대하여 조나라로 돌려 보내지요.]
[그 편이 나을 것 같다.]
인상여가 궁중에서 빈객의 예우를 다 받은 후 마침내 귀국이 허락되었다.
상여가 귀국하자 조왕은 몹시 기뻐했다. 현명한 인물이 사신으로 갔기
때문에 왕을 욕보이게 하지 않았으며 보물도 빼앗기지 않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조왕은 인상여를 상대부(上大父)로 삼았다.
진나라는 역시 성시를 조나라에 주지 않았고 조나라 역시 벽을 진나라에
주지 않았다. 그 후 진은 조를 습격해 석성(石城: 河南省 林縣 남쪽)을
빼앗았다. 다시 이듬해에는 조의 병사를 2만 명이나 죽인 뒤 진왕은
조왕에게 고했다.
- 그대와 우호하고 싶소. 서하(西河) 남쪽 면지(면池)에서 회합했으면
하오.
조왕은 두려웠다. 공연히 회합하러 갔다가 다시 돌아올 것 같지가
않았다. 그 때 염파와 인상여가 상의한 뒤에 조왕을 달랬다.
[가십시오. 가지 않으면 조나라는 나약하고 비겁하다는 평판만 듣습니다.
소신이 봉행하겠사오니 걱정 마시고 가시는 게 옳겠습니다.]
인상여가 간청하자 조왕도 그제서야 갈 것을 허락했다. 염파가 국경까지
나와서는 조왕과 작별하기 직전에 말했다.
[왕께서 회견을 마치고 돌아오시는 도정은 30일입니다. 만일 30일이
넘어도 돌아오지 않으시면 청컨대 태자를 왕으로 모셔 진나라의 야망을
끊도록 하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좋소. 가상한 결의요.]
드디어 조왕 일행은 떠났다. 곧 면지에서 진왕과 회합하게 되었고 술에
얼큰해진 진왕이 소리쳤다.
[과인이 듣기로 조왕은 음악을 좋아한다고 하던데 과인에게 거문고를 한
번 탄주해 줄 수 없겠소?]
조왕은 인상여의 눈짓을 받은 후 할 수 없이 거문고를 뜯었다.
진나라 기록관이 나와서 소리쳤다.
['모년 모월 모일 진왕은 조왕과 회음(會飮)하고 또 조왕에게 거문고를
타게 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이번에는 인상여가 나와서 말했다.
[조왕께서 가만히 들으니 진왕께서는 진의 음악을 잘 하신다고 하는데,
분부(盆부: 질그릇으로 만든 악기. 원래 술이나 장을 담는 그릇이나 미개한
진에서는 악기로도 사용했다. 질장구)를 드릴 터이니, 함께 즐기고자
하십시다.]
[나는 싫소!]
진왕은 화를 냈다. 그래도 인상여는 지지 않고 무릎을 꿇고 진왕에게
분부를 내밀면서 재차 간청했다.
[싫다고 말하지 않았소!]
진왕은 더욱 화를 내었다.
인상여가 진왕을 쏘아보며 말했다.
[대왕과 신의 사이는 다섯 걸음밖에 안 됩니다 제 목을 찌른 피가 대왕을
적실 수도 있지요〔자신을 희생해 진왕을 죽일 수도 있다〕!]
진왕의 좌우에서 상여를 베려 하자 상여가 먼저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물러서!]
사태가 긴장되자 진왕은 하는 수 없이 조왕을 위하여 질장구를 때렸다.
인상여가 조나라 기록관을 돌아보며 말했다.
[적어 놓게나. 모년 모월 모일에 진왕이 조왕을 위하여 분부를 쳤다고.]
진의 근신들도 화가 난 모양이었다.
[조나라가 15개의 성시(城市)를 진왕에게 바쳐 진왕의 장수를 축복해
주시기를 청원합니다.]
그 소리를 듣고 인상여가 조왕에게 눈을 껌벅인 뒤 대신하여 말했다.
[좋습니다. 오는 정성이 있으면 가는 게 있고 가는 정성이 있으면 반드시
오는 게 있습니다. 그렇게 할 터이니 진에서도 수도 함양을 바쳐 조왕의
장수를 축복해 주시기를 청원합니다.]
그 때쯤 가서는 진의 군신들도 기가 질리는 모양이었다. 진에서 데리고
간 병사들만큼은 조나라에서도 데려와 진을 치고 있었으므로 진에서 섣불리
움직일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결국 진왕은 잔치가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
조왕을 이길 수가 없었다. 회합은 흐지부지 끝나 각자 귀국했다. 조왕은
인상여의 공적을 크게 평가했다. 그래서 상경(上卿)의 직위에 앉혔다.
[음...... 이것 보게나!]
뜻밖에도 염파가 발끈했다. 자신의 직위보다 인상여가 높은 직위에 있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나는 말일세. 조나라의 장군이 되어 성을 공격하고 들판을 달려 싸워 온
커다란 공이 있지 않나. 상여는 본래 비천한 출신인데다 그까짓 혀끝 몇 번
잘 놀린 대가로 어째서 상경의 지위에 오를 수 있는가. 나는 그 자의 밑에
있는 것이 부끄러워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네. 언제라도 만나기만 하면 그
자를 크게 모욕 주어야지!]
인상여가 그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가급적 염파와 만나려 하지 않았다.
조정에 나가야 할 일이 있어도 인상여는 병을 핑계로 함께 하는 자리를
피했다. 서열을 다투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마차를 몰아
가다가 먼발치에서 염파를 발견하면 골목으로 피해 버렸다. 인상여의
가신들이 불평했다.
[저희들이 친척을 떠나와서 부모처럼 당신을 섬기고 있는 까닭은 당신의
높으신 뜻을 사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염파와 같은 서열에 있는
당신께서 그토록 욕을 당하시며 그가 두려워서 숨기까지 하시니 가신인
저희들은 부끄러워 참을 수가 없습니다. 보통 사람들조차도 창피한
일이거늘 당신 같은 지위에 있는 분이 어찌 그토록 용렬한지요. 불초한
저희들로선 당신을 섬길 수가 없으니 물러가게 해 주십시오.]
고개를 두어 번 끄덕거린 인상여는 천천히 물었다.
[그대들이 보는 염 장군은 어떤가?]
[위세야 있지요.]
[진나라 왕은 어떤가?]
[그야 무섭지요.]
[염장군과 진나라 왕을 비교해 어느 편이 더 무서운가?]
[물론 진왕이 훨씬 두렵습니다.]
[염 장군이 진왕을 어렵게 생각할 것 같은가?]
[내심 두려워할 것 같습니다.]
[그것 보게. 내가 진왕을 겁내던가?]
[당신께선.......]
[그토록 당당한 진왕의 위세 앞에서도 나는 눈썹 한 번 깜박거리지
않았네. 어디 그뿐인가. 바로 진의 궁중에서 진왕을 꾸짖고 그의
신하들까지 욕보인 나일세. 그런 내가 그까짓 염 장군 정도를 무서워할
것이라고 생각하나?]
[그렇지만 피해 다니셨습니다.]
[한 가지 물어 보겠네. 그토록 강대한 진나라가 감히 조나라를 넘보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모르겠습니다.]
[그건 오직 우리 두 사람 때문일세. 인상여와 염파 말일세.]
[예에?]
[비유하자면 두 마리의 호랑이가 싸워 힘을 탕진해 버리면 어떻게 되나.
결국은 둘 다 살지 못하네. 내가 염파를 피하는 이유는 국가의 위급을 먼저
생각하고 사사로운 원수는 뒤로 미루었기 때문일세.]
[아아, 주인님!]
염파도 그 말을 전해 들었다. 가시 회초리를 지고 인상여의 문전에
이르러 웃통을 벗어 사죄해 아뢰었다.
[비천한 제가 상경의 그토록 깊은 뜻을 알았겠습니까. 몹시 꾸짖어
주십시오!]
그로 인해 두 사람의 우의는 통했다. 드디어 문경(刎頸)의 교(交: 목이
잘려도 회피하지 않을 정도의 막역한 사이)를 맺었다. 그 해에 염파는
동쪽으로 제나라를 쳐서 그 일군(一軍)을 격파했다. 2년이 지나 염파는
다시 제의 기(幾: 河南省 大名縣 남동)를 공략했다. 또 3년이 지나 염파는
위(魏)의 방릉(防陵).안양(安陽: 둘 다 河南省 安陽縣 부근)을 공격했고
제의 평읍(平邑: 河南省 南樂縣 부근)까지 평정하고 돌아왔다.
그 이듬해 조사(趙奢)가 진나라 군사를 알여(閼與) 부근에서 격파했다.
조사는 조나라 전조(田租)를 담당한 관리였다. 조세를 거둘 때 평원군의
집에서 조세 바칠 것을 거부했다. 조사는 단호했다. 평원군의 집사(執事)
9명을 의법 처단했다. 화가 난 평원군이 조사를 죽이려 했다. 조사는
겁내지 않고 대들었다.
[당신께선 조나라의 귀공자〔王族〕입니다. 지금 만약 당신의 조세를
묵인해 공무를 수행하지 않는다면 국법이 침해될 것입니다. 국법이
침해되면 국가가 약화됩니다. 국가가 약화되면 제후들이 침략해 옵니다.
제후가 침략하면 조나라가 멸망합니다.
그 때 가서는 당신이 재산을 아끼려 해도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당신같이
고귀한 신분이 공변된 의무를 수행함에 있어 법대로 행하면 상하가
공평하게 되고 상하가 공평해지면 국가가 강해집니다. 국가가 강해지면
조나라는 견고해집니다. 당신은 국왕의 일족입니다. 어찌 천하 제후들이
그런 당신을 가볍게 보겠습니까?]
평원군이 그를 현자라 생각했다. 평원군은 왕께 아뢰어 그를 등용하게
했다. 조사는 국가의 부세를 맡아 보게 되었고, 국가의 부세가 크게
공평하니 백성은 부유해졌고 국고는 충실해졌다. 그 즈음에 진나라가
한나라를 치려고 알여에 진주했다. 조왕이 염파를 불러 물었다.
[알여를 구원할 수 있겠소?]
[구하기 어렵습니다. 길이 멀고 험난한 데다 길목마저 좁기 때문입니다.]
조왕이 이번에는 악승을 불렀다. 그러자 악승도 염파의 대답과 똑같았다.
다음에는 조왕이 조사를 불러 물었다.
[비유해서 말씀드리자면 두 마리의 쥐가 작은 구멍 안에서 싸우는 것과
같습니다. 장군이 용감한 쪽이 이깁니다.]
[그 묘하다.]
조왕은 조사를 장군으로 삼아 버렸다. 알여를 구원하기 위해
한단(한鄲)을 떠나 30리쯤 왔을 때 조사는 군사를 멈추며 전군에 군령을
내렸다.
[지금부터 누구라도 군사(軍事)에 관하여 간하는 자가 있으면 목을
벤다.]
진나라 군사가 무안(武安: 한鄲 서쪽, 河南省 武安縣)의 서쪽에
주둔하면서 북을 치고 함성을 지르며 군사 배치를 하고 있었다. 그 소리는
엄청나서 지붕의 기왓장이 들썩거릴 지경이었다. 척후병 하나가 돌아와
보고했다.
[서둘러 무안을 구원해야 되겠습니다.]
조사는 두 말 않고 그 자리에서 척후병의 목을 베어 버렸다. 누벽을 더욱
견고히 쌓으며 28일 간이나 하는 일 없이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진나라
간첩이 들어왔다가 잡혔다. 그러나 그를 죽이지 않고 오히려 잘 대접한
후에 순순히 돌려 보냈다. 간첩이 돌아가서 조의 진중에서 겪은 일을
진장(秦將)에게 보고 하니 그도 몹시 기뻐했다.
[국도에서 간신히 30리정도 떨어져 나와 누벽이나 쌓고 앉았으니 조장은
바보가 아닌가. 알여는 이미 조 땅이 아니군.]
그러나 조사는 간첩을 돌려 보낸 즉시 갑옷을 벗어 놓고 모두
경장(輕裝)을 시켜서는 재빨리 진군해 들어가 알여에서 50리쯤 떨어진
곳에다 진을 쳤다. 군진(軍陣)은 완성되었다. 정예 궁수들을 따로 빼돌려
본진과 멀리 있게 했다. 부장(副將) 허력(許歷)이 조사의 막사 앞에서
군사(軍事)를 간하겠다고 청했다.
[들어오게.]
[진나라 군중에서는 우리가 갑자기 여기로 이동한 사실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알여를 급습하려는 진군의 속도가 결렬하고 빠를 듯합니다.
군세를 두텁게 하여 지켜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패합니다.]
[고맙네.]
[여기서는 북산(北山: 閼與 부근의 山)의 정상을 먼저 점거해 있는 자가
승리합니다. 틀림없이 진군도 도착 즉시 산정으로 오를 것입니다."
[자네는 어떻게 하는 게 좋겠나?]
[간했으니 저를 처형해 주십시오.]
[물론이지. 한단에서 명령을 기다리고 있게. 그러나 지금은 아니네.
1만의 군사를 더 줄 터이니 자네가 먼저 산정을 점령하고 있다가 진군이
오를 때 때려 부수게. 아마 지금쯤 궁수들이 먼저 도착해 있을 걸세.]
허력은 신바람이 나서 1만의 군사를 몰라 북산 꼭대기로 올라갔다.
조사의 군대가 알여에 도착한 지는 이틀 낮과 하루 밤밖에 되지 않았으므로
진군에서는 조군이 미리 와서 매복해 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허력의 말대로 진군은 북산 아래에 도착하자마자 허겁지겁
산정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허력이 거느린 군대가 삽시에 산정에서 무방비 상태의 진군을 맹공했고
도망치는 진군을 조사가 가로막아 대패시켰다. 진군은 크게 격파당해
패주했다. 알여의 포위가 풀림으로써 비로소 조사가 개선하자 조의
혜문왕은 조사에게 호를 내려 마복군(馬服君)으로 삼고 허력을 국위(國尉:
官名)로 삼았다.
조사는 이렇게 되어 염파.인상여와 지위가 같아졌다.
개선 직후에 허력이 조사에게 물은 적이 있다.
[전날 군사 문제에 대해 간했는데도 어째 저를 처형하지 않았습니까?]
[뻔히 목이 날아갈 줄 알고 간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래서
그대의 권고를 받아들였고 또 1만의 군사를 맡긴 것이다. 나는 승리할 줄
알았다.]
그 후 4년에 조의 혜문왕이 죽고 아들 효성왕(孝成王)이 섰다. 그 7년,
진군이 장평(長平)에서 조군과 대치했다. 이 때는 이미 조사는 죽고
인상여는 병이 위독했다. 그래서 조에서는 염파를 장군으로 삼아 진을 치게
했다.
조군은 자주 진군에게 격파당했다. 염파가 장군이 되면서는 진군이
공격해 오더라도 나가 싸우지 않고 누벽만 견고히 한 채 가만히 기다렸다.
진나라에서는 간첩을 풀어 조왕과 염파를 이간질했다.
[진군에서는 이제 늙은 염파 따위는 겁내지도 않습니다. 거 보십시오.
싸움을 겁내어 성문을 닫고 나오지도 않습니다. 실상 진나라에서 겁내고
있는 것은 마복군의 아들 조괄(趙括)이 염파 대신 장군이 되지 않나 하는
일입니다.]
조왕은 간첩의 말이 그럴 듯하다고 생각했다. 즉시 조괄을 염파 대신
장군으로 삼으려 했다. 그 때 인상여가 서둘러 나서서 간했다.
[안 됩니다. 왕께서는 지금 조괄의 명성만 듣고 장군으로 쓰시려 하는데
그것은 마치 거문고의 괘(괘: 줄의 기둥)를 아교로 붙여 놓고 거문고를
뜯는 것과 같습니다. 깨어지기 쉽상이지요. 조괄은 그저 자기 부친이 남긴
병법의 서전(書典)을 읽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전장에서의 임기 응변하는
조처는 도무지 모릅니다.]
그러나 조왕은 듣지 않고 조괄을 장군으로 삼고 말았다. 사실 조괄은
젊은 시절부터 병법을 익혀, 병사(兵事)를 논하는 일에는 자신을 당할 자가
없다고 생각했다. 일찍이 부친 조사와도 자주 병사를 논했다. 그 때에도
자신의 논리 정연함에 부친도 대꾸할 말을 잊은 듯했다. 그러나 조사는
아들에게 단 한 번도 옳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조괄이 모친의 남편
조사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어째서 당신은 아들의 변론에 꼬박꼬박 지면서도 한 번도 잘 한다는
말씀은 해 주지 않습니까?]
[모르는 말씀이오. 전쟁터란 목숨을 거는 장소요. 어찌 전쟁의 승패가
논리대로만 가겠소. 그런데도 아이는 병사(兵事)를 너무 쉽게 말하며
논리대로 결판이 날 것으로 믿고 있소. 부디 나라에서 조괄을 장군으로
삼지 말았으면 좋겠소. 만약 조나라가 파멸할 때 그 군대의 장군은 필시
괄이 될 것이오.]
조괄이 출진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그의 모친은 조왕에게 글을 올렸다.
- 괄을 장군으로 삼지 마십시오.
왕이 이상하게 생각하여 괄의 모친을 불러 물었다.
[무슨 까닭이라도 있소.]
[처음 제가 괄의 아비를 섬길 때 그분은 장군이었습니다. 몸소 음식을
받들어 식사를 올리는 자가 열 명이 넘었으며 벗으로 사귀는 자가 백을
넘었습니다.
대왕께서 혹은 왕실에서 상으로 내려 주신 물품들이 허다했으나 집으로는
한 가지도 가져다 들이지 않고 모두 군리(軍吏)와 사대부들에게 주어
버렸습니다. 출전을 명령받은 날에는 가사를 돌보기는 커녕 아예 집에는
들르지도 않고 곧바로 출정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아들 괄은 아비와 너무나 다릅니다. 장군이 되어 동면(東面:
上位者의 位置)하여 군리(軍吏)를 소집하여도 누구 한 사람 그의 말을
존경하여 우러러보는 자가 없습니다. 왕께서 내려 주신 금백(金帛)은
집으로 가져와 저장하고 이익이 될 만한 전택(田宅)은 잘 보아 두었다가
돈만 생기면 사들입니다. 아비와 자식의 생각이 그토록 틀립니다. 저의
생각도 괄은 장군의 인품이 못 됩니다.]
[어미는 이를 내버려 두오. 나는 이미 결정했소.]
그러자 괄의 모친은 다시 졸랐다.
[굳이 대왕께서 제 자식을 전장으로 보내시려면 저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 대신 만약 제 자식이 나중에 장군의 책임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더라도 저까지 그 죄에 연좌되지는 않도록 해 주십시오.]
[그건 약속하겠소.]
조괄은 염파를 대신해 장군이 되자 군령을 모두 바꾸고 군리(軍吏)들도
갈아 치웠다. 드디어 진군과 대치했다. 진의 장군 백기(白起)는 조괄이
장군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기병(奇兵: 기이한 꾀로 불시에 적을 습격하는 군대)을 놓아 조군을 마구
흔들었다. 패주하는 척하다가 다시 돌아와 조군의 양도(糧道)를 끊으니
조나라 군사는 둘로 차단되었다. 본진에서 양도가 잘라져 나갔으니 조군은
40여 일이 지나도록 양식을 구할 수가 없었다. 떨어져 나간 다른 쪽
군사들도 이미 조괄에게서 이반했는지 구원해 오기는커녕 모조리 도망쳐
버렸다.
굶어 죽든가 일전을 불사하든가 해야 했다. 드디어 조괄도 선두에 서서
포위망을 뚫으려 했으나 허사였다. 진군이 쏜 화살을 맞고 즉사했다. 남은
수십 만의 조군은 순순히 진군에 항복했다. 진군은 이들이 반역할까 두려워
땅을 파고 모조리 생매장했다. 조괄의 출병을 계기로 죽은 조나라 군사가
45만 명이었다.
이듬해 조나라는 진군에 의해 수도 한단까지 포위되었다. 한단은 철저히
포위되어 일 년이 넘도록 조왕은 탈출할 길이 없었다. 마침내 조나라는
초와 위의 구원군에 의해 한단의 포위를 풀 수가 있었다. 조나라로서는
처절한 패배였다. 조나라 장정들 거의가 죽었다. 조왕은 조괄의 모친과의
약속 때문에 그녀를 주살하지는 않았다.
한단의 포위가 풀린 지 5년 후였다. 연나라 율복(栗服)이 연왕에게
계략을 아ㄹ다.
[조나라 장정들은 장평 싸움에서 씨가 말라 그 고아들은 아직
어린아이들입니다. 이 때 조나라를 치면 쉽게 정벌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연에서는 군사를 일으켰다. 조나라에서는 다시 염파를 장군으로
삼았다. 염파가 출전하자 연군은 호(호)에서 크게 격퇴되었다. 율복마저
죽인 뒤 드디어 연나라마저 포위해 들어갔다.
연에서는 다급했다. 5개의 성시를 조에 할양해 주고 가까스로 강화할
수밖에 없었다. 조에서는 염파의 공로를 인정하고 위문(尉文: 邑名)의 땅을
봉한 뒤 신평군(信平君)으로 삼았으며 임시 상국(相國)에 있게 했다.
이보다 앞서서 염파가 장평에서 파면되어 권세를 잃고 돌아와 있을 때였다.
오래 된 식객들조차 하나씩 둘씩 떠나가 버렸다. 그런데 다시 장군으로
등용되자 떠났던 식객들이 다시 모여들었다. 화가 난 염파가 소리질렀다.
[신물이 난다. 식객들은 썩 물러가라!]
그랬더니 한 식객이 태연하게 말했다.
[아, 당신께선 어찌 그리도 세상 이치를 모르십니까. 천하 사람들이
시장으로 가는 골목으로 모여드는 건 당연하지 않습니까. 당신께서 권세가
있으니 당신을 따르고 권세를 잃으면 또 떠나갈 뿐입니다. 그런 인심에
원한을 품고 말고 할 것도 없습니다.]
6년이 지나고 조에서는 염파가 위나라 번양(繁陽)을 공격해 함락시켰다.
그 즈음에 조나라에서는 또 효성왕이 죽고 아들 도양왕(悼襄王)이 즉위해
염파를 장군에서 파직시키고 악승(樂乘)을 대신 장군에 임명했다.
분노한 염파는 악승을 습격했다. 역부족이었던 악승은 도망치고 말았다.
염파 또한 조나라에 머물 수가 없어 위나라 대량으로 달아났다.
조나라에서는 이듬해에 이목(李牧)을 장군으로 삼았다. 이목은 연의
무수(武遂: 河北省 徐水縣 서쪽).방성(方城: 河北省 固安縣 남동)을
공략했다.
염파는 오랫동안 대량에 살고 있었으나 위나라로선 염파를 신용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를 등용하지 않았다. 그 동안 조나라는 진나라의 침공을
자주 받아 몹시 시달림을 당하고 있었다.
조왕은 아무래도 염파를 다시 불러 오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조왕은 우선 사자를 시켜 염파의 근황을 살펴오게 했다. 지금도 장군으로
등용시킬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알아 오게 한 것이다. 그런데 염파의 원수
중에 곽개(郭開)라는 자가 있었다. 염파가 다시 중용되면 곽개로서는
큰일이었다. 그래서 염파를 염탐하러 가는 왕의 사자에게 많은 황금을 쥐어
주며 돌아와서 염파를 중상 모략하게 만들었다.
조의 사자는 위나라로 가서 염파를 만나 보았다. 염파는 사자가 무엇
때문에 자신을 엿보러 왔는지를 눈치챘다. 그래서 염파는 짐짓 한 끼 식사
때 한 말의 쌀밥과 열 근의 고기를 먹어 보였다. 또한 갑옷을 입고는 말을
달려 보였다.
[아직도 쓸 만하다.]
사자는 생각했다.
돌아와 왕께 보고했다.
[비록 몸은 늙었으나 식욕이 왕성했고 비호같이 말을 타고 달립니다.]
그렇지만 그 순간 곽개로부터 받은 뇌물 생각이 나서 얼른 말을
바꾸었다.
[하지만 그것은 과시해 보인 일에 불과했습니다. 저와 함께 앉아 있던
잠깐 사이에 세 번씩이나 변소에 다녀왔으니까요.]
[결국은 망령이 들었다는 얘긴가?]
조왕은 사자의 말에 염파를 부를 것을 포기했다. 초나라에서도 염파가
위나라에 있다는 소문을 듣고 사람을 보내어 그를 초청했다. 잠깐 초나라
장군에 임명되었지만, 의욕도 없었고, 의욕이 없으니 공로 역시 세울 일이
없었다. 그는 오로지 조나라에 대한 미련뿐이었는지 항상 이렇게
중얼거리곤 했다.
[나는 오직 조나라 군사를 부려 보고 싶다!]
염파는 더 이상 쓰여지지 못한 채, 끝내 수춘(壽春)에서 죽었다.
이목(李牧)은 북쪽 변방을 지키던 명장이다. 일찍이 대(代)의 안문(안門:
山西省 代縣 북서)에 거주하며 흉노에 대한 경비를 맡고 있었다. 형편에
따라 임의로 관리를 두어 시중의 조세를 거두어 막부(莫府: 將軍의 府署)로
운반해 놓고 사졸들의 비용으로 충당했다.
날마다 소를 몇 마리씩 잡아 병사들에게 먹이고 활쏘기와 말타기를
익히게 했다. 많은 간첩을 곳곳에 풀어 놓는 대신 적의 침입을 알리는 봉화
놓기는 가급적 삼가도록 했다. 그리고 병사들을 후대했다. 또한 이런
군령을 내려놓고 있었다.
[만일 흉노가 침입해 약탈하려거든 급히 가축과 가재들을 거두어 성내로
들어오도록 하라. 감히 흉노와 대적해 싸워 포로로 잡아 오든가 하는 자는
참형에 처한다.]
이목의 군령은 대체로 잘 지켜졌다. 이렇게 몇 년 지냈더니 역시 잃은
것이 없었다. 그러나 흉노들은 이목을 습격해도 소득이 없다 보니 은근히
심술이 났다. 이목을 싸움 못 하는 장군이라 욕했다.
심지어 변방 이목의 군사들조차 우리 장군은 겁쟁이라며 빈정거렸다.
그런 소문이 조왕의 귀에 들어가지 않을 리 만무했다. 이목을 꾸짖는
서찰이 도착했다. 그렇지만 이목의 망침은 변하지 않았다.
이목이 겁쟁이라는 비방이 끊임없이 이어지자 조왕도 참지 못하고 이목을
불러들인 뒤 다른 사람을 대신 변방의 장군으로 삼았다. 장군이 바뀌면서
흉노에 대한 대응 방침 역시 바뀌다 보니 조나라 군사는 일 년 내내 흉노가
쳐들어올 적마다 나가서 싸워야 했다.
그 결과 싸울 때마다 전투에 불리해질 경우가 많았으며, 가축과 가재를
잃어야 했고, 백성들은 농사를 지을 수도 목축을 할 수도 없었다. 변방
백성들의 새 장군에 대한 원성이 자자했다. 이목을 다시 보내 달라고
성화였다. 이를 눈치챈 이목은 병을 핑계삼아 문을 닫고 들어앉았다. 물론
벼슬도 사양했다. 조왕은 거의 강제로 이목을 재기용했다. 그 때 이목은
분명히 못박았다.
[설사 대왕께서 저를 재등용하시더라도 복무 방침에는 전연 변화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좋으시다면 현지로 부임하지요.]
[좋소. 그대로 하시오.]
이목은 다시 부임했다. 군령은 예전처럼 내려졌다. 흉노는 몇 해 동안 또
소득이 없었고 이목을 겁쟁이라고 투덜거렸으며, 백성들은 부유해졌고
막부의 창고는 그득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목은 밑의 부장 하나를 불러
물었다.
[요즘 우리 병사들의 사정은 어떤가?]
[모두 배불리 먹으며 활쏘기와 말달리기를 놀이처럼 즐기고 있습니다만,
전쟁이 없으니 상 받을 일이 없다면서 얼마만큼은 불평들을 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나를 겁쟁이라 부르고들 있겠지?]
[그 점 역시 전과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크게 한 번 전투를 벌여 보자.]
[예에?]
[군량미도 풍족하고 사기도 왕성하니 때가 된 것 같다.]
이목은 전과 달리 변화된 군령을 전격적으로 전군에 시달했다. 전차
1천3백 대를 가려 뽑았고 기마 1만 3천 필을 가려 뽑았다. 정예 용사 5만
명을 엄선하고 심만의 궁수들을 동원했다. 그런데 이목의 용병술은
특이했다. 들판에다 가축들을 크게 방목하고 백성들을 들판에 가득차게
했으며 전투 연습을 보란 듯이 요란스럽게 했다.
[다만 흉노가 침입하거든 조금씩 싸우면서 패하는 척 성내로 도망쳐라.
명령을 듣지 않는 자는 벤다.]
[그렇다면 전과 달라진 전술이라고는 조금씩 싸우다 패퇴하는 것밖에는
없지 않습니까.]
[목적은 선우(單于: 匈奴의 王)를 끌어 내는 데에 있다. 그 땐 실컷
싸워라.]
얼마 뒤 몇 천의 흉노가 침입했다. 병사들은 요란스런 군사 훈련을 하다
말고 얼마쯤 싸우다가 기겁을 한 것처럼 성내로 쫓겨 들어왔다. 조군의
소식은 곧장 선우의 귀로 들어갔다.
[우리를 치겠다며 그 자들이 전투 연습을 해? 이목이 겁쟁이란 소리는
듣기 싫었던 게지. 어쨌든 사정이 그렇다면 내가 몸소 나가 싸움에 응해
줄밖에.]
선우는 대군을 이끌고 이목의 성으로 쳐들어왔다. 그러나 이목은
이번에는 피하지 않았다. 진(陣)을 마치 새가 양날개를 편 것처럼 펼쳐
놓았다. 그것은 이목이 창안한 기진(奇陣: 奇兵의 陣營)이었다.
[적의 군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가까이 가지 마십시오.]
흉노 부장의 말에 선우는 발칵 화를 냈다.
[이목 따위가 무슨 신기한 군진(軍陣)을 펴겠는가. 전군이 한꺼번에
몰아쳐라!]
흉노군 수십 만이 함성을 지르며 몰아쳐 오는 앞에서 이목의 군사는
이상한 형태로 진세가 바뀌었다.
[엇! 조군이 눈앞에서 없어졌습니다!]
[아닙니다. 뒤쪽으로 나타났습니다!]
[엇! 옆에도!]
흉노들은 혼비 백산했다. 이 전투에서 흉노 10만여 기(騎)가 조군에게
몰살당했다. 조군은 여세를 몰아 담람(담襤: 匈奴의 國家名)을 멸하고
동호(東胡).임호(林胡: 모두 燕의 북쪽에 살며 남방을 위협하던 胡族)까지
격파해 항복시켰다.
선우는 멀찍이 도망쳐 버렸다. 그 뒤 10년 동안은 흉노가 감히 조나라
변경의 성시에 접근하지 못했다. 조의 도양왕 원년에 염파는 이미 위나라로
망명해 들어갔으므로 조에서는 이목을 시켜 연을 공격케 했고 무수.방성을
함락시켰다.
2년 뒤에는 조나라 장군 방훤(龐훤)이 연군을 끼쳤고 극신(劇辛: 본시 趙
사람이었으나 연을 섬겼다)을 죽였다. 7년 뒤에는 진군이 조나라로
쳐들어와 조장 호첩(扈輒)이 무수성(武遂城)에서 전사했다. 죽은 조군이
10만이었다.
조나라는 이목을 불러 내서 대장군으로 삼았다. 의안(宜安: 趙邑, 河北省
孤城縣 남서)세서 진군을 맞아 크게 깨뜨리고 진장 환의(桓의)를
패주시켰다. 조에서는 이목을 봉하여 무안군(武安君)으로 삼았다. 3년 뒤
진이 파오(파吾)를 공격해 오자 이목이 이를 격퇴했으며 한.위의 침공도
막아 냈다.
조왕 천(遷) 7년에 진나라가 장군 왕전을 시켜 조로 쳐들어왔다.
조에서는 이목.사마상(司馬尙) 등이 이를 잘 막아 냈다. 진왕은 공략이
쉽지 않자 조의 총신인 곽개를 많은 황금으로 은밀히 매수해 이목과
사마상이 모반하려 한다고 참언하게 했다.
이에 조왕은 참언을 듣고 조총(趙총) 및 제의 장수 안추(顔추)를 이목
등과 교체하려 했다.
- 중상모략입니다. 신은 듣지 않겠습니다.
이목이 왕명을 따르지 않자 곽개가 다시 참언했으며 이에 조정에서
사람을 보내 몰래 이목을 체포해 목베어 죽이고, 사마상은 파직시켰다. 그
후 3개월 만에 왕전이 갑자기 조나라를 공격해 들어왔다. 조총은 맞아
죽고, 조왕 천과 그의 장군 안추는 사로잡혔으며, 드디어 조나라는
멸망하고 말았다.
나 태사공은 이렇게 생각한다. 죽음을 각오하면 용기가 솟아오르는
법이다. 죽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게 아니라 어떤 경우에 죽어야 하는지
판단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인상여가 벽을 돌려 받아 진왕과 기둥을 번갈아 쏘아보며 그들을 꾸짖을
때의 형세는 오직 죽는 길밖에 없었다. 선비란 대체로 겁이 많고 감히
용기를 낼 줄도 모르지만 오로지 상여가 발분하자 그 위세는 적국을
뒤엎었다. 귀국 후에는 염파에게 양보의 미덕을 베품으로써 그의 명성은
태산보다 무거워졌다. 인상여야말로 지혜와 용기 두 가지를 동시에 지닌
인물이었다.
@
22. 전단열전 田單列傳
제(齊)나라 민왕이 수도 임치를 잃고 거(거)로 도주한 후 오직 전단만이
즉묵을 근거로 삼아 연(燕)의 대장 기겁을 패주시키고 드디어 제의 사직을
보존했다. 그래서 제22에 <전단열전>을 서술했다. <太史公自序>
전단(田單)은 제(齊)나라 전씨 일문(一門)의 한 사람이다. 민왕(민王)
시절 임치(臨淄: 齊都, 山東省)의 저잣거리를 담당하는 속관이었는데
이토록 이름이 알려지지는 않았다. 그 무렵 연(燕)나라는 악의(樂毅)를
시켜 제나라를 쳤는데 제의 민왕은 수도를 버리고 도망해 거성(거성)에
들어가 틀어박혔다.
그런 난리통에 전단은 안평(安平: 임치의 동쪽)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안평도 안심할 수가 없었다. 그 때 전단은 종족들에게 수레 축의 끝
부분에다 튼튼한 쇳소각을 대도록 권고했다. 부딪쳐도 깨어지지 않고
아무리 빨리 달려도 망가지지 않도록 하는 장치였다.
과연 얼마 있지 않아 연나라 군대가 안평까지 침략해 왔다. 성이
무너지자마자 제나라 사람들이 앞다투어 달리기 시작했는데 대부분 수레
축이 부서지고 바퀴가 빠지는 통에 연나라 군사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러나 오직 전단의 종족만이 무사히 그 곳을 벗어날 수 있었다. 수레 축을
쇠붙이로 감은 덕택이었다.
전단 일행은 즉묵(卽墨: 山東省)으로 들어갔다. 그 즈음에 연나라는
제나라 성 거의를 평정시켰지만 오직 거와 즉묵만은 함락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거성에는 제나라 왕이 숨어 있다고 들었기 때문에 연군의
공격은 집요했다. 그러나 초의 장군 요치(요齒: 齊로 보내 구원케 했으나
오히려 민왕을 죽여 연과 함께 제 땅을 분할하려 했음)가 제왕을 죽인 뒤
수비를 굳게 해 연군은 여러 해를 공격했으나 거성은 함락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즉묵이 먼저다!]
그래서 연군은 거성을 뒤로 하고 즉묵으로 몰려들었다. 한편 즉묵의
대부(大夫)는 연과 싸우다가 죽고 없었다. 그래서 즉묵성에는 성주가
없었다. 그 때 성 안의 어떤 사람이 전단을 추천했다.
[전단은 안평 싸움에서 우리들에게 쇠로 만든 수레 축을 권고해 생명을
건지게 해 주었소. 뿐만 아니라 그는 병법에도 능통한 사람이오. 그를
장군으로 추대합니다.]
그렇게 되어서 전단은 즉묵을 보루로 삼아 연에 대항하는 장군이 되었다.
얼마 후 연에서는 소왕(昭王)이 죽고 혜왕(惠王)이 섰다. 혜왕은 악의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전단이 그 소문을 들었다. 그는 즉시 간첩을 연나라로
보내어 말을 퍼뜨리게 했다.
[제왕은 이미 죽었고 함락되지 않은 성은 이제 둘뿐이다. 그런데도
악의는 귀국을 늦추고 있다. 제의 완전한 정복은 구실에 지나지 않으며
실은 남면(南面)하여 제나라 왕이 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제나라
사람들이 그에게 승복하지 않기 때문에 명목으로만 즉묵을 공격한다면서
다만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지금 제나라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혹시 다른 장군이 파견돼 즉묵이 쑥밭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것뿐이다.]
연왕이 그 소문을 들었다. 몹시 그럴 듯하다고 생각되었다. 즉시
기겁(騎겁)을 보내 악의와 교체해 버렸다. 악의는 조나라로 도망했다. 연의
병사들은 그런 식의 장군 경질에 몹시 분개했다.
한편 전단은 성중의 백성들에게 명을 내려 식사를 할 때마다 뜰에서
각자의 선조에게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 그렇게 하니 공중을 날던 새들이
성중으로 내려와 제사의 음식들을 먹어 치웠다.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도
백성들은 괴이쩍게 생각했다. 전단은 그런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신(神)이 지금 하늘에서 내리시는 중이다. 나에게 지금 무언가를 가르쳐
주시려 한다. 그는 나의 스승이다.]
그 때 성중의 한 사나이가 실없는 소리를 지껄였다.
[그렇다면 나도 스승이 될 수 있겠네.]
막상 그런 농담을 뱉었으날 상대가 장군인지라 놀라 도망쳐 버렸다.
전단은 뒤쫓아가서 그를 붙들었다.
[여보게, 자네 그 말 참 잘 했어. 저쪽으로 가서 스승 노릇을 하게나.]
[아닙니다, 장군님. 저 같은 게 무엇을 알겠습니까. 실없이 지껄인
소리니 용서해 주십시오.]
[아닐세. 자네는 입 꼭 다물고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되네.]
그래서 전단은 그를 데리고 가서 동쪽에 앉히고 스승 대우를 했다.
그리고 군령을 내릴 때마다 반드시 신사(神師)의 말씀이라고 선언하여 그의
권위를 높였고 그로 인해 병사들의 사기는 한층 더 높아졌다.
[그대들은 신군(神軍)이다.]
하루는 전단이 걱정스런 얼굴로 병사들에게 말했다.
[신사(神師)의 말씀인즉 연나라 군사가 사로잡은 우리 제나라 군사의
코를 베어 그들의 앞줄에 세우고 전진한다. 나는 그것이 걱정이다.]
연군도 그 말을 들었다. 그래서 연군은 항복한 제군의 코를 모조리
베어서 성 밑으로 가지고 왔다. 즉묵의 병사들은 그것을 보고 분노했고
또한 두려워했다.
[잡히기만 하면 코가 베인다.]
즉묵성은 그로부터 수비가 더욱 튼튼해졌다.
전단은 다시 말했다.
[신사의 말씀인즉 연나라 놈들이 우리 성 밖의 조상님 무덤을 파내어
욕보인다고 한다. 천인 공노할 인간들이다!]
한편 전단은 간첩을 풀어 저번처럼 무덤을 파서 시체를 불태우면
즉묵성은 무너질 것이라는 소문을 내도록 했다. 과연 연군들은 제나라
조상의 무덤에서 송장을 파내어 불을 지르고 야단법석이었다. 성 위에서
그런 짓거리를 바라보는 제나라 병사들은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저번보다 열 배는 더 분노하는 것 같았다.
[네놈들을 그냥 살려 둘 수 없다! 어서 나가 싸우자!]
전단은 이제야말로 나가 싸워도 승산이 있겠다고 판단했다. 전단은
병사들을 일단 다독거린 뒤, 몸소 나아가 널판과 삽을 등에 지고 사졸들과
함께 노동했다. 처첩을 대오(隊伍)에 편입시키고, 음식을 모두 풀어
사졸들을 배부르게 먹였다. 그러고 나자 전단은 말했다.
[자, 오늘부터 갑옷 입은 병사들은 한 사람도 성루에서 얼씬 말고 숨어
있거라. 그 대신 아이들과 노약자와 여인네들만 성루로 올라가거라.]
그런 시위를 한 뒤 전단은 사자를 보내어 연에게 항복할 것을 청했다.
한편으로 사자 한 명을 즉묵의 부호로 가장시켜 한밤을 타서 은밀히 연의
장군 막사로 찾아가게 했다.
[즉묵은 곧 항복할 것입니다. 저의 처첩이 지금 성 안에 있습니다. 여기
황금 1천 일(鎰)을 가지고 왔사오니 입성하시더라도 부디 우리 가족만은
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해 주십시오.]
연의 장군은 크게 기뻐했다. 즉묵은 반드시 항복하는 것으로 알았고 그로
인해 연군의 군기는 해이해질 대로 해이해졌다. 전단은 성중의 소 1천여
두를 모았다. 그리고 병사들을 모아 놓고 외쳤다.
[붉은 비단으로 소에게 옷을 해 입히고 그 위에 오색 빛깔로 용의 무늬를
칠하라. 소의 뿔에는 날카로운 단도를 매달고 그 꼬리에는 갈대 한
묶음씩을 매달아 기름을 부어라. 소의 꼬리에 불이 붙거든 그 뒤를 따라
우리 정예 5천 병사는 지쳐 나간다. 연군을 쳐부수고 삽시에 제나라 땅을
회복한다.]
밤이 되었다. 성벽에다 비밀 문을 뚫어 소 떼들을 밖으로 내몰았다.
꼬리에 불이 붙자 소 떼들은 연군의 진지 쪽으로 사정없이 달려 들어갔다.
휘황스런 횃불 아래 비춰지는 붉은 옷의 소 떼들은 분명코 괴물들이었다.
연군들은 대경실색했다. 피할 겨를도 없이 쇠뿔에 묶인 칼날에 찔리고
발굽에 밟히고 불에 타 죽었다. 아비 규환이었다.
5천의 정예병은 입에다 매(枚: 행군할 때 소리내지 않도록 입에 무는
나무토막)를 문 채 소리 없이 행군해 가면서 도망치는 연군을 닥치는 대로
해치웠다. 성루에서는 북과 동기(銅器)를 치고 고함을 질러 제나라
병사들을 성원했다. 연군은 대패했다. 혼란 중에 연의 장군 기겁이
주살되었다.
[자, 누구도 멈추지 말라!]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한 연군이 계속 패주하자 각 성읍의 제나라
사람들까지 합세하여 연군을 뒤쫓았다. 통과하는 성읍의 병사들이 모조리
전단 밑으로 귀복했다. 얼마 남지 않은 연나라 군사는 마침내 하상(河上:
齊의 北境)까지 쫓겨 나갔다.
마침내 잃었던 제나라 70여 성은 다시 제나라의 것이 되었다.
양왕(襄王)을 거 땅에서 맞이해 임치로 돌아왔다. 양왕은 전단을 봉하여
안평군(安平君)이라 불렀다.
나 태사공은 이렇게 생각한다. 전쟁이란 것은 정병(正兵)으로 적과
맞서서 싸우고 기병(奇兵)으로 적의 허를 찔러 승리하는 것이다. 기병을
내는 계책이 무궁무진한 자를 전쟁을 잘 하는 자라 하는 것이다.
기병과 정병을 교대로 사용하는 것은 도리옥〔環〕의 매듭이 없는 것과
같이 매끄러운 상태를 의미한다. 처녀처럼 처음에는 갸날프게 보이면 적이
문을 열어 놓아 방비를 소홀하게 하는데 그럴 때 그물을 벗어난 토끼처럼
재빠르고 맹렬하게 행동해 적이 방비할 틈을 주지 않는 것은 바로 전단의
경우라 할 수 있다.
당초 요치가 민왕을 죽였을 때 거 땅의 사람들이 민왕의 아들
법장(法章)을 찾았는데, 그 때 법장은 태사 교(太史 교)의 집에 숨어
있었다.
이 때 법장은 교의 집에 정원사로 고용되어 있었다. 그나마도 화초에 물
주는 일이 고작이었는데 교의 딸이 그를 가엾게 여겨 잘 대우해 주었다.
그러다가 둘은 사랑하게 되었는데, 거의 사람들이 법장을 찾아 제왕으로
세우자 태사 교의 딸은 갑자기 왕후가 되어 버렸다. 그녀가 바로
군왕후(君王后)다.
연나라가 처음 제나라로 쳐들어갔을 때 획읍(획邑: 臨淄의 서북,
山東省)에 왕촉(王촉)이라는 현인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군중(軍中)에 영을
내렸다.
[획읍을 중심으로 30리 이내에는 들어가는 일이 없도록 하라.]
그러고는 연나라 장군은 사람을 왕촉에게 보내어 달래었다.
[많은 제나라 사람들이 당신의 절의(節義)를 높게 평가하고 있소이다.
우리 장군께서 당신을 부장(部將)으로 삼고 만호(萬戶)의 봉토를 내리겠다
하는데 어떠시오?]
그러나 촉은 굳게 사양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충신은 두 인군을 섬기지 않으며 정숙한 여성은 두 남편을 섬기지
않습니다.]
[만일 당신이 연나라 장군의 말을 듣지 않으면 획읍을 쑥밭으로 만들겠다
하셨소.]
[제왕이 나의 간언을 듣지 않기에 나는 물러나와 들에서 밭이나 갈고
있습니다. 이제 나라가 깨끗해지고 나는 그것을 보전치 못했으니 살아
있어야 할 이유조차 없습니다. 그런 나에게 병력으로 위협하여 장군의
부장이 되라 하니 그것은 마치 포악한 걸왕을 도우라는 것과 같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살아 절의를 잃기보다는 삶겨 죽는 형벌로 절의를 지키는
것이 낫겠습니다.]
사람이 떠난 후 왕촉은 곧 나무에다 목을 매어 죽었다.
제나라로부터 도망쳤던 대부들이 그 소식을 듣고 탄식했다.
[무위 무관의 서민인 왕촉도 절의를 지켜 연나라에 벼슬하지 않았는데
하물며 관위에 있어 봉록을 먹는 자들이 이토록 무심할 수 있겠는가.]
이 때부터 서로 연락해 모여 거 땅으로 들어가서 왕의 아들 법장을 찾아
양왕으로 세웠던 것이다.
@
23. 노중련.추양열전 魯仲連.鄒陽列傳
교묘한 궤변으로 진군(秦軍)에게 포위된 한단(한鄲)성의 위기를
해소시키고 작위도 봉록도 마다하고 자유로운 생활을 마음껏 즐겼다.
그래서 제23에 <노중련.추양열전>을 서술했다. <太史公自序>
노중련(魯仲連)은 제나라 사람이다. 기발한 책략은 무척 좋아하면서도
벼슬할 생각은 도무지 없었고 차라리 높은 절의를 지키며 살기를 바랐다.
노중련이 조나라에서 노닐고 있었다.
조나라 효성왕 때였는데, 진왕이 백기를 시켜 조나라 장평(長平:
山西省)에서 40여만 명의 조군을 전사토록 했다. 진군은 여세를 몰아가서
동쪽 조나라 수도 한단을 포위했다. 조왕은 공포에 싸였다. 다른 제후들도
진이 두려워 구원군을 출동시키지 못했고, 위나라 안희왕이 장군
진비(晋鄙)를 시켜 조를 구원하게 했으나 역시 진군이 두려워 탕음(蕩陰:
河南省)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 때 위나라 왕이 객장군(客將軍: 他國出身의 將軍) 신원연(新垣衍)을
시켜 몰래 한단으로 들어가 평원군을 통해 조왕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하게 했다.
[진나라가 갑자기 조나라를 포위한 까닭이 있습니다. 전날 제나라 민왕과
서로 부강함을 다투어 제(帝)가 되려고 한 적이 있습니다. 결국 두 나라
모두 제(帝)의 칭호는 못 쓰게 되었지만, 전날의 제나라는 점점 쇠약해졌고
오직 진나라만 우뚝 강대한 존재가 된 마당에 필시 제 칭호가 다시 탐이 난
게 분명합니다. 진의 목적은 한단을 삼키려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
조나라에서 진의 소왕(昭王)에게 사자를 보내 제(帝)라 칭하기만 한다면
진왕은 기뻐서 반드시 군사를 돌릴 것입니다.]
평원군이 먼저 듣고 긴가민가하여 아직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을 때
현자 노중련이 지금 조나라에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평원군은 서둘러
노중련을 청해 들였다.
[신원연의 말대로 진을 제(帝)라 칭해야 옳을까요?]
[공께서는 지금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까?]
[승(勝: 平原君)이 어찌 감히 이 일에 대하여 말할 수 있겠습니까. 얼마
전에는 바깥에서 40만 대군을 잃은 데다 지금 또 안으로도 한단까지 포위된
상태이니 생각조차 혼미하여 그 어떤 판단도 서지 않습니다.]
[저는 당초에 공께서는 천하의 현명한 공자라 믿었는데 지금 만나 뵈니
전혀 그렇지가 못합니다. 우선 대량〔魏〕의 나그네 신원연이란 자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객사에 있습니다.]
[이리로 불러 오지요.]
얼마 뒤에 신원연은 방으로 들어와 소개가 채 끝나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
[제가 듣기로는 노중련 선생은 제나라의 고귀한 선비라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한 군주의 신하로 사신 임무만 지고 왔기 때문에 노 선생을
만나야 할 필요는 도무지 없지요.]
그 말을 들은 노중련은 반쯤 돌아앉아 대꾸가 없었다. 그러자 머쓱해진
신원연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처럼 포위된 성중에 있는 사람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모두가
평원군에게 무언가를 구하는 사람들뿐입니다. 그렇지만 노 선생의 풍모를
관찰해 본즉 노 선생만 평원군께 구하러 오지 않은 분인 듯합니다. 그런
처지에 선생께선 무슨 이유로 위험한 성중에 머물고 계십니까?]
그제서야 노중련이 입을 열었다.
[세상에서는 포초(鮑焦: 周代의 隱者, 濁世를 미워해 나무를 안고
죽었다)가 세상을 포용하면서 살지 않고 성급하게 죽었다고 생각하나
그것은 틀린 생각입니다. 혼탁한 세상을 바로잡으려는 그의 본심을 세상
사람들은 몰랐던 거지요.
나 역시 내 한 몸을 위해 죽을 생각은 도무지 없습니다. 지금 진나라는
예의를 버리고 적의 머리를 베어 오는 것을 가장 큰 공적으로 여기는
나라이며, 권모술수로 선비를 부려먹고 백성을 노예처럼 혹사시키는
나라입니다. 이런 진왕이 제멋대로 제(齊)가 되어 잘못된 정치를 천하에
편다면 저는 동해에 몸을 던져 죽겠습니다. 진왕의 백성이 되는 일은 참을
수가 없지요.]
[그렇다면 무슨 일로 저를 만나자고 하였습니까?]
[제가 장군을 뵙자 한 것은 조나라를 돕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식으로 조나라를 돕는단 말입니까?]
[위나라와 연나라로 하여금 조나라를 돕게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제나라와 초나라도 조를 돕게 되지요.]
[그런데 위나라라면 저의 나라인데, 그 사정을 알고 있기에 묻습니다만
위나라를 어떤 식으로 움직여 조나라를 돕습니까?]
[장군께선 위가 조를 돕지 못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견해로 말씀하시지만
그것은 진나라가 제(帝)로 칭했을 때의 화를 목격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시는 말씀일 뿐입니다.]
[당시에 어떤 화가 있었기에 그러십니까?]
[옛적 제나라 위왕(威王)은 인의(仁義)의 정치를 행하려고 천하 제후들을
이끌고 주(周)에 조회했습니다. 그러나 주 왕실이 빈곤한데다 쇠미했으므로
제나라말고는 아무도 참조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일 년쯤 뒤에 주의
열왕(烈王)이 붕어하자 제나라는 다른 제후들보다 늦게 문상하러 갔었지요.
그 때 주의 신왕(新王: 烈王의 太子, 安王)이 벌컥 화를 내어 제나라에
고하기를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슬픔을 당하여 천자인 내가
돗자리에 앉아 상을 치르고 있는데 일개 동쪽의 제후인 네가 이제서야
문상왔는가? 이것은 참죄에 해당한다'고 소리쳤습니다. 그러니 제나라
위왕인들 어찌 발끈하지 않겠습니까. '무엇이 어째! 종년의 자식놈
주제에!' 하고 되받아 쳤지요. 결국 천하의 웃음거리가 된 쪽은
누구이겠습니까.]
[무슨 뜻으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진나라가 제(帝)를 칭할 경우가 되면 제후들에 대한 요구는 주왕실의
그것보다 훨씬 심하고 아니꼬울 것이라는 얘깁니다.]
[선생께서는 저 하인들이 하는 일을 보지 않았습니까. 열 사람의 하인이
한 사람의 주인을 시중들고 있지요. 그것이 주인보다 힘이 없고 지혜가
없어서 주인을 모십니까. 다만 주인이 두렵기 때문에 시중드는 것입니다.]
[아아니, 그럼 위나라는 진나라의 하인입니까?]
[그런 입장이지요.]
[그렇다면 내가 진왕을 시켜 위왕을 삶아 젓을 담그게 하겠습니다.]
[너무 심하십니다!]
[옛날 구후(九侯).악후(악侯).주(周)의 문왕(文王)은 은(殷)
주왕(紂王)의 삼공(三公)이었습니다. 구후에게는 절색인 딸이 있어 그 딸을
주 임금에게 바쳤습니다. 그런데도 주왕은 추녀를 자기에게 바쳤다 하여
구후를 소금에 절여 죽였습니다.
악후가 그런 사실에 강력하게 항의하자 주왕은 또 악후를 포를 떠서
죽였습니다. 문왕 역시 이 소식을 듣고 길게 탄식했기 때문에 주왕은
문왕을 유리(유里: 河南省)의 한 창고 속에 백일 동안이나 가두어 죽여
버리려 했습니다. 동급의 제후 처지라면 모르되 진을 제(帝)로 칭하는
순간부터 위왕은 소금에 절여 죽고 포로 떠져 죽고 굶어 죽게 되는 처지에
빠진다는 얘기입니다.]
신원연은 대꾸를 못한 채 '끄응'하고 신음 소리를 냈다.
[제나라 민왕이 노(魯)나라로 갈 적〔天子 잠칭 時期〕에
이유자(夷維子)가 시중을 들었습니다. 그 때 이유자는 노나라 사람에게
'그대들은 어떤 예우로 우리 군주를 대접하려 하는가'하고 물었더니,
'우리는 십태뢰(十太牢: 10종류의 牛.羊.豕의 料理)를 차려서 당신의
인군을 대접할 작정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때 이유자는 다시 물었습니다. '그대는 어떤 전례(典禮)를 근거로
그런 대접을 하려는가? 우리 군주는 바로 천자(天子)가 아니신가? 천자가
순행하면 제후는 궁전을 천자에게 양보하고 성문과 창고 열쇠를 내놓고
옷깃을 여미며 상을 들고 다니며 당하(堂下)에서 음식맛을 보고 식사가
끝난 다음에는 물러가 조정에서 정사를 듣는 것이다'고 소리쳤지요.
노나라 사람은 그 말을 듣고 성문을 잠그고 가 버렸으므로 일행은
노나라로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할수 없이 민왕 일행은 설(薛: 小國名,
山東省) 땅으로 가기 위해 통로를 추(鄒: 小國名, 山東省)나라에서
빌리고자 했습니다.]
신원연은 여전히 불쾌한 표정이었지만 아직은 자리를 박차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 그 때에 추나라 왕이 죽었기 때문에 문상을 빙자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유자는 태자에게 이렇게 명령했지요. '천자가
조문하는 것이니 주인은 반드시 관을 등지고 북면(北面)해 앉도록 하여
천자가 남면(南面)해서 조문할 수 있도록 해야 하오' 그랬더니 추나라
군신들이 이구동성으로 '그와 같이 해야 한다면 차라리 우리가 칼로 배를
갈라 죽겠다'며 분노했지요.
결국 제나라 왕 일행은 추나라에도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추.노의
입장에서는 군주가 살아 있을 때 충분히 봉양하지 못하고 죽은 후에도
충분한 공양을 못 했으나 제나라가 천자의 예를 추.노에서 행하려 하자
그것만은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때쯤 신연원은 뜻모를 고개를 두어 번 끄덕거렸다.
[지금 진나라는 일만 대의 수레를 가진 제후국입니다. 위나라 역시 일만
대의 수레를 가진 나라입니다. 두 나라 모두 만승(萬乘)의 나라로서 각각
왕이라 칭하는 명예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진나라가 전투에서 한 번 싸워 이기는 것을 보고 즉시 진왕을
제(帝)로 섬기려 하니 이는 삼진(三晋: 韓.魏.趙, 여기서는 魏를 지칭)의
대신들이 오히려 노나라와 추나라의 노복들보다 못하다고 말하겠습니다.
게다가 진나라가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제를 칭하게 되면 제후국들의
대신들을 제멋대로 갈아 치울 것입니다.
즉 불초하다 인정되는 자의 지위를 빼앗아 현명하다 생각되는 자에게
주고 미워하는 자의 자리를 탈취해 사랑하는 자에게 줄 것입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자기들의 자녀와 처첩들을 제후의 비.희(妃.姬)로 삼게
하여 위나라 궁전에 살게 할 것이니 이쯤되면 위왕이 어떻게 편안히 지낼
수가 있겠습니까.]
그 때 신연원이 자리를 고쳐 잡으며 노중련에게 재배했다.
[처음에 저는 선생을 범용한 사람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알고
보니 천하의 훌륭한 선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곳을
나서는 순간부터 다시는 진왕을 제(帝)로 칭하자는 말을 않겠습니다.]
진나라 장군은 이런 소문을 듣고 군대를 50리 밖으로 퇴각시켰다. 또한
다행히도 위나라 공자 무기(無忌)가 진비의 군사를 탈취해 조나라를
구원하고 진나라 군대를 공격했다.
이쯤 되자 진군은 군사를 이끌고 퇴각하고 말았다. 그 때 평원군이
노중련을 봉하고자 했으나 한사코 사양했으며 사자를 세 번이나 보냈지만
역시 받으려 하지 않았다. 그 대신 평원군은 주연을 베풀어 노중련을
위로했다. 술이 거나해지자 평원군은 천금을 가지고 노중련 앞으로 가서
장수를 축복하고자 했다.
노중련은 웃으면서 말했다.
[천하의 선비가 귀한 존재로 불려지는 것은 남을 위해 우환을 물리치고
분쟁을 풀어 주며 근심을 해결해 주고도 보상을 받지 않는 까닭입니다.
만일 보상을 받는다면 선비도 장사꾼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지요.]
평원군과 작별하고 길을 떠난 이후로 노중련은 종신토록 다시는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로부터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연나라 장군이
요성(요城: 齊邑, 山東省)을 점령했다. 그런데 요성의 어떤 자가 장군을
참소했는데 장군은 주살될 것이 두려워 감히 귀국하지 못하고 요성을 굳게
지켰다. 제나라 전단(田單)이 일 년 이상이나 요성을 공격했으나 사졸만
많이 죽인 채 요성은 함락되지 않았다.
그 때 노중련이 편지를 만들어 화살에 묶어 성 안으로 쏘아 넣었다.
연의 장군이 그것을 펴 보았다.
- 저는 '지혜로운 사람은 때를 거슬러 행동해 이로움을 버리지 않으며,
용사는 죽음을 회피하여 명예를 더럽히지 않으며, 충신은 자신을 앞세워
군주를 뒤로 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공께서는 일시적인 분노 때문에 연왕의 수하에 훌륭한 신하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돌아가지 않으니 이것은 군주에 대한 충성이
아니며, 자신은 요성을 잃고 죽음을 당하고도 제나라에 위신이 서지 않을
것이니 이것은 용기라 할 수가 없으며, 쌓았던 공은 허물어지고 명성은
사라져 후세에 공을 칭송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니 이는 지혜로운 사람이 할
일이 아닙니다.
지금 말한 세 가지에 해당하는 자는 우선 군주가 신하로 삼지 않으며,
유세하는 선비는 그 이름을 입에 담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자는
과단성 있게 행동하고 용사는 죽음을 겁내지 않습니다. 지금이야말로
귀공께서는 삶과 죽음.영광과 오욕.부귀와 빈천.존귀와 비천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두 번 다시 이런 기회는 오지 않습니다. 부디 잘 살피셔서
세속의 사람들과 같은 처신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대체 이런 서신을 보낸 자가 누구냐?]
- 지금 초나라는 제나라 남양(南陽: 秦山의 남쪽)을 공격하고 위나라는
평육(平陸: 齊 西境의 邑, 山東省)을 공격하고 있으나 실상 제나라는
남쪽으로 향해 이들과 땅을 다툴 생각은 없습니다. 그들은 남양을 잃을
때의 손해는 그다지 크지 않고 요성을 포함한 제북(濟北: 濟水 북쪽)을
얻을 때의 큰 이익을 생각하기 때문에 세밀한 계략으로 대처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진나라에서 군대를 파견해 제나라를 구원하고 있으므로 위나라는
감히 동쪽을 향해 제나라를 공격하지 못하고 있으며, 제나라와 진나라가
연횡하고 있는 형편이므로 초나라의 형세는 몹시 위태로운 상태가 됩니다.
제나라는 남양을 버리고 평육을 단념하는 한이 있더라도 제수 이북의
요성만은 반드시 차지하려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나라가 요성에서
결판을 내리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무어라고?]
- 한편 지금은 초.위의 군사가 제나라에서 퇴각하고 있으며 연나라의
구원군도 오지 않습니다. 천하의 어떤 나라도 제나라를 위협하지 않는
상황에서 제나라 전군이 공격하는 마당에 한 해 동안이나 시달린 요성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게다가 지금 연나라는 큰 혼란 속에서 군주와 신하가 어쩔 바를
몰라하며, 상하 모두가 미혹에 빠져 있습니다. 그대의 연나라 장수 율복은
십만 대군을 가지고도 다섯 번이나 외국에서 참패했으며, 만승의
나라이면서도 조나라에 포위당해 국토는 깎이고 군주는 곤액을 당하여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이리하여 나라는 피폐해지고 재앙은
많은 까닭에 백성들은 마음 둘 곳이 없어졌습니다.
[그럴 듯한 지적이긴 하나.......]
- 사실은 지금 귀공께서 피폐한 요성의 보잘것 없는 병력을 이끌고
제나라 전 병력과 대항하고 있으니 이는 묵적(墨翟: 宋나라를 위해 楚의
强軍을 막았음)의 수비에 비길 만 하겠으며, 인육을 먹고 사람 뼈를 연료로
하면서도 사졸들이 배반할 마음을 먹지 않게 하고 있으니 이것은 손빈의
용병에 비길 만큼 훌륭한 것입니다.
이로 인해 지금 귀공의 능력은 천하에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귀공께 말씀드립니다만 전차와 무장병을 온전하게 거두어
연나라로 돌아가는 것만 못합니다. 공께서 복명해 가면 연왕은 몹시 기뻐할
것입니다. 귀공이 온전한 몸으로 귀국해 가면 사졸과 백성들이 부모를 만난
것처럼 기뻐할 것이며 공의 벗들도 팔을 흔들며 귀공의 업적을 세상에
호소하려 들 것입니다.
그리하여 위로는 외로운 군주를 보필하여 뭇신하를 제어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을 보살피고 유세하는 선비들을 개량하면 그대의 공명은 천하에
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일리 있는 말이긴 하나 믿을 수가 없다.]
- 그래도 의심하여 연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으시면 세상을 피해 동쪽의
제나라로 가 보시지요. 제나라는 땅을 갈라 귀공의 봉지를 정해 줄 것이며
그 부유함은 도(陶)의 주공(朱公: 范려)이나 위(衛)의 공자 형(荊: 둘 다
巨富로 有名)과 비길 만하고 귀공의 자손은 대대로 고(孤: 제후의 자칭)라
칭하면서 제나라와 함께 오래 존영하게 될 것입니다. 이상의 두 가지 계책
모두 이름을 나타내며 실리를 두텁게 하는 방법입니다. 원컨대 귀공께서는
심사 숙고하여 하나를 선택하십시오.
[제나라로 간다......?]
- 나는 또 '작은 절개에 구애되는 자는 큰 영예를 성취할 수 없고 작은
치욕을 미워하는 자는 큰 공을 세울 수 없다'고 들었습니다. 옛날
관이오(管夷吾: 管仲)는 환공(桓公)에게 화살을 쏘아 허리띠의 쇠고리를
맞추었으니 이는 반역의 죄이며, 공자 규(糾)를 버려 두고 자신은 죽지
못했으니 이는 비겁한 행위이며, 포승에 묶이고 차꼬를 차고 게다가
수갑까지 찼으니 이것은 치욕스런 일입니다.
이 같은 세 가지 행위를 한 자는 세상의 군주가 신하로 삼지 않으며
향리에서도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지난날 관중이 옥에 갇힌 채
나오지 못하고 옥사하여 제나라로 돌아오지 못했다면 치욕에 찬 인간의
행위였다는 오명을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노비라 할지라도 이같은 오명을
쓰게 되면 부끄러워할 것이어늘 하물며 보통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그러니 관중은 옥중에 묶여 있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천하가 잘
다스려지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했으며, 공자 규를 위해 죽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제나라의 위엄이 제후들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세 가지 행위의 과실을 범하고서도
환공을 오패의 첫번 째 인물로 만들었고 그의 명성은 천하에 드높았으며 그
빛은 이웃 나라에까지 환히 빛났습니다.
조말(曹沫)은 노(魯)나라 장군이 되어 세 번 제나라와 싸워 세 번 모두
패하고 잃어버린 노나라 영토가 5백 리 였습니다. 만약 조말이 뒷날을
도모하지 않고 제 목을 찔러 죽어 버리고 말았다면 패전하여 사로잡힌
장군이라는 오명을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말은 세 번 패한 치욕을 참고 다시 노나라 군주와 뒷일을
도모했습니다. 그래서 제의 환공이 천하 제후를 소집하여 회맹했을 때,
조말은 단검 한 자루의 힘만 믿고 단상으로 올라 환공의 가슴을 겨누면서
그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목소리 역시 전혀 떨리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단숨에 세 번 싸워 잃은 영토를 하루 아침에 회복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천하를 진동시키고 제후들을 경악케
했으며 그의 위엄은 오나라와 월나라에까지 당당했습니다.
[결국 연나라로 돌아가야겠구나.]
- 이와 같이 예를 든 두 선비는 작은 치욕을 부끄러워하고 작은 절의를
행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자기의 몸을 죽이면 후세가 없어지고 공명을
세울 수가 없으니 이는 지혜로운 행동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분하고 원통한 감정을 버리고 영원히 빛나는 명예를 세웠으며
분노와 감정에 사로잡힌 작은 절개를 버리고 만대에 미치는 공업을 세웠던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그들의 업적은 삼왕(三王)과 함께 길이 전하고 그
명성은 천자와 함께 무궁한 것입니다. 그러니 공께서는 두 가지 길 중
하나를 택하여 꼭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그의 변설은 나를 새로이 눈뜨게 하는구나!]
연의 장군은 노중련의 서신을 받아 읽으며 사흘 동안이나 울면서
갈등으로 밤낮을 지샜다. 그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연나라로 귀국하려니
이미 연왕과의 사이에 벌어진 틈을 메울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다. 제나라에
항복할 생각을 해 보니 벌써 죽여 없앤 제나라 사람이 너무 많아 환영받을
길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탄식했다.
[그럴 것이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칼질하느니 차라리 내가 내 자신에게
칼질하겠다!]
그는 자살했다.
요성은 갑자기 혼란에 빠졌다.
마침내 전단은 요성을 함락시킬 수가 있었다.
전단은 개선하여 제나라 왕에게 노중련의 업적을 소상히 보고했다.
그래서 제왕은 노중련에게 벼슬을 내리고자 했다. 그러자 노중련은
바닷가로 도망가 숨어 살았다.
[내가 부귀한 몸이 되어 남한테 굴욕스럽게 매여 살기보다는 차라리
빈천한 몸으로 세상을 향해 농지거리나 하면서 자유롭게 살겠다.]
추양(鄒陽)은 제나라 사람이다. 위나라 양(梁) 땅에 노닐면서 원래
오(吳)나라 사람인 장기부자(莊忌夫子: 莊은 姓, 忌는 名, 夫子는 字)와
회음(淮陰)땅의 매승(枚乘: 혹은 枚生)의 무리 등과 교제했다.
또 양승(羊勝)과 공손궤(公孫詭) 등과도 왕래했다. 그런데 양승 등이
추양의 재능을 질투하여 위의 효왕(孝王)에게 중상했다. 대로한 효왕이
그를 옥리에게 넘겨 장차 죽이고자 했다.
추양은 타국에서 나그네로 돌아다니다가 비록 중상으로 갇혔지만 분명히
죄인이라는 악명을 남기고 죽게 되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옥중에서 위나라
왕에게 상서한 것이다.
- 제가 듣기로는 '충성된 자는 군주에게서 보상받지 않는 법이 없고,
신의를 지키는 자는 남에게서 의심받는 법이 없다'고 했기에 저 역시 항상
그런 인물임을 자처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말은 거짓말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 자가 또 무슨 변명을 하려는 건가.]
- 옛날 형가(荊軻)가 연나라 태자 단(丹)의 의로움을 사모하여 단을 위해
진왕(秦王) 정(政)을 찔러 죽이려고 결심했을 때 그 정성은 하늘을 감동케
하여 흰 무지개〔武器를 상징〕가 해〔君主를 상징〕를 꿰뚫었는데도 태자
단은 형가가 가기 싫어서 미적거리는가 하고 의심했습니다.
위 선생(衛先生)이 진(秦)을 위하여 조나라 장평(長平: 山西省)의 승리를
틈타 아예 조나라를 없앨 묘책을 꾀했을 때 하늘은 역시 그 정성에
감동하여 태백성(太白星: 金星, 將軍을 상징함)이 묘성(昴星: 天文區分上
趙에 해당함)을 침범했으나 진의 소왕(昭王)은 아직도 위 선생을
의심했습니다.
형가와 위 선생의 정성은 천지를 움직이는 이변을 나타냈는데도 두
군주는 그들의 성실함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저는 충성을 다하고 논의(論議)를 다하여 대왕께서 저를 이해해
주시기를 원했습니다만 대왕 좌우의 신하들이 밝지 못해 끝내 저는
세상에서 의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형가나 위 선생이 다시
태어난다 하더라도 단과 소왕은 그들 사정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과인을 설득시키려는 건가? 어디.......]
- 옛날 변화(卞和)가 초왕에게 보물을 바쳤지만 다리를 잘렸고,
이사(李斯)가 호해(胡亥: 秦의 二世皇帝)한테 충성을 다했는데도 그는
극형을 받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기자(箕子)는 미친 척했고, 초의
접여(接與)는 세상을 피했으니, 이 모두 저런 환난을 맞을까 두려워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변화와 이사의 심정을 깊이 통찰하시고 초왕.호해처럼
중상하는 말을 듣지 마시어 제가 기자나 접여의 비웃음을 받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저는 '비간(比干)은 은의 주왕한테 심장을 해부당하고 오자서는
오왕 부차한테 말가죽 자루에 시체가 담겨져서 양자강에 던져졌다'고
들었습니다만 처음에는 그것을 믿지 않았으나 지금은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통찰하시어 조금은 저를 불쌍하게
여겨 주십시오.
[불쌍하게 여겨 달라고?]
- 속담에 '백발이 되도록 사귀었어도 새로 사귄 사람 같은 우정이 있고,
길거리에서 만나 수레를 잠깐 세워 놓고 얘기를 나눈 사람도 옛 친구처럼
깊은 우정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상대방의 마음을
아느냐 모르느냐의 차이에서 온 것입니다.
옛날 번오기(樊於期)는 진에서 도망하여 연으로 갔습니다만 자기 머리를
형가에게 주어 태자 단이 진왕을 죽이려던 계획을 수행하도록 했고
왕사(王奢)는 제나라를 따라 위나라로 갔습니다만 성에 올라 자살함으로써
제나라를 퇴각시키고 위나라를 보존케 하였던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왕사와 번오기는 제와 진과 새로운 관계도 아니며 연과 위와도 오랜 인연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두 나라〔秦.齊〕를 떠나 두 인군〔太子母.魏王〕을 위해 죽은 이유는 두
인군의 행위가 두 사람의 뜻에 맞았고 그 의(義)를 사모함이 무한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소진(蘇秦)은 온 천하에 대하여 신의는 없었지만
연나라를 위하여 미생(尾生: 愛人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홍수가 났는데도
다리기둥을 붙들고 그 장소에서 죽었다는 중국의 전설적인 인물)과 같은
신의를 지켰으며, 백규(白圭)는 중산국의 장군으로 6개의 성읍을 잃은
패장이 되자 왕이 그를 죽이려 했으므로 위나라 문후(文侯)에게로 도망가
문후의 후대에 느끼는 바가 있어 위나라를 위해 중산국을 쳤습니다.
왜냐하면 참마음이 서로 통했기 때문입니다. 소진이 연의 재상이 되었을
때 연나라 사람 중에 소진을 중상하는 자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연왕은
오히려 칼을 잡고 비방한 자를 꾸짖고 소진을 더욱 후대하여 결제(결제:
名馬名)의 고기를 소진에게 상으로 내렸습니다. 백규가 중산을 공격해
존귀하게 되자 역시 중산인이 백규를 위의 문후에게 비방했습니다.
그렇지만 문후는 오히려 백규를 후대하여 야광의 보물 구슬을
주었습니다. 왜 그렇게 했겠습니까. 두 군주와 두 신하는 심장을 터놓고
간을 꺼내 놓아도 좋을 정도로 서로 신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쯤이면
근거 없이 떠도는 말에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여인은
미녀이든 추녀이든 상관없이 궁중에 들어가기만 하면 질투를 받게 마련이고
선비라면 현자이든 우자이든 조정에 들어가기만 하면 질투를 받게
마련입니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 옛날 사마희(司馬喜)는 다리 잘리는 형벌을 송나라에서 받았지만
중산국으로 가서는 재상이 됐습니다. 범수는 위나라에서 갈비가 부러지고
이빨이 꺾이는 형벌을 받았지만 드디어 진에서는 응후(應侯)가 되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처음에 그렇게는 되지 않으리라는 형세의 계획을 믿고
붕당(朋黨) 간의 사정(私情)을 버리고 고독하게 자신의 위치를 고수했기
때문에 질투하는 사람들의 해를 면할 수갈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은(殷)의 신도적(申徒狄)은 주군을 간하다가 들어 주지 않자
자진해서 황하에 잠기고 주(周)의 서연(徐衍)은 난세를 미워해 돌을 지고
바다로 들어갔습니다. 곧 세상에서 용납되지 못하더라도 정의를 지켜
조정에서 도당을 만들어 주군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또 백리해는 길에서 걸식을 하고 있었으나 진의 목공(목公)은 그에게
정권을 맡겼으며, 영척(영戚)은 수레 밑에서 소를 치고 있었으나 제의
환공은 그에게 국정을 맡겼습니다. 이들 두 사람은 처음부터 조정의 관직에
있으면서 주위 사람들의 칭찬을 받아 높이 등용된 것은 아닙니다. 오로지
마음으로 교감되고 행동이 서로 부합되어 아교나 옷〔漆〕보다 더 친밀해
형제라도 그들 사이를 떼어 놓을 수가 없었던 것이니, 어찌 중인의 말
따위에 미혹되었겠습니까.
무릇 한 쪽의 말만 들으면 부정이 생기고 한 사람만 신임하면 난(亂)이
일어납니다. 옛날 노나라는 계손(季孫)씨의 말만 듣고 공자(孔子)를
축출하였고 송에서는 자한(子罕)의 계략만 믿고 묵적(墨翟)을 옥에
가두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공자나 묵적 같은 변설을 가지고도 참소나
아첨을 면할 수가 없어 노나라 송나라는 위태로워졌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부질없는 소리는 쇠를 녹이고 쌓이고 쌓인 중상 모략은 뼈를 녹게
만듭니다.
[그럴 듯하다!]
- 진나라는 서쪽 오랑캐 유여(由余)를 등용해 중국을 제패하였고
제나라는 월(越)의 몽(蒙)을 기용해 위왕(威王).선왕(宣王) 때의 강성함을
이룩했습니다. 이 두 나라가 풍속에 구애받고 세정에 이끌리며 편파적인
말의 속박을 받았겠습니까.
오직 공정하게 의견을 수렴하고 냉정하게 관찰함으로써 당대에 이름을
드날리던 군주였습니다. 그러니 의기가 투합되면 호족이나 오랑캐
사람이라도 형제가 됩니다. 유여나 몽이 바로 그렇습니다. 의기 투합이
되지 않으면 골육간이라도 축출하고 쓰지 않으니 요(堯) 임금의 아들
단주(丹朱), 순(舜) 임금의 아우 상(象), 주공단(周公旦)의 아우
관숙선(管叔鮮).관숙도(管叔度)가 바로 그렇습니다.
군주들이 참으로 제나라 진나라처럼 의로운 방법을 쓰고 송나라
노나라처럼 편파적인 시책을 물리친다면 오패(五覇)도 칭찬할 것이 못될
만큼 삼왕(三王)의 공업이란 것도 쉽사리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주나라 무왕은 깨달은 바가 있어 연나라 자지(子之) 같은 간신을
신임할 마음을 가지지 않았으며 제나라 전상(田常) 같은 간신의 현명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은의 충신 비간의 후손을 봉(封)해 주고 은의 주왕이 배를 갈랐던
임산부의 무덤에 묘비를 세웠습니다. 그럼으로 그의 공적은 천하에
떨쳐졌는데 바로 선행을 갈망하는 마음이 끝이 없었다는 뜻이 됩니다. 또
진(晋)의 문공(文公)은 그의 원수였던 발제(勃제)와 친근하여 제후 중에서
패자가 되고 제의 환공은 그의 원수 관중을 등용하여 천하를 크게
바로잡았습니다.
그것은 두 인군이 참마음으로 원수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런 공업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마음에도 없는 민말로 그들을 받아들였다면 그들의
심정을 바꿔 놓을 수는 없었겠지요.
[과인이 추양을 오해했는지도 모르겠다.]
- 그런데 진에서는 상앙(商앙)의 법을 채용해 동쪽으로 한.위를
약화시키는 등 그 군대의 강하기가 천하 제일이었으나 상앙은 끝내
거열형(車裂刑)에 처해졌습니다. 월나라는 대부 종(大夫 種)의 계략을 써서
강적인 오왕을 사로잡아 대륙을 제패했으나 끝내 대부 종은
주살되었습니다.
그래서 초나라의 손숙오(孫叔敖)는 세 번 재상의 지위에서 물러나면서도
후회하지 않았으며 오릉(오陵, 楚地, 山東省)의 자중(子仲)은 삼공의
자리를 사양해 남의 채소밭에 물 주는 일을 하면서도 흡족해했습니다. 지금
만일 인군이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공 있는 사람에게 보답할 뜻을 품고
있으며, 마음을 털어 놓아 진정을 보이며, 자기를 희생하여 후덕을 베풀고,
끝내 남과 함께 곤궁하고 혹은 영달하며, 선비를 아낌없이 후대하면,
포악한 걸왕의 개라도 성왕인 요 임금을 보고 짖게 할 수 있으며,
도척(盜척)의 자객이라도 성인 허유를 살해하게 할 수가 있으니, 하물며
만승 천자의 권력을 가진 성왕의 경우에야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그러니 형가(荊軻)가 연을 위하여 진왕을 죽이려다 실패해 그의
칠족(七族: 위로 曾祖에서 아래로 曾孫까지)이 몰살한 경우나, 오왕 합려가
왕자 경기(慶忌)를 죽이려 할 때 신하 요리(要離)가 왕자를 죽이기 위한
수단으로 자기 처자를 오왕이 태워 죽이게 한 일들은 대왕을 위하여 거론할
것도 못됩니다.
[그러나 과인을 가르치고자 하는 자를 용서해도 되는 것인가.]
- 저는 '명월주(明月珠)나 야광벽(夜光璧) 같은 보석이 갑자기 자기 앞에
떨어지면 칼을 뽑아 들고 어둠을 노려본다고 합니다. 이유는 누군가가
자신을 시험해 보지 않나 하는 적개심 때문이랍니다.
구불구불 뒤틀린 나무 뿌리라도 만승 천자의 장식품이 되는 이유는 좌우
신하들이 그것에 조각을 하고 아름답게 갈고 닦기 때문이다.'라고 듣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수후(隨侯)의 주(珠: 隨侯가 뱀한테서 얻었다는 珠)
같은 보석을 얻었다 하더라도 원한은 맺을지언정 고맙다는 생각은 갖지
않습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재능과 인품을 미리 잘 소개하고 선전해 두면 썩은
나무 뿌리도 값진 물건이 되듯이 그 인상도 달라집니다. 그런데 어떤
곤궁한 선비가 가슴에 요.순의 정도(政道)를 품고 이윤(伊尹)과 관중의
변설을 가지고 용봉(龍逢: 夏의 忠臣)이나 비간(比干: 殷의 忠臣)의 뜻을
품고 군주에게 충성을 다하려 해도 나무 뿌리를 조각해 군주에게 바치는
자처럼 추천하는 자가 없으니 결국 대왕께서도 저를 보시고 느닷없이 앞에
던져진 보석을 보듯 칼을 잡고 노려보실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고로 성왕이 천하를 다스리려면 도공(陶工)이 녹로(녹로)를 굴려
뜻대로 그릇을 만들어 내듯이 마음대로 세속을 제어해야 하며 비속하고
문란한 말에 현혹되지 말아야 하며 대중의 부질없는 소리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아야 합니다.
진의 시황제가 중서자(中庶子: 官名) 몽가(蒙嘉)의 말을 믿었다가 형가의
비수에 찔릴 뻔했습니다. 주의 문왕은 위수.경수 가로 사냥을 나갔다가
우연히 태공망 여상을 얻어 그 힘으로 천하의 패자가 되었습니다. 시황제는
좌우 신하의 말만 믿었다가 죽을 뻔했으며 문왕은 직감적으로 여상을
등용하여 마침내 왕업을 이룩하였습니다.
[추양 자신이 인재라는 얘긴가?]
- 지금 주군께서는 아첨하는 언사에 탐닉되고 좌우의 신하에 견제되어 큰
뜻을 가진 선비를 마소처럼 대우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포초(鮑초)가
분노하여 부귀의 즐거움을 마다했던 이유가 됩니다. 신이 듣건대, '의관을
정제하고 조정에 들어간 사람은 이욕(利慾) 때문에 의로움을 더럽히지
않으며, 명예를 갈고 닦는 사람은 욕심 때문에 행실을 그르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 까닭에 증자(曾子: 曾參)는 승모(勝母: 모친을 이긴다는 뜻)라는
이름의 고을에는 발을 들여 놓지 않았으며, 또 마을 이름이 조가(朝歌:
殷의 紂王이 만든 淫樂名)라 하여 묵자(墨子: 墨翟)는 수레를 돌려 가
버렸습니다.
지금 식견이 풍부하고 원대한 포부를 지닌 인사들을 천하에서는 무거운
권력앞에 꿇어 엎드리게 하고 아첨 좋아하는 좌우의 권신들이 군주의
근처에도 갈 수 없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형편이 된다면 선비들은
암혈(岩穴) 속에서 묻혀 살다 죽을 수밖에 없으며 즐겨 충성을 바치려고
궁중으로 가는 발걸음은 끊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 글을 상주한 추양을 어디 불러 보아라.]
그래서 추앙은 옥중에서 방면되었으며 마침내 효왕의 상객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벼슬을 하지 않았다.
나 태사공은 이렇게 생각한다. 노중련은 비록 그의 주장하는 취지가
대의(大義)에는 부합되지 않다 하더라도 무관무위(無官無位)의 처지에서
선비의 호탕함으로 자신의 뜻을 제후에게 펼쳤으니 그 점 훌륭하게
생각한다.
추양은 그 언사가 불손한 데가 있으나 상대를 설득함에 있어 사물을
비교하고 유례를 열거하는 데는 비상한 것이 많다. 역시 불요 불굴한
위인으로 평가되며 그렇기에 열전에 실은 것이다.
@
24. 굴원.가생열전 屈原.賈生列傳
미사 여구를 구사해 정치를 비판하고 비유를 들어 도의를 강조한 것이
굴원이 지은 <이소(離騷)>라는 시편(詩篇)이다. 그래서 제24에
<굴원.가생열전>을 서술했다. <太史公自序>
굴원의 이름은 평(平)이다. 초나라 왕실과 동성(同姓)이고 회왕의
좌도(左徒: 諫官)로 있었다. 학식이 풍부하고 의지가 굳은 사람이며, 국가
흥망 성쇠의 이치에 밝았고, 문사(文辭: 文章)에 숙달했었다.
궁중에 들어가면 왕과 함께 국사를 의논해 명령을 내리고, 조정 밖으로
나서서는 빈객을 접대하고 제후를 응접했다. 왕은 그를 몹시 신임했다.
상관대부(上官大夫: 官名)인 근상(근尙)이 그와 같은 서열로 왕의 총애를
다투었다. 근상은 속으로 굴원의 유능함을 미워했다.
회왕이 굴원을 시켜 법령을 기초하게 했다. 초안을 간신히 만들었을
즈음인데 근상이 그 초안을 빼앗으려 했다. 굴원이 내놓지 않았으므로
근상이 왕께 참소했다.
[왕께서 굴원을 시켜 법령을 기초하게 한 것을 모르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도움을 주기 위해 보자고 했으나 내놓기는커녕 '내가 아니면
이런 법령을 만들 수 없다'며 자기 공로만 자랑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그가
만든 법령이 문제가 될까 싶어 심히 걱정스럽습니다.]
왕은 근상의 참소만 귀에 들어왔다. 그래서 굴원은 멀리했다.
굴원은 굴원 나름대로 원통했다. 고로 상서하려고 글을 지었다.
- 왕께서는 신하가 하는 말의 잘잘못을 가리지 못하시는 점과, 참소와
아첨에 귀가 어두워 사론(邪論)과 곡설(曲說)에 공정함이 손상되시는 것과,
공명 정대한 선비가 용납되지 못하는 사실에 대하여 신은 깊은 근심 걱정과
시름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소(離騷)>라는 글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소>의 뜻은
<이우(離憂)>이니 즉 근심되는 일을 만난다는 뜻입니다. 생각해 보면
하늘〔天〕은 사람의 시작이며 부모는 사람의 근본입니다. 사람이 궁하게
되면 근본을 되돌아보는 까닭에 지금 몹시 고통스럽고 피곤하여 하늘을
찾게 되고, 더구나 질병과 고통 속에 있으므로 부모를 부르게 되는 지경에
왔습니다.
저는 길을 바르게 걷고 행실을 곧게 하여 충성을 다하고 지혜를 다했으나
신을 참소하는 자가 있어 곤궁하게 되었습니다. 허위가 없는데도 의심을
받고 충성을 다했는데도 비방을 받았으니 어찌 원망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굴원은 생각이 바뀌어 왕께 글을 올리지는 않았다. 다만 그 때의
원망스런 마음 때문에 <이소>를 지은 것만은 분명하다.
<국풍(國風: <詩經>의 篇名)>은 사랑을 노래했으나 음탕하질 않으며,
<소아(小雅: <詩經>의 篇名)>는 원망과 비탄의 정서를 노래했으나 반역의
정신을 보이지 않는다.
결국 <이소>는 위의 두 가지 내용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는데, 위로는
제곡(帝곡: 五帝의 한 사람)을 칭송하고 아래로는 제의 환공을 논하였으며
중간에서는 은의 탕왕이나 주의 문왕을 서술한 듯하다.
이 작품은 당대의 역사적 사실에 의거해 도덕의 숭고성을 천명하고
있으며 국가의 치란과 인간 관계의 조리를 밝힘에 있어 빠짐이 없을
것이다. 그의 문장은 간결하고 그의 수식은 미묘하여 그 뜻은 고결하고
행위는 청렴하여, 말수는 적으나 그 취지는 매우 크며 열거한 유례는
비근하지만 표현된 속뜻은 높고 깊다.
그 글의 뜻이 고결하기 때문에 인용된 사물들마저 향기로우며 그 행위가
청렴하기에 사후에라도 스스로가 더럽혀짐이 없었다. 진흙 가운데서 몸을
뒹굴다가 매미가 허물을 벗듯 진창 밖으로 나와 버리니 그의 몸은 한 점
더럽혀지지 않았다. 마치 일월(日月)과 빛을 다투는 사람이라 표현해도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굴원이 쫓겨난 뒤의 정세는 이러했다. 마침 진나라가 제나라를 치려하고
있었다. 제나라가 초나라와 합종하고 있었으므로 진의 혜왕은 그것이
근심되었다. 그래서 진왕은 장의(張儀)를 속임수로 짐짓 후한 예물을
소지해 초나라로 보내어 초를 섬기게 했다.
장의는 초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진나라는 제나라를 몹시 미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초나라는 제나라와
합종을 하고 있습니다. 만일 초나라가 제나라와 국교를 끊어 주신다면 제가
진왕에게 말해서 상(商).오(오)의 땅 6백 리를 초나라에 바치도록
하겠습니다.]
[그게 정말이오?]
[믿어 주십시오.]
초왕은 몹시 기뻐하며 제나라와 국교를 끊어 버렸다.
한편 진나라로 사신을 보내어 약속한 진의 땅 6백 리를 받아 오게 했다.
그러나 사자와 함께 진나라로 돌아온 장의의 대답은 엉뚱했다.
[내가 언제 초왕에게 6백 리의 땅을 준다고 했소? 가서 다시 물어
보시오. 내가 약속한 땅은 6리요.]
초나라 사신은 분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귀국하여 초의 회왕에게
사실대로 보고했다.
[무어라고? 이런 사기꾼이 다 있나!]
초왕은 펄펄 뛰었다.
곧 군사를 일으켜 진나라로 쳐들어갔다.
그렇지만 진나라로서는 처음부터 의도된 계략이었다. 단수(丹水)와
석수(淅水: 모두 河南省 河川)에서 초군을 크게 깨부수고, 목을 벤 군사만
해도 8만이었으며, 초의 장군 굴개(屈개)를 사로잡고 초의 한중(漢中:
陜西省 南部에서 湖北省 북부에 이르는 땅)까지 정복해 버렸다.
초왕은 그래도 분을 참지 못했다. 이번에는 국내 병사를 총동원해서
진나라 깊숙한 남전(藍田: 陜西省)까지 쳐들어갔다. 그 때
위(魏)나라에서는 좋은 기회다 싶어 초의 등(鄧)을 진격해 들어갔다.
그쯤 되자 초나라에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군사를 진나라에서
회군시켰다. 제나라에서도 초가 일방적으로 합종을 파기했으므로 진노하여
초나라를 구원하지 않아 그 곤궁함이란 말할 수가 없었다. 이듬해에
진나라는 어떤 계략이 있었던지 초나라에 한중 땅을 갈라 초나라에 돌려
주겠다는 제의를 해 왔다. 그렇지만 초왕은 전쟁의 사단이 된 장의에 대한
분이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었다.
[그까짓 땅 필요 없다.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장의의 목 뿐이다!]
장의도 그 소문을 들었다.
[보내 주십시오.]
[그대를 죽일 거요.]
[신에게도 생각이 있습니다.]
장의는 진왕의 허락을 받아 초나라로 갔다. 장의는 후한 예물을 싸
가지고 가서 일단 초나라 정권을 농단하고 있는 근상을 구슬린 뒤 근상과
친한 초왕의 총희 정수(鄭袖)에게 부탁해 목숨을 돌봐 주도록 했다. 초의
회왕은 결국 장의를 죽이지 못하고 석방해 버렸다. 그 즈음이 중직에서
소외돼 있던 굴원이 제나라로 사신 갔다가 바로 귀환한 순간이었다.
[장의를 죽이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반드시 초의 화근이 될 것인데
어째서 놓아 보냈습니까?]
뒤늦게 후회한 초의 회왕은 군사를 풀어 장의를 뒤쫓게 했으나 이미 그를
잡기에는 너무 늦었다. 초나라가 피폐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제후국들은
눈치채고 있었다. 그래서 제후 연합국들이 초나라를 크게 짓밟고 장군
당말(唐말)까지 죽였다.
뿐만 아니라 진왕은 초나라와 인척 관계에 있던 점을 이용했다. 회왕과
무관(武關: 陜西省 商縣 동쪽, 秦의 四關 중의 南關)에서 회맹하여
우호국으로 지내자는 연락을 보낸 것이다. 초의 회왕은 무관으로 가려
했다. 그러자 굴원이 나서서 간곡하게 말렸다.
[진나라는 범과 이리 같은 나라라 믿을 수가 없습니다. 자칫 돌아오지
못할 길이 될지도 모릅니다. 가지 마십시오.]
그러나 초 회왕의 막내 아들 자란(子蘭)이 반대하고 나섰다.
[천하가 감시하고 있는데 설마 대왕의 신변에 무슨 일이야 있겠습니까.
진왕의 호의를 신용하고 다녀오십시오.]
그렇게 되어서 초의 회왕은 마침내 진나라로 떠났다. 초왕이 무관을
넘어섰을 때였다. 진의 복병이 초왕의 귀로를 차단해 버렸다. 꼼짝없이
억류된 것이다. 진왕은 그런 상태로 초왕에게 땅을 베어 줄 것을 요구했다.
분노한 초왕은 듣지 않고 몰래 조나라로 도망쳐 들어갔다.
그런데 조나라는 진나라가 두려워 초왕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어진 초왕은 다시 진나라로 들어갔다. 초의 회왕은 살아서 초나라로
돌아오지는 못했다. 결국은 진나라에서 죽어 유해로 귀국했다. 회왕의
장자인 경양왕이 초왕으로 즉위했다. 경양왕은 아우 자란을 영윤(令尹:
楚의 宰相)으로 삼았다.
초나라 사람들은 회왕을 진에 가게 권해서 객사하게 만든 자란에 대해
몹시 질책하고 있었다. 자란에 대한 미운 마음은 굴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굴원은 소외되었지만 초나라에 대한 충성심은 여전했다. 군주가 잘못을
깨닫고 국운이 다시 한 번 융창해지기를 바랐다. 그런 간절한 소망은
<이소> 가운데 세 차례나 노래되었다.
회왕을 끝내 정도로 돌아오게 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아 역시 회왕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실상 군주란 어리석거나
지혜롭거나 현명하거나 불초하거나 관계없이 충신을 구해 자신을 돕게 하고
현명한 인물을 기용해 자신을 잘 보좌해 주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는 계속 망하고 있으며 가문의 허물어짐이 계속되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말하는 충신이 실상은 충신이 아니고 현자가 실상은 현자가
아닌 데에 있다 할 것이다.
회왕은 충신과 불충한 신하를 구별하지 못했다. 그랬기에 안으로는 정수
같은 여자에게 현혹되었고, 밖으로는 장의 같은 자에게 기만당했으며, 굴원
같은 충신을 멀리하였고, 근상과 자란 같은 자를 신임하였다. 그리하여
초나라 군대는 꺾이고 6군의 땅을 뺏겼으며 자신은 객사함으로써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을 제대로 볼 줄 몰랐기
때문에 불러들인 화인 것이다.
<역경>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 우물들이 맑은데도 마시지 않으니 내 마음은 아프구나. 누가 맑은 물을
길어 주랴. 명군이 있어 길어 준다면 군신이 함께 복을 받을 것이어늘!
충신을 가려 낼 만한 왕의 현명이 없음을 통탄한 말이다. 자란은 굴원의
말인 것처럼 문제삼아 근상을 시켜 경양왕에게 굴원을 참소케 했다. 진노한
경양왕은 굴원을 즉시 귀양보냈다. 굴원은 양자강 가에 이르렀다. 굴원의
머리카락은 흐트러졌고 얼굴은 초췌했으며 몸은 마른 나뭇가지처럼
야위었다. 그는 무슨 말인가로 탄식하면서 강가를 거닐었다. 어떤 어부가
굴원을 발견하고는 짐짓 물었다.
[혹시 삼려대부(三閭大夫: 昭氏.屈氏.景氏 등의 왕족을 맡아 보던 官職.
굴원이 한 때 이 직책에 있었음)께서 아니신가요? 어쩐 일로 이토록 먼
데를 오셨습니까?]
[온 세상이 혼탁한데 나 홀로 청결하고, 온 세상이 모두 취했는데 나
혼자만 말짱 깨어 있었더니 추방합디다그려.]
[아하, 그건 잘못됐구려. 대체로 성인(聖人)이란 사물에 집착 구애되지
않고 능히 세태의 추이에 따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세상이 온통
흐리거든 그 탁류에 몸을 맡기고 세상 사람 모두가 취했거든 어찌 함께
마셔서 취하지 않았습니까? 보석같이 비상한 재능을 가지신 분이 굳이
추방을 자초하셨구려.]
[나는 '머리를 새로 감은 자는 그 관의 먼지를 반드시 털어서 쓰고
목욕을 새로 한 자는 반드시 그 의복의 먼지를 털어서 입는다'고 들었소.
누가 깨끗한 몸에 더러운 때를 묻히겠소. 차라리 장강에 몸을 던져
물고기의 뱃속으로 사라지는 게 낫지.]
굴원은 즉시 <회사(懷沙)의 부(賦: 모래를 품고 강물에 몸을 던지는
노래)>를 지었다.
생기 피는 초여름
수풀은 우거져
마음은 서럽고
발길은 바쁘네
강남으로 가는 길
산천은 아득하고
고요함은 천지에
한이 맺혀 그득하다
병든 몸 비통하여
고개 숙여 달래도
나 아직 한 번도
상도(常度) 아니 벗어났네
모난 나무 깎아 둥글게 만들지만
불변하는 법도야 바꿀 수 없는 것
먹줄 놓아 줄을 긋는다지만
군자의 뜻은 바꿀 수야 없지
명공(名工)의 솜씨가 없다면
누가 그것을 찬미하랴
검은 무늬 어둠 속에 있으니
청맹과니의 눈에는 무늬가 없고
이루(離婁: 옛날 눈 밝은 사람)가
가늘게 눈뜨니 그는 장님이라
흰 것을 검다고 한다
위의 것을 아래 것이라 한다
봉황이 새장 속에 산다 한다
닭과 꿩이 창공을 나른다 한다
옥과 돌을 뒤섞어서
한 되〔析〕로 헤아리니
아 나의 착한 뜻
알 수가 없지
등짐은 무겁고 수레는 그득하나
수렁에 빠져서 지나갈 수가 없네
보옥을 쥐고 품었으나
알 리 없는 촌개들이 짖네
인물을 헐뜯고 의심함은
범용한 자들의 짓거리라 치자
꾸미지 않은 문채(文采)가 질박하니
나의 이채(異彩)를 모르리
재목이 산처럼 쌓였어도
목수가 없으니 소용없고
인의(仁義)로 삼가 덕을 쌓아도
중화(重華: 舜) 못 만나니
쓰일 데가 없네
성군(聖君)과 현신(賢臣)은
살기 좋던 옛날에도
무슨 까닭인지
함께 살지 않았으나
어차피 탕왕 우왕은 먼 옛 분이라
나로선 아득하여 따를 길이 없네
원한은 꾸짖고 분노를 삭이자
혼미한 세상에서 모범으로 살아있자
북지(北地)로 길을 향하니
어느 새 해는 저무네
시름도 슬픔도 풀어 가니
갈 길이 죽음밖에 없네
굴원은 끝맺는 노래〔亂〕에서 읊는다
도도히 흐르는 원수(沅水).상수(湘水)여
풀더미 뒤로 흘러 끝간 데를 모르겠네
노래는 슬프고 탄식은 길다
고결한 자질을 이해 못 하니
이토록 고독하고 적막했구나
백락(佰樂: 名馬 감별사)이 죽었으니
천리마도 없다
사람은 태어날 때 천명을 받으니
마음을 정해 가면 두렵지 않다
그래도 쌓인 애통함은
혼탁한 세상이 나를 이해 못함 때문인가
죽음을 피할 수 없기에
목숨을 아끼지는 않으리
그러나 세상에 분명히 고하니
나는 모범으로 살았노라
이리하여 굴원은 바위를 품에 안고 스스로 멱라(멱羅: 멱水.羅水의
合流點 북쪽)에 몸을 던져 죽었다. 굴원이 임 죽은 후 초나라에는
송옥(宋玉).당록(唐勒).경차(景差) 같은 문사들이 있어 뛰어난 문장으로
부(賦)를 잘 지어 칭송을 받았다. 물론 굴원의 자유 분방한 표현을
본받는데 감히 굴원처럼 직간하는 비판 정신은 발휘하지 못했다.
그 뒤 초나라는 날로 쇠약해지더니 결국은 진나라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다. 굴원이 멱라에 몸을 던진 이후 백여 년이 지나 한(漢)나라 시대에
가서 가생(賈生)이 태어났다. 그는 장사왕(長沙王)의 태부(太傅)가 되어
상수를 지날 때 글을 써서 강 속으로 던져 넣으며 굴원을 조문했다.
가생의 이름은 의(誼)라 하고,낙양(낙陽, 河南省)출신이다. 18세 때 벌써
<시경>을 암송하여 그 재능이 군(郡) 내에서 유명했다. 하남 태수
오정위(吳廷尉:吳는 姓, 廷尉는 最高裁判所 大臣)가 가생이 수재라는
소문을 듣고 문하로 불러들여 매우 총애했다.
그 때가 효문황제(孝文皇帝) 즉위 초〔B.C. 179〕였다. 황제가 보기에는
오정위의 통치 성적이 천하제일이었다. 더구나 오정위가 이사(李斯)와 같은
고향인 데다 오정위가 이사한테서 배운 바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에
하남에서 오정위를 불러들여 정위로 삼았던 것이다. 오정위로서는 황제께
인재를 자연스럽게 추천할 수 있었다.
[문하에 가의라는 영특한 인재가 있습니다. 연소하긴 하나 제자 백가의
학문을 통달해 있습니다.]
그래서 효문제는 가생을 불러 만나본 후 박사(博士) 벼슬에 임명했다.
박사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불과 20세 때였다. 칙령의 초안에 관해서
황제가 자문을 구할 때마다 대부분의 노선생(老先生)들은 속시원한 답변을
못했지만 가생은 막힘 없이 대답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고 싶었던
내용을 가생이 명확하게 대답해 주었으므로 다른 박사들은 가생을 질투하지
않았고 가생의 뛰어난 재능을 인정해 주고 있었다.
황제도 그런 가생을 흡족하게 생각했다. 계속 특진을 거듭 시켜 일 년
만에 태중대부(太中大夫:宮中顧問官)로 삼았다. 한나라가 이러나서
효문제에 이르기까지의 20년 동안은 천하가 태평하고 백성들은 안락했다.
이 때 가생은 역법(歷法)을 고치고 관복의 색깔을 바꾸고 제도를 정비하고
관명을 확정하고 예약을 일으켜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런
제도에 필료한 모범 문아을 자세히 기초했다.
색깔은 황색을 존중하고 숫자는 5를 기준으로 삼았으며 관직명을
창설하는 등 진나라 때 사용되던 법을 거의 개정했다. 그러나 황제는
즉위한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법을 바꾸기에는 아직 시기상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가생이 개정한 법령 중 `모든 열후들은 각자의 봉령으로
돌아가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대목에서 발생했다. 황제는 뭇 신하들을
소집해 그 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개정법을 시용할
것이냐 아니냐의 문제를 공경(公卿)의 지위에 가생을 앉힐 것이냐 아니냐의
문제로 바꾸어서 논의해 보도록 유도했다.
뜻밖에도 강후(絳候: 周勃)나 관영(灌영)이나 동양후(東陽候: 張相如)나
풍경(馮敬) 등의 대신들 모두가 가생이 내놓은 법령들을 혐오했다. 그래서
이구동성으로 가생을 비방했다.
[낙양에서 온 저 젖비린내 나는 어린 선비가 미숙한 학문으로 그것을
과대 선전하여 오로지 권력을 전횡하기 위한 수단으로 법령을 바꾸려 하고
있습니다. 그의 개정령을 따랐다가 혹시 천하가 어지러워질까 싶어 그것이
두렵습니다. 아무쪼록 깊이 통찰하시기 바랍니다.]
황제는 대신들의 주장이 그럴 듯하다고 생각해 버렸다. 그래서 가생의
제의를 물리친 후 장사왕(張沙王)의 태부로 좌천시키고 말았다. 가생은
장사(長沙: 湖南省)로 부임 길에 올랐다. 그는 가는 도중에 장사라는 데가
지대가 낮은 습지라는 소리를 들었다.
[습지대로 나를 보냄은 오래 살지 못하게 하려는 계략일 테지.]
가생은 장수할 수 없을 것임을 깨달았다. 그는 몹시 우울했다. 더군다나
좌천되어 가는 길이었다. 상수(湘水)를 건너게 되었다. 가생은 그 때
굴원을 기억해 냈다. 그래서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조문을 지었다.
공손히 명을 받들어
장사(長沙)에서 죄를 기다린다
얼핏 들으니 굴원 선생이
멱라에 스스로 몸을 던졌다네
흐르는 상수(湘水)에 부탁하여
삼가 선생께 조의를 표한다
무도한 세상을 만나
잃은 목숨 애달픈지고
상서롭지 못한 때를 만나니
난봉(鸞鳳: 靈烏 즉 賢人, 君子)은
몸을 숨기고
올빼미〔惡烏, 小人〕가 활개를 치니
곧 어리석은 무리의 존귀 시절이라
아첨꾼은 뜻을 얻어
현성(賢聖)의 도는 역행하여
정의로운 길이 물구나무섰네
세상은 백이(伯夷)를 탐욕하다 하고
도척(盜척)을 청렴하다 하며
막야(莫야: 名劍)는 날이 무디고
납칼〔鉛刀〕을 날카롭다 하니
아아 선생은 뜻을 잃고
이유 없는 화를 당할 수밖에
구정(九鼎: 周室의 보배솥)은
옮겨 오지 않고
깨진 독이 보배가 되며
지친 소에게 수레를 끌리고
절름발이 나귀를 곁마〔駿馬〕로 삼으니
정작 준마(駿馬)는 두 귀를
늘어뜨리고
소금 수레나 끄는구나
장보(章甫: 殷의 冠)를 신발로 하니
오래 지탱할 리가 없지
아아 서러웠던 선생이여
홀로 그 재앙을 겪었음을
끝맺는 노래〔訊: 辭와 같음〕
할 수 없지 나라에 아는 이 없으니
슬픔을 말할 데가 없네
그래서 봉황은 하늘 높이 물러가고
신용(神龍)은 깊은 물 속에 숨네
밝은 빛을 사양하여
왕개미 거머리 지렁이와 놀지 않고
성인이 탁세를 피함은
개와 양〔즉 鈍才〕과 같지 않음이라
고로 선생의 허물은
천하를 유력해 현군을 돕지 않고
하필 초도(楚都)만을 그리워했음이라
봉황은 천 길 높이 날았다가
덕이 빛나면 아래로 내려오고
소인들의 해괴함을 만나면
멀리 활개쳐서 날아가니
초(楚)나라 같은 작은 웅덩이는
배를 삼킬 만한 대어(大魚)를
받아들일 수 없어
결국 강호의 큰 고기는
땅강아지와 개미에게 침해를 받네.
가생이 장사왕의 태부가 된 지 3년째 되던 해에 한 마리의 부엉이가
가생의 관사로 날아 들어와 방 한 구석에 앉았다.
[아, 때가 되었구나!]
초나라 사람들은 부엉이를 복(복: 黑色이란 뜻, 匈色)이라 부른다.
가생은 습지대 장사에 좌천되어 있었으므로 미리 오래 살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부엉이를 보자 어떤 예감을 느낀 것이다. 그는
사(辭)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정묘년(丁卯年: 孝文帝 6년)
사월 초여름
경자일(경子日) 저녁 무렵에
복 한 마리 의젓하게
내 집 방 한구석에 머무르다
괴이한 새이기에 그 까닭을 몰라
책을 펼쳐 점을 치니
'들새가 들어오니 주인은 나가리라'
그렇게 점괘는 말하더라
내 나가면 어디로 가나
복에게 묻노니
길하다면 말해 주고 흉하다면
그 재앙의 뜻을 말해 다오
더디 오느냐 빨리 오느냐
그 시기만이라도 알려 다오
복은 머리 들고 나래치며 탄식하니
인간의 말로는 알아들을 수가 없고
다만 마음으로 그 뜻을 읽었네.
만물의 변화에는 쉼이 없는 것
흘러서 갔다가도 밀려서 되돌아오지
형(形)이 기(氣)로 변함이
매미 허물 벗음과 같으니
그 깊은 이치는
말로 다 설명할 수가 없네
화는 복의 근원이며
복에는 또 화가 깃드네
근심과 기쁨이 한 집에 모이니
길흉은 장소를 같이하네
오(吳)는 강대하지만
부차(夫差)는 패했고
월나라는 회계(會稽)로 몰렸지만
구천(九踐)은 세상을 제패했네
이사(李斯)는 유세에 성공하지만
마침내 오형(五刑)을 입고
부열(傅說: 殷의 名宰相)은
죄수였지만
무정(武丁: 殷의 高宗)의 재산이 됐네
화와 복의 관계는
꼬아진 새끼와 무엇이 다르며
천명이라 헤아릴 수 없으니
누가 그 끝을 알까
물도 격하면 빨라지고
화살도 격하면 멀리 가니
만물은 회전하고 부딛치며
진동하고 변화하네
구름은 오르고 비는 내리고
서로 얽히고 설키는구나
조화옹(造化翁)이 만물을 창조하니
그 한계는 보이지 않고
천도(天道)는 헤아릴 길 없으니
더딤과 바름의 그 천명도
알 길이 없다.
천지는 화로(火爐)요
조화옹은 공인(工人)이다
음양은 탄(炭)이요
만물은 구리(銅)라
모이고 흩어지고 줄었다 늘어나니
어찌 세상에 불변의 법칙이 있겠나
천변만화(天變萬化)하니
처음부터 끝이 없네
홀연히 사람으로 태어났다 해도
삶에만 집착할 건 없고
사물로 변한다 해도
그것을 근심할 이유도 없다
작은 지혜는 자신이 만물이며
달인(達人)의 눈은
나와 만물이 다름이 없네
탐욕스런 자는 재물에 죽고
열사(烈士)는 명예에 죽으며
권세를 뽐내는 자 권력에 죽고
만인은 생명의 장구함만 구하네
이(利)와 가난에 쫓기는 자들은
날마다 동으로 서로 분주하나
물욕에 굽히지 않는 (대인(大人)은
한결같은 눈으로 만물의 변화를 보네
어리석은 선비는 죄수같이
부자유스런 세속에 묶이고
지인(至人)은 만물을 초월해
오직 도(道)와 함께 산다네
어리석은 사람은 미혹하여
저ㅗ고 싫은 것이 가슴에 쌓이나
진인(眞人)은 염담(염淡) 적막하여
오직 도에만 사네
오로지 지혜를 버리고 형체를 무시해
존재에 초연하고 마음을 비우면
도와 함께 하늘을 날게 되고
흐름을 타다 보면 모래성에 머물겠지
몸을 자유롭게 천명에 맡기면
죽음도 나의 것이 아니지 않은가
삶이란 물에 뜬 것과 같고
죽음이란 쉬는 것과 같아라
심연처럼 담담하고 고요하여
매이지 않은 배처럼 자유로워라
삶으로써 삶을 귀히 여기지 않고
빈 마음으로 인생을 자적하리라
덕을 가진 자는 얽매임이 없나니
천명을 알아 근심치 않노라
가시덤불의 하찮은 아픔으로
굳이 크게 근심할 건 무언가
그로부터 1년 후 가생은 소환되어 황제를 뵈었다. 효문제는 방금 제사를
지내고 남은 고기를 받고 정전(正殿)에 앉아 있었다. 항제는 제사 중에
귀신에 감응하는 바가 있었기 때문에 가생에게 귀신의 본질에 대해 물었다.
그래서 가생은 귀신의 정상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했다. 황제는 가생의
설명이 너무 흥미로워 날이 새는지도 몰랐다.
[짐(朕)은 오랫동안 가 선생을 만나지 못하여 짐이 가 선생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했소. 그러나 지금 보니 역시 짐은 그대에게 미치지 못하오.]
얼마 있지 않아 황제는 가생을 양(梁)의 회왕(회王) 유즙(劉즙)의 태부로
임명했다. 유즙은 효문제의 막내아들로 황제가 총애했으며 그갈 책을
좋아했으므로 가생을 그의 태부로 삼은 것이다. 효문제는 또 회남(淮南)
여왕(女王)의 네 아들을 열후(列侯)에 봉했는데 장차 이로 말미암아 환란이
생길 것이라고 가생은 간했다.
[제후들 중에는 여러 군(郡)을 아울러 영유하는 자가 있는데 이는 기존의
제도에 어긋나므로 반드시 점차적으로 삭감하셔야만 합니다.]
그러나 효문제는 가생의 충고를 대수롭지 않게 들었다. 몇 해가 지나서
양 회왕은 말을 타다가 낙마하여 죽었다. 후사가 없었다. 가생은 태부로
있으면서도 그에게 아무 도움도 될 수 없었다는 자책감에 한 해 동안이나
슬피 울다가 역시 그도 뒤따라 죽었다. 그의 나이 33세 때였다.
효문제가 죽고 효무제(孝武帝)가 즉위했다. 가생의 두 손자를 등용하여
군수로 삼았다. 그 중의 가가(賈嘉)는 학문을 매우 좋아하여 가씨 가문의
계승자가 되었다. 가가는 나 사마천과 서신을 주고받는 사이이다.
효소제(孝昭帝) 때 열후에 봉해지고 구경(九卿)이 되었다.
나 태사공은 이렇게 생각한다.
<이소(離騷)> <천문(天問)> <초혼(招魂)> <애영(哀영)> 〔모두
<楚辭>의 篇名〕을 읽으며 나는 그 뜻을 생각하고 슬퍼진다. 때문에 내가
장사로 가서 굴원이 스스로 투신한 곳을 찾아 눈물을 흘리며 그의 사람됨을
추상(追想)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가생이 굴원을 조문한 글로 미루어 보아 굴원이 그만한 재주를 가지고
다른 제후들에게 유세했더라면 그를 용납하지 않을 나라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그런 식으로 스스로를 몰아 가서 생애를 끝마쳤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복조부(복鳥賦)>를 읽으면 삶과 죽음을 동일시하면서 또한 가벼이 보고
있다. 이런 그의 초탈한 경지를 엿보며 역시 망연 자실(茫然自失)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
25. 여불위열전 呂不韋列傳
여불위는 진의 공자 자초(子楚)와 친척 같은 관계를 맺어, 제후 나라의
선비들이 빛에 빨려들듯이 진나라로 앞다투어 들어가 섬기게 했다. 그래서
제25에 <여불위열전>을 서술했다. <太史公自序>
여불위는 양책(陽책: 河南省 禹縣)의 대상인(大商人)이다. 여러 나라를
왕래하며 물건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 집안에 천금의 자산을 축척했다.
진(秦)의 소왕(昭王) 40년에 태자가 먼저 죽었으므로 42년에 둘째 아들인
안국군(安國君)을 새 태자로 삼았다.
안국군에게는 희(姬)라는 매우 총애하는 애첩이 있었는데 그녀를
정부인으로 삼아 화양 부인(華陽夫人)이라 불렀다. 그런데 안국군에게는
아들이 20여 명이나 있었지만 화양 부인과의 사이에서는 한 명의 아들도
낳지를 못했다.
어쨌든 안국군의 아들 중 자초(子楚)라는 차남이 있었다. 자초는 볼모가
되어 조(趙)나라에 가 있었다. 더구나 진나라가 자주 조나라로 침공해
왔으므로 인질인 자초는 언제 조나라 조정으로 끌려나갈 죽을지 모르는
처량한 신세가 되어 있었다. 더구나 자초의 생모인 하희는 이미 안국군의
총애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으므로 그녀의 아들 자초 따위는 누구의
안중에도 없었다.
불안과 공포의 나날 속에 있었다. 또한 곤궁한 데다 감시받는
입장이었으므로 자초는 정작 실의와 낙담 속에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었다. 바로 이 때였다.
[가만 있거라! 이건 진귀한 보배다. 사 둘 만한 물건이다!]
여불위는 무릎을 쳤다. 그는 조나라 수도 한단으로 장사 갔다가 자초의
처량한 일상을 엿들은 것이다. 그래서 여불위는 가만히 자초의 숙소를
방문했다.
[제가 당신의 문호(門戶: 집)를 크게 해 드리지요.]
자초는 절망 상태에 있었으므로 여불위의 말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농담 마십시오. 제 집을 크게 지어 주시려거든 우선 당신의 집부터 크게
지은 뒤라야 가능할 것입니다.]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저의 집은 당신의 집부터 크게 지어야 덩달아
커집니다.]
[예에?]
자초는 그제서야 여불위가 무엇을 말하려는가를 깨달았다. 그래서 밀실로
데리고 들어가 대좌했다.
[무슨 뜻입니까?]
[진왕께선 늙으셨고 안국군이 태자가 되셨습니다.]
[저의 아버님이시지요.]
[안국군은 화양 부인을 가장 총애하신다지요? 그렇지만 불행히도 화양
부인에겐 아들이 없습니다.]
[그렇지요.]
[안국군께서 나중에 왕위에 오르셨을 때 과연 누구를 태자로 삼으실 것
같습니까.]
[그건......?]
[물론 당신께선 아닙니다. 장자도 아니며 그 숱한 형제들 중의 한 분에
지나지 않으며, 안국군의 총애를 받고 있는 처지도 아니며, 안중에도 없이
남의 나라에 볼모로 나가 있으며, 생모이신 하희 부인께서 안국군의 총애를
받고 계신 것도 아니며...... 그 어떤 조건을 따져 보아도 당신께서 태자가
되실 가망은 없습니다.]
[누가 아니라고 했습니까?]
[총애받는 화양 부인께서 아들이 없다는 사실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보신
적은 없습니까?]
[생각해 보았댔자 그게 저와 무슨 상관입니까?]
[그렇다면 적사(嫡嗣)를 세울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은 오직 화양
부인밖에 없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그분에게는 아들이 없다는 사실을 그대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공자께서 화양 부인의 아들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예에?]
[그나마도 바로 지금 화양 부인의 아들이 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만일 대왕이 돌아가시고 안국군이 왕위에 오르시면 그 때
공자께선 몸부림을 치셔도 도무지 태자가 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조석으로 왕 앞에서 음모와 아부로 태자위를 다투는 다른 왕자들과 비교해
좋은 조건은 한 가지도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요.]
[제가 태자가 될 수 있는 좋은 계략이라도 가지고 계시단 말입니까?]
[있습니다. 저는 장사꾼입니다. 천금을 걸어 공자께 투자하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가난합니다. 양친의 환심을 선물로 살 만한 재력도
없으며, 빈객들과 교제하여 나를 위해 유세하도록 할 만한 덕망 역시
없으며, 언제 죽게 될지 조석이 불안한 몸입니다. 무엇을 믿고 어떻게
투자하시겠다는 겁니까?]
[공자께 천금을 드리지요. 빈객들과 교제하는 데에 쓰십시오. 저는 이
길로 서쪽 진나라로 가서 안국군과 화양 부인을 섬겨 당신이 후사가 되도록
계략을 도모하겠습니다.]
[대단히 감사하오나, 당신께선 제게 투자했다가 본전은커녕 목숨까지
잃는 수가 있겠습니다.]
[좋습니다. 그 대신 당신의 계획이 성공만 하게 된다면 그 땐 진나라를
당신과 함께 나누겠습니다!]
여불위는 거금 5백 금을 풀어 진귀한 물품과 노리개를 사 가지고 서쪽
진나라로 건너갔다. 화양 부인을 직접 만날 길이 없었으므로 손을 써 우선
그녀의 언니부터 만났다. 가져온 물건들을 내밀면서 여불위는 화양 부인을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어려운 경로를 거쳐 여불위는 간신히
화양 부인을 만날 수가 있었다.
[자초는 현명하고 지혜로운 분입니다. 널리 천하의 빈객들과
교제하시면서도 유달리 부인을 간절히 생각하고 계십니다.]
[자초가?]
[저에게도 말씀하십디다. '나는 화양 부인을 하늘처럼 생각하고 있소. 그
분의 처지를 생각하면 밤낮으로 눈물이 나오' 하시면서 통곡하십디다.]
[자초가 그렇게까지......!]
부인은 몹시 기뻐했다. 여불위는 한편으로 그 언니를 시켜 화양 부인을
설득하도록 해 놓았다.
[들리는 말에 '용색(容色)으로 사람을 섬기는 이가 용색이 쇠하면 그
애정도 쇤다'고 합디다. 지금 부인은 태자의 총애를 한없이 받고 있으나
불행히도 아들이 없지 않습니까. 꽃다운 청춘 시절에 기초를 세워 놓지
않으면 용색이 쇠하고 애정이 식은 뒤에는 입을 벌려 백 마디 말을 해도 한
마디의 효과도 없겠지요.]
[저도 그것이 두렵습니다, 언니.]
[그렇다면 이럴 때 태자의 자식 중에서 현명하고 효성이 지극한 자를
뽑아 양자를 삼으시지요.]
[양자를?]
[그렇게 하면, 부군이 살아 계실 때에는 그 부군의 부인으로 존중되고
부군이 돌아가신 뒤에는 왕이 된 그 양자로 인하여 부인은 최후까지 세력을
잃지 않게 되지요.]
[아, 그런 방법도 있었구려!]
[이야말로 말 한 마디로 만세의 이익을 얻는 것과 같지요.]
[언니, 그렇다면 누가 양자로 좋겠습니까?]
[그런 일일수록 계략이 심오해야 합니다. 말할 것도 없이 자초가
최적입니다.]
[자초가 효성스럽고 현명하긴 하나 중남(中男: 次男)이므로 순서로 보아
태자가 되기는 어렵지 않습니까?]
[오히려 그 점이 의심을 사지 않는 것이 되지요. 처음부터 궁내의 왕자를
양자로 점찍으시면 모두가 부인을 의심하게 됩니다. 볼모로 잡혀 있는
자초를 지명하면 지금 아무도 그가 태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므로
부인의 처지는 편안해집니다. 하희 부인 역시 태자의 사랑을 받고 있지
못하는 처지라 자초를 양자로 삼으면 그녀도 부인의 조처를 매우 고맙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래서 적당한 기회에 자초를 후사로 삼게 한다면 죽을
때까지 부인은 진나라에서 모든 사람으로부터 은총을 누리게 되지요.]
화양 부인은 언니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태자가 한가한 틈을 타서 자신의 생각을 조용히 말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오, 부인?]
안국군은 가득 웃음진 얼굴로 사랑하는 화양을 바라보았다.
[군(君)께서는 불민한 저를 택하셔서 후궁이 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 은혜의 크기는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습니다.]
[새삼스럽게 그 무슨 말이오?]
[그 영화와 행복은 지극하오나 불행히도 첩에게서는 아들이 없습니다.]
[인간의 의지로는 어쩔 수가 없는 일이 아니겠소? 없는 아들을 있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니 너무 슬퍼 마오.]
[첩의 처지에서는 그렇지가 못합니다. 허락하신다면 군(君)의 자식
중에서 하나를 양자로 얻어 첩의 노후를 의탁코자 합니다. 군의 의향은
어떠하신지요?]
[내 아들들 중에서 양자를?]
[허락해 주신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생각에 잠겨 있던 안국군은 다시 웃는 얼굴로 되물었다.
[그대의 소견이 그토록 나쁘지만은 않구려. 한데, 누구를 양자로 삼으면
좋겠소?]
[조나라에 볼모로 가 있는 자초를 주십시오.]
안국군은 사뭇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그리 많은 아이들 중에서 하필 자초를 달라 하오?]
[군의 자식들 중에서 자초의 효심이 가장 지극합니다.]
[금시초문이오.]
[그가 현명하고 덕망 있어 그와 교제하는 모든 인사들이 칭찬하고
있습니다.]
[자초가 그러하오?]
[그래서 기왕에 양자를 주시려거든 자초를 주십사 하고 청하는
바입니다.]
[그대의 소원이 정 그렇다면 그대로 하오.]
[감읍할 따름입니다. 그러하오나 말씀만으로는 아니 되니 옥(玉)으로
할부(割符)를 새겨 주십시오.]
[그건 또 왜 그렇소?]
[나중에라도 다른 얘기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그 할부가 자초가 적사로 되는 증거물이 되었다. 한편으로 안국군은
안국군대로 놀랐다. 자초를 버린 자식 취급하고 있었는데 염탐꾼들을 통해
들어 본 즉 천하의 빈객들이 그를 하나같이 칭찬하고 있었던 것이다.
안국군과 화양 부인은 그 때부터 자초가 이국 땅에서 불편을 겪지 않도록
많은 예물을 보냈고, 여불위에게 간청해 자초의 태부(太傅)가 되게 했다.
여불위가 데리고 있는 한단의 여러 미희들 중에서 뛰어난 미색인
무희(舞姬) 하나가 있었다. 그는 무희가 임신한 사실을 알았다. 그
즈음이었다. 자초가 여불위의 집으로 초대되었다. 술을 마시다 말고 자초는
무희의 아름다움에 혹해 버렸다. 자초는 일어나서 여불위에게 술잔을 올려
장수를 축복한 뒤 말했다.
[저 여인을 나한테 줄 수 없겠소?]
여불위는 화가 났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여인이며 이미 자신의 아이를
배고 있는 여인이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했다. 이미 전 가산을 던져
자초에게 투자한 처지였다. 여자 하나로 이제까지 자초에게 진력한 모든
행운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너는 공자를 따라가거라. 그러나 임신한 사실을 결코 발설해선 안
된다.]
자초는 그 무희를 좋아라 하고 데려갔다. 그리고 산기(産期)가 차서
아들을 낳았다. 이름이 정(政: 後日의 秦始皇帝)이었다. 자초는 그녀를
세워 정부인으로 삼았다. 진의 소왕 50년이었다. 장군 왕의(王의)를 보내어
한단을 포위하게 했다. 사태가 급박했다. 조에서는 자초를 죽이려 했다.
[살아날 방법이 없겠소?]
[마지막 재산을 털어 넣겠습니다. 황금 6백 근이면 감시하는 관리도
눈감아 줄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 탈출하셔서 진나라 군영으로 가십시오.]
자초는 천신 만고로 탈주해서 진군의 진영으로 갈 수 있었고, 무사히
본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분노한 조나라에서는 자초의 처자를 찾아
죽이려 했지만 조나라 부호의 딸인 여불위의 부인이 잘 숨겨 주었으므로
그들은 무사할 수 있었다. 진의 소왕이 56년에 죽었다. 태자 안국군이 왕이
되었고, 화양 부인을 후로 삼았으며, 자초가 태자가 되었다.
조나라에서는 새로 즉위한 진왕과 화해할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태자
자초의 부인과 그 아들 정을 진나라로 정중히 돌려 보냈다. 그런데 진왕 즉
안국군은 즉위한지 1년 만에 죽었다. 시호를 효문왕(孝文王)이라 했다.
태자 자초가 대를 이어 즉위하니 이가 바로 장양왕(莊襄王: B.C. 249-247
在位)이다. 장양왕은 양모 화양후(后)를 화양 태후(華陽太后)라 하고 생모
하희를 하 태후(夏太后)라 했다.
장양왕 원년에 여불위를 약속대로 승상(丞相)으로 삼고 문신후(文信侯)에
봉했으며 하남(河南)의 낙양(洛陽) 10만 호를 식읍(食邑)으로 주었다.
그런데 장양왕이 즉위한 지 또 3년 만에 죽었다. 13세의 어린 태자 정이
서서 왕이 되었다.
왕은 여불위를 더욱 높여 상국(相國)으로 삼고, 중보(仲父: 부친 다음
가는 분)라 불렀다. 과부였던 태후는 전날의 남편 여불위와 때때로 남몰래
사통했다. 그러나 진왕 정은 나이가 어렸으므로 그런 사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한편 여불위의 집에는 사용인이 1만 명이나 있었다. 그 즈음에
위나라에는 신릉군이 있고 초나라에는 춘신군이, 조나라에는 평원군이,
제나라에는 맹상군이라는 현자들이 있어 모두가 몸을 낮추어 뜻있는
선비들을 존중해 빈객 모시기 경쟁을 하고 있었다.
여불위는 제후국들 중에서 진나라가 가장 강대한데도 불구하고 인망이
그들만 못한 것에 대해 몹시 부끄럽게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그도
부지런히 인사들을 초치하고 빈객들을 후대했더니 어느 새 집안에는 식객이
3천이 넘게 붐볐다. 그 무렵에 각 제후들 밑에는 논객(論客)들이 많았다.
[어떻게 해야 내가 저 사군(四君)을 압도할 만한 명예를 얻을 수
있을까?]
그러자 식객 하나가 대답했다.
[저서를 내십시오. 순경(荀卿)같은 무리들도 책을 지어 천하에 그 학설을
퍼뜨리고 있는데 하물며 상국 같으신 분이 무얼 못 하시겠습니까?]
[책을 짓는다?]
[3천 인의 식객들을 무위도식하게 만들어서도 안 됩니다. 저들도
나름대로 한 가지씩 재주가 있을 것입니다.]
[옳거니!]
그 때부터 여불위는 빈객들에게 각자 자기가 견문한 바를 저술 편집케
했다. 과연 그런 착상은 저 사군(四君)도 못 해낸 일이었다. 논(論)들은
차곡차곡 집대성되었다. <팔람(八람:
有始.孝行.愼大.先識.審分.離俗.時君)>과 <육론(六論: 論이라 이름붙인
여섯 편)>과 <십이기(十二紀: 春.夏.秋.冬 네 계절을 孟.仲.季로 구분해
서술한 12편의 이름)> 등으로 모두 26권 20만 자가 넘는 저서가 되었다.
천지.만물.고금의 모든 것이 총망라되었다고 자신했다.
[책 이름을 무어라 했으면 좋겠소?]
여불위는 기고 만장했다.
[상국의 업적이니 <여씨춘추(呂氏春秋)>라 부르지요.]
빈객 하나가 대답했다.
[그 좋겠소. 아주 좋소.]
[이 책을 함양의 시장문(市場門) 앞에다 진열하고 천 금의 상금을
거시지요.]
[그건 왜 그렇소?]
[천하 제후의 나라를 돌아다닌 그 어떤 선비라도 <여씨춘추>의 글자 한
자라도 덧붙이거나 깎을 수가 있는 자가 있다면 상금으로 천 금을 주겠다고
선전해 보시지요.]
[대단히 좋은 생각이오!]
여불위는 기쁘길 그지없었다. 시황제도 이제 장년이 되었다. 여불위는
고민하고 있었다. 태후의 음란이 아직도 그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칫 꼬리가 길어 간통이 발각되는 날에는 그 화가 자신에게 미칠 것이
뻔했다.
그 때 남근(男根)이 대단히 큰 노애(노애)라는 인물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래서 그를 데리고 와서 가신으로 삼고, 때때로 음탕한 음악을
연주하며 노애의 남근을 오동나무 수레바퀴에다 끼워 넣어 끌고 다니게
했다. 일부러 소문을 내어 태후가 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과연 그
소문을 들은 태후는 노애에 대하여 관심이 컸다. 즉시 여불위를 불렀다.
[그 자의 남근이 정작 소문대로입디까?]
[절굿공이만 했습니다. 아닙니다. 그보다 더 컸으면 컸지 결코 작지만은
않았습니다.]
[음경(陰莖)이란 크다고 해서 또 반드시 힘이 있는 건 아니지 않소?]
[그렇긴 합니다만 노애의 경우는 두 가지 장점을 동시에 소유한
듯합니다. 어쨌든 오동나무 수레바퀴에 제 자지를 축(軸)으로 끼워 넣고
바퀴살을 굴대로 폭주(輻輳)시키며 바퀴통을 여봐란 듯이 굴려 간 것만
보아도 그 자의 정력은 요량되는 바가 있지 않겠습니까?]
[상국께선 망칙한 소리를 하십니다.]
[상국과 태후가 사통하는 바는 망칙한 짓이 아닙니까?]
[저야 원래 주인님의 것이었으니 망칙할 것도 없고 거리낄 바도 없지요.]
[제가 공연한 소릴 했습니다. 없었던 얘기로 치시지요. 어쨌든 내일
승상부로 나가는 즉시 그 자의 목을 베어야겠습니다.]
[그건 어째서입니까.]
[미풍 양속(美風良俗)을 해치는 자입니다.]
[대물(大物)을 가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죄 없는 자의 목을 치다니요.]
[모르지요. 그나마 태후께서 노리개로 곁에 두시겠다면 모르겠으나
그것이 싫으시다면 그 자는 죽어야 마땅합니다.]
[그럴 작정이라면 데려오시오.]
[그 대신 부형(腐刑: 宮刑과 같이 性器를 제거하는 형벌)에
처해야겠소이다.]
[그 형벌 역시 노애의 목을 베는 일과 같지 않겠습니까.]
[목을 베는 게 아니라 성기를 베는 겁니다.]
[그렇다면 난 그 자를 받지 않겠습니다. 죽이시든 살리시든 상국
마음대로 하십시오.]
여불위는 몰래 웃고 나서 말했다.
[생각해 보십시오, 태후. 멀쩡한 사내가 태후궁에서 기거할 수
있겠습니까?]
[결국은.......]
[좋은 방법을 찾자니 그렇게밖에는 길이 없겠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래도 못 알아듣겠습니까?]
[못 알아듣겠습니다.]
[거짓 부형에 처한다는 뜻입니다. 부형을 집행하는 관리를 매수하여
부형에 처한 척 노애의 수염과 눈썹을 뽑아 환자(宦者: 內侍)처럼 만들면
노애를 궁중에 두어도 뒤탈이 없어집니다.]
여불위의 설명을 듣고 나서 태후는 비로소 고개를 끄덕거렸다. 드디어
노애는 태후를 섬길 수 있게 되었다. 태후는 노애와 밀통했다. 그를 맹렬히
사랑했다. 그러다가 임신하고 말았다.
[남에게 알려지면 어쩌하지요?]
태후는 노애에게 실토했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거짓 점을 치시지요. '궁을 옮겨 옹(雍:
陜西省 鳳翔縣 남쪽) 땅에서 살아야 액운을 피할 수가 있다'고
말하십시오.]
그렇게 되어서 태후와 노애는 옹 땅으로 가서 남의 이목에 구애받지 않고
살 수가 있었다. 노애는 언제나 태후를 모셨다. 그래서 태후는 노애에게
많은 상을 내렸다.
모든 일은 노애의 손에서 결제되었다. 노애 집의 사용인은 수천명에
달했다. 노애의 권세가 막강해지자 그로부터 벼슬을 얻으려는 빈객과
가신들만 해도 수천 명이 넘게 되었다.
시황제 7년에 장양왕의 생모인 하 태후가 죽었다. 정부인(正夫人)이
아니었으므로 하 태후 단독으로 두(杜: 長安의 남동)의 동쪽에 묻혔다.
그녀의 부군인 효문왕은 정부인 화양 태후와 수릉(壽陵: 長安의 북동)에
합장되었다. 아들 장양왕은 지양(芷陽: 長安의 동쪽)에 묻혔다. 하 태후가
두의 동쪽에 묻힌 것은 그렇게 유언했기 때문이었다.
[동쪽으로는 나의 아들을 서쪽으로는 나의 부군을 바라보고 싶다. 백 년
뒤에는 이 부근에 1만 호의 읍이 생길 것이다.]
시황제 9년이었다.
노애를 고발하는 자가 있었다.
[사실 노애는 환자(宦者)가 아닙니다. 오래 전부터 태후와 사통
난행하더니 두 아들까지 낳았습니다. 그것만 보더라도 그 자가 내시가
아니라는 사실이 증명되었습니다. 더욱이 그 자는 태후와 짜고 '왕이
죽으면 우리 아들을 후사로 삼자'고 큰소리쳤답니다.]
진왕은 진노했다. 관리에게 명하여 진상을 자세히 조사해 올리도록 했다.
파악된 실상으로는 상국 여불위도 노애 문제와 연결되어 있었다. 진왕은
우선 9월에 노애를 비롯하여 삼족을 멸해 버렸다. 물론 태후가 낳은 두
아들도 죽여 버렸다. 노애의 가신들은 모두 그 가산을 몰수한 뒤 촉(蜀)
땅으로 내쫓았다.
진왕(秦王: 始皇帝)은 상국 여불위까지 주살하려 했으나 선왕(先王)을
섬긴 공로가 크며 또 빈객과 논객 중에 상국을 변호하는 자가 많아 차마
처벌할 수는 없었다. 그 대신 시황제 10년 시월에 상국 여불위를 파면했다.
제나라 사람 모초(茅焦)가 태후 축출의 부당함을 들어 진왕을 설득해 옹
땅에서 수도 함양으로 다시 돌아오도록 만들었다.
진왕은 여불위를 함양에서 자기 소령(所領)인 하남으로 떠나가게 했다.
일 년쯤 뒤였다. 제후의 빈객들과 사신들이 문신후 여불위를 만나기 위해
줄을 잇고 있다는 소식을 진왕은 들었다.
[생각만 있다면 언제라도 반란을 일으킬 수 있는 세력이다.
제거해야겠다.]
염려된 진왕은 문신후에게 이런 편지를 내려보냈다.
- 그대는 진나라에 어떤 공로가 있기에 하남에 봉을 받아 10만 호의
식읍(食邑)을 차지하고 앉았소? 거기에다 그대는 진나라와 또 어떤
혈연이라도 지어졌기에 중보라는 과분한 칭호를 받고 있는 거요?
과인으로서는 이해할 길이 없소. 그러니 그대는 즉시 가족과 함께
촉(蜀)으로 옮겨 가서 사시오.
여불위는 속으로 짐작했다. 자신의 권세가 점점 침범되어 쇠잔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했다.
[결국은 내 아들의 손에 주살될 것인가......!]
여불위는 마침내 스스로 짐독(짐毒: 짐새〔짐〕의 毒, 혹은 毒酒)을
마시고 죽었다. 진왕은 촉으로 내쫓았던 노애의 가신들을 다시 함양으로
돌아 오게 했다. 시황제 19년에 태후가 죽었다. 시호를 제태후(帝太后)라
칭하고, 장양왕과 함께 채양(채陽: 芷陽)에 합장했다.
나 태사공은 이렇게 생각한다. 여불위와 노애는 존귀하게 되어 봉을
받았고, 더구나 여불위는 문신후로 불려졌다. 노애가 내시가 아니라고
고발되었을 때 물론 노애도 그 소문을 들었다. 진왕은 좌우 신하들에게
확실한 물증을 수집해 오도록 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아직 그 사건 발표는
보류되고 있었다. 그 때 진왕은 옹 땅으로 가서 교사(郊祀: 교외에서
천자가 하늘에 제사지내는 일)를 지내려 했다.
노애는 왕이 자신을 주벌하러 오는 줄 알고 화 입을 것이 두려워 자기
무리들과 공모해서는 반란의 채비를 했다. 태후의 옥새를 도용해 옹의
기년궁(기年宮)에서 군사를 일으킨 것이다. 격노한 진왕은 즉시 친위대를
보내 노애를 공격했다. 노애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도망쳤다.
왕의 친위대는 끝까지 노애를 추적했다. 드디어 호치(好치: 陜西省 乾縣
동쪽)에서 그를 잡아 목 베고, 그의 일족도 몰살시켰다. 여불위도 그
사건으로 인하여 몰락했었다. 공자의 이른바 문(聞: 표면으로는 그럴
듯하게 들리나 내용은 부정한 인간)이라는 뜻은 여불위와 같은 사람을
지칭한 것이 아닐까.
@
26. 자객열전 刺客列傳
조말(曹沫)의 비수(匕首)로 노나라는 잃었던 영토를 회복하고 제나라는
맹약에 거짓이 없다는 것을 밝혔다. 예양(豫讓)의 의로움은 두 마음을 품지
않았다. 그래서 제26에 <자객열전>을 서술했다. <太史公自序>
조말(曹沫)은 노나라 사람이다. 용기와 담력으로 노의 장공(莊公: B.C.
693-662 在位)을 섬겼다. 장공은 용사를 좋아했다. 조말은 노나라 장군이
되어 제나라와 싸웠으나 워낙 작은 나라인데다 중과 부적으로 세 번 사력을
다했지만 모두 패했다.
노나라 장공이 두려워하여 이에 수읍(遂邑: 山東省 寧陽縣 북서)의 땅을
바치고 제나라와 화친했다. 제나라 환공(桓公)은 노나라 장공과 가(柯:
山東省 東阿縣 서쪽)에서 회맹할 것을 요구했다.
[누가 과인과 동행하겠소?]
장공이 둘러보자 조말이 앞으로 썩 나섰다.
[소신이 모시겠습니다.]
환공과 장공이 단상(壇上)에서 화친의 맹세를 하고 있었다. 환공은
강대국의 군주라 글 거만함이란 말할 수가 없었다. 말이 화친의 맹세이지
실상은 군주와 신하 사이의 모양세였다. 장공에 대한 환공의 위협이
계속되고 있을 즈음이었다. 순간 조말이 단상으로 뛰어오르고 있었다.
[앗!]
모두가 비명을 지르고 있을 때 이미 조말의 품 속으로부터 빠져 나온
단검이 환공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누구라도 가까이 오기만 하면 조말의
비수가 날카롭게 움직일 것 같은 절대 절명의 순간이었다. 그래서 피차간에
아무도 조말을 말릴 수가 없었다. 역시 환공은 대국의 군주였다.
[그래서 그대는 나를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제 말씀만 들어 주시면 됩니다.]
[어떤 요구인가?]
[제나라는 강대하고 노나라는 약소국입니다. 대국인 제나라가 노나라에
대하여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무얼?]
[노나라의 성벽이 무너지기만 하면 제나라 땅으로 떨어질 만큼 제나라
군사가 국경에 바짝 붙어 있습니다.]
[우선 비수를 치우게.]
[싫습니다.]
[그래서 나보고 어쩌란 말이냐?]
[말씀드린 점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숙고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기왕에 빼앗은 노나라 땅을 돌려 주면 되겠는가?]
[다시 한 번 크게 말씀해 주십시오.]
[기왕에 빼앗은 노나라 땅을 돌려 주면 되겠는가!]
[그렇게만 하신다면 화친의 맹세는 유효합니다. 저는 그렇게 믿고 단하로
내려가겠습니다.]
환공이 선언이 끝나자 조말은 비수를 던져 버리고 단에서 내려와
뭇신하들의 위치로 돌아가 조용히 북면(北面)하여 앉았다. 낯빛은 변함이
없었다. 조금 전 그런 엄청난 사건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아무도 모를
정도로 가만히 자기 자리로 가서 앉아 있었다. 그렇지만 환공의 생각은
달랐다. 비수가 목을 바짝 겨누고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빼앗은 땅을
돌려 준다는 식으로 말해 버린 상태였다.
[저자를 죽이게!]
환공이 신음처럼 내뱉었다. 몇 명의 칼잡이들이 칼을 뽑았으나
관중(管仲)이 한 발 먼저 나서서 손을 내저었다.
[자네들은 가만히 제자리로 가서 지키고 있게.]
제나라의 칼잡이들이 물러가자 환공이 관중에게 말했다.
[무슨 얘기요! 어쩔 수 없는 상태에서 내뱉은 거짓 약속이 아니었겠소?]
[안 됩니다. 그렇더라도 천하에 외친 약속이니 지키십시오.]
[무어라고?]
[소리(小利)를 탐내어 스스로 만족하신다면 천하 제후들에게 신의를
잃습니다. 분노에 얽매이지 마시고 크게 생각하십시오. 차라리 약속대로
땅을 주어 버리는 게 훨씬 유익합니다.]
환공은 관중의 말 뜻을 이해했다. 그래서 빼앗은 노나라 땅을 흔쾌히
모두 돌려 주었다. 조말은 세 번 싸워 잃었던 노나라 땅을 한 순간에
되찾았다. 그로부터 167년이 지났을 때 오나라에서 전저(專저)의 사건이
일어났다.
전저는 오나라 당읍(堂邑: 江蘇省 六合縣 북쪽) 사람이다. 오자서가
초나라에서 도망해 오나라로 갔을 때 만난 사람인데 그는 첫 눈에 전저가
유능한 인물임을 알아차렸다. 그렇지만 전저는 크게 등용되지 못하고
있었다.
우선 오자서는 오왕 요(僚: B.C. 526-515 在位)를 만나 초나라를 쳤을
때의 유리한 점을 역설했다. 요는 오자서의 말을 듣고 초나라를 치려고
했으나 공자 광(光)이 반대하고 나섰다.
[오원(伍員: 子胥)의 말을 듣지 마십시오.]
[어째서 그런가?]
[오자서의 부친과 형이 모두 초나라에서 피살되었습니다. 그의 설득이
모두 그럴 듯하다 치더라도 실상은 자신의 사사로운 원수를 갚으려 하는
것이지 오나라를 위해서 올리는 계책은 아닌 듯 합니다.]
[그런가?]
그래서 요는 초나라를 치는 일을 그만두었다. 오자서로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오나라의 국내 형편을 살펴보니 정세가 기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즉, 공자 광이 오왕 요를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알아챈 것이다.
[그렇구나. 그렇다면 아직은 대외 문제를 설득할 때가 아니지. 참고
기다리며 두고 볼 일이다.]
그런 다음 오자서는 우선 공자 광에게 전저를 추천했다. 한편 광의
부친은 오왕 제번(諸樊: B.C. 560-548 在位)인데 제번에게는 세 아우가
있었다. 첫 아우가 여채(餘채: B.C. 547-544 在位)라 했고, 다음 아우가
이말(夷말: B.C. 543-527 在位)이었으며, 막내 아우가 계자찰(季子札:
季子는 末子를 말함)이었다.
제번은 아우들 중에서 특히 계자찰이 현명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태자를 세우지 않고 순서대로 아우들에게 왕위를 전한 뒤 마지막으로
계자찰에게 왕위가 계승되도록 조처했다. 그렇게 되어 제번이 죽은 뒤
왕위는 여채에게 돌아갔으며 여채가 죽자 이말에게 왕위가 돌아갔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다. 계자찰이 왕위를 계승하지 않으려고
멀리 도망치고 말았던 것이다. 오나라에서는 별수 없었다. 고르고 골라
왕위는 이말의 아들 요에게 돌아간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되자 제번의 아들
공자 광은 은근히 불평을 품게 되었다.
[형제의 순서대로라면 왕위는 당연히 계자에게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그
순서가 이미 깨어져 버린 이상 왕위는 선대 왕의 아들인 나에게 돌아와야
할 게 아닌가. 진짜 적사(嫡嗣)는 나밖에 없지 않은가.]
그래서 광은 오래 전부터 큰 일을 차곡차곡 준비했다. 우선 지모 있는
신하들을 양성해 수하에 두었다. 바로 전저가 수하들 중의 하나였다. 광은
전저를 빈객으로 잘 대우해 주었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나서였다.
초나라에서는 평왕(平王)이 죽었다.
[좋은 기회다. 초의 국상(國喪)을 틈타 쓸어 엎는다.]
오왕 요는 두 아우인 공자 개여(蓋餘)와 촉용(촉庸)을 시켜 병사를
이끌고 가 초의 첨(첨: 安徽省 곽山縣 북동)을 포위하게 했다. 그리고
연릉(延陵: 江蘇省 武進縣)의 성주(城主)로 만족하고 있던 계자찰을 사자로
진(晋)에 파견해 제후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도록 했다. 초나라에서도 물론
군사를 출동시켰다. 그래서 오의 장군 개여와 촉용의 퇴로를 막아 버렸다.
일이 그렇게 되자 오군은 귀환할 수가 없게 되었다.
[절호의 기회인 것 같소. 왕위도 얻고자 해야 내 것이 되는 게 아니겠소?
왕의 진짜 후사로서의 명분이 내게는 있소. 설사 계자가 돌아온다 해도
이제 와서 기득권을 행사할 순 없을 게요.]
공자 광이 전저에게 의향을 타진하자 전저 역시 광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요를 죽이는 일이 그토록 어렵지는 않을 것입니다. 모친은 노쇠하고 그
아들은 유약하며 듬직하다는 두 아우는 병사를 이끌고 초나라로 나가 버린
데다 그 퇴로까지 차단했으니까요. 좋은 기회라 생각합니다. 더구나
오나라는 바깥으로 초에게 괴로움을 당하고 있고 안으로는 병력조차 텅
비어 있는 데다 왕의 수하에는 강직한 신하 역시 없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에게 매우 유리한 기회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왕에게 어떻게 접근하지요?]
[술자리를 마련해서 그를 초청하십시오. 거사의 세밀한 계책은 제가
마련하겠습니다.]
[고맙소. 내 몸이 곧 그대의 몸이오.]
4월 병자일(丙子日)이었다.
[심상치가 않습니다. 주연에 초청돼 가시는 일을 다시 한 번
고려하십시오.]
신하 하나가 요에게 간청했다.
[걱정할 거 없소이다. 과인도 벌써부터 공자 광의 의도를 읽었소. 그래서
짐짓 나를 해치는 기회를 주는 척해서 오히려 이쪽에서 그를 처치하는
기회를 삼고자 하오.]
[그렇지만 불안합니다.]
[군대를 왕궁에서부터 시작해 광의 집까지 두 줄로 진치게 하면 설사 그
자가 어떤 생각을 품었더라도 질린 나머지 거사는 못 할 게 뻔하오. 더구나
광의 집 문과 계단 좌우에까지 내 친척들로 꽉 채울 작정이오. 그런 후
적당한 트집을 잡아 삽시에 광을 처치할 작정이오.]
초청연은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험상궂은 칼잡이들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듯 눈알을 부라리며 오왕 요를 술상 주위에서까지 경호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를 해칠 수 있는 틈이라고는 도무지 없었다. 그렇지만
공자 광도 계획을 변경시킬 수가 없었다. 어차피 위험을 감지한 이상
애초의 계획대로 모험을 감행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었다.
주연이 무르익어 갔다. 광은 손님 사이를 요란하게 움직이며 다니다가
일부러 실수한 척 넘어졌다.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발이 삔 것 같으니 금세 치료하고
돌아오겠습니다.]
그런 후 광은 지하실로 내려갔다. 거기에는 날렵한 무장병들과 전저가
숨어 있었다. 광이 전저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전저도 광에게 알았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인 다음 무장병들에게 말했다.
[자네들은 내가 연회장에 도착했을 것 같다고 짐작되는 순간부터 속으로
열을 센 뒤 달려나오게. 그리고 닥치는 대로 베어 버리게!]
전저는 주방에서 일하는 광의 집 사인 차림으로 쟁반에 큰 생선 요리를
든 채 요 앞으로 다가섰다. 아무도 그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왕
앞으로 접근한 전저는 물고기 뱃속에 숨겨 둔 비수를 전광 석화처럼 뺏어
들었다.
[앗!]
왕이 비명을 지르는 순간 전저는 비수를 왕의 심장에다 꽂았다. 눈
깜짝할 순간이었다. 오왕 요는 즉사했다. 왕의 칼잡이들도 만만찮았다.
왕이 살해되는 간발의 차로 장검을 휘둘러 전저의 목을 쳤다.
연회장은 금세 혼란에 빠졌다. 그 때를 놓치지 않고 지하실에 숨어 있던
무장병들이 달려나와 왕의 군사들과 신하들과 친척들을 닥치는 대로
베었다. 요왕 일파들은 한 명도 남지 않고 몰살되었다. 그런 후 공자 광은
스스로 즉위하여 왕이 되었다. 그가 바로 합려(闔閭)이다. 합려는 진저의
아들을 봉하여 상경(上卿)으로 삼았다. 그 후 70여 년이 지나고
진(晋)나라에서 예양(豫讓)의 사건이 일어났다.
예양은 진(晋)나라 사람이다. 본래는 범씨(范氏)와 중행씨(中行氏: 모두
晋의 卿)를 섬겼으나 인정받지 못하자 거기서 떠나 지백(智伯: 晋의 卿)을
섬겼다. 그런데 지백은 예양을 유달리 존중하고 총우(寵遇)했다. 그런데
진나라 경(卿)들끼리 분쟁이 일어났다. 지백이 조양자(趙襄子)를 치자
조양자는 한씨(韓氏: 康子)와 위씨(魏氏: 桓子, 모두 晋의 卿) 등과 힘을
합해 지백을 멸망시켰다.
그들은 지백의 자손까지 절멸시킨 뒤 지백의 영토를 삼분(三分: 나중에
각 姓氏로 독립하여 趙.韓.魏 즉 三晋이 되었다)했다. 조양자는 그래
놓고도 지백에 대하여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그의 두개골에
옻칠을 해서 술잔으로 사용하기까지 했다. 지백의 가신인 예양도 온전할
수가 없었으므로 산중으로 도망했다. 그러면서 혼자말로 탄식했다.
[아아, 선비는 자기를 알아 주는 사람을 위하여 죽고, 여자는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하여 화장한다. 지백은 나를 알아 주었으니 반드시 나는
지백의 원수를 갚고 죽겠다. 그렇게 지백에게 보답한다면 나의 혼백은
부끄럽지 않겠지.]
그 때부터 예양은 이름을 바꾸고 죄수처럼 가장해 다녔다. 그러다가
조양자의 궁중으로 들어가 뒷간의 벽을 바르는 일을 맡게 되었다. 언제나
품 속에 비수를 품고 다녔다. 기회가 오면 조양자를 찔러 죽이기
위해서였다. 하루는 조양자가 뒷간으로 가는데 웬일인지 가슴이 몹시
두근거렸다.
[수상하다! 누군가 나를 해치려는 자가 있다!]
조양자는 뒷간에서 벽을 바르고 있는 자를 붙잡아 심문했다. 과연 그는
예양이었고 가슴 속에는 단도가 숨겨져 있었다.
[내 그대에게 무슨 원수진 일이 있기에 이러는가?]
[지백을 위해 원수 갚으려 했을 뿐이다.]
[무어?]
좌우의 부하들이 예양을 베어 죽이려고 했다.
[가만! 그냥 두어라. 그는 의로운 사람이다. 지백은 죽고 그의 후손조차
없는데도 그의 신하가 원수를 갚아 주려 하니 그야말로 천하의 의인
아닌가. 그대로 살려 보내라. 내가 그를 조심하여 피하면 된다.]
그래서 예양을 석방했다. 예양은 이번에는 온 몸에다 옻칠을 해서는
문둥이처럼 하고 다녔다. 시장 바닥을 돌아다니며 거지 노릇을 했다. 그의
아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런데 그의 벗이 우연히 그를 알아보았다.
[예양이 틀림없지?]
[용케 알아보는군.]
벗은 눈물을 흘리면서 예양에게 충고했다.
[그대만한 재능을 가진 자가 신하로서의 예를 갖추고 조양자를 섬긴다면
그는 반드시 그대를 가까이 두며 총우할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소원
성취할 기회가 훨씬 쉽게 올 텐데. 하필 상처 입어 변한 모습으로 어렵게
양자에게 보복하려드니 이건 어리석은 방법일세.]
[그렇지가 않네. 물론 내가 선택한 방법이 어렵다는 건 아네. 그렇지만
이미 신하의 예를 갖추고 사람을 섬기면서 한편으로 그를 죽이고자 하는
일은 두 마음을 품고 주군을 섬기는 일과 같네. 그래서 굳이 복수를 어렵게
하려는 이유는 후세에 사람의 신하로서 두 마음을 품고 그 주군을 섬기는
자를 부끄럽게 하기 위해서일세.]
그러면서 예양은 친구 곁을 떠나갔다. 얼마 후 조양자가 다시 외출을
했는데 다리에 다다르자 수레를 끌던 말이 몹시 놀라며 지나가지 않으려
했다.
[다리 밑을 뒤져 보아라. 누군가가 있다!]
과연 거지 하나가 잡혀 나오고 그의 몸에서 비수까지 나왔다.
[그대는 예양이 틀림없겠다!]
[운이 없어 오늘도 그대를 죽이지 못하는구나!]
[세상에 이럴 수가 있는가! 그대는 전날 분명히 범씨와 중행씨를
섬겼었지?]
[그랬었다.]
[지백이 그들을 모조리 멸망시켰는데도 그대는 그들 둘을 위해 원수를
갚기는커녕 오히려 지백에게 신하의 예를 갖추어 그를 섬기지 않았는가.]
[그대로이다.]
[그대의 짓거리가 모순되지 않는가. 지백 또한 이미 죽었는데 굳이
그대가 지백을 위해서만 원수 갚으려 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분명 나는 범씨와 중행씨를 섬겼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평범한
인간으로 대접했다. 그래서 나도 그들에게 보통 인간으로 보답했을 뿐이다.
그러나 지백은 나를 국사(國士: 한 나라에서 특별히 높이는 우수한 선비)로
대우했다. 그래서 나는 국사로서 그를 보답하고자 하는 바이다.]
[아아, 예자(豫子)여. 그대가 지백을 위해 충절을 다했다는 명예는 이미
얻었다. 그리고 과인이 그대를 용서하는 일도 한계에 이르렀다. 어쩌겠나.
과인은 이번에야말로 그대를 놓아 보낼 수가 없는 걸.]
그러면서 병사들을 시켜 예양을 포박하게 했다. 그러자 예양은 공손하게
꿇어앉으며 부탁했다.
[제가 듣기로는 '명군은 남의 아름다움을 덮지 않으며, 충신은
명절(名節)에 죽는 의리를 잊지 않는다'고 했소이다. 전날 주군께서 저를
너그러이 용서하여 천하의 현군임을 칭찬하지 않는 자가 없었소이다. 물론
오늘 저는 죽음을 혼쾌히 감당하겠습니다. 그러나 제발 주군의 의복 한
벌만 제게 내려 주십시오.]
[그건 가져서 무얼 하게?]
[옷이라도 베어 원수를 갚는 뜻을 이루고자 합니다. 감히 바랄 바가 못
되는 줄 알면서도 제 심중의 말을 털어놓는 것입니다.]
[그대의 생각이 옳다.]
그래서 조양자는 사자를 시켜 자신의 옷 한 벌을 가져다 예양에게 주게
했다. 예양은 양자의 옷을 향해 칼을 들고 세 차례씩이나 뛰어오르며
내질렀다.
[이제는 속이 시원한가?]
[이로써 지하에 잠든 지백께 아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후 예양은 자신의 비수에 엎드려 자살했다. 예양이 죽던 날
조나라의 뜻있는 인사들이 그 일을 전해 듣고 모두 그를 위해서 울었다. 그
후 40여 년이 지나 지(지: 河南省 齊源縣 남쪽) 땅에서 섭정(섭政)의
사건이 일어났다.
섭정은 지 땅 심정리(深井里) 출신이다. 사람을 죽이고 그 원수를 피해
모친과 누님과 함께 제나라로 가서 백정 노릇을 하며 살았다. 복양(복陽:
山東省 복陽 동쪽)의 엄중자(嚴仲子)가 한(韓)나라 애후(哀侯: B.C.
376-371 在位)를 섬기다가 한의 재상 겹루(겹累)와 사이가 나빠졌다.
엄중자는 주살될 것이 두려워 도망쳤다. 그리하여 천하를 돌아다니며 대신
원수 갚아 줄 인물을 물색했다. 제나라에 이르렀을 때였다. 어떤 사람이
엄중자에게 섭정을 귀띔했다.
[섭정이라는 용감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 한번 부탁해
보시지요. 그는 지금 원수를 피해 백정들 사이에 숨어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엄중자는 섭정의 집으로 찾아가 교제를 청했다. 그 후 여러 차례
오가면서 친하게 지냈다. 어느 날 엄중자는 주연을 베풀어 황금 백
일(百鎰: 약 38킬로그램)을 받들고 술잔을 섭정의 모친에게 올려 축수했다.
섭정은 깜짝 놀랐다. 너무도 예물이 후했다. 이상한 생각도 든 것이다.
[사양하겠습니다. 비록 가난해 객지로 떠돌면서 개백정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만 조석으로 어머니께 달고 부드러운 음식을 봉양할 정도는
됩니다. 구태여 당신의 선물은 받지 않아도 됩니다.]
그제서야 엄중자는 사람을 물리친 뒤 정색을 하고 말했다.
[실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한테는 원수가 하나 있습니다. 그 원수를
갚아 줄 인물을 찾아 여러 나라로 돌아다니다가 제나라에 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여기 와서 당신의 의기가 매우 높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백금을 바쳐 어머님의 음식 비용에나 쓰시게 해서
당신과 사귀려고 했던 것입니다. 다른 뜻은 없습니다.]
[감지되는 바가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뜻을 낮추고 몸을 숙여 시장
바닥에서 백정 노릇을 하는 이유는 오로지 노모를 봉양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노모가 계시는 한 제 몸을 남에게 바칠 수는 없습니다.]
[바로 그런 효성이 저를 감동시킨 것입니다. 부담 느끼지 마시고 받아
주십시오.]
[아닙니다. 성의는 고맙지만 받을 수는 없습니다.]
섭정은 한사코 예물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엄중자와의 예를 다한
교제에는 변함이 없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서 섭정의 모친이 죽었다. 이미
장례도 치렀고 상복도 벗었다. 그제서야 섭정은 전날 엄중자와의 일을
생각했다.
[나는 일개 시정 잡배처럼 칼을 휘둘러 개.돼지 도살이나 하고 살아가는
보잘것 없는 몸이다. 그런데 엄중자는 제후의 경상(卿相) 신분으로
천릿길도 멀다 않고 수레 몰아 찾아와 나 같은 사람과 사귀었다. 비록
받아들이진 않았지만 백금을 들어 어머니의 장수까지 축복해 주셨다.
그런데도 나는 그를 위해 해 준 일이 아무것도 없다. 엄중자 같은 현인이
격분하여 원수를 쏘아보면서 궁벽한 촌놈인 나를 친밀하게 신뢰해
주었는데도 말이다. 전날 엄중자가 내 몸을 요구했을 때는 노모가 살아
계셔서 그것을 사양했으나 이제는 나를 알아 준 그 분을 위해 무언가를
나서 볼 일이다.]
섭정은 단신 서쪽 복양으로 가서 엄중자를 만나 말했다.
[이제는 홀가분한 몸입니다. 당신의 원수가 누구인지 말씀해 주시지요.]
[내 원수는 한나라 재상 겹루입니다. 그는 왕의 숙부이기도 하며 일족의
세력들이 강대하고 숫자도 많아 접근할 수가 없습니다. 거처 역시 엄중
호위되고 있지요. 내가 사람을 시켜 겹루를 척살(刺殺)하려 여러 번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만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당신이 다행히 나를
버리지 않고 찾아와 주었으니 거사가 성공될 수 있도록 가급적 많은
거기(車騎)와 장사(壯士)들을 동원하겠습니다.]
[아닙니다. 한나라 국도 양책(陽책: 河南省)은 이 곳 위(衛)나라 수도
복양에서는 별로 멀지 않습니다. 더구나 왕의 숙부인 재상을 죽이려는데
그런 요란스런 행차는 오히려 일을 어렵게만 만들 뿐입니다. 많은 인원을
사용하다 보면 생포되는 자가 생길 것이고 생포되면 그 입에서 배후자가
누설되게 마련입니다. 그럴 경우 한나라 전체가 당신을 원수로 볼 테니
위험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거기와 장사들을 모두 사양한 섭정은 지팡이 속에다 칼을 숨긴 채 단신
한나라로 떠났다. 한나라 재상 겹루는 마침 관부(官府)의 당상에 앉아
있었다. 주위에는 수많은 호위병이 눈을 빛내며 늘어서 있었다.
[이런 때일수록 무심한 척 접근해야 한다.]
섭정은 겹루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무어냐!]
[감히 드릴 말씀이 있어 왔습니다. 주위에 사람을 물리쳐 주십시오.]
[내가 네 놈을 어떻게 믿고 사람을 물리쳐.]
[그렇다면 믿도록 해 드리지요. 이렇게!]
[악!]
섭정은 지팡이 속에서 칼을 빼면서 그대로 겹루를 베어 버렸다. 눈
깜짝할 사이였다. 그래서 수많은 호위병들도 손쓸 새가 없었다. 겹루는
쓰러지고, 칼을 빼든 호위병들이 왁작 달려왔다. 섭정은 소리치며 다가오는
수십 인의 호위병들을 쳐 죽였다. 중과 부적이었다. 도망칠 틈 역시
보이지가 않았다.
섭정은 그 혼란의 틈새에게 칼로 이마를 그어 자신의 낯가죽을 벗겨
버렸다. 두 눈까지 도려낸 뒤 삽시에 배를 갈라 창자를 끄집어 내고는 죽어
버렸다. 그러니 그의 정체를 알아낼 수가 없었다. 그럴수록 한나라에서는
살인자의 정체를 알려고 혈안이 되었다.
- 재상 겹루를 살해한 자의 정체를 알려 주는 자에게는 천 금을
내리리라.
시체를 시장 바닥에 드러내 놓고 상금을 걸어 포고문을 띄워도 누구 하나
신원을 알려 주는 사람이 없었다. 섭정의 누나가 섭영(섭榮)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살인자의 시체가 한나라 시장 바닥에 방치 되어 있다는 소문을
섭영은 들었다.
[틀림없이 그는 내 동생일 것이다. 엄중자가 과연 내 동생을 알아
주었구나!]
섭영은 곧바로 한의 시장 바닥으로 갔다. 죽은 자를 보니 과연 동생
섭정이었다. 섭영은 죽은 동생의 시체 위에 엎드려 슬피 울며 말했다.
[이 사람은 지 땅 심정리의 섭정이라는 사람입니다.]
시장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아니, 당신 지금 정신 있소? 이 자의 정체를 알려고 천 금을 걸어 찾고
있는데 당신은 지금 겁도 없이 이 자를 잘 안다고 하고 있으니!]
[물론 그 얘기는 들었습니다. 내 동생 섭정이 시장 바닥에다 오욕을
무릅쓰고 몸을 굴린 것은 늙으신 어머니와 시집 가지 않은 누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어머니가 천수를 다 누리고 돌아가신 데다 저도
시집을 갔습니다. 엄중자는 동생의 인물됨을 통찰하여 곤궁하고 오욕스런
환경에 살고 있는데도 개의치 않고 교제해 주셨으니 그 은택이 도타웠다고
하겠습니다.
선비는 자기를 알아 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고 하지 않던가요.
그 동생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스스로 만든 것은 아직도 살아 있는
누나를 생각해서이지요. 연좌되지 않도록 배려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찌
제가 사형이 두려워 아름다운 동생의 이름을 숨기는 일을 하겠습니까.]
시장 사람들은 섭영의 말에 더욱 놀랐다. 그녀는 하늘을 우러러 가슴이
터지도록 세 차례 슬피 소리 지르더니 섭정의 옆에서 피를 토하고 죽었다.
진(晋)나라, 초나라, 제나라, 위(衛)나라에도 이 소문이 퍼져 나갔다.
[섭정만이 위대한 것이 아니라 그 누님 또한 열녀로구나! 만약에 섭정이
참으로 자기 누나가 참고 견디는 성격이 아니고 시체가 아우임을 폭로하는
두려움도 생기지 않고 천릿길을 달려와 이름을 나란히 하여 함께 시장
바닥에서 죽게 될 것을 알았다면 아무리 섭정이라도 엄중자에게 몸을
허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엄중자는 사람 알아보는 안목이 있어 그런
용사의 마음을 잘 사로잡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 후 220여 년이 지나 진(秦)에서는 형가(荊軻)의 사건이 일어났다.
형가라는 인물은 위(衛)나라 출신이다. 그의 조상은 제(齊)나라
사람이었으나 형가 때 위나라로 이주해 왔다. 위나라 사람들은 형가를
경경(慶卿)이라 불렀다. 그 후 또 연(燕)나라로 갔더니 사람들이 그를
형경(荊卿)이라 불렀던 것이다. 형가는 학문이 길고 격검도 좋아한 문무
겸전의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의 재주를 가지고 위나라 원군(元君: B.C. 251-230 在位)에게
유세했으나 등용되지 못했다. 그 뒤에 진나라가 위(魏)를 쳐서
동군(東郡)을 두고 원군 일족을 야왕(野王: 河南省 派陽縣) 땅으로 옮겨
살게 하고 있었다. 형가가 일찍이 떠돌아다니다가 유차(楡次)를 지날 때
갑섭(蓋섭)이라는 검객과 검술에 대한 논쟁이 붙었다.
[이놈아, 그걸 검술이라고 떠들어? 네가 그토록 칼 쓰는 재주가 있다면
어디 나한테 한 번 대들어 보시지!]
갑섭이 화를 펄펄 내자 형가는 맞상대하기는커녕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나
버렸다. 갑섭의 친구가 달랬다.
[형가의 검술 이론도 일리는 있다네. 공연히 화를 내서 그를 쫓아 보낼
게 뭐람.]
[그놈은 겁쟁이일세.]
[어째서?]
[엉터리 이론에 떠벌리기만 하고 실상은 실력도 없다네.]
[들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대목도 있던데.]
[그렇게 생각되더라도 때는 이미 늦었어. 그 자는 영영 가 버렸다니까.]
[어디루?]
[좌우지간 멀리.]
[설마.]
[전에도 그 자와 검술을 논하다가 얼토당토 않은 이론을 전개하길래
노려보며 화를 냈더니 슬그머니 도망쳐 버리더군.]
[이상한 사람일세.]
그래도 혹시나 해서 사람을 시켜 다시 불러 오게 했더니 역시 그는
수레를 몰아 떠나 버렸다는 것이었다.
[정작 이상한 인물이네!]
형가가 한단에서도 검객 노구천(魯句踐)과 장기를 두며 놀다가 한 수
물러 달라 안 된다 하며 다투게 되었다. 역시 노구천이 화를 내며 장기판을
뒤집어 엎자 형가는 내색도 없이 조용히 일어나 도망쳐 버렸다.
[참으로 속셈을 알 수 없는 인물일세.]
그 뒤 형가는 연나라로 가서 축(筑: 비파 비슷한 竹製樂器)을 기막히게
잘 타는 개백정 고점리(高漸離)와 어울렸다. 어쩐지 죽이 맞았던 것이다.
술을 좋아하는 형가는 날마다 시장 바닥에서 술을 마시며 고점리와
겔겔거렸다.
술이 얼큰해지면 고점리가 타는 축의 장단에 맞추어 시장 복판에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서로 즐기며 떠들며 엉엉 울기도 하면서 옆에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처럼 제멋대로 굴었다.
그렇지만 인물이 인물을 알아보듯이 많은 현인과 호걸 장자(長者)들이
그를 잘 대우했다. 비록 떠돌이지만 형가의 침착한 성품과 학문의 깊이를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연나라의 처사(處士: 在野人士) 전광(田光)이
형가가 보통 인물이 아닌 것을 알고 유달리 우대하였다.
때마침 연나라 태자 단(丹)이 진나라에 인질로 잡혀 있다가 도망쳐
연나라로 돌아와 있었다. 일찍이 태자 단이 조나라에 인질로 가 있을 때
진왕 정(政)도 조나라에서 태어나 자라고 있었기 때문에 소꿉친구로 단과는
아주 친한 사이였다.
그런데 정이 진나라 왕으로 즉위하자 태자 단이 진나라에 인질로 가게
되었다. 자청한 것이었다. 강국 진나라의 왕으로 등극한 친구에게 과거의
정분을 내세워 연나라를 보호하려는 계략이었던 셈이었다.
그런데 그런 단의 계산은 전연 잘못이었다. 진왕은 단에 대하여 안면을
완전히 바꾸고 있었다.
[과거에 친구라고 해서 국익을 외면할 수는 없지 않은가.]
진왕의 선언이었다.
[의리를 배신하는 자는 금수와 같다. 난 그대를 전에 홀대한 일이 없거늘
연나라가 작고 힘이 없다 하여 이토록 구박하고 위협까지 하는가. 어디
두고 보자. 이 원수는 반드시 갚으리라!]
생명의 위험까지 느낀 단은 즉시에 진나라로부터 도망쳐 나왔던 바였다.
[저토록 탐욕스러운 자는 살려 두어서는 안 된다. 나를 적으로 본다면 나
역시 네 놈을 친구로 생각지 않으리!]
단은 원수 갚을 길을 곰곰 모색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면으로
맞서기에는 역부족임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그러나 생각뿐이었지 실행할 방법은 없었다. 진나라는 야금야금 천하를
먹어 들어오고 있었다. 산동(山動)에 출병하여 제나라 초나라 삼진(三晋)을
잠식했다. 기어코 연나라에 접하게 되었다.
연나라 왕과 신하들은 곧 미칠 화(禍)를 두려워하여 전전 긍긍했다.
태자 단도 걱정이 되어 태부(太傅)인 국무(鞠武)에게 물었다.
[진나라를 먼저 뒤집어 엎을 방도는 없겠소?]
[어림없습니다. 진나라는 한나라 위나라 조나라까지 위협하고 있습니다.
북으로는 감천산(甘泉山: 陜西省 渟化縣 북서)과 곡구(谷口: 陜西消 涇陽縣
북서)의 험한 요새를 끼고 있습니다. 남으로는 경수(涇水)와 위수(渭水)
육역의 비옥한 땅을 안고 있는 데다가 파(巴)와 한중(漢中)의 풍요로움까지
독차지했습니다.
우측에는 농(농: 甘肅省의 남동).촉(蜀)의 산악 지대와 왼쪽의 험준한
함곡관과 효산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백성은 많고 용사는 사나우며 무기와
장비 역시 넉넉합니다. 진나라가 쳐들어올 생각만 있다면 우리
장성(長城)의 남쪽, 역수(易水)의 북쪽 땅 연나라쯤은 삽시에 무너집니다.
어찌 태자께서 한때 능멸을 당했다 하여 진왕의 역린(逆鱗)을 건드리려
하십니까. 불안한 대로 태자께서는 진왕과 정의(情誼)를 유지하고 있으니
한때의 원한은 푸십시오.]
[정작 원수 갚을 방법이 없겠단 말이오?]
공교롭게도 얼마 뒤 진나라 장군 번오기(樊於期)가 진왕에게 죄를 짓고
연나라로 망명해 왔다. 태자는 그를 반겨 정중히 대접하였다. 국무가 다시
간했다.
[아니 되십니다, 태자. 저 포악한 진왕이 연나라에 대해 쌓을 분노를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집니다. 지명 수배된 번 장군이 연나라에 숨어 잘
대접받고 있다는 소문이 진왕의 귀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굶주린
호랑이가 나다니는 길목에다 고기를 던져둔 것과 같은 격이 아니겠습니까?
화를 자초하는 조처입니다. 비록 관중(管仲)과 안영(晏영)이 살아 있더라도
이것만은 대책을 세울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게 최선이겠소?]
[태자께서는 한시바삐 번 장군을 흉노 땅으로 보내십시오.]
[흉노 땅으로?]
[진나라에게 트집잡힐 일을 해서는 아니 됩니다. 청컨대 서쪽으로
삼진(三晋)과 맹약을 맺고 남쪽으로는 제나라.초나라와 연합하여
북쪽으로는 흉노의 추장 선우(單于: 흉노의 王)와 강화하십시오. 그런
뒤에야 비로소 진나라에 대한 대책을 세울 수가 있게 됩니다.]
[나라의 존립이 풍전 등화 같고 내 심정 역시 울울 분기하여 잠시도
머뭇거릴 수가 없소. 태부의 계책은 너무 오랜 시일이 걸릴 뿐 아니라 그런
책략이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소. 더구나 번 장군은 천하에 한 몸 둘 곳이
없어 나한테 몸을 맡겨 온 사람이오.
내가 강한 진나라한테 협박을 받는다고 해서 애련한 교정(交情)을 저버려
그를 흉노 땅에다 내몰 수야 있겠소. 그것은 인간으로 차마 할 수 없는
처사요. 내 운명이 다하는 날에나 그렇게 될 것이니 태부는 더 이상 말을
꺼내지 마오.]
[위태로운 일을 하면서 편안함을 찾고 화를 만들면서 복을 구한다면 결국
계책은 얕아지고 원망은 깊어 갈 뿐입니다. 뒷전으로 미뤄야 할 사람과
교제에 얽매어 국가의 커다란 피해를 돌보지 않는다면 상대의 원한을
돋우고 자기의 재앙을 조장하는 격이 되는 것입니다.
진나라가 연나라를 뒤엎는 일은 기러기의 가벼운 털 하나를 화로의 숯불
위로 태우는 것처럼 아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독수리나 매 떼같이
탐욕스럽고 사나운 진나라가 원망에 찬 노여움을 터뜨린다면 그 결과는
두말 할 여지가 없습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그렇게 몰인정하고 잔인한 처사에 동의할 수가
없소.]
한동안 입맛을 쩍쩍 다시고 있던 국무가 눈을 반짝 빛내면서 말했다.
[궁한즉 통한다더니...... 이렇게 해 보면 어떨까요?]
[묘책이 있겠소?]
[가까운 곳에 영명하신 처사(處士: 在野人士) 전광(田光) 선생이
계십니다.]
[그 분이 그토록 현명하오?]
[만나 보시고 의논을 청해 보십시오.]
[다급한데 여부가 있겠소. 데려오시오.]
[아니 됩니다. 심원하고 용기 있고 침착한 분의 지혜를 빌리려는 마당에
그런 식으로는 불가합니다. 그래 가지고는 오지도 않습니다.]
[알겠소. 내가 직접 찾아가 뵙겠소.]
결국 태부 국무의 주선으로 태자 단은 전광을 만나게 되었다. 태자는
전광을 나아가 맞고 뒷걸음으로 인도하여 무릎을 꿇고는 전광이 앉을
자리를 깨끗이 털었다. 단 둘이 마주 앉았을 때에는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태부의 주선이 있었습니다. 태자 단은 전광 선생과 사귀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실 건지요?]
[삼가 그렇게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과 나라일을 의논하고 싶습니다.]
[무슨 걱정스러운 일이라도 있습니까. 할 수만 있다면 미력이나마
보태겠습니다.]
[좋은 가르침을 주십시오. 우리 연나라는 진나라와 함께 설 수가
없습니다.]
[그 문제라면 저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준마도 혈기 왕성할 때는
하루에 천 리를 달리지만 노쇠하면 하등마(下等馬)가 앞선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태자께서는 저의 젊었을 적의 행적만 듣고 정력이 다한 지금 국사를
의논하려 하십니다.]
[너무 겸양치 마시고 훌륭한 계책을 들려 주십시오.]
[물론입니다. 그러나 그 계책은 제가 마련할 게 아니라 그에 적합한
사람이 마련할 것입니다.]
[선생이 아니라면 누구십니까?]
[형경(荊卿)을 추천합니다.]
[형경이라면 어떤 분이십니까?]
[지혜는 심오하며 칼놀림 또한 전광 석화 같습니다.]
[그러시다면 한시바삐 그 분을 소개시켜 주십시오.]
[삼가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태자는 대문께까지 나가다가 문득 되돌아와서는 전광에게 굳이
귓속말을 전하는 것이었다.
[선생과 오늘 나눈 대화는 국가의 중차대한 기밀입니다. 굳이 누설치
말아 주십시오.]
전광은 잔잔히 웃으면서 말했다.
[그 점은 걱정 마십시오. 형가가 내일 일찍 태자를 찾아가 뵙도록 조처를
취해 놓겠습니다.]
구부정한 등의 전광은 노구를 질질 끌며 곧장 형가한테로 찾아갔다.
[형가.]
[예에.]
평소에 전광을 존경하는 형가는 조신한 태도로 마주 앉았다.
[내가 그대와 친하다는 사실은 연나라 안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소.]
[그렇습니다. 하온대, 새삼스럽게.......]
[태자께옵서 이 노구를 찾아오셨소.]
[태자께옵서?]
[나라 걱정으로 심신이 말씀이 아니었소.]
[좋은 계략이라도 가르쳐 드렸습니까?]
[태자가 나의 혈기 왕성할 적의 행적만 듣고 황망히 찾아오셨더이다.
한데, 계교는 있으나 실행이 어렵겠소이다.]
[무어라 말씀하십디까?]
[연나라와 진나라는 함께 설 수 없다고 했소.]
[원한이 사무쳤던가 봅니다.]
[그래서 내가 그대를 추천했소.]
[예에?]
[그대가 직접 궁으로 태자를 찾아가 보오.]
[삼가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
[한데, 내가 듣기로는 덕 있는 사람은 어떤 행동을 하든지 남에게 의심을
품게 할 만한 일은 하지 않는다고 했소.]
[그런 줄 압니다.]
[그런데 태자는 내게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나눈 대화는 나라의 막중한
기밀에 속하니 부디 누설치 말아 주시오 하고 부탁했소.]
[선생께서는 기밀을 흘린 분이 아니시라는 걸 저는 압니다.]
[어찌 되었건 태자의 말씀은 어차피 나를 의심한다는 뜻이었소. 모종의
일을 수행할 때 남에게 의심을 산다는 것은 절개 있고 의협심 있는 인간의
행동은 아닐 것이라 믿소.]
[그러합니다.]
[그렇지만 내 평소의 행동이 남에게 신의를 주지 못했는가 보오. 그대는
내일 아침 태자를 찾아가 전광은 이미 죽었다고 전해 주시오.]
[그건......!]
[이미 내가 비밀을 누설치 않았다는 뜻이오.]
[하지만!]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전광은 품 속에 지니고 있던 단검을 꺼내어
말릴 틈도 없이 제 목을 찔러 버렸다. 이튿날 형가의 말을 전해 들은
태자는 대경 실색했다.
[아, 세상에 이럴 수가! 내가 전 선생께 부질없는 주의를 드린 것은
나라의 중대사를 성공시키기 위한 충정 때문이었을 뿐이오. 전 선생이
죽음으로써 비밀을 누설치 않았다는 결의를 보일 줄은 어디 꿈엔들
알았겠소이까! 전연 나의 본심이 아니었거늘......!]
담담한 표정으로 형가가 가만히 앉아 기다리자 태자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형가에게 절한 뒤 입을 열었다.
[전광 선생께선 그토록 어리석은 나한테 당신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셨소이다. 이는 하늘이 연나라를 불쌍히 여긴 증거로 아오. 지금
진나라의 탐욕은 끝이 안 보이오. 천하의 제왕들을 제 신하로 삼으려 하오.
이미 한왕(韓王)을 사로잡아 그 영토를 모두 거두어들였으며 남쪽으로
초나라를 치고 북쪽으로는 조나라에 들이닥쳤소이다.
왕전(王전)이 수십만 대군을 거느리고 장수(長水)에서 업(업)까지 조나라
군대와 싸우며 이신(李信)도 태원(太原)과 운중(雲中)으로 출병했소이다.
조나라는 결국 압박을 견디지 못해 진나라의 신하가 되고 말 것이오.
조나라가 진의 신하가 되면 그 재앙은 곧 연나라에 미칠 것이오. 약소한
연나라는 이제까지 여러 차례의 전쟁에 시달려 왔소이다. 이제는 모든
국력을 다 모아도 진나라를 당해 낼 방법이 없소이다. 제후들이 이미
진나라에 복종하였기로 우리와 합종하려는 나라도 없소이다.]
[그리하였기로 전광 선생께선 어떤 계략을 주셨습니까?]
[명민하고 날렵한 천하의 용사를 얻어 진나라에 사신을 보내라 했소.]
[커다란 이익을 미끼로 내걸라 하시지 않았습니까?]
[진왕이 탐을 낸다면 우리의 소원은 이미 이루어지는 것이라 했소.
덧붙여 말씀하시기를 진왕을 위협해 옛적 조말(曹沫)이 제나라
환공(桓公)에게 했던 것처럼 빼앗은 땅을 제후들에게 진이 다시 돌려
주도록 만들게 한다면 금상 첨화라 했소이다.]
[참으로 좋은 계략인 듯합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진나라는 크나큰 혼란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진의
장군들이 바깥에서 군대를 이끌고 있으므로 욕심이 생길 것이니 전
선생께선 그 점을 노린 말씀이셨던 것 같습니다.]
[그렇소이다. 그 틈에 제후들이 합종하여 진을 깨뜨릴 수 있겠지요.
그렇다 하더라도 전 선생께선 목숨을 내던질 용사가 누구라는 건 가르쳐
주시지 않았소이다. 오로지 형경하고만 의논하라는 말씀이 있었소.]
태자를 통해 전광의 부탁을 감지한 형가는 상체를 곧추세운 뒤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토록 막중한 사명을 미력하오나 신이 감당하겠습니다.]
태자는 눈물을 흘리며 형가한테 절했다. 태자는 형가의 직위를 높여
상경(上卿)으로 삼고 상등 관사에 머물게 하여 태뢰(太牢: 본래는 나라의
제사에 쓰는 음식으로 소.양.돼지 등으로 된 고급 요리)를 대접하고 비싼
물건들을 구비해 주고 이따금 수레와 말과 아름다운 여인들을 제공해
형가의 장거를 격려했다.
그럴 동안 진의 장군 왕전이 조나라를 깨뜨리고 조왕을 사로잡았다.
영토까지 접수한 진군은 북으로 치달려 드디어 연나라 남쪽 변방까지
다다르고 있었다. 태자는 두렵고 초조했다. 형가를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진나라 군대가 역수(易水)를 건너서는 순간 나로서는 형경의 쾌거를
부탁하려 해도 할 수가 없게 되겠소이다.]
[하오나 신이 떠나려 해도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아 떠날 수가 없습니다.]
[도대체 그 준비물이란 게 무엇이겠소.]
[번오기 장군의 목과 연나라 옥토 독항(督亢: 河北省 탁縣 남동)의
지도입니다.]
[독항의 지도는 모르겠으되 번 장군의 목은 아니 되겠소이다.]
[그래요? 그렇다면 조금 더 시일을 두고 차선책(次善策)을 강구해
보겠습니다.]
차마 번오기의 목을 베 수 없다는 태자는 속마음을 알아차린 형가는 몰래
번오기를 찾아갔다.
[번 장군, 진나라가 장군과 가족에게 가한 참혹한 처우는 가히 몸서리가
쳐집니다. 과거의 공적은 눈꼽만큼도 참작하지 않고 죄없는 부모 처자
일가족까지 몰살시키다니요!]
[어떻게 하여야 원수를 갚을 수 있을 것인지를 몰라 매일 매시가 앙앙
불락(怏怏不樂)입니다.]
[듣건대 번 장군의 목에다 황금 천 근과 식읍 만 호를 내걸었다지요?]
[저는 어떻게 하여야 좋을까요?]
[원수를 갚아야 하지요. 저한테는 연나라의 걱정거리를 없애고 동시에 번
장군의 원수도 갚을 수 있는 계책이 하나 있는데 들어 보시겠습니까?]
[복수의 방법만 있다면 무슨 계책인들 경청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장군의 목을 제게 주십시오.]
[예에?]
[진왕에게 바치려고 합니다. 그는 몹시 반가워하며 필시 저를 만나려고
할 것입니다. 그 때 기회를 잡아 왼손으로는 그의 옷소매를 붙들고
오른손으로는 그의 가슴을 찌르겠습니다.]
번오기는 잠깐 생각한 뒤에 하늘을 우러러 눈물을 흘리며 길게 탄식한
뒤에 말했다.
[아, 이제야말로 제가 밤낮으로 이를 갈며 가슴 태우던 숙제가
풀렸습니다. 귀중한 가르침을 주셔서 그 고마움 이루 형용할 길이
없습니다.]
번오기는 형가한테 절한 뒤 스스로 자신의 목을 칼로 찔러 죽었다.
태자는 그 소식을 듣고 달려가 번오기의 시체에 엎드려 통곡했다. 형가가
말렸다.
[태자께서는 큰 일을 위하여 작은 일에 고정하십시오.]
마음을 다져 먹은 태자는 서둘렀다. 번오기의 목을 썩지 않도록 상자에
넣어 봉했다. 천하에서 가장 날카롭다는 서부인(徐夫人: 趙나라 男子
刀匠의 이름)의 비수를 백금(百金)을 주고 사들였다.
칼날에 독약을 묻혀 죄수를 찔러 보게 했더니 한 오라기를 적실 정도의
상처에도 사람이 죽었다. 연나라에 진무양(秦舞陽)이라는 죄수가 있었다.
나이 열셋에 벌써 사람을 여럿 죽인 표독한 인물이었다. 그의 악독함을
겁내어 사람들은 그를 얼핏 쳐다보는 일조차 두려워했다.
[살아 돌아오면 네 죄를 탕감해 주겠다. 못 돌아오더라도 네 가족에게
식읍을 제공해 주겠다.]
그렇게 되어 진무양은 형가의 부사(副使)가 되었다. 드디어 형가 일행은
장도에 올랐다. 그들의 장렬한 의거(義擧)를 짐작하고 있는 빈객들은 흰
옷을 입고 흰 관을 쓴 상복차림으로 그들을 전송했다. 역수 가에 이른
형가들은 도조신(道祖神: 行人을 보호하는 神)에 제사 지냈다. 고점리가
거기까지 따라와 축을 탔고 형가가 화답하여 노래를 불렀다.
바람소리 쓸쓸하고
역수는 차가워라
장사(壯士)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못하리.
風蕭蕭兮易水寒, 壯士一去兮不復還
변치(變徵: 音에는 宮.商.角.徵.羽의 五音이 있고 치와 우에는 변음이
있다. 변치음은 슬픈 소리)의 소리를 내자 듣는 사람들이 모두 눈물을
흘렸다. 다시 우성(羽聲: 격앙 용장한 羽調의 소리)으로 노래 부르자
비분강개를 느낀 사람들이 눈을 부릅떴으며 그 통에 치솟은 머리카락이
관을 찔렀다.
형가들은 수레를 타고 떠났고, 그는 끝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진나라에 도착한 형가는 천금이나 되는 뇌물을 진왕의 총신(寵臣)
중서자(中庶子: 宮內府大臣) 몽가(蒙嘉)에게 바치며 진왕의 알현을
부탁했다. 계획은 잘도 맞아 들어갔다. 우선 몽가가 진왕한테 말했다.
[연왕은 대왕의 위엄을 두려워하여 감히 우리 군대에 맞서지 못하고
나라를 들어 대왕의 신하되기를 원했습니다. 제후의 열에 참여하여 공물
바치기를 우리 나라의 한 고을처럼 하면서 연나라 선왕(先王)의 종묘나
지킬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이에 삼가 번오기의 목을 베어 독항의 지도와
함께 바치려고 함에 넣어 봉해 왔습니다. 마침 사자(使者)가 와서 대왕께
저간의 사정을 아뢰고자 하고 있으니 대왕께서 한 번 인견하시겠습니까?]
진왕은 몽가의 설명을 듣고 몹시 기뻐하였다.
[그를 위하여 짐이 조복을 갖추어 입고 구빈(九賓)의 예(禮: 周禮의
九儀, 아홉 가지 賓客을 迎接하는 최고의 儀禮)를 베풀겠다.]
형가는 함양궁(咸陽宮)에서 진왕을 인견하게 되었다. 형가가 번오기의
목이 든 함을 받들었고 진무양이 지도가 든 갑(匣)을 받들어 진왕이 버티고
있는 궁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멀리서 진왕의 옥좌가 보였다. 그런데
형가는 내심 초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람 죽이기를 파리목숨 다루듯
하던 진무양이 경비의 삼엄함에 사뭇 놀랐는지 얼굴빛은 하얗게 질려
있었고 몸 역시 사시나무 떨듯 하였다.
[일을 그르칠라. 침착하게나!]
그렇게 귀띔을 했는데도 진무양은 도무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옥좌가 있는 전(殿)의 계단 아래에 이르렀을 때였다. 진무양이 사정없이
떨고 섰으니 진왕이나 중신들이나 경비병들도 괴이쩍게 여기며 더욱 경계의
눈초리들을 보내는 것이었다. 형가가 얼른 나섰다. 진무양을 일별한 뒤에
웃으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용서해 주십시오. 이 자는 북방 오랑캐 땅에서 살던 비천한 인간이라
천자(天子)의 용안(龍顔)을 뵌 적이 없습니다. 다만 대왕의 위엄에 떨고
있을 뿐이니 무례를 용서하시고 어전 사명을 무사히 다하게 하여
주십시오.]
그러자 진왕이 별 의심없이 말했다.
[거기 떨고 섰는 자가 가지고 있는 지도부터 가지고 오라.]
그래서 형가가 얼른 진무양의 갑을 받아들고 진왕 앞으로 나아갔다.
근처에는 진왕과 형가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진왕은 천천히 지도를 펼쳐
들었다.
[이 옥토를 바친다는 말이지.......]
진왕의 심술궂은 입술에 기분 좋은 웃음이 함지박만큼씩 퍼져 나갔다.
[이 순간을 노려야 한다!]
형가는 긴장했다. 진왕은 지도를 천천히 펼쳐 나갔다. 기어코 두루마리
지도는 모두 펼쳐지고 마지막으로 숨겨졌던 비수가 툭 하고 떨어졌다. 그
순간이었다. 전광 석화처럼 비수를 집어 든 형가는 동시에 진왕의 옷소매를
왼손으로 잡아 쥐며 칼 든 오른손으로 힘차게 진왕을 찔렀다.
그런데 진왕은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제낀 것이다. 따라서 간발의 차로
비수 끝에 몸에 닿지 못했다. 놀란 진왕이 몸을 휙 비틀며 옥좌에서
도망치자 형가가 잡고 있던 옷소매가 후두둑 떨어져 나갔다. 옥좌 뒤에는
장검(長劍) 하나가 숨겨져 꽂혀 있었다. 진왕이 다가가 그것을 빼내려
했으나 너무 칼이 길었으므로 미처 그것을 빼기도 전에 형가가 달려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순간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너무나 순식간의 일이라
대경 실색할 뿐 손쓸 수가 없었다. 더구나 진나라 법에는 전상(殿上)에서
왕을 모시는 그 어떤 신하들도 한 치의 쇠붙이도 몸에 지니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다. 많은 낭중(郎中)들이 전하 멀찍이에서 무기를 들고 서 있긴
했지만 왕이 부르기 전에는 절대로 전상으로 올라갈 수가 없었으므로
망연자실한 채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진왕도 그들을 부를
겨를이 없었다.
형가는 자유롭게 진왕을 쫓아다녔다. 진왕은 다급해져서 전당안의 기둥을
돌아 요리조리 빠져 나가며 도망치기에 바빴다. 이제 한 발자국만 따라
잡으면 형가는 진왕을 찌를 수가 있었다. 그것은 운명이었다. 형가가
진왕의 등을 마악 내려치려는 순간 시의(侍醫) 하무저(夏無저)가 엉겹결에
들고 있던 약주머니를 형가의 얼굴에다 던져 버린 것이다. 불의의 공격을
당해 형가가 어찔하는 순간이었다.
장검을 뽑아 든 진왕은 그제서야 형가의 왼쪽 다리를 끊어쳤다. 형가는
푹 고꾸라졌다. 쓰러지면서도 형가는 비수를 진왕을 겨냥해 집어 던졌다.
창졸간에 던진 칼이라 진왕을 맞히지 못했다. 비수는 구리 기둥을 맞고
맥없이 떨어졌다. 진왕의 칼날이 사정없이 형가를 난도질했다. 여덟
군데에나 큰 상처를 입은 다음 형가는 일이 글러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기둥을 등지고 미끄러지듯 털썩 바닥에 주저 앉았다.
[아, 이는 하늘의 뜻이다! 나의 운명이며 연나라의 운명이다!]
그제서야 궁실을 지키던 권술(拳術) 병들과 칼잡이들이 형가 쪽으로
몰려들었다. 형가는 즉석에서 맞아 죽었다. 나중에 진왕은 하무저에게
상으로 황금 이백 일(二百鎰)을 내렸다.
진왕은 노했다. 연나라를 그냥 둘 리가 없었다. 왕전 장군에게 명하여
연나라를 가차없이 치게 했다. 연나라의 수도인 계성(계成)은 그로부터
10개월 후에 함락되었다. 연나라 왕 희(喜)와 태자 단은 동쪽으로 달아나
요동에서 농성했는데 진나라 이신(李信) 장군이 뒤따라 연왕을 추격해
왔다.
전전 긍긍하고 있을 때 조나라 마지막 왕인 가(嘉)가 연왕 희한테 엉뚱한
편지를 보내 왔다.
- 진나라의 분노를 그대로 삭이시려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방법은
한 가지일 것입니다. 태자 단의 목을 베어 진왕에게 바친다면 진왕의
진노를 가라앉혀 다행히 연나라의 사직은 보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단은 연수(衍水) 가운데에 있는 섬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다급했다.
그러나 연왕은 태자의 목을 칠 수가 없어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진의
대군은 물밀듯이 연나라로 밀려 들어왔다.
연왕 희를 사로잡은 진군은 태자 단과 형가가 거느리던 빈객들을
수색했다. 모두는 뿔뿔이 흩어져 달아나고 고점리 역시 변성명하여
송자(宋子)라는 곳에서 머슴살이를 하고 있었다.
주인집 마루 위에서는 때때로 손님이 놀러 와 축을 켰다. 그럴 때마다
고점리는 그 주위에서 떠나지 못했다. 손가락이 근질거렸기 때문이다.
[저것 좀 보게나. 저걸 축이라고 치나. 음악을 모욕해도 분수가 있지!]
때마침 주인집 종자가 고점리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주인님, 아무래도 수상합니다. 손님들이 축을 켤 때마다 저 머슴 놈이
잘합네 못합네 하고 중얼거립니다. 불러서 단단히 혼을 내십시오.]
주인은 잠깐 생각하고 나서 대답했다.
[야단칠 것 없네. 불러서 축을 켜도록 해 만인들 앞에서 망신을 시키면
다시는 그 따위 평을 하지 못할 게 아닌가.]
그렇게 되어서 고점리는 주인 앞으로 불려 갔다. 고통스럽지만 숨어
살아야 했으므로 고점리는 처음에는 대충대충 축을 켰다. 그러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음악에 끌려들어 갔다. 축을 타면서 노래를 불렀다. 서러운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자신의 신세가 가슴 아파 눈물까지 줄줄 흘렸다.
손님들은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 음악에 끌려들어 함께 눈물을 흘렸다.
소문은 꼬리를 물고 흘러 나갔다. 드디어 진왕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즉시 궁으로 불러들여라.]
불행히도 그가 고점리라는 사실을 알아보는 신하가 있었다.
[대왕, 저 자가 바로 형가의 친구 고점리올시다. 비록 축이라면 천하에서
제일 가긴 하나 심지가 불순합니다. 가까이 두어서는 아니 됩니다.]
그러나 축을 너무 좋아하는 진왕은 차마 고점리의 솜씨를 버릴 수는
없었다.
[죽을 죄에 해당하나 그 재주는 너무나 아깝다. 말똥을 태워 그 연기로
눈을 멀게 하면 과인이 위험하지는 않을 테지.]
그렇게 되어 고점리는 맹인이 되었고 그의 축을 켜는 솜씨는 더욱
예민해져서 그가 연주할 때마다 진왕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진왕의
고점리에 대한 경계심은 날이 갈수록 해이해져서 점점 그를 가까이 두게
되었다.
그 동안 고점리는 은밀히 한 가지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무거운 납덩이를
조금씩 조금씩 축 속으로 감추는 일이었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벗 형가가
이루지 못한 거사를 자신이 대신할 수 있다는 기쁨으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 날 고점리는 묵직한 축을 진왕의 머리통을 향해 내리쳤다. 그러나
고점리가 불운했던지 진왕의 운세가 왕운이었던지 진왕은 축한테 간발의
차로 맞지 않았다. 그 대신 고점리가 즉석에서 맞아 죽었다. 그 사건으로
해서 진왕은 죽을 때까지 제후국의 사람들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 노구천은
형가가 진왕을 척살하려 했다는 소문을 듣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아아, 아깝다! 내가 진왕을 찌르는 검법을 가르쳐 주지 않은 게
안타깝구나! 게다가 나는 어찌 사람을 그토록 알아보지 못했을까. 그토록
훌륭한 인사를 밤낮으로 꾸짖기만 했었다니! 그가 나를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았을 테지!]
나 태사공은 이렇게 생각한다. 세상에 퍼진 형가에 관한 전설 중에서
태자 단에게 내린 하늘의 기적이라 하여, '하늘에서 곡식이 내리고
까마귀의 머리가 희어지고 말머리에서 뿔이 돋아났다' 〔인질인 丹을
진왕이 보내지 않으려고 그렇게 말했을 때 실제로 그런 기적이
일어났다<蘇丹子>〕고 말하고 있으나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또 '형가가 진왕을 찔러 상처를 주었다'고 하나 이것 역시 틀린 말이다.
본래 공손계공(公孫季功)과 동생(董生: 董仲舒)은 하무저와 교류해 그
사건을 자세히 알아가지고 나에게 알려주었는데, 사실무근이었다는 것이다.
조말에서 형가에 이르기까지 5인의 자객은 각각 의협심이 성취되기도 하고
혹은 실패하기도 했다. 분명한 사실은 그들의 의도는 너무도 명백했으며
또한 그 의지를 바꾸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의 명성이 후세에 널리 전해지는 것은 실로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인 것이다.
@
27. 이사열전 李斯列傳
명확한 계획을 세우고 때를 기다렸다가 진나라로 가서 그 뜻을 실천해
천하를 통일하게 했다. 이사는 그들 모사꾼들 중의 으뜸이었다. 그래서
제27에 <이사열전>을 서술했다. <太史公自序>
이사(李斯)는 초(楚)의 상채(上蔡: 河南省 上蔡縣) 사람이다. 청년
시절에는 군(郡)의 하급 관리로 있었는데 관청의 변소를 드나들다가 하나의
커다란 깨달음을 얻었다.
[그 참 이상한 일이 아닌가. 큰 창고 안에다 수만 섬 쌀을 쌓아 둔 곳에
살고 있는 쥐들은 사람을 멀거니 보고서도 도무지 도망칠 생각을 하지 않고
여유를 부리는데, 측간(厠間)에 살며 더러운 것을 먹고 사는 쥐들은 개나
사람의 기척만 나도 혼비 백산하지 않는가. 그것은 왜 그런가...... 역시
인간의 현(賢), 불현(不賢)도 몸을 두는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쥐새끼의
처신처럼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는 초라한 하급 관리직을 때려 치운 뒤 순경(순卿)한테로 갔다. 그는
거기서 제왕(帝王)의 정치학을 열심히 배웠다. 공부를 마친 뒤 이사는
스승에게 떠나고자 하는 뜻을 비췄다.
[무엇 때문에?]
[때를 포착하면 일은 지체없이 해치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이 어째서 그런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는가?]
[바야흐로 만승(萬乘)의 대제후(大諸侯)들이 상쟁하는 시대입니다.
유세(遊說)하는 논객들이 각국의 정사(政事)를 도맡아 보고 있습니다.
유세자에게는 둘도 없는 호기(好機)라고 봅니다. 비천한 지위에 있으면서
하등의 계획도 세우지 않는 자는 금수(禽獸)가 고기를 보고서도 사람이
지켜보고 있다 해서 탐욕을 억지로 참고 지나가 버리는 어리석은 동물과
같다고 생각됩니다.]
[계속 말해 보게.]
[인간 최대의 치욕은 비천한 것이며 최대의 비통은 곤궁한 것입니다.
오랜 세월은 비천하고 곤궁한 위치에 있으며 청렴을 빙자하여 세상의
부귀를 비난하고 영리를 미워하며 무위(無爲)의 경지가 최선의 안주처인
것처럼 가장하는 바는 위선이며 진정한 사인(士人)의 길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대의 열변이나 태도를 보니 말리기에는 때가 너무 늦었구나. 기회를
얻거든 부디 좋은 정치를 구현하도록 부탁할 수밖에. 그런데 그대는 어디로
갈 작정인가?]
[서쪽 진(秦)나라로 가서 기회를 엿보아 진왕에게 유세하려 합니다.]
[굳이 진나라인가?]
[여기 초나라의 왕은 섬길 만한 인물이 못 된다고 판단합니다.]
[그래서.]
[다른 여섯 나라 역시 빈약하여 제 몸을 두기는 싫습니다.]
[그래서 강한 나라로 갈 것인가.]
[강한 나라로 가서 큰 공을 세우고자 합니다.]
[뜻이 원대하이...... 가 보게.]
[몸이 높이 되더라도 곁에 두고 지켜야 하는 좌우명을 스승님께서
마지막으로 한 말씀 내려 주십시오.]
[지나치게 성대(盛大)한 것을 경계하라. 만물이 극도에 달하면 반드시
쇠(衰)하는 법.......]
이사가 진나라에 닿았을 때 때마침 장양왕이 죽었다. 곰곰 생각한 뒤에
진의 최고 실력자 승상 여불위의 가신이 되기로 했다. 해박한 지식에
달변인 이사가 여불위의 눈에 띄는 것은 그토록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대의 계획은 대단히 웅대하오. 내가 왕〔政〕께 천거할 것이니 부디
진나라를 위해 가지고 있는 지혜를 다해 주기 바라오.]
[미력하나마 있는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그대의 유세가 성공할지도 모르겠소.]
[승상의 도움만 바랄 뿐입니다.]
이사가 젊은 왕 앞에서 자신의 웅대한 계획을 설파할 날이 왔다. 이사는
절호의 기회라 생각하고 왕께 달변의 대하(大河)를 늘어놓았다.
[상대의 허점을 빤히 보고서도 파고 들지 않고 우물쭈물하면 기필코
실기해 버립니다. 큰일을 성취하려면 인정사정 볼 것 없이 허점을 공격해야
합니다. 한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옛적 진의 목공(목公)은 패자(패者)가
되고서도 끝끝내 동쪽의 육국(六國)을 병합치 못했습니다. 그것은 제후들의
숫자가 너무 많았던 데다 아직까지는 주왕실(周王室)의 덕이 쇠퇴하지
않았던 까닭이었으며 따라서 자연히 오패(五패)가 차례로 일어나
번갈아가며 주왕실을 존중했던 이유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분명히
다릅니다.]
[무엇이 다른 점인가?]
[진의 효공(孝公) 이후로는 주왕실이 쇠미해졌고 그러자 제후들이 들고
일어나 서로 병탄을 일삼아 관동(關東: 函谷關 이동)은 여섯 나라로 줄어
버렸습니다.]
[그대의 말은 사실이다.]
[진나라가 상승세를 타고 제후들을 눌러온 지가 벌써 육세(六世:
孝公.惠文王.武王.昭王.孝文王.莊襄王)나 됩니다. 진나라는 지금 여러
제후국들을 부리는 모양이 마치 진의 군현(郡縣) 다루듯 합니다.]
[옳은지고!]
[진의 강대함에다 대왕의 현명하심을 보탠다면 그까짓 제후국들을
멸망시키는 일쯤은 식은 죽 먹기입니다. 솥 위에 앉은 먼지 훔쳐내듯 쓸어
내릴 수 있습니다.]
[그대의 생각에 과인도 동감한다!]
[만세에 한 번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그나마도 화급히 성사시켜야
합니다. 제후국들이 다시 강대해져서 서로 모여 합종(合從)을 맹약해
버린다면 황제(黃帝)의 현명함이 있더라도 천하 병합은 불가능합니다. 부디
이 때를 틈타서 황제(黃帝)로서의 대업을 성취하십시오.]
젊은 왕의 기분은 좋았다. 그렇지 않아도 야망을 채우기 위해 속앓이를
하던 진왕의 귀에는 이사의 진언이 그토록 흔쾌할 수가 없었다. 왕은 당장
이사를 장사(長史: 비서실장)에 임명했다.
[과인의 가까이에서 제후국들을 멸망시킬 계략을 구체적으로 은밀히
마련하오.]
[우선 모사(謀士)들을 각국에 파견하십시오.]
[모사들을?]
[명민하고 말 잘 하는 세객(說客)들을 보냅니다.]
[보내서는?]
[황금과 보석을 주어 보내 뇌물을 써서 그쪽의 명망있고 권력있는 자들과
우선 결탁해야 합니다.]
[후한 선물로 우리 편에 끌어들이자는 얘기요?]
[그렇습니다. 삼십만 금만 쓰십시오. 그렇게 함으로써 군신(君臣)간에
이간질을 시킬 수 있습니다.]
[말을 듣지 않는 자들도 있을 텐데.]
[반드시 세객 좌우에 자객(刺客)들을 딸려 보내야 합니다.]
[그건 왜 그렇소?]
[말을 듣지 않는 자는 없애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계략이
들통나지 않습니다.]
[그대로 하오.]
[뿐만 아닙니다. 우수한 장군에게 군사를 비밀리에 주어 뒤따라 들이닥쳐
제후국을 쳐 없애는 겁니다.]
[그대는 나의 훌륭한 객경(客卿)이오! 그렇다면...... 제후국들 중에서
어떤 나라를 제일 먼저 재물로 삼겠소?]
[한(韓)이 좋겠습니다. 국경에 접해 있을 뿐 아니라 가장 약한
나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사의 승진이 일취월장했던 것은 아니었다. 하나의
악재(惡材)가 생겼던 것이다. 진의 동쪽 진출을 막기 위하여 한의
수공(水工: 治水作業 技術者)에 정국(鄭國)이 엄청난 비용이 드는 대규모
공사를 건의해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국의 관개(灌漑)용 운하 개착은 진나라 국내 교란용이다. 제후국에서
들어와 진을 섬기는 자들은 실상은 자국의 이익과 주군을 위할 뿐이다.
일체의 타국인을 추방해야 한다!]
이사의 발빠른 출세를 탐탁치 않게 생각하고 있던 진의 대신들과
왕족들은 정국의 내막이 폭로되는 것을 기화로 이사 추방의 기치를 들었다.
추방자 명단 선두에 이름이 적힌 이사는 가만히 물러나진 않았다. 장문의
글을 왕께 올렸다.
- 타국인 추방의 논의는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옛적에 목공(목公)은
인재 유여(由余)를 서쪽 융(戎)에서 채용하고 백리해(百里奚)를 동쪽
원(원)에서 구하였으며 건숙(蹇叔)을 송(宋)에서 맞고 비표(丕豹)와
공손지(公孫支)를 진(晋)에서 오게 했습니다.
진(秦)국 출신이 아닌 이들 다섯 사람을 목공이 중용함으로써 이십 국을
병합하고 드디어 서융(西戎)에서 패자가 됐습니다. 효공은 위(衛)의
상앙(商앙)의 변법(變法)을 채용하여 풍속을 개량하니 백성은 번영하고
국가는 부강하며, 백성들은 공역(公役)에 사역되기를 즐겨하고 제후는
심복하며 초.위의 군사를 격파해 땅을 넓힌 것이 천여 리나 됩니다.
혜왕은 위(魏)의 장의(張儀)의 계략을 써서 삼천(三川)의 땅(地:
伊水.洛水가 黃河로 흘러드는 지대)을 점령하고 파.촉(邑.蜀)을 병합하고
북쪽 상군(上郡: 魏地)을 거두고 남쪽 한중을 공략하고 구이(九夷: 楚에
속하는 東夷諸族)를 포섭하여 언(언).영(영)을 제어하고 동쪽으로 육국의
합종맹약을 흐뜨려 이들이 서면(西面)하여 진을 섬기게 했습니다.
소(昭) 왕은 위(魏)의 범수(범수)를 얻어 양후(穰侯)를 폐하고
화양군(華陽君)을 추방하여 진의 공실(公室)을 강화해 공족(公族)들과
대신들의 사세(私勢) 확대를 막았으며 제후의 영토를 잠식해 진으로 하여금
제업(帝業)을 성취케 했습니다. 이상에서 말씀드린 네 군주는 모두
타국인의 공로로 나라를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타국의 사인(士人)들을
등용치 않았다면 국가는 부리(富利)의 실속이 없고 진은 강국이 못 되었을
것입니다.
[이사는 아는 것이 많구나.]
- 지금 폐하께서는 곤륜산의 명옥(名玉)을 손에 넣고 수씨(수氏)의
진주와 화씨(和氏)의 벽(壁)을 가지고 명월(明月)의 진주를 차고
태아(太阿)의 명검(名劍)을 패용(佩用)하고 섬리(纖離)의 준마를 타며
취봉(翠鳳)의 기(旗: 翠羽로 장식한 기)를 세우고 영타(靈타)의 고(鼓:
악어 가죽으로 맨 북)를 비치하고 계시나 이런 수 많은 보물들이 진에서는
하나도 나지 않거늘 폐하께서는 어찌하여 좋아하십니까.
반드시 진나라의 것으로만 한다면 조정(朝庭)을 야광(夜光)의 벽(壁)으로
장식할 수 없고 코뿔소의 뿔과 사아의 기구로 완롱(玩弄)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정(鄭)과 위(衛)의 미인은 후궁에 들어올 수 없으며 준마인
결제(결제)는 마구간에 차지 않을 것이며 강남의 금(金)과 주석은 소용이
없을 것이며 서촉(西蜀)의 단청〔顔科〕으로는 채색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목을 즐겁게 하고 심신을 기쁘게 하는데 반드시 진나라 것이어야
한다면 원주(원珠)의 비녀〔원에서 난 진주로 만들 簪〕나 부기(傅璣)의
귀걸이(둥글지 않은 진주로 장식한 珥)나 아호(阿縞)의 의상〔齊의
東阿에서 나는 비단의복〕이나 금수(錦繡)의 장식도 폐하 앞에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며 미인의 고장 조나라의 아름다운 여인은 폐하 곁에 시립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물동이를 치고 부(부: 陶器)를 치며 쟁(箏: 竹身의 현악기)을 탄주하며
넓적다리를 치면서 목청 돋우어 노래 불러 귀를 즐겁게 하는 것이 참으로
진의 음악입니다. 정(鄭).위(衛: 亂世의 음악).상간(桑間: 亡國의
음악).소(昭).우(虞: 帝舜의 음악).무(武).상(象: 周 武王의 음악)은
타국의 음악입니다. 그런데 진의 진정한 음악들은 다 버리고 정.위의
음악을 연주하고 소.무의 음악만 받아들인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마음에 유쾌하며 보기에도 쾌적하기 때문입니다.
[옳거니!]
- 그런데 지금 인간을 채용하는데 있어 인물의 진위와 능력의 유무 등은
제쳐놓고 불문곡직 진나라 사람이 아니다 하여 추방하려 하니, 이는
여색(女色)이나 음악이나 주옥(珠玉)은 중히 여기되 인간은 가벼이 여기는
바와 같으니 결코 제후를 지배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저는 토지가 광활하면 곡식이 많고 나라가 크면 인구가 많으며 병력이
강대하면 전사(戰士)가 용감하다고 들었습니다. 표현을 달리하여,
태산(太山: 泰山)은 한 줌의 흙도 양보하지 않아 저렇게 커졌으며
하해(河海)는 한 줄기 세류(細流)도 가리지 않아 저렇게 깊어졌습니다.
왕자(王者)는 어떤 백성도 물리치지 않기 때문에 덕을 천하에 밝힐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땅은 모두 옥토가 되어 사방의 차별이 없고 백성은 모두
왕신(王臣)이 되어 분열이 없어집니다. 춘하추동은 아름답게 순환하고
귀신은 복을 내립니다. 오제(五帝) 삼왕(三王)에게 적이 없었던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진에서는 인민을 버려 적국을 이롭게 하고 빈객을
물리쳐 제후국의 공업(功業)을 세우게 하고 천하의 인사를 물러가게 할
뿐더러 진으로는 들어오지 못하게 하니 이른바, 도둑에게 무기를 빌려 주고
양식을 공급하는 일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사의 생각이 옳다.]
- 무릇 물자는 진에서 산출하지 않더라도 보배로운 것이 많으며 인재는
진에서 태어나지 않았더라도 충성스런 인물이 많습니다. 차제에 타국인을
추방하여 적국을 이롭게 하고 백성을 덜어 원수에게 보태 주며 스스로
공허함을 자초하여 많은 인사들의 원한을 사게 되니 이 어찌 국가를
위태롭게 하는 발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사의 상소문을 읽은 진왕은 즉시 타국인 추방령을 취소하고 오히려
이사를 정위(廷尉: 最高 法官)에 임명했다. 그 후 20여 년 동안에 진나라는
마침내 천하를 병합하고 군주를 높여 황제(皇帝)라 칭했다.
이사는 승상이 되었다. 이사는 군현(郡縣)의 성벽들을 파괴해 버렸다.
전쟁이 없었으므로 무기를 녹여 버려 다시는 사용하지 못한다는 의지를
보여 주었다. 또 진에서는 단 한 자의 토지라도 누구에게 주어 봉(封)할 수
없도록 했다. 황제의 자제이든 혁혁한 공신이든 이들을 왕이나 제후로
삼음으로써 훗날에 있을지도 모르는 내란의 우환을 미리 없애기
위함이었다.
시황제(始皇帝) 34년이었다. 함양궁에서 잔치가 베풀어졌다. 그 때
박사복야(博士僕야: 帝室學士院長) 주청신(周靑臣) 등이 시황제의 권위와
덕망을 칭송했다. 그런데 그 자리를 빌려 제(齊)나라 출신
순우월(淳于越)이 나서서 황제에게 충고를 시작한 것이다.
[신은 '은.주의 왕조가 천여 년이나 존속될 수 있었던 것은
왕자.왕제(王弟).공신들을 제후로 봉해 왕실을 돕게 한는 근본으로 삼았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차제에.......]
그 즈음에 승상으로 있던 이사가 발끈하고 나섰다.
[또다시 그 얘기를 들고 나오는 거요!]
순우월도 지지 않았다.
[충심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천하를 모조리 영유하고
계십니다만 비록 폐하의 혈육이 되신 황자(皇子)나 황제(皇弟)들은
무엇입니까. 한낱 필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하니,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는 말이오.]
[우선 전상(田常)의 사건(자기 임금 簡公을 서주에서 죽이고 제나라를
뺏음, 공자가 전상을 치자고 청했으나 노나라 哀公은 듣지 않았음)을
기억하십시오. 뿐만 아니라 육경(六卿)의 사건(晋의 정권을 뒤흔들던
지씨.범씨.중항씨.한씨.위씨.조씨의 육경 중 나중에 한.위.조씨가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땅을 三分했음) 역시 살펴 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토록 진(晋)을 분할하는 경우 같은 불행이 생기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그런 우환이 만약에 생기는 경우 이를 제어하고 보필할 만한
신하가 없을 것이니 그 땐 무엇으로 국가를 구제할 수가 있겠습니까.]
[천하가 통일된 지금 상황에서는 그런 우환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사가 맞받았다.
[아닙니다. 매사에 옛것을 모범으로 삼지 않고서 장구하게 지속되었다는
예는 아직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지금 주청신 등은 어전에서 아첨 발언을
하여 폐하의 영명하심을 어지럽게 하고 큰 과오를 거듭하도록 종용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충신이 아닙니다.]
[경들의 생각은 어떠하오?]
시황은 자신이 서지 않았던지 다른 대신들을 돌아보았다.
이사가 나섰다.
[옛날을 말해서 지금을 해롭게 하고 공허한 언사를 꾸며서 현실의 정책을
어지럽히는 발언을 용서해서는 아니됩니다.]
[그것이 어째서 해롭고 공허한 언사라는 겁니까.]
[경께서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고 계시기에 그러합니다.]
[무엇이라고요?]
[은나라, 주나라 시대에는 분산 난립되어 있던 시절입니다. 지금은
천하가 통일되어 있습니다. 아무도 그것을 해낸 제왕이 없었기로 제후들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때의 언설은 허황됩니다.]
[그렇지가 않습니다. 물론 황제폐하께서 천하를 통일하신 것만은
분명합니다. 통일의 대업 역시 폐하만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계시지 않을 경우를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폐하, 지금 저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가 배운 것만이 옳다고 생각하고 현
정부가 세운 바를 비방하고 있습니다.]
[폐하, 잘못된 정책은 비방받아도 마땅합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천하를 통일하고 흑백을 가려내어 유일 절대의
존호(尊號: 皇帝)를 결정하신 분입니다. 때문에 선례를 들춘다는 일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대체로 학문하는 자들이란 사사로운 이론을 내세워 이미
제국(帝國)이 정한 법률과 문교를 비방합니다. 이런 정령(政令)들을 누가
결정하셨습니까. 바로 주상 폐하께서 결정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허튼
학설을 가지고 작금의 정책을 비방하는 것은 바로 폐하를 비방하는 일과
같은 것입니다.]
[폐하, 그것은 중상 모략입니다. 정책의 비판 없이 좋은 정사(政事)가
시행될 리가 없고 기왕의 정책이 반드시 좋을 수가 없으며 잘못되고 나쁜
정책을 깨달았으면 고치는 것이 만민을 위하는 일입니다.]
사태는 기묘하게 돌아갔다. 제도의 작은 개정을 주장하려던 무리에 대해
이사 등은 정책비판으로 빙자하여 그들을 시황제 비판의 무리로 몰아갔다.
[폐하, 저자들은 이설(異說)을 내세우는 일을 명예로 생각하며 정책과
주상을 비방하는 일을 고상한 인품이라 생각하고 있는 무리들입니다. 이런
소행들을 금압(禁壓)치 않으면 위로는 주상의 권위가 실추되고 아래로는
민간에 당파가 조성될 것입니다. 정책 비판이 나쁘다기보다 비판 자체가
더욱 나쁜 영향과 결과를 유발 시킵니다.]
시황제는 이사의 반론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정책이 아무리 좋더라도 지속성이 없으면 오히려 해악이요. 왕족이나
공신을 제후로 봉하는 문제도 이미 거론되었거니와 통일 천하의 이
마당에서 그런 건의는 마땅치 않다고 보오.]
이사는 이 때를 놓치지 않았다.
[폐하, 청하옵건대 기왕에 태평천하의 정책을 펴시려거든 소신의
정책안을 들어 주십시오.]
[묘안이 있겠소?]
[여러 가지 문학과 <시경(詩經)><서경(書經)><제자백가>의 서적
따위들을 불에 태우십시오.]
[그것은 왜 그러하오?]
[그런 서적으로 배웠다는 자들이 저토록 폐하의 성지를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모르는 것이 약이라?]
[정책이란 걸림돌이 없을수록 좋습니다.]
[그렇다면 승상의 뜻대로 하오.]
[금령이 하달된 지 한 달이 지나도록 서적들을 폐기치 않는 자는 이마에
먹물을 들여 성단(城旦: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성을 쌓는 죄수)으로
삼겠습니다.]
[법령 역시 그대들이 알아서 다루도록 하오.]
[무릇 스승이란 배우고자 하는 자에게는 관리(官吏)가 스승이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여야 법령으로 나라를 다스릴 수가 있겠습니다. 만일
의약(醫藥).점복(占卜).농예(農藝) 따위에 관한 서적 외의 것을 읽거나
소지하는 자가 있다면 사형에 처하고 옛것을 가려 현재를 비판하는 자가
있다면 일족을 멸하겠습니다.]
개혁 비판세력들의 입장에서는 혹 떼려다 붙인 꼴이었다. 어쨌든
분서(焚書)를 관철시킨 이사는 그로 인해 그 권세와 영화가 극에 달했다.
큰아들 유(由)는 삼천군(三川君: 洛陽 일대)의 태수가 되었으며, 아들들은
모두 진나라 시황제의 황녀들과 결혼하였고 딸들은 시황제의 여러
황자들에게 시집 보냈다.
이유가 휴가차 함양으로 돌아왔을 때 이사는 아들을 위하여 집에서
주연을 베풀었다. 백관(百官)의 장(長)들이 모두 몰려와서 이사의
무병장수를 축복하였으며 그의 넓은 문전에 늘어선 거기(車騎)는 수천 대를
헤아렸다. 문득 스승 순자(荀子)께서 하던 말이 떠올랐다.
[지나치게 성대한 것을 경계하라. 만물은 극도에 달하면 쇠하는 법이니.
나는 상채에서 태어난 일개 평민이다. 촌구석에서 자란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그런데 주상께서는 내가 둔하고 천한 것을 모르시고 이렇게까지
발탁해 주셨다. 지금 사람의 신하로서는 나보다 위에 있는 이가 없다.
부귀도 극도에 달했거늘 그런데 나의 앞날이 어떻게 될 것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이사는 자신도 모르는 한숨과 탄식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순자의 경고는
곧 잊어 버렸다. 어쨌든 법률과 제도를 밝히고 율령을 정한 것은 모두
시황제로 부터 출발됐다. 문자를 통일하고 천하 도처에 이궁(離宮)과
별장도 축조했다. 천하를 순행하고 그 사방의 만족(蠻族)들을 격퇴했다.
그러나 이 모든 대사업에 참여한 것은 이사였다. 시황제의 야심을 이루는데
없어서는 안 될 신하였다.
시황제 37년 시월이었다. 황제는 순행하여 회계산에서 노닐다가 해안을
따라 북상하여 낭야(낭야)에 도착했다. 이사와 조고 등이 수행했다.
장자(長子) 부소(扶蘇)는 황제께 솔직한 말로 자주 간했으므로 황제는
귀찮게 여겨 상군(上郡)의 군단(軍團) 장군인 몽염(蒙염)을 감독하도록
밖으로 내보냈었다. 그런데 순행을 떠나오기 직전이었다.
[이번 황제폐하의 순행길에는 작은 공자께서 꼭 수종(수從)하도록
하십시오.]
중거부령(中車府令: 宮中御車係長) 조고(趙高)가 말자(末子)
호해(胡亥)한테 심각한 표정으로 귓속말을 했다.
[나를?]
[폐하의 건강이 심상치 않습니다.]
[그토록 심각한 거요?]
[형님〔扶蘇〕께서는 상군(上郡)의 군단(軍團)을 감독하러 나가
계십니다. 아들된 자가 아버지를 수행함은 당연한 일입니다.]
호해는, 환관이며 부새령(符璽令: 割符.옥새를 다루는 관)을 겸무하고
있는 조고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허락하실까?]
[총애가 지극하시니 틀림없이 허락하실 겁니다.]
그래서 호해는 시황제한테 아뢰었다.
[황제폐하, 이번 순유길에는 소자가 폐하를 수종할까 합니다.]
[호해가 함께 가겠다고?]
[수종토록 허락해 주십시오.]
[기특하구나. 내 사랑하는 아들이 곁에서 수종하겠다니 마음 든든하다.
그렇게 하여라.]
그 때만 하여도 호해는 조고의 권유의 뜻을 확실히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어쨌든 호해만이 황제를 수행하는 행운을 잡았던 것이다. 그 해
7월이었다. 시황제가 사구(沙丘)에 이르러 병이 위독했다. 조고를 시켜
황자 부소에게 보내는 편지를 받아쓰게 했다.
- 군단은 몽염에게 맡기고 부소는 함양으로 돌아가 나의 유해를 맞이하여
장례를 지내라.
편지는 봉해졌다. 그러나 부소에게 가는 편지가 채 사자의 손에
들어가기도 전에 시황제가 붕어했다. 그 편지와 옥새는 아직도 조고의 손에
있었다. 이사는 시황제가 여행 중에 붕어한데다 정식 황태자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몹시 신경이 쓰였다.
시황제의 유해는 온량거(온량車: 창문을 여닫음으로 해서 溫冷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게 화려한 깃털로 장식한 큰 수레)에 실려 급히
함양으로 향하고 있었다.
[모두들 입조심하오. 황제폐하께서 국도(國都) 밖에서 갑자기
붕어하셨으니 각별히 비밀이 지켜지지 않으면 큰 변이 나오. 태자가
정해지지 않은 마당에서 여러 황자(皇子)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어찌
되겠소. 반드시 천하에 변란이 일어날 거요!]
승상 이사는 전전긍긍했다. 실상 시황제의 붕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이사, 호해, 조고 그리고 총애받던 내시 다섯 명뿐이었다.
[그러하니 지금 이 상황에서 발상(發喪)도 할 수가 없소. 평소에 하던
대로 환관을 동승시켜 통과하는 곳마다 황제의 수라상을 올리고 문무백관이
주상(奏上)하는 바도 종전과 같이 하겠소. 주사(奏事)의 결재도 온량거
안에서 할 것이오. 이런 눈가림은 함양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되오.]
환관 하나가 물었다.
[때마침 여름이라 유해의 부식이 빨라 악취가 심하게 날 것 같습니다.]
[좋은 방법이 있다. 온량거 뒤에 소금에 절인 생선수레를 따르게 하라.
냄새를 구별 못 하게 말이다.]
이토록 승상 이사가 작은 일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동안 옥새가
눌려진 부소에게 갈 편지를 손에 쥔 조고는 밤을 틈타 호해 황자한테
조용히 찾아갔다.
[주상폐하께서는 붕어하셨지만 상군에 계시는 부소 황자께 가는 서신은
아직 보내지 않았습니다. 옥새 또한 직책상 보관하고 있습니다.]
[폐하께서는 장남한테만 편지를 내리셨소?]
[물론입니다. 여러 공자들께 왕으로 봉한다는 조서도 없었으며 오로지
맏아들한테만 전하는 편지를 내렸습니다.]
[그야 당연한 일이지요. 장자(長子)의 이름으로 발상하고 또
대위(大位)를 물려받아야 되겠지요.]
[그와 함께 호해 공자께선 한 치의 땅도 얻어 가질 수가 없게 되지요.]
조고의 뜻하지 않았던 발설에 호해는 깜짝 놀라서 등촉 너머로 눈빛을
빛내고 있는 조고를 건너다보았다.
[무슨 뜻이오?]
[부소 황자께서는 이제 2세황제가 되실 것이며 호해 황자께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씀을 드렸을 뿐입니다.]
[당연한 이치를 어찌 새삼스레 거론하시오. 명군(名君)은 신하를 가장 잘
알며 현부(賢父)는 그 자식을 가장 잘 안다고 듣고 있소. 그러하니
아버님께서 기왕에 큰아들을 택하여 황제로 봉하려 하시는데 나로서 무슨
할말이 더 있겠소.]
[그렇게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지금이 가장 중요한 순간입니다. 전날
소신이 공자께 서(書)와 옥률(獄律)과 법령에 관하여 정성을 다한 강론을
펼쳐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어쨌다는 거지요?]
[모두 이유가 있어 미리 그렇게 준비시켜 드린 것이옵니다. 이제 천하의
대권을 잡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결심 하나에 달렸습니다.]
[그래서 날보고 어쩌란 거요?]
[공자께선 남을 신하로 삼는 것과 남의 신하가 되는 차이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또 남을 다스리는 일과 남에게 다스림을 받는 그 엄청난
차이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꿈에서라도 생각해 본 적이 없소. 내가 알기로는 형을 제위에 오르지
못하게 하고 아우가 즉위한다는 것은 불의(不義)요. 부제(父帝)의 조서를
받들지 않고 발각되어 처형될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불효(不孝)요. 자신의
재능은 천박하면서 남의 공로에 의지해 성사하는 바는 불능(不能)이오.
이상의 세 가지는 역덕(逆德)이며 이를 억지로 이루려 하면 천하가
복종하지 않을 것이오. 몸은 위태로워지며 사직은 제사를 받지 않으려 할
것이오.]
그러나 조고는 물러서지 않았다. 어둠 속을 한 번 휘둘러본 뒤에 다시
자신만만하게 입을 열었다.
[제가 듣기로는, '탕왕과 무왕이 각각 자기의 군주를 죽였으나
천하에서는 오히려 의롭다 하고 불충하다고는 말하지 않았으며, 위(衛)의
군주는 자기 아버지를 죽이고 즉위했으나 위의 백성들은 그의 덕을 받들고,
공자(孔子)도 이 사건을 <춘추(春秋)>에 기록했으나 불효라고 하지는
않았다(衛에는 이런 사실이 없었음)'고 했습니다.
대체로 위대한 행위에는 소소한 근신(謹身)을 돌보지 않으며 성대한 덕의
소유자는 받아야할 것을 사양하지 않습니다. 향리(鄕里)마다 각각 제
나름대로의 좋은 점이 있으며 백관의 공과 임무도 다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작은 일을 돌보다가 큰일을 잊어 버리면 뒤에 반드시 해가 있으며
호의(狐疑)하고 주저하다가는 후에 반드시 후회하게 됩니다. 결단을 내려
감행하면 귀신도 이것을 피하고 나중에는 성공만 있습니다. 공자께서는 이
일을 결행하십시오!]
조고의 말이 그럴 듯하게 들리면서도 그래도 주저되어 탄식하듯이
내뱉었다.
[지금 황제의 붕어도 발표되지 않았고 상례(喪禮)도 치르지 않았거늘
어찌 이런 일부터 거론한단 말씀이오!]
[그렇지만 기회는 지금뿐입니다. 생각할 시간의 여유를 가진다는 것은 한
번밖에 없는 절호의 기회를 영영 놓친다는 뜻입니다. 양식을 지고 말을
달려도 차라리 늦어질까 두려운 지경입니다!]
[그렇지만 승상이.......]
[물론 승상과 의논하지 않으면 일이 성사되기는 어렵습니다. 하오나 그
점은 제게 맡겨 주십시오. 공자를 위하여 제가 승상과 상의하겠습니다.]
[모르겠소. 나로선 판단할 만한 지혜가 없소. 조중거부령께서 승상과
의논해 보시오.......]
호해의 말이 떨어지자 조고는 머뭇거리지 않았다. 바로 그 밤을 도와
승상 이사의 간이 숙소로 치달렸다.
[야음한데 무슨 일이오?]
어사는 뜻밖이란 듯이 조고를 건너다보았다.
[기밀한 의논을 드릴 일이 생겼습니다.]
[기밀한 의논?]
[황제폐하께서 붕어하시기 직전에 장자 부소에게 서신을 내려 함양에서
유해를 맞으라 하신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그대가 귀띔하지 않았소. 짐작컨대 부소 황자를 후사로 책봉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소.]
[하오나, 편지는 아직 보내지지 않았고 부절과 옥새는 호해 황자께서
지니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게 어떻게 됐다는 얘기요?]
이사는 불쾌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호해 공자의 생각은 다른 것 같습니다.]
[무어?]
[실상 황태자를 누구로 할 것이냐 하는 문제도 승상과 저한테 달려
있다고 보아집니다.]
일의 중차대함을 깨달은 이사는 낯빛이 변했다.
[그 무슨 나라 망칠 말씀이오! 이런 일은 신하된 자들이 의논해서 될
일이 아니오!]
자세를 고쳐 앉은 조고는 호해한테 했던 바대로 다시 이사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몇 말씀 여쭙겠습니다. 지금 승상께서는 스스로 헤아려 몽염장군에 비해
어느 편이 능력이 낫다고 생각되십니까.]
[내가 못 하오.]
이사는 잘라 말했다.
[공훈의 높고 낮음을 가늠할 때 몽 장군과 어느 쪽이 낫습니까.]
[몽 장군이 높으오.]
[원대한 계략을 세워서 실수하지 않는 점에는 어떻습니까.]
[그 역시 몽 장군이 낫소.]
[천하 사람들의 원한을 사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어찌됩니까.]
[물론 몽 장군의 인품이 나보다 나으니까.]
[끝으로 여쭙겠습니다. 장자인 부소 황자께서 몽 장군과 승상을 비교해
오랫동안 사귀어 신뢰가 두터운 점에서는 어느 쪽이 낫습니까.]
[물어 볼 필요도 없소. 말할 것도 없이 몽 장군 쪽이오. 헌데, 그대가
대체 무엇이길래 그런 걸 따져묻는단 말이오!]
[결국 다섯 가지 중에서 승상은 단 한 가지도 몽 장군보다 나은 게
없습니다.]
[그래서 나를 질책하는 거요?]
[아닙니다. 이해득실을 따지고 있는 중입니다. 노여움을 푸시고 제
얘기를 들어 주십시오.]
[듣기 싫소!]
[싫으시더라도 잠시만 제 얘기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그런 후에 저를
처벌하시든 책망하시든 마음대로 하십시오.]
[도대체 그대가 하고자 하는 얘기의 핵심이 뭐요?]
[저는 본시 천역(賤役)이나 맡아보는 환관에 지나지 않습니다만 다행히도
도필(刀筆: 竹簡의 오자를 깍는데 쓰는 칼이나 기록관)의 문재(文才)가
조금 있어 진궁(秦宮)으로 들어와 어언간 스무해나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동안 저는 나름대로 관찰한 것이 있습니다. 무어냐 하면, 진나라에서
파면된 승상이나 공신으로서 봉토를 2대에 걸쳐서 보존한 분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
[봉토는 커녕 결국은 모조리 주살되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소?]
[시황제 폐하의 자식 스무여 황자들에 대해 승상께서도 너무나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폐하의 총애가 두터우셨던 두 분
황자에 대에서만 말씀 올리겠습니다. 우선 장자인 부소 황자에
관해서입니다.]
[옳게 보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분이 황제 위에 오르시게 되면 몽염
장군을 중용하실 것이며 아마 승상으로 기용하실 것이 명약관화합니다.]
[그야......!]
[변명의 여지도 없이 이 승상께서는 결국 열후의 인수를 풀어 놓고
패잔병 같이 낙향을 하셔야 될 터입니다.]
[......!]
[이번에는 호해 황자에 대해서 말씀올리겠습니다. 저는 칙명을 받고 호해
황자를 보육(輔育)하며 법률학을 지도하여 온 지가 벌써 수년 째나
됩니다만 신통하게도 아직까지 과실을 저지르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가까이서 본 바로는 인자하시고 독실 온후하신 성품으로 재물을
가벼이 여기시고 인재를 둥히 여기시며 마음 속은 총명하거나 입으로는
굳이 눌변이시고 예의를 다하여 선비를 존경합니다. 진의 여러 황자들
중에서 그분만한 분은 아직 없습니다. 제 소견으로는 호해 황자께서 후사가
되셔야 승상과 같은 영명후덕하신 분을 오래 등용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승상께서는 심사숙고하셔서 결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사는 일개 필부 환관 주제인 조고의 열변에 마음이 기울고 있다는
사실이 화가 났다. 짐짓 아닌 체라도 해야 직성이 풀리고 체통이 설 것
같았다.
[그대는 이제 그만 하고 자기 위치로 돌아가오. 나는 황제의 조칙을
받들고 하늘의 명에만 따를 뿐이오. 그밖에는 우리가 이 자리에서 결정해야
할 일이 아무것도 없소.]
[안태(安泰)를 위험으로 돌릴 수도 있고 위험을 안태로 돌릴 수도 있는
게 세상 일인 줄 압니다. 다만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위험 대신 안위를 결정하지 않으면 누가 무엇으로 승상을 성지(聖智)를
가지신 분으로 존귀하게 여기겠습니까.]
[잘 들으시오. 나는 상채 마을의 일개 시골 평민이었으나 다행히도
주상께서 발탁해 주셔서 승상에까지 임명되었소. 뿐만 아니라 열후로 봉을
받고 자손까지도 모두 존위(尊位)와 중록(重祿)을 받은 터이오. 이는 주상
시황제께옵서 당초부터 국가의 존망과 황실의 안위를 나에게 부탁하려 했기
때문이오.
그런데 어떻게 폐하의 그 본래 뜻을 배반한단 말이오. 충신은 죽음을
회피하거나 딴 욕망을 가지지 않으며, 효자는 부지런히 부모를 섬겨
위태로운 일을 하지 않으니, 사람의 신하가 된 자는 각각 자기 직책이나
지킬 따름이오. 이상 더 말하지 마오. 그대는 정작 나한테 죄를 짓게
하려는가!]
[제가 듣기로는 성인(聖人)은 때에 따라 변화하여 일정한 태도가 없으며
변화에 따르고 때에 응하며 끝을 보고 근본을 알며 지향하는 바를 보고
구차되는 바를 안다고 합니다. 사물(事物)이란 원래 이런 것으로 어떻게
영구히 변하지 않는 규범이라는 게 있겠습니까.]
[스스로를 성인이라 생각해 본 적은 없소.]
[방금 천하의 대권이 호해 황자에게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시렵니까. 무릇
외부에서 내부를 제어하는 것을 혹(惑)이라 하고 하부(下部)에서 상부를
제어하는 것을 적(賊)이라 합니다. 가을에 서리가 내리면 초화(草花)는
조락하고 봄이 되어 얼음이 녹아 물이 흔들리면 만물이 생동하니 이것은
필연의 법칙입니다. 저는 이미 호해 황자의 심중을 파악했습니다. 힘의
흐름은 그분을 향해 흐르고 있습니다. 어째서 이런 도리를 모르십니까.]
[나는 차라리 '진(晋)에서는 태자 신생(申生)을 폐지했다가
헌공(獻公).혜공(惠公).문공(文公) 3대에 걸쳐서 국가가 편안치 못했고
제나라 환공의 형제들은 위(位)를 다투다가 공자 규(糾)가 피살되고 은의
주왕은 친척을 죽이고 간하는 사람의 말을 듣지 않다가 나라는 폐허가 되고
끝내 사직을 위태롭게 했다'고 들었소. 지금 말한 세 사람은 천도를
거역하다가 종묘에 제사지낼 수도 없게 됐소. 나는 인도(人道)를 지키고
싶소. 어떻게 모략을 할 수 있단 말이오.]
[무엇이 인도이며 무엇이 모략입니까. 폐하께서는 부소 황자께 장례를
치르라고만 하셨지 위를 넘긴다는 언질은 한 마디도 없었습니다. 때문에
그것이 불의가 되고 부정이 될 턱이 없습니다. 이제는 좋은 것이 좋다고
말할 때입니다. 상하가 합심하면 장구히 번영을 누릴 수가 있으며 내(內:
趙高).외(外: 李斯)가 일치하면 표리가 없어집니다. 승상께서 저의 말을
들으셔야 오래도록 봉후(封侯)를 유지하여 자자손손 후(侯)라 칭하며
반드시 왕자교(王子喬)나 적송자(赤松子) 같은 장수를 누리며 공자와 묵자
같은 지혜를 가졌다 할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지금 이것을 버리고 따르지 않으면 화가 자손에게 미쳐 한심스런 결과를
초래하고 맙니다. 선처하는 자는 화를 복으로 돌릴 수가 있습니다. 자,
저로서도 드릴 말씀 모두 올렸습니다. 승상께서는 이제 어떻게 처신하려
하십니까.]
이사는 묵묵히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흘리며 한숨을 토한 뒤 드디어
하늘을 우러러 탄식했다.
[아아, 나 혼자 난세를 만나 죽지도 못하니, 내 목숨 어디에다 맡긴단
말인가!]
별수없이 이사는 조고의 의견에 동의하고 말았다.
그래서 세 사람이 합석했다.
[자, 이제 우리 세 사람은 생명이 끝나는 그 날까지 이 사실을 비밀에
붙여야 할 것이오. 문제는 유해가 함양에 도착하기 전에 몇 가지 처리해야
될 일이 있을 것 같은데.......]
호해와 조고를 둘러보며 이사가 물었다.
[부소 황자와 몽 장군이 최대의 걸림돌입니다. 시황제 폐하의 어명을
빌려 처리합시다.]
조고가 눈 하나 깜짝 않고 대답했다.
[만만치가 않소. 어떤 식으로 그들을 제거하지요?]
이사의 되물음에 조고가 품 속을 부시럭거리며 편지 한 장을 꺼내었다.
[한 번 검토해 보시겠습니까. 두 분께서 이의가 없으시다면 곧 바로
황제의 옥새로 봉하고 빈객을 시켜 상군(上郡)의 부소에게 내리면 됩니다.]
- 짐이 천하를 순행하여 명산의 제신(諸神)께 제사 지내고 기도드려
수명을 여장하려고 한다. 지금 부소는 장군 몽염과 함께 군사 수십만을
이끌고 변경에 주둔한 지가 어언 10년이다.
그러나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사졸들만 많이 소모되어 나라에
한 치의 작은 공로도 이룬 게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번
상서(上書)로 직언하여 짐이 하는 일만 비방하였다. 그러면서도 군대
감독의 일을 그만두고 돌아와 태자가 되겠다고 보채며 짐을 원망만 하였다.
부소는 아들된 자로서 불효하다.
칼을 하사(下賜)하니 이것으로 자결하라. 장군 몽염은 부소와 함께 밖에
있으면서 부소를 바로잡지 못했다. 응당 그 음모를 알고서도 모른 척했으니
신하된 자로서 불충하다. 죽음을 내리니 군사는 비장 왕이(王離)에게
맡긴다.
[어떻습니까?]
[됐소. 호해 황자의 빈객을 시켜 즉시 상군으로 보내시오.]
한편, 황제의 칙서를 받아든 부소와 몽염은 청천의 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소!]
[어쩝니까. 황제폐하의 어명이어늘.......]
몽염은 분개하였고 부소는 울면서 자결하려고 준비하였다.
[잠깐만 참으십시오. 아무래도 수상한 데가 있습니다.]
[무엇이 수상합니까. 구차스런 목숨을 구걸하여 황제의 칙서를
의심하다니요.]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폐하께서는 도성(都城) 바깥에 계십니다. 태자
운운하셨는데 아직까지 태자를 책봉하셨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그것이 이상하오?]
[저에게는 30만 대군을 내맡겨 변경을 수호하게 하셨습니다. 더구나
황자를 시켜 대군을 감시케까지 하셨습니다. 이것은 천하의 중임입니다.
이런 저에게 한 자루의 칼로 간단하게 죽음을 내리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필시 여기에는 음모가 있을 듯합니다.]
[음모가?]
[비록 폐하의 옥새가 찍혔다 하나 그야 얼마든지 위조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더구나 칙서를 소지하고 온 사자는 폐하의 사자가 아니라 호해
황자의 빈객인 듯합니다. 한 번 더 확인한 뒤에.......]
[부질없는 짓이오.]
[용서라도 청해 본 뒤에 죽어도 늦지 않습니다. 더구나 폐하께서는
명산의 제신들에게 제사 지내고 기도드려 수명을 연장하신다는 말씀을
적으셨습니다. 이는 필시 신변에.......]
막사 바깥에서는 사자들의, 어명을 받들라는 호령이 계속해서 들리고
있었다.
[이것이 천명(天命)이라면 나로선 순응할 수밖에 없소......!]
부소는 칼을 받아들고 제 막사로 돌아가면서 마지막으로 몽염에게
말했다.
[아버지가 자식에게 죽음을 내린 이상 다시 용서를 청할 수는 없는
일이오.......]
그러나 몽염은 달랐다. 장군의 위엄을 한껏 가누며 사자에게 소리쳤다.
[믿을 수가 없소. 나는 자살하지 않겠소. 다시 한 번 더 명(命)을 내려
주시오!]
사자도 별수가 없었다.
[그토록 원하시니 그렇게 해 보리다. 그러나 장군의 직위와 신병(身柄)은
그대로 방치할 수가 없소.]
그렇게 되어서 몽염은 장군의 인수를 빼앗겼고 일단 양주(陽周: 甘肅省
正寧縣의 북쪽)의 옥에 갇혔다. 사자는 돌아와 호해와 이사와 조고에게
보고했다. 서둘러 함양으로 돌아온 그들은 비로소 시황제의 붕어를
발표하고 호해는 즉시 즉위하여 2세황제가 되었다.
조고를 낭중령(郎中令: 九卿의 하나인 宮門을 맡아 보는 관)으로 삼아
황제의 측근에 두었으며 정권을 전단케 했다. 어느 날 백성들의 냉담함을
느낀 2세 호해 황제는 조고를 불러 말했다.
[대신들이나 백성들이 아직 짐에게 승복하지 않는 것 같소. 하물며
그러하거늘 다른 황자들이야 어떻겠소.]
[사실 그러합니다.]
[무릇 인간이 세상에서 산다는 것을 비유해 말하면 육두(六頭) 마차가
끄는 마차의 달리는 틈새로 내다보는 것처럼 지극히 짧은 것이오.]
[분부대로입니다.]
[짐은 이미 황제로 군림했소. 짐의 눈과 귀가 좋아하는 것은 빠짐없이
추구하고 마음에 즐거운 것이라면 철저히 추궁하고 싶은 거요.]
[그것은 현명한 군주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한데, 이래가지고서야 쾌락은커녕 종묘를 안태케 하고 천하를 장구히
지배하며, 짐의 천수나마 제대로 누릴 수 있을 것 같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불가하다고?]
[감히 여쭙겠습니다만 실은 사구(沙丘)에서의 모의에 관해서는 많은
황자들과 대신들은 물론 백성들이 의심을 품고 있습니다. 더구나 황자들은
선제의 아들들이고 대신들의 선제의 사람들이 아닙니까. 저는 전전긍긍
저들의 모반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러하니 폐하께서는 기왕에 말씀하신
그런 인생의 즐거움을 누릴 처지가 못 되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좋겠소.]
[우선 하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 선행해야 될 일이 무어란 말이오.]
[선제의 대신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대대로 이름난 귀현(貴縣)들입니다.
공로를 쌓아 대대로 자손에게 그 영예가 전해지기 오래입니다. 그렇지만 저
조고는 미천한 출신이나 다행히 폐하께서 중용해 주셔서 궁중의 대소사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대신들은 불쾌한 심정을 가누며 겉으로는
따르는 척하지만 내심 심복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렇소?]
[고로 폐하께서는 이번 기회에 군현(郡縣)의 수(守).위(尉)에 있는
자들을 조사해서 죄를 주면 폐하의 위세가 천하에 떨칠 듯 합니다.]
[물갈이를 하란 뜻이오?]
[폐하께서 저번 순행길에서 느꼈을 것입니다. 평소에 못된 신하라고
생각되던 자들을 제거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아닙니까. 지금은
문덕(文德)을 내세울 때가 아니라 무력(武力)을 가지고 만사를 결단할
시절입니다. 폐하께서는 이런 시세(時勢)를 명찰하셔서 군신들이 모의할
틈을 주지 마십시오.]
[그럴 듯하오. 그 모반의 기미가 있는 자들의 명단을 낭중령이 작성해
오도록 하오.]
[명주(明主)는 작금의 군신 외의 백성을 대거 중용하십시오. 천한 자를
귀하게 해 주고 가난한 자를 부유하게 해 주며 소원했던 자를 친근하게 해
주면 그 공평함으로 인하여 상하의 인심이 결집되고 국가는 안태하게 될
것입니다.]
대살육의 선풍이 불어 소신(小臣)과 삼랑(三郞: 中.外.散郞)의 거의를
연속 체포해 주살해 버렸기 때문에 조정에 시립해 설 수 있는 자가
드물었다. 조고의 진언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폐하, 차제에 법을 엄히 하고 형벌을 가혹하게 하며 죄 있는 자는
연좌제(連坐制)를 실시해 일족을 모조리 주살하십시오.]
[그렇게 함으로써 얻는 이익이 무엇이오?]
[폐하께 심복하지 않는 황자와 대신들을 제거하는 방편입니다. 폐하
골육(骨肉: 兄弟)의 모반을 경계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가난한 자가 부유하게 되고 천한 자가 높아지며 선제의 유신(遺臣)들이
제거되어 간사한 묘략이 방지되고 폐하의 은덕을 입지 않는 신하들이 없게
되며 숨은 덕이 폐하께로 모여 비로소 폐하께서는 베개를 높이 하고
마음대로 즐기실 수가 있게 됩니다.]
[그렇게 처리하오!]
법률은 조고가 제정했고 2세황제는 결제했다. 또다시 대검거의 선풍이
불었다. 대신인 몽의, 장군인 몽염 등이 죽은 후 황자 열두 명이 함양의
저자에서 몰살되었으며 열 명의 황녀(皇女)를 두(杜: 장안 근교)에서
책살(책殺: 기둥에 묶어 세워 창으로 찔러 죽임)해 버렸다. 여기에 연루된
자는 이루 헤아릴 수가 없었다. 황자 고(高)는 망명을 고려하다가 일족이나
살려야 되겠다며 생각을 고쳐 먹고 황제에게 상소했다.
- 선제께서 건재하실 무렵 저는 궁중에 들어가서 식사를 하사받고 나갈
때는 수레를 태워 주시고 어부(御府)의 좋은 의복을 내려 주시고
어구(御廐: 황제의 마구간)의 보마(寶馬)를 내리셨습니다.
저는 마땅히 순사(殉死)했어야 했거늘 그렇지 못해 아들로서 불효하고
신하로서 불충하여 이 세상에 설 명분이 없습니다. 늦게나마 순사하려
하오니 원컨대 역산(역山: 始皇帝의 陵이 있는 곳) 기슭에 매장해
주십시오. 폐하께서 가엾게 여겨 제 소청을 들어 주신다면 이에 더한
다행이 없겠습니다.
그런 소청서를 받아든 2세황제는 급히 조고를 불렀다.
[이런 서찰이 올라왔소. 어떻게 해석해야 될까?]
[죽음의 근심만이 다급해 모반의 엄두는 감히 낼 수 없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이는 법이 엄했기 때문입니다. 폐하께서는 기뻐해 주십시오.]
2세황제는 그 뜻이 좋다하여 십만 전(錢)을 하사해 고의 소원대로
생매장해 주었다. 한편 황자 장려(將閭)의 형제 세 명은 내궁(內宮)에 갇힌
관계로 처형이 늦어지고 있었다.
[장려를 살려 두시면 후환이 두렵습니다. 그는 덕망 있는 황자입니다.]
[그렇다면 더욱 살려 둘 수가 없지. 관리를 보내어 법대로 집행하라.]
집행관이 장려를 찾아와 불충한 신하로서의 사형을 통고했다.
[불충한 신하?]
장려가 반발했다.
[조정의 논의에 저는 참여한 바 없기로 오로지 조서를 받들 뿐입니다.]
[나 장려는 조정의 예식(禮式)에서 아직 빈찬(賓贊: 의예관)의 지시를
어기는 실례를 한 번도 번한 적이 없다. 종묘의 석차에 있어서도 그 절도를
잃어 그 순서를 어지럽힌 적이 없다. 폐하의 명령을 받아 빈객을 접대하는
경우에도 나는 아직까지 실언(失言)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어째서 내가
불충한 신하인지 그 이유를 말해 보라.]
[그것은 제가 대답할 일이 아닌 듯합니다.]
[원컨대 나의 진정한 죄과를 알고서나 죽을 길이 없을까?]
[황자로 태어나신 게 죄인 듯합니다.]
[옳은 말이다. 이는 천명(天命)일세. 그러나 나에게 죄는 없다!]
목숨을 부지해 물러설 길이 없다는 사실을 감지한 장려 형제들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한 뒤 칼을 빼서 자살했다. 제실(帝室)의 일족들은 모두 공포에
떨었다. 군신 중에서 혹시 충간이라도 하는 자가 있으면 황제를 비방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여지없이 처형되었다. 대신들은 재산과 목숨을 잃지
않으려고 아부에 급급했다. 백성들도 이유 없는 불똥을 맞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했다.
법령과 주벌은 날로 가혹해지고 부세(賦稅)는 더욱 무거워졌다. 그렇지만
2세황제의 귀에는 천하의 신음 소리가 조금도 들리지 않았다.
[선제께서는 함양의 조정이 협소하다 하시어 아방궁을 조영하고 궁전을
세우려 하셨으나 아직 완성을 보지 못하고 붕어하셨소. 일시 아방궁 공사를
중지하고 역산능을 착공했으나 이미 역산능의 공사가 완성되었기로 다시
아방궁을 짓기로 하겠소. 만일 이 공사를 반대하는 신하가 있다면 이는
선제를 비방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엄벌을 내릴 것이오.]
무릇 이렇게 되니 그 앞에서 반대하는 자가 있을 수 없었다. 아방궁은
다시 조영되었다. 사방의 오랑캐를 막기 위해 장성의 축조도 다시
진행되었다. 신변의 안전을 위해 2세황제는 조고와 의논해 재사(材士:
材官蹶張의 士. 강한 쇠뇌를 두 발로 벌릴 수 있는 용사) 오만 명을 징집해
수도방위를 감당케 했다.
그들 사수(射手) 외에도 개와 말 등 사육할 동물들이 많았으므로 그 식량
조달이 심각했다. 그래서 인근 군현에 하명해 콩 쌀 밀 등을 징발해
함양으로 수송하게 했다. 수도 삼백 리 이내의 농민들은 자신이 수확한
곡물을 먹을 수가 없었으며 심지어 곡물 수송관리들까지도 자신의 식량을
각자 지참하게 했다.
2세황제는 또 천자의 행차를 위한 전용도로 건설에도 착수했다. 이러니
부세는 더욱 무거워지고 변경수비나 노역의 징발은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초(楚)의 수비병인 진승(陳勝)과 오광(吳廣) 등이 반란을 일으켜
산동(山東)에서 봉기했고 호걸들이 사방에서 일어나 스스로 후(侯)라
칭하며 진나라에 반역했다.
반란군들을 홍문(鴻門: 陜西省 臨潼縣 동쪽)까지 진격하다가 물러갈
정도로 사태는 악화되어 가고 있었다. 이사는 승상의 몸으로서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토록 급박한 사태를 황제께 알리고
진나라를 구하려고 노심초사했다. 그래서 2세황제가 한가한 틈을 타서
간하려고 했다. 그러나 황제는 간언을 받아들이기는커녕 짜증을 내며
오히려 이사를 문책까지 하려 들었다.
[짐도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는 법이오. 한비자에서 들은 말이지만, '요
임금이 천하를 차지했을 때 당(堂)의 높이는 세 자〔尺〕이며 서까래는
통나무 그대로 깎지 않았으며 지붕은 참억새와 납가새〔茅茨〕로 덮은 이엉
끝을 가지런히 자르지 않아 여사(旅舍)라 할지라도 이보다 검소할 수가
없었소.
겨울에는 사슴가죽옷을 입고 여름에는 칡베옷을 입었으며 거친 현미밥을
질그릇에다 담아 먹고 명아주잎, 콩잎으로 끓인 국을 질그릇에 담아
마셨소. 문지기의 음식도 이보다 질박할 수는 없었소. 우 임금은
용문산(龍門山: 山西省)을 뚫고 대하천(大夏川)을 통하게 하여
구하(九河)를 소통 시켰으며, 구곡(九曲)의 둑을 쌓아 막혔던 물길을 터
주어 바다로 쏟아지게 했소.
우 임금은 이런 일을 하느라 넓적다리의 잔털이 닳아 없어졌으며,
종아리털까지 다 없어졌소. 손발에는 못이 박히고 얼굴은 까맣게 그을려
있었소. 끝내 객사해 회계산에 묻혔소. 노예의 노고라 할지라도 이보다
심하지는 않았다'는 것이오. 그렇다면 천하를 소유하는 것을 존귀하게
여기는 까닭이 무엇이오. 자기의 심신을 괴롭히고 자기 몸을 여인숙에
재우며 입으로는 문지기의 음식을 먹고 손으로는 노예 같은 일을 하기
위함인가.
이것은 못난 사람이 힘쓸 일이지 현명한 사람이 할 일은 아니오. 현명한
사람이란 천하를 소유했을 때 천하를 제마음대로 써서 자신을 쾌적하게
두는 사람이오. 그래서 천하를 소유하는 것을 존귀하게 여기는 것이오.
현명한 자야말로 천하를 안정시키고 만백성을 다스리오. 자기 한 몸도
이롭지 못하게 하는 자가 어찌 천하를 다스릴 수 있겠소. 고로, 짐은
마음먹은 대로 욕심을 채우며 장구히 천하를 향유해 재해만 없기를 바랄
뿐이오.]
더구나 기회는 더욱 나빴다. 아들 유가 삼천(三川)군의 태수였는데
떼도둑 오광 등이 삼천군의 서부를 공략해 지나갔을 때 그것을 막지
못했다. 진장(秦將) 장한(章한)이 오광 등의 군도들을 쫓아 내긴 했지만,
그래도 책임을 묻는 사자가 계속해서 삼천군을 들락거릴 수밖에 없었다.
2세황제는 역시 이사에게 문책을 했다는 소문이었다.
[그래서 이사는 삼공(三公)의 지위에 있으면서 어째서 도둑들이 이토록
날뛰도록 놓아 두었는가 말이오!]
누군가가 와서 이사에게 귀띔했다.
[폐하의 심기가 몹시 불편하십니다. 작록을 잃지 않으시려면 서둘러
폐하께 용서를 비는 글을 올리십시오. 헛된 간언은 드리지 마시고요.]
이사는 두려웠다. 그는 2세황제의 비위를 맞추는 상소문을 쓸수밖에
없었다.
- 무릇 현명한 군주는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 신하의 책임을 따지고
형벌을 내립니다. 그럼으로써 신하들은 능력을 다하여 군주를 따르지 않을
수가 없게 됩니다. 신하와 군주의 본분이 정해지고 위아래의 의리가
밝혀지면 천하의 현자나 우자나 모두 힘을 합해 책임을 다하고 자기 군주를
따릅니다.
그러므로 군주 단 한 사람만 천하를 지배하며 남에게 지배당하지 않는
즐거움의 극치를 맛봅니다. 이런 분이 현명한 군주입니다. 신자(申子:
申不害)가 말했습니다. '천하를 차지하고서도 제맘대로 못하면 천하를
질곡(桎梏: 차꼬와 수갑)으로 삼는 데 불과하다'고 한 뜻은 응분의 처벌을
내리지 못함으로써 도리어 자신의 몸을 괴롭힌 요.순과 같은 경우라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신불해나 한비자의 법술을 배워 응분의 처벌을 내리는 방도를
실행해 오로지 천하를 자신에게 쾌적하게 만들 일이지 부질없이 노력해 제
몸을 괴롭히고 정신을 피로케 하여 몸소 백성에게 봉사한다는 것은
백성에게 사역(使役)되는 것이지 천하를 양육하는 군주는 아닙니다.
이래서야 어찌 존귀하다고 하겠습니까. 남을 나에게 따르게 하면 나는
존귀해지고 남은 하천해지며, 내가 남을 따르게 되면 내가 하천해지고 남은
존귀해집니다. 그러므로 남을 따르는 자는 하천하고 남을 따르게 하는 자는
존중합니다.
[그토록 잘 알면서 어찌 짐을 질타했는가!]
- 예부터 지금까지 그렇지 않은 경우란 없었습니다. 옛날에 현자(賢者)를
존중한 까닭은 그가 존귀하기 때문이며 불초한 자를 미워한 까닭은 그가
하천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우 임금은 몸소 천하의 백성을
따랐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그들을 존귀한다 한다면 역시 현자를 존중하는 명분이
없어집니다. 이것은 매우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을
질곡이라 말해도 당연하지 않겠습니다. 물론 응분의 처벌을 신하에게
내리지 못하는 데서 오는 잘못을 일컬음입니다. 한비자가 말하기를,
'자애로운 어머니에게는 집안을 망치는 자식이 있으나 엄격한 가정에는
거역하는 종이 없다'고 했는데, 이는 주인의 명령을 거역하면 반드시 벌을
받기 때문입니다.
옛날 상군(商君)의 법에서는 길에 재를 버리면 처벌했습니다. 대체로
재를 버린다는 것은 경죄(輕罪)이지만 형벌은 중했습니다. 오직 현명한
군주만이 가벼운 죄를 깊이 다스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가벼운
죄로 엄하게 다스렸으니 중한 죄야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그래서
백성들은 감히 죄를 짓지 못했습니다.
한비자는 이렇게도 말했습니다. '하찮은 배 조각이나 비단 조각은 도둑
아닌 보통 사람도 가져가지만 백일(百鎰)의 좋은 황금은 도척(盜척)도
훔쳐가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는 보통 사람의 작은 이익을 중히 여기는
마음의 깊고 도척의 욕심이 얕아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도척의 행위가
백일이나 되는 대금(大金)을 가벼이 여겼다는 뜻도 아닙니다. 훔치면
반드시 값의 과다에 따라 처벌되기 때문에 도척도 백일의 대금을 훔치지
않았던 것입니다.
고로, 처벌되지 않으면 보통 사람도 하찮은 것이라도 훔치게 됩니다.
그래서 성벽의 높이가 오장(五丈: 1丈은 6尺)밖에 안 되더라도 누계(樓季:
魏 文侯의 弟로 健脚으로 유명)가 가벼이 넘지 못하며 태산의 높이는
백인(百인: 1인은 8尺)이지만 절뚝발이 양치기도 그 정상에서 양을
먹입니다. 생각해 보면, 건각인 누계라도 5장의 한계를 어렵다고 하는데
어떻게 절뚝발이 양치기는 백인의 높이를 쉽다고 할까요. 그것은 원래
직립해 있는 높이와 점차로 높아진 것과는 그 형세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근원이 다르지.]
- 명군(明君).성왕(聖王)이 능히 오래도록 존위에 있으면서 중한 권세를
잡고 홀로 천하의 이익을 독점할 수 있었던 것은 무슨 특별한 방법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혼자 결단을 내려 죄상을 세밀히 살펴 처벌할 때
반드시 가혹하게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죄를 짓지 못하게 하는 근본 원인에 힘쓰지 않고, 자애로운
어머니가 그 아들을 망쳐 버리는 근원을 일삼는다면 이것 역시 성인의 길을
통찰하지 못한 것이 됩니다. 이제 폐하께서 성인의 길을 행하지 못하시면
이는 곧 자신을 버려서, 천하를 위해 사역하는 셈이 됩니다.
그리고 절약 검소하고 인의(仁義)로운 인사가 조정에 서게 되면 언행이
방자한 쾌락은 자취를 감추고, 간언이나 의리를 논하는 신하가 옆에서
발언하면 방만(放漫)한 의견이 물러가고, 열사(烈士)가 절개에 죽는 행위가
세상에 나타나면 음탕한 쾌락은 없어집니다.
그러하니 영명한 군주는 위의 세 부류 인사들을 멀리하고 제왕의
술책만을 조종해 말 잘 듣는 신하를 구사하면서 철저한 법률을 제정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자신이 존중되고 권세는 무거워집니다. 대체로 현명한
군주는 반드시 세정(世情)을 거역하고 습속을 고쳐 미워하는 사항은
폐지하고 좋아하는 사항은 세우려 합니다.
이렇게 해서 생전에는 존귀하며 중한 권세를 누리고 사후에는 현명함을
칭송하는 시호를 드리게 됩니다. 따라서 명군은 독간으로 정치를 하는
까닭에 권력이 신하에게는 없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인의(仁義)로의 길을
차단하고 이론가의 입을 막고 열사의 행위를 누르고 귀를 막고 눈을 가려
남의 언동을 무시하고 마음 속으로 혼자 보고 혼자 들을 수가 있습니다.
[옳거니!]
- 그래서 밖으로는 인의열사(仁義烈士)의 행위에도 군주의 마음을
기울이게 할 수 없고 안으로는 간쟁(諫諍)하는 변설도 군주의 마음을 뺏을
수 없어, 군주는 능히 초연하게 혼자서 마음먹은 대로 행동해도 감히
거역하는 자가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된 후에라야 신불해.한비자의 학술을
실현하고 상군의 법학을 실천할 수 있었다고 할 것입니다.
법학이 실천되고 학술을 실현하고서도 천하가 어지러워졌다고는 아직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왕자(王者)의 도는 간략하여 행하기 쉽다'지만
오직 명군만이 이것을 행할 수 있습니다. 이는 신하의 잘못을 따져 벌 주면
신하에게 간사함이 없어진다는 뜻입니다. 처벌이 성실하면 신하에게 사심이
없어지고 신하에게 사심이 없으면 천하는 평안합니다. 천하가 평안하면
군주는 존엄해집니다.
군주가 존엄하면 처벌은 반드시 실행되며 처벌이 실행되면 구하는 바를
얻을 수 있으며 구하는 바를 얻을 수 있으면 국가가 부유해지며 국가가
부유해지면 쾌락이 풍부해집니다. 그러니 처벌의 법술이 실현되면 어떠한
욕망이라도 얻어지지 않은 것이 없으며 뭇신하들과 백성들의 죄과를
벗어나기에 겨를이 없으니 어떻게 감히 모반을 꾸밀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되면 제도(帝道)는 완성되는 것입니다. 군신의 도를 밝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불해.한비자가 재생한다 하여도 여기에 더 보탤 말은 없을
것입니다.
이사의 글이 상주되자 그것을 받아 본 2세황제는 몹시 기뻐했다. 마음에
흡족하여 그대로 시행하리라 마음먹었다. 고로, 백성을 처벌하는 일이 더욱
엄격해지고 혹독해졌다. 세금의 독촉은 성화 같았고 잘 받아내는 관리를
명관리(名官吏)라 칭찬했다.
[이런 관리야말로 이사가 지적한 것처럼 처벌을 잘 내리는 관리라 말할
만하다.]
어느 새 길을 걸어다니는 사람의 절반은 형벌을 받은 자들이었다. 차라리
벌받지 않은 사람이 이상할 지경이었다. 처형된 시체들이 날마다 시장
바닥에 쌓였다. 그렇지만 2세황제는 또 그렇게 말했다.
[짐의 뜻에 따라 처벌이 가혹한 관리야말로 충신인 것이다.]
대신들 중에서도 조고의 실적은 월등했다. 전날 낭궁령이라는 직위를
이용해 의법 처단한 일 외에 개인적인 원수를 갚은 경우가 너무도 많았다.
그것이 걱정이었다. 대신들이 입조해 상주하다가 자칫 자기를 비방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조고는 2세황제를 설득했다.
[천자가 존귀한 이유는 뭇신하들이 다만 어성(御聲)만 들을 뿐
배안(拜顔)할 수 없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래서 천자는 짐(朕: 도朕 즉
'아직도 나타나지 않은 상태'의 朕으로 억지 해석한 것)이라 자칭합니다.
또 폐하께서는 연소하셔서 만사에 통달하시지는 못하십니다. 지금 조정에
나가시어 신하에 대한 견책이나 등용에 있어 혹시 부당하여 결점을 보여
주게 되는 경우 몹시 낭패스럽습니다.
이것은 폐하가 영명하심을 천하에 끼치는 일이 못 됩니다. 당분간
폐하께서는 궁중 깊은 곳에서 팔짱을 끼고 계시며 저처럼 법에 익숙한
시중(侍中)이 안건을 기다리다가 때마침 안건이 상주되면 그 때에 저희들과
상의하셔서 처리하십시오. 이렇게 하면 대신들도 감히 의심스러운 안건을
상주하지 못할 것이며 천하는 폐하를 성주(聖主)라 칭송할 것입니다.]
막상 기뻐할 줄 알았던 2세황제는 웬지 머뭇거렸다.
[근현(近縣)에까지 출몰한다는 적도(賊徒)들은 그 후 어찌 되었소?]
진승의 주장(周章)을 장군으로 해서 희 땅까지 수십만 대군이 육박했던
사건을 지칭하는 듯했다. 실상 당시에 2세황제는 대경실색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소부(小府: 山海.池澤의 稅를 주관하는 관) 장한(章한)이 황제에게
아뢰었다.
[적도들은 임박하였고 숫자도 많으며 또한 강대합니다.]
[어서 대책을 말해 보오!]
[근현의 병사를 징발한다 하여도 이미 늦습니다. 괴롭지만 역산에서 복역
중인 도형수(徒刑囚)들이 수십만이오니 폐하께서 대사 면령을 내려 무기를
쥐어 주어 출격하게 하십시오.]
[지체할 시각이 없다. 소부 장한을 장군으로 임명하니 그들을 데리고
나가 적도들을 격파하라!]
바로 그 사건이었다. 궁중 깊이 들어 앉아도 위험이 없겠는가 하는
2세황제의 반응이었다. 조고는 재빨리 아뢰었다.
[그 역시 아무 근심 마십시오. 장한 장군이 적도들을 거의 소탕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어서 2세황제는 궁중 깊이 들어 앉았다. 조정에 나아가 대신을
만날 일도 없었다. 동시에 모든 정사는 조고가 2세황제를 끼고 앉아
처리하였고 조고의 손으로 결정되었다. 승상 이사가 황제께 상주한다는
소식을 듣고 혹시 엉뚱한 말이라도 일러바치지 ㅇ을까 걱정한 조고는 먼저
이사를 찾아갔다.
[승상, 큰일났습니다. 함곡관의 동쪽에 군도가 불길처럼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셨습니까.]
[물론 익히 들었지요. 그 때문에 대책을 아뢰기 위해 지금 알현할 기회를
찾고 있소.]
[아시겠지만 지금 상황은 급박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상께서는
이런 위기를 외면하시어 부역(夫役)을 징발해 아방궁이나 조영하며 개나 말
같은 쓸데없는 금수나 모으고 계십니다.]
[정말 큰일이오.]
[제가 충고드리려 하나 그러기에는 제 지위가 너무도 하천합니다. 결국
이런 일은 승상 같으신 분이 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이오. 그러나 진작부터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요즘은 주상께서
도무지 조정으로 나오지 않고 궁중에만 깊이 계시니 도대체 상주할 기회가
없구려.]
[결국은 궁중으로 들어가셔야 되겠습니다. 일이 다급한데 어쩝니까.]
[그럴 듯한 방법이 있겠소?]
[이렇게 하시지요. 제가 폐하의 측근에 있으니 곁에서 기분을 살펴
한가한 틈이라고 생각되는 기회에 승상께 슬쩍 알려드리면 어떻겠습니까.]
[제발 그렇게만 해 주시요.]
며칠이 지나 궁중에서 사람이 왔다.
[지금 폐하께서 한가하신 듯합니다. 서둘러 궁으로 드시지요.]
이사는 멋모르고 궁으로 갔다. 궁문 앞에서 얼마를 기다리고 있자 한
사람의 의랑(議郞)이 나와서 말했다.
[오늘은 폐하의 심신이 번거로워 승상의 배알을 허락하실 수
없으시답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무얼 하시고 계시오.]
[기분을 푸시려고 주연을 베풀어 여인들을 앞에 놓고 즐기고 계십니다.]
[알겠소.......]
이사는 쓴 입맛을 다시며 돌아갔다. 그런 일이 세 차례나 계속되었다.
조고의 계략을 알 리가 없는 이사는 번번이 연락을 받고 왔다가 매번
허탕을 치고 돌아가야만 했다. 조고는 하필 황제의 주흥이 최고로 무르익을
때를 골라 이사를 들어오도록 했던 것이다. 한편 2세황제는 노했다.
[그 참 귀찮은 사람이네. 허구한 날 짐이 한가로울 때는 한번도 찾아오질
않더니 승상은 꼭 짐이 연회로 즐기로 있을 때만 골라 찾아온단 말일세.
도대체 승상은 짐이 젊다 해서 깔보고 있다는 뜻인가!]
조고가 이런 기회를 옆에서 놓칠 리가 없었다.
[이렇게 되면 위태로워집니다. 승상은 저 사구(沙丘)의 음모 때도
참여했습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일개의 황자에서 황제폐하가 되셨습니다만
승상의 지위는 그로부터 더 높아진 게 도무지 없습니다.]
[그럼 승상은 내심 영토를 얻어 왕이 되기를 바란단 말이오?]
[구태여 그러하다고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만 적으나마 그럴 듯한
기미는 있었던 듯합니다.]
[그 기미란 게 무어요?]
[승상의 큰아들 이유는 삼천군의 태수입니다. 그리고 초의 도둑 진승
등은 모두 승상의 고향 가까운 현 출신의 도배(徒輩)들입니다. 여기서
수상쩍었던 점은 초의 도둑들이 활개를 치며 삼천군을 통과해 빠져
나갔는데 무엇 때문인지 굳게 성(城)만 지켰을 뿐 적극 뛰쳐나가 도적들은
격멸하지 않았다는 소문입니다.]
[무엇이!]
[그들 사이에 나름의 맹약문서(盟約文書)가 오갔다는 소문도 있습니다만
확실한 물증을 잡을 수가 없기로 감히 폐하께 말씀드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궁 밖에서는 승상의 권세가 폐하보다 무겁기로 그것이
두려워 소신을 위시해 모두가 쉬쉬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것은 반역죄가 아닌가!]
[그렇더라도 선제 때부터 나라에 끼친 공훈이 큽니다.]
[역모엔 과거의 어떤 큰 공훈도 의미가 없다. 우선 가만히 사람을 시켜
삼천군의 태수가 도둑들과 내통한 사실이 있는가부터 염탐하라. 이런
죄상은 당연히 밝힐 일이다......!]
이사도 궁중에서의 그런 움직임을 들어 알고 있었다.
[이거 그냥 놓아 두어서는 아니 되겠다. 전부터 그 자의 수작질이
심상찮더니!]
이사는 탄식했다. 조고가 자신을 모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 차렸다.
그런 움직임을 감지하고부터 이사는 서둘러 2세황제를 만나 조고의
비위사실을 알릴 기회를 찾았으나 도무지 그럴 틈이 주어지지 않았다.
2세황제는 감천궁(甘泉宮: 陜西省 ? 縣 남서) 깊숙히 틀어박혀 씨름이나
연극 따위를 감상하며 얼굴을 밖으로 내밀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별수가 없었다. 글을 올릴 도리밖에 없었다.
- 신이 듣기로는 '신하가 인군과 다를 바 없는 권력을 누릴 때는
위태로워지지 않는 나라가 없고, 아내가 그 지아비와 같은 세력을 휘둘러서
위태롭지 않은 집안이 없다'고 합니다.
지금 폐하 밑에서 폐하처럼 마음대로 남에게 권력을 주기도 하고
마음대로 남에게 해를 주기도 하는 대신이 있어 폐하의 권세와 다름없는
자가 있으니 이를 방치하는 일은 천부당 말부당한 일입니다. 사성(司城)
벼슬을 하던 자한(子罕)이 송나라 재상이 되어 형벌을 주관하며 잔뜩
권위로 행세하더니 드디어 일 년 만에 자기 임금을 위협하였습니다.
전상(田常)도 제나라 간공(簡公)의 신하가 되어 직위와 서열로는
국내에서 따를 자가 없고 사가(私家)의 부력(富力)은 제나라 공실(公室)과
같아졌습니다. 그러자 은혜를 펴고 덕을 베풀어 아래로는 민심을 얻고
위로는 여러 신하들의 마음을 샀습니다. 그러더니 기어코 남몰래 제나라
국권을 탈취해 재여(宰予)를 뜰에서 죽이고 간공을 조정에서 죽인 다음
드디어 제나라를 손에 넣었습니다.
이것을 천하가 분명히 알고 있는 바입니다. 지금 조고가 사악한 뜻을
품고 위험한 반역을 진행하는 것은 마치 제나라에서의 전상과 같습니다.
전상과 자한이 저질렀던 반역의 수법을 지금 아울러 저지르며 폐하의
위신을 위협하려는 뜻이 마치 한기(韓玘)가 한왕(韓王) 안(安)의
재상이었을 때와 같습니다. 폐하께서 지금 처치하지 않으신다면 무슨
변이라도 그가 일으키지 않을까 몹시 두렵습니다.
이사의 상소문을 받아본 2세황제는 도리어 화를 내며 이사를 궁으로
들라하여 크게 꾸짖기까지 했다.
[대체 이게 무슨 말이오. 조고는 본시 미천한 환관이오. 짐이 알기로
조고는 제 몸이 안전하다고 해서 제멋대로 행동하지 않고 제 몸이
위태롭다고 해서 마음이 변치도 않았소. 오로지 행실을 깨끗이 하고 선행을
닦아서 자신의 노력으로 오늘의 지위에 이르렀소.
충성으로 승진할 수 있었고 신의로 제 자리를 지킬 수가 있었으니, 짐은
그를 참으로 현명하다고 생각하오. 그런 그를 그대가 의심하다니 말이나
되오. 게다가 짐은 연소하오. 부군(父君)을 잃고 지식도 적고 백성을
다스리는 일에도 서투르기 짝이 없소.
차제에 그대마저 ㄴ어 판단력까지 흐려졌으니 짐은 과연 천하의 일과
동떨어져 있게 되지 않을까 심히 염려되는 바요. 생각해 보시오.
짐으로서는 오래 전부터 짐을 가르친 조고에게 일을 맡기지 않으면 도대체
누구에게 맡기란 말이오. 그만 두시오. 조고의 사람됨은 청렴 부지런하며
아래로는 백성의 실정을 익히 알며 위로는 짐의 뜻에 몹시 합당하오.
그러니 아예 그를 의심할 생각일랑 마오.]
이사는 지지 않았다.
[그렇지가 않습니다. 저 조고라는 자는 본래가 미천한 출신이라서 도리를
알지 못하며 탐욕은 끝이 없습니다. 그치지 않고 이익을 추구하며 위세는
주군의 다음이며 지금도 그는 무한한 욕심을 부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를 위험한 인물로 생각하는 바입니다.]
[승상은 그래서 그를 어떻게 조처하면 좋겠다는 거요?]
[폐하의 현명을 어지럽힌 응분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되옵니다.]
[물러가 있으시오. 짐은 그의 처벌을 조금 더 생각해 보아야 되겠소.]
이사를 내친 뒤 2세황제는 서둘러 조고를 불렀다.
[여보게, 낭중령(朗中令). 승상이 그대를 모함했네.]
[무엇이라고요?]
조고는 짐짓 눈을 크게 떴다.
[눈에서 불을 뿜어내데 그려. 그대를 죽이려나 보아.]
[승상의 두통거리는 오직 신 조고뿐입니다. 소신 조고만 죽고 나면 그뿐
아닙니까.]
조고는 머리를 조아리며 울기까지 했다.
[근심할 거 없다. 짐이 그대를 보호하리.]
[다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승상의 권력으로는 여기 조고쯤이야 언제라도
죽일 수가 있습니다. 제나라 전상이 나라를 빼앗은 것처럼 승상의 위세는
폐하의 권세에 버금갑니다. 소신은 그가 두렵습니다.]
[언젠가 승상이 역모의 기미가 있다고 말했던가.]
[기왕에 아뢴 바와 같습니다.]
[그런데도 그의 죄를 왜 아무도 밝혀내지 않았는가?]
[천하에 폐하말고는 승상을 심문할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어명이다. 낭중령이 직접 이사를 심문 취조하라. 알겠는가. 그대가 그의
죄를 밝혀내지 못하면 승상으로 인해서 그대가 죽게 되리.]
조고는 어전에서 겉으로는 울고 속으로는 이를 갈았다.
일단 이사는 옥에 갇혔다.
[아아, 슬프구나!]
이사는 하늘을 우러러 탄식했다. 하늘말고는 억울함을 호소할 곳이
아무데도 없었다. 옆 감방에 역시 무실한 죄로 잡혀 들어온 인물이 있었다.
그는 이사를 알아보았다.
[아니, 승상이 아니십니까. 이 어찌된 일이십니까?]
이사는 힘없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이젠 승상이 아닐세. 날개 꺾인 새요 다리 잘린 고양이일세.]
[대체 천하의 승상께옵서 무슨 죄로 묶인 몸이 되셨습니까?]
[그대는 무슨 죄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가?]
[과중한 세금을 내지 못한 죄를 입었습니다.]
[내지 않았는가 내지 못했는가.]
[노모는 끼니를 거르시다 병이 드셨고 처자는 남의 집 허드렛 일이나마
해서 굶지 않으려고 뿔뿔이 흩어져 갔습니다. 무엇으로 세금을
내겠습니까.]
[대책이 없도다.]
[승상께서는 백성들을 위하여 어찌하여 계책을 세우지 않으셨습니까.]
[계략이란 백성을 위한 군주의 계책이다. 고로 승상은 군주를 위한
계책이 필요했으나 폐하께서는 듣지 않으셨다. 생각해 보게. 무도한 군주를
위하여 무슨 계략을 세울 수 있겠는가.]
[폐하께서는 검수가 빠진 도탄을 모르시고 계십니까?]
[잘 듣게. 옛날 하의 걸왕은 관용봉(關龍逢)을 죽이고 은의 주왕은 왕자
비간(比干)을 죽이고 오왕 부차는 오자서를 죽였다. 이들 신하는 결코
불충하지 않았으나 죽음을 면치 못했다. 그들이 죽은 것은 충성을 받는
군주가 무도했기 때문이다.]
[승상께서도 역시 그런 처지입니까?]
[나의 지혜는 위의 세 사람만 못하고 황제의 무도함은
걸왕.주왕.무차보다 더하다. 내가 충성스러워도 죽게 되는 것이다. 어찌
내가 쉽사리 살아 남겠는가.]
[승상께서도 하물며 그러하거늘 저희 같은 것들이야 삶을 바랄수가
있겠습니까.]
[치세가 어지러우니 검수의 목숨을 어디에 가서 빌까. 황제는 자기
형제를 주살하여 제위에 오르고 충신을 죽이며 천한 자 조고 따위를
존중하고 아방궁을 축조해 중세(重稅)를 거두어들인다. 내가 충고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충고를 듣지 않았던 탓이다. 무릇 옛적 성왕은
음식에도 절도가 있고 수레나 기물(器物)에도 정수(定數)가 있으며
궁실에는 법도가 있어서 명령을 내린 사업에 장구히 편안하였다.
지금의 황제는 역악(逆惡)한 일을 형제에게 행하고도 그 허물을 반성할
줄 모르고 충신을 살해하고도 뒤따를 재앙을 생각지 않는다. 크게 궁실을
축조하고 중세를 천하에 부과하여 마음껏 낭비한다. 이 때문에 천하는
복종을 거부한다. 지금 반역자가 벌써 천하의 절반을 차지했는데도 황제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으며 간신 조고를 보좌로 삼고 있으니 머잖아
도둑이 함양에 이르러 고라니와 사슴〔? 鹿〕같은 야수가 조정의 폐허에서
노는 꼴을 반드시 보게 되리라.......]
[이제 승상께옵서는 어떻게 하시렵니까?]
[달은 차서 기울었다. 하나, 가급적이면 살아 남고 싶다.]
그는 어사에게 어떻게 살아 남을 것이냐고는 묻지 않았다. 이미 승상의
얼굴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읽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된 셈인지
이사가 감옥에서 지껄인 말들이 모조리 조고의 귀로 들어갔다.
[아니 되겠다. 저자의 복수심이 태양처럼 뜨겁기 전에 처치해야겠다!]
조고는 이미 이사의 일족과 빈객들까지 모조리 포박해 놓고 있었다. 혹시
이사를 비호하는 말들이 2세황제의 귀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사는 조고한테서 일천여 회에 걸친 채찍질로 끔찍한 고문을
당했다. 물론 날조된 죄명을 실토하라는 심문과 함께였다.
[그것은 모두가 거짓말이다. 나에게 죄는 없다!]
이사는 끈질기게 버티었다.
[지독한 놈이다. 저쯤 고문을 당했으면 자살해 버리는 게 훨씬 이로울
텐데.]
그러나 조고가 모르는 점이 있었다. 이사가 죽지 않고 버티는 이유는
자신의 변설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 능한 달변으로 전날의 공로를
이해시키고 모반할 생각은 도무지 없었다는 사실을 조목조목 개진시킬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살아 남을 수만 있다면 옥중에서라도 자신의 인간을 감동시키는
명문장을 휘둘러 용서를 바라는 글을 올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사는 자신의 죄질을 인정하지 않았다. 죄를 인정하는 순간 지체없이
목숨이 끊어지기 때문이었다.
이사는 거의 산송장인 채로 옥에 다시 갇혔다. 그는 거기서 혼미스런
정신을 일깨워 글을 지었다. 물론 2세황제에게 올리는 상소문이었다.
[설사 이것이 요행수를 바라는 글일지라도 짓지 않을 수가 없구나.]
- 신이 승상이 되어 백성을 다스린 지가 30년이나 되었습니다. 진의
영토가 아주 좁을 때부터 벼슬하였습니다. 사방이 기껏 천 리이고 병력은
수십만에 불과하였습니다. 신은 없는 재주를 다하여 삼가 법령을 받들고
남몰래 모신(謀臣)을 밀파해 금옥을 뇌물로 주어 제후를 설득시켰습니다.
가만히 군비(軍備)를 갖추고 정교(政敎)를 정비하였으며 질록(秩祿:
녹봉)을 높였습니다. 이런 결과로 한(韓)을 위협하고 위(魏)를
약화시켰으며 연(燕)과 조(趙)를 격파하고 제(齊)와 초(楚)를 평정하여
끝내 6국을 겸병하며 그들의 왕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리하여 선제(先帝)를
천자로 즉위케 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것이 신의 첫번째 죄입니다.
이사의 글을 중간에서 가로챈 조고의 눈은 크게 떠졌다.
[이 자의 언설을 보게!]
- 광대한 영토는 아니었으나 북으로 호맥(胡맥: 북방의 만족)을 쫓아
버리고 남으로 백월(百越: 남방의 만족)을 평정하여 진의 강대함을
과시했습니다. 이것이 신의 두 번째 죄입니다.
대신을 존중하여 그 작위를 높여 군신 사이의 친밀을 굳게 했으니 이것이
신의 세 번째 죄이며, 사직을 세우고 종묘를 수축하며 주상의 현명함을
밝혔으니 이것이 신의 네 번째 죄이며, 눈금을 고쳐 도량형을 균일케 하고
문물제도를 천하에 보급시켜 진의 명성을 드높였으니 이것이 신의 다섯
번째 죄이며, 치도(馳道: 天子 專用의 行幸路)를 건설하고 관광시설을
일으켜 주상이 득의(得意)하는 모습을 보였으니 이것이 신의 여섯 번째
죄이며, 형벌을 늦추고 부세(賦稅)를 가볍게 하여 주상께서 민심을
거두어들이게 하여 천하 만민이 주상을 받들어 죽어도 그 은덕을 잊지
못하게 했으니 이것이 신의 일곱 번째 죄입니다.
신 이사는 그 죄상이 사죄(死罪)에 해당한 지 이미 오랬사오나
폐하께서는 다행히도 신의 능력을 다하게 하시어 오늘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원컨대 폐하께서는 이상의 정상을 참작하시어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사의 상소문이 올라오자 조고는 몹시 노했다.
[이사는 아직도 살겠다고 몸부림인가. 더구나 죄수인 주제에! 일을
늦추어서는 아니 되겠다!]
조고가 아직도 끈질기게 버티고 있는 이사에게 화를 내는 것은 당연했다.
조고는 이사의 상주문을 2세황제에게 올리지 않고 중간에서 폐기시켰다.
그리고 한시바삐 이사를 제거할 방도를 모색했다.
열 명의 식객을 조고는 선발했다. 그들을 가짜 어사(御史: 죄를 규탄하는
관).알자(謁者: 宮室에서 接見및 上? 를 맡아 보는 관).시중으로 가장시켜
번갈아 가며 이사를 잠재우지 않고 심문케 했다. 날조된 내용대로 대답하지
않으면 형리를 시켜 다시 매질하게 했다.
이사는 거의 혼절상태에 있었다. 그래도 거짓죄를 고백하지 않았다. 부디
상소문이 2세황제에게 전달되어 면죄의 은총이 내려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만큼 고조는 초초했다.
[이제는 여유가 없다. 날조된 죄상을 그대로 고백했다는 거짓 보고서를
폐하께 올려라.]
그렇게 되어 이사의 날조된 죄상이 2세황제에게 보고되었다.
[그러면 그렇지. 이사가 역모를 하지 않았을 턱이 없지. 조고가
아니었다면 자칫 승상한테 속을 뻔했구나. 어서 처형하여라. 그리고 이사의
아들 이유도 철저히 취조하여라.]
곁에서 조고는 억울한 듯이 고했다.
[이유는 죽었습니다.]
[무어? 삼천군 태수가 자살이라도 했다는 말이더냐.]
[아니올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오나 반도들끼리 내분이 일어나
반란군의 항량(項梁)이 이유를 쳐죽였습니다.]
[볼 거 없다. 그 아비도 죽여라.]
이사가 철저히 날조된 모반 공술서(供述書)에 의해 함께 잡혀있던 둘째
아들과 옥문을 나서면서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너와 함께 다시 한 번 황견(黃犬)을 끌고 상채(上蔡: 이사의 고향)의
동문으로 나가 토끼사냥이라도 하고 싶었거늘 이젠 다 틀렸구나. 잘
가거라, 아들아.]
2세황제 2년 7월에 승상 이사는 오형(五刑: 먹물들이고 코 베고 다리
자르고 귀 베고 혀 자르는 형벌)을 갖추어 받고 함양의 시장 바닥에서
허리를 잘려 죽였다. 삼족이 모두 주살된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이사가 죽자 2세황제는 조고의 벼슬을 높여 중승상(中丞相)으로 삼고,
정상(政事)의 대소를 막론하고 모조리 조고가 결재를 내리도록
했다.,조고는 자신의 권력이 엄청나게 무겁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는 그 권력의 무게가 정확하게 얼마나 무거운가를
더욱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조고는 잘생긴 사슴 한 마리를 구해서 2세황제에게 바치며
말했다.
[폐하, 아름다운 말이 한 필 있기로 폐하께 바칩니다.]
2세황제가 자세히 보니 그것은 분명히 사슴이었다. 조고가 장난질 치는
줄 알고 웃으면서 대답했다.
[승상도 많이 재미있구려. 사슴을 말이라 함도 그럴 듯하이.]
[아닙니다. 이건 사슴이 아니라 분명 말입니다.]
[무어라고?]
[좌우 근신들에게 물어 보십시오. 말인지 사슴인지를.]
조고가 정색을 하고 되받아 쳤기 때문에 황제는 어리둥절한 태도가 될
수밖에 없었다.
[정말인가?]
[예에, 사슴이 분명합니다.]
[아닙니다. 저건 말입니다.]
[그대는 왜 대답이 없는가.]
[묵묵부답이 소신의 대답입니다.]
대답은 세 갈래로 나왔다. 한편 이 무슨 괴변인가 하고 어전에 나열해
섰던 대신들은 다시 한 번 조고의 얼굴로 향했다. 조고의 눈길이 사납게
사방을 굴리고 있었다. 많은 대신들이 찔끔했다. 2세황제는 다시 물었다.
[경들은 확실히 대답해 주오. 저것이 과연 말이오 사슴이오. 짐의 눈에는
분명 사슴으로 보이는데.]
[옳습니다. 저건 사슴입니다.]
[아닙니다. 말이 분명합니다.]
[모르겠습니다.]
그 날 밤 어전에 섰던 대부분의 신하들이 피살되었다. 사슴이라고 했던
대신들과 모르겠다고 대답한 신하들이 그들이었다. 물론 조고의 밀명에
의해서 그들은 피살되었다.
[어디 두고 보자. 오늘은 반대하는 자가 없겠지.]
조고는 이튿날에도 어전회의를 소집했다. 사슴이다 말이다를 두고 의논케
했다. 정작 아무도 사슴이라도 말하는 자가 없었다.
[짐의 정신에 착란증세가 있나 보오. 말이 사슴으로 보이니 무엇 때문에
짐이 미쳤는지 태복(太卜: 점관)은 점을 쳐 보오.]
조고의 의중을 알아차린 점관은 2세황제에게 이렇게 아ㄹ다.
[폐하께서는 봄.가을의 교사(郊祀) 때와 또 종묘의 귀신을 제사지낼 때
재계가 충분치 못해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많은 덕을 쌓으시어 재계를
충분히 하셔야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그게 사슴이 아니라 말이 확실하구려.]
[그렇습니다.]
2세황제는 곧바로 상림원(上林苑)으로 들어가 목욕재계했다.
[그렇지만 이건 정말 이상하다. 어째서 사슴을 말이라 그러는가......?]
측근을 몰아 사냥놀이에 나섰다. 과연 그것이 말인지 사슴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무어? 폐하께서 목욕재계하시지 않고 사냥놀이를 해?]
조고는 다시 불안해졌다. 하나의 계책을 마련했다. 양민 하나를 화살로
쏘아 죽여 상림원에다 갖다 놓게 했다. 함양의 영(令)으로 있는 사위
염락(閻樂)을 시켜 2세황제께 상주케 했다.
[폐하, 누군인지 알 수는 없으나 사람을 죽여 상림원으로 옮겨 놓은 자가
있습니다.]
[뭐? 죄 없는 사람을 죽여? 그것도 상림원으로 옮겨 놓다니.]
[필시 사냥꾼의 소행인 듯합니다. 그것도 폐하의 측근인 듯합니다.
상림원에는 폐하말고는 검수들이 도무지 드나들 수가 없으니까요.]
[어쨌든 살인은 살인이다. 철저히 조사해 징벌하도록 하오.]
이튿날 조고는 황제 앞에 부복해 아ㄹ다.
[폐하, 함양의 영을 시켜 상림원의 살인사건을 철저히 조사토록 한 적이
있습니까.]
[살인자를 체포했소?]
[상림원에서 화살을 쏜 사람은 폐하밖에 없다는 보고입니다.]
[그럼, 짐이?]
[천자라고 해서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것은 천제(天帝)가 금하는
바입니다. 귀신도 폐하의 제사를 받지 않을 것이며 하늘도 또한 재앙을
내릴 것입니다.]
[아아, 이를 어쩌면 좋겠소?]
[마땅히 궁에서 멀리 떨어져 재앙부터 피하셔야지요.]
[짐이 어디로 떠나는 게 좋겠소?]
[망이궁(望夷宮: 離宮, 陜西省)이 좋을 듯합니다.]
진의 장군 왕리가 사로잡히고 장한이 항복해 가자 함양의 사태는
급박했다. 연.조.제.초.한.위가 모두 자립해 왕국이 되었다. 함곡관
이동(以東)은 대부분 진의 지방관들은 거의가 궐기한 제후들에게 호응했다.
조고는 자신의 신변도 온전치 못하리라는 생각을 했다. 응급조처를
궁리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2세황제는 망이궁에서 꿈을 꾸었다.
악몽이었다.
[태복은 점을 쳐 보오. 꿈 속에서 백호(白虎)가 짐의 어가 왼쪽 말을
물어 죽였소. 무슨 징조요?]
점몽관이 아ㄹ다.
[경수(涇水)의 귀신이 화를 미치게 한 듯합니다.]
[어떻게 해야 화를 면할 수 있겠소?]
[목욕재계하시고 경수의 신에게 제사 지내십시오. 네 마리의 백마를
희생마로 하여 경수에 수장(水葬)시키면 됩니다.]
망이궁으로 2세황제를 쫓아보낸 조고는 황제 측근에 심어둔 신하로부터
긴박한 보고를 받았다.
[2세황제께선 진노하고 계십니다. 승상께서는 평소에 폐하께 '관동의
도적이란 대수롭지 않다'고 말씀드렸는데 유방의 무리에 의해 무관(武關:
陜西省)이 무너졌음을 두고 승상을 몹시 질책하셨습니다. 입조해 알현하지
않음도 병을 핑계댄 것이라 단정하십디다. 승상께서 주살될까 두렵습니다.]
[그렇다면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만 있을 수가 없지. 죄는 2세황제께
뒤집어 씌우면 된다. 자신의 불명(不明)도 죄가 되니까.]
조고는 동생 조성(趙成)과 사위 염락을 불러 모의했다.
[사태는 급하다. 주상(主上)은 그 화를 우리 일족에게 뒤집어 씌우려
하고 있거든. 어떻게 조처하면 좋겠느냐.]
[일단 2세황제를 갈아 치우는 방법부터 강구합시다.]
[대안(代案)을 두고 뒤엎어야 될 게 아닌가.]
[황자 영(영)이 어떻습니까?]
[백성들은 그가 인자하고 검소하다고들 생각하고 있거든요.]
[됐다. 2세황제는 자살하게 만들고 대신 영을 받들기로 한다.]
2세황제가 망이궁으로 든 지 3일 만이었다. 조고는 조칙이라 속여
위사(衛士)들에게 흰 옷을 입히고 무기를 들어 궁 안으로 쳐들어오게 한
뒤, 자신은 한 발 앞서 궁으로 들어가 황제에게 고했다.
[폐하, 큰일났습니다. 산동의 도적들이 크게 일어나더니 급기야 여기까지
쳐들어왔습니다.]
[무어라고? 여기까지!]
[망루로 올라가 보십시오.]
황제는 얼떨결에 망루로 뛰어 올랐다. 과연 흰 옷의 떼거리들이 궁
안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아아,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결국 2세황제는 가장 믿었던 조고의 위협을 받고 자살했다. 조고는
황제의 옥새를 꺼내어 자신의 허리춤에다 찼다. 그것은 '내가 천자가 되는
것이 어떠냐'하는 뜻이었다. 그 때 아무도 그런 조고의 행위를 두고
가타부타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러자 조고는 자신이 생겼는지 옥새를 차고 전상으로 터벅터벅 걸어
올라갔다. 그가 천자가 되든 아니되든 마음대로였다. 그 때였다. 지진이
일어났다. 마치 궁전을 깨어 버릴 듯이 심하게 땅이 흔들렸다. 그 틈에
조고가 비틀했다. 그렇지만 조고는 한사코 천자의 자리로 걸어갔다. 또 한
번의 진동이 궁전을 흔들었다. 전상이 바로 코 앞에 있었다. 전상에 올라서
버리면 그가 천자가 되는 순간이었다.
천지를 진동하는 벼락이 그 앞으로 떨어지고 궁전은 폭삭 내려 앉을 것
같은 진동이 계속되었다.
[아직은 조 승상이 때가 아닌가 봅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시지요.]
누군가가 옆에서 간했다. 조고도 머쓱할 수밖에 없었다. 주위를
돌아보았다. 모든 대신들이 자신을 외면하고 있었다.
[우선은 자영을 천자로 모신다.]
조고는 억울했지만 그렇게 말했다. 자영은 즉위했지만 조고의 반역이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하든 조고를 제거하지 않고는 자신이 제위에
앉는다는 사실이 무의미하다고 느꼈다.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역시
환관 한담(韓談)이 조용히 찾아왔다.
[몸이 좋지 않습니까.]
[아니오. 마음이 아프오.]
[알고 있습니다. 계속 몸이 불편하신 척하십시오.]
[무슨 뜻이오?]
[그래야 조고가 폐하를 문병하러 올 것입니다. 폐하께서 전상으로
오르셔야 조고의 명분이 생길 것이니까요.]
[무슨 말씀인지 알 수가 없소.]
[그 다음의 일은 소신이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아니나다를까 자영이 병을 핑계로 즉위를 미루고 있자 조고가 몸소
자영을 달래러 왔다. 한담은 그 때를 놓치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조고를
척살해 버렸다. 동시에 부하들을 시켜 삼족을 멸해 버렸다.
자영은 진나라 천자로 즉위했다. 그러나 3개월 뒤에 유방(劉邦)의 군사가
무관(武關: 陜西省 商縣 동쪽)으로 해서 함양으로 진입했다.
[무엇들 하느냐! 저들을 물리치지 않고!]
그러나 아무도 자영의 말을 듣지 않았다. 자영은 천하대세의 흐름을
재빨리 읽었다. 자신의 목에다 옥새를 걸고 지도(지道: 陜西省 咸陽縣
북동)로 나가 무릎을 꿇었다. 유방은 자영의 처리를 몸소 하지 않았다. 잘
대접하고 있다가 항우(項羽)가 뒤늦게 달려왔을 때 그의 처리를 내맡겼다.
그런데 항우는 도착하자마자 자영과 그 일족을 섬멸했다. 그렇게 되어
진나라는 멸망하고 말았다. 마침내 자영은 천하를 잃은 것이다.
나 태사공은 이렇게 생각한다. 이사는 미천한 시골출신이지만 제후국들을
돌아다니다가 그 현명한 눈으로 관망하는 바가 있어 강국 진나라로 들어가
진왕을 섬기게 되었다. 열국이 분쟁하는 기회를 틈타며 그 재능을 이용해
시황제를 보필하여 마침내 천하통일의 제업(帝業)을 이루는 일등공신이
되었다. 그는 삼공(三公)의 지위에 오르는 중신으로 존귀되었다.
그러나 이사는 6경(六經)이 가르치는 그 근본을 잘 알면서도 주군의
결점을 보완하는 공명정대한 정치를 하지 않았고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도
주군에게 아첨하는 글을 올리는 따위의 비굴한 인물일 수밖에 없었던
아쉬움이 있다. 더구나 위령(威令)을 엄하게 하고 형벌을 잔혹하게 했으며,
조고의 간악한 의견을 받아들여 적사(嫡嗣: 扶소)를 폐지하고 첩복(妾腹:
胡亥)을 즉위케 한 점도 용서되지 않는다. 제후들이 진나라를 이반하는
것을 보고 비로소 주군에게 충고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그 역시 설득력이
없다.
그러니 세상 사람들이 이사가 충성을 다 바치고도 오형을 받고 죽었다고
하지만, 세속의 공론이 그렇다 치더라도 나는 그런 의견에 달리한다. 만일
이사가 그의 마지막을 잘 판단했더라면 그의 공적은 주공 단(旦)이나 소공
석(奭)의 공훈과 충분히 비길 만했을 것이다.
출처
원문링크 : 사기열전2
댓글 없음:
댓글 쓰기